어떤 '쓰기'를 해야 할까_독일에서 겪은 쓰기 교육 사례

어떤 '쓰기'를 해야 할까_독일에서 겪은 쓰기 교육 사례

'우리 아이가 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토론에 대한 강의나 학부모 상담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쓰기'도 토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쓰기를 위한 쓰기'가 아니라 어떤 '쓰기'를 교육할 것인가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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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에 대한 강의, 학부모 상담 등을 하다 보면 의외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쓰기'에 관한 것입니다. 토론과 글쓰기는 당연히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그 질문이 전혀 이상할 리 없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떠올리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 교육에서는 '독서 토론 논술'이 마치 하나의 덩어리로 묶여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는 것인데요.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하기를 "독서는 지식이 충만한 사람을, 토론은 준비된 사람을, 글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고 했는데 이 세 가지를 한번에 할 수 있다면야 더 이상 뭘 바라겠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독서(읽기)는 독서대로, 토론은 토론대로, 쓰기는 또 쓰기대로 갈 길이 험난하죠. 그 중에서도 '쓰기'는 특히 아이들에게는 가장 고난도의 영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쓰기에 대한 질문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대로 '우리 아이가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입니다. 사실 이런 고민은 제가 부모님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 듣지 않아도 너무 잘 아는 것이, 현재 수업 중인 아이들이 모두 '쓰기'를 안 좋아합니다. 숙제를 내주면 어쩔 수 없이 해오기는 하는데, 아이들 표정이나 결과물을 받아보면 '마지못해 했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죠. 때문에 매번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편하고 재밌게 쓰도록 유도할 지를 고민하고 때로는 가이드가 될 만한 '보기 글'을 제시해주기도 하는데, 그 효과가 한번에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토론과 마찬가지로 쓰기 역시 긴 시간과의 싸움이 필요한 영역인 것이죠.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쓰기 교육을 해야만 합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이 특정 전공이나 직업군에게만 해당되는 능력이었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필요한 능력이 되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글을 잘 쓴다는 건 굉장한 경쟁력입니다. 내 안에 아무리 좋은 의견과 창의적인 생각들이 차고 넘친다 한들 그것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말로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은 훨씬 더 정교하고 정제된 형태라는 점에서 생각과 의견을 꺼내어 보이기에 더없이 훌륭한 수단입니다.

Journaling Over Coffee
Photo by Hannah Olinger / Unsplash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이 있는데요, '잘'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어떤 쓰기 교육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얼마 전 읽었던 책의 한 부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종종 객관식 시험을 폐지하고 논,서술형 평가를 하기만 하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객관식 시험 폐지가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 꺼내는 교육으로 가는 신호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논,서술형 시험이 꺼내는 교육을 무조건 보장하지는 않는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보면 서울대 학생들은 교수의 말을 그대로 수용할수록 학점이 높고,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할수록 학점이 낮은 경향을 보였다. 서울대에서는 객관식 시험을 안 본다. 대부분 논,서술형 시험이다. 그래도 수업에서 교수가 하는 말을 다 받아 적을수록, 교수의 의견을 무조건 따를수록 학점이 높았다. 서울대의 어떤 교수도 "내가 한 말과 똑같이 쓰면 A+를 주겠다."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독창적이고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보고서를 쓰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평가에서는 교수의 관점, 논리, 용어를 그대로 쓴 과제에 높은 점수가 부여되었다. 이렇게 하면 논술형 시험이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내지 못할 수 있다.>

-<IB를 말한다>(창비), 제5부 '쏟아진 질문들에 답하다' 중

이 책에는 위 내용과 연관해 서울대 모 학과의 일화 몇 개가 이어서 제시되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습니다.

한 교수님이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이것은 내가 10년 째 가르치는 이론"이라고 설명하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하더라고 합니다. "교수님, 저는 좀 생각이 다른데요." 그리고 교수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하더란 거죠. 교수님은 자존심도 상하고 당혹스러우셨겠죠. 그런데 수업 후에 강의실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학생 말이 일리가 있더란 겁니다. 얼마 후 한 글로벌 회사에서 학생 두 명을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이분은 학과에서 매우 성적이 좋은 모범생과 그 '삐딱한'(학점이 낮았다고 하네요) 학생을 추천했다고 해요. 한참이 지난 후 그 학생들이 일하는 회사의 사람을 만났는데 삐딱한 학생을 극찬하더라는 겁니다. 이유인 즉, 그 학생은 회의마다 자기 의견을 제기하는데 모범생이었던 제자는 도대체 자기 의견이 없더라는 거에요. 이 일이 있은 후 그 교수님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능력에 점수를 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해요.

위 사례는 글쓰기 보다는 비판적, 창의적 사고와 말하기에 더 적합한 예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하고 말하기는 굉장히 비판적이고 창의적인데 시험 답안을 쓸 때는 교수님 성향과 점수를 고려해 창의적 관점을 배제하고 '최대한 교수님이 말한 대로' 쓰는 이중적 태도를 취한다면 그것까진 어쩔 도리가 없지만, 실제로 우리가 쓰는 글은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활자화 하는 것입니다. 비파적,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그런 글을 쓰는 것이죠.  

다시 말해 쓰기 교육 자체가 그냥 '쓰는' 행위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어떤 쓰기'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가령 일기 쓰기를 한다고 생각해볼까요. 쓰는 자체를 습관화 하는 차원에서 일기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지만 만일 그 일기 쓰기가 어쩔 수 없이 과제처럼 느껴 종이를 채우는 것에만 목적을 둔다면 좋은 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그렇게 '과제로 느껴진다는 점' 때문에 아이가 점점 더 쓰기를 싫어하게 된다면요?

쓰기를 위한 쓰기가 아닌 토론에서 내 생각과 의견을 독창적으로 제시하는 것처럼 쓰기 역시 나만의 생각, 의견, 즉 창의적인 것들을 꺼내어 풀어놓는 과정이라야 합니다. 토론을 즐기게 되면 결국 토론을 잘하게 되듯이 마찬가지로 쓰기 또한 즐겁게(최소한 너무 너무 하기 싫지는 않도록) 여길 수 있다면 잘하게 되는 것은 수순입니다.

The Lost Art of Writing
Photo by Kelly Sikkema / Unsplash

이전에 독일 교육의 서술형 시험을 통해 본 '토론과 글쓰기의 상관 관계'라는 글에서 말한 바 있지만 독일에서는 모든 시험이 서술형이고 그 시험은 토론식 수업을 바탕으로 합니다. 즉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과 의견을 말하는 훈련과 더불어 그것을 활자화 하는 쓰기 교육이 어렸을 때부터 필수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독일에서 경험한 쓰기 교육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저는 사소하지만 흥미와 재미, 나아가 성취감을 부여하고, 또 '쓰기를 위한 쓰기'가 아닌 자기만의 무언가를 반드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단어 시험과 쓰기의 연계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아이는 본격적으로 쓰기 교육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어 익히기와 연계된 쓰기였어요. 하루에 5~10개 정도의 단어를 제시하면 아이들이 해당 단어를 넣어서 문장을 만들어가는 식이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단어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단어만 쓰는 게 아니라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쓰게 한다죠.) 재밌는 건 선생님의 첨삭을 통한 정확한 표현과 문법 체크만이 아니라, 문장의 창의성 자체를 중요하게 본다는 겁니다. 이 또한 선생님의 독자적 판단에 따르지 않고 반 친구들의 공개적 투표와 반응 등을 통해 체크하죠. 아이들은 다른 친구가 만든 기발하거나 유머러스한 문장을 공유하고 평가하기도 하면서 스스로 더 창의적인 문장을 만들고 싶다는 동기 부여를 받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숙제라고 여긴다면 가장 짧고 단순한 문장으로 빨리 해치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떤 문장을 만들면 친구들의 반응이 좋을까를 생각하며 더 많이 상상하고 독창적인 문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우리집 아이는 나중에는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를 연결해서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아예 이야기 창작을 하고 있더군요. 단어를 익히는 방식으로서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문장과 글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더불어 아이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데도 결정적 기여를 했고요.

요약하세요, 단 본문에 없는 자신만의 단어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수업은 해당 과목에서 배우고 있는 특정 주제를 다룬 글이나 기사(article)을 요약해보는 수업이었습니다. 가령 '물'에 대해 배운다면 물에 관한 정보를 다룬 글을 주고 간추리게 하는 식이죠. 이때 재밌는 건 반드시 '자신만의 단어'를 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글이나 기사에 나온 내용의 핵심을 요약하되 본문에 나온 어휘를 사용하지 말라는 겁니다.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고 요약하기도 힘든데 자신만의 단어를 쓰라니요. 저는 이 부분에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보통 아이들에게 요약을 해보라고 하면 본문 안의 문장들을 몇 개 그대로 가져다가 쓸 때가 많은데 사실 그 방식은 중심 문장을 파악하는 것일 뿐 자신의 글을 쓰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본문에 나온 핵심 단어는 쓰지 못한다는 전제가 깔리면 자신이 아는 어휘력 안에서 문장 자체를 새로 창조해야 하니 맥락을 파악하고 핵심을 간추리는 능력에다 자신만의 글쓰기까지 추가되는 셈이죠.

일기 대신 '리플렉션' 쓰기

생각을 동반하는 글쓰기 교육은 '데일리 리플렉션(Dailt-Reflection)'을 통해서도 이뤄졌어요. 아이가 4학년이 된 후 매일 정규 수업이 끝난 다음 '리플렉션 노트'를 써야 했는데요, 데일리 리플렉션은 쉽게 말해 '자기 스스로에 대한 그날의 성찰'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기 쓰기와 비슷하지만 성격이 좀 다르죠. 일기가 하루 일과에 중점을 두었다면 리플렉션 쓰기는 온전히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의 리플렉션 노트를 보면 아무래도 학교 생활과 관련될 때가 많았습니다. 하루 중에 스스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또 잘못한 일이나 부족한 점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리플렉션 쓰기'는 깊은 사고를 동반하는 의미 있는 쓰기 교육인 셈이죠.

taking a picture of hanging lights
Photo by RetroSupply / Unsplash

다시 앞에서 제시한 책의 인용 부분으로 돌아가 볼까요. 서울대에서 A+를 받는 학생들은 교수님의 말, 의견을 받아적듯 글을 썼다고는 하나, 분명히 서론 본론 결론의 명확한 글의 구조, 단락의 형성, 문장의 완결성, 다양한 어휘와 유려한 표현 등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같은 말이라도 이처럼 형식을 갖추고 쓴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은 평가자의 마음에 전혀 다르게 와 닿을 테니까요. 예상컨대 그렇게 글을 구조화하는 '논리적 글쓰기'를 학교나 또는 학교 밖에서 배웠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논리적 글쓰기, 매우 중요하죠. 그러나 적어도 어렸을 때 만큼은 먼저 생각을 드러내는 글 쓰기, 창의적인 글쓰기에 집중 했으면 합니다. 처음부터 창의적인데다 논리적인 글을 쓰는 건 어른에게도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형식을 맞추는 것보다, 논리와 구조에 갇히는 것보다 쓰기를 즐거운 것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 온전히 독창적이고 자기 자신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야 말로 진짜 경쟁력입니다. (쓰기를 좋아하게 되기만 하면 나중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씁니다.) 심지어 지금은 AI가 글을 쓰는 시대잖아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엄청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손글씨'의 부담도 가급적 줄여주면 좋겠습니다. 손글씨를 쓰느라 쓰기가 죽도록 싫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컴퓨터로 쓰고 글 쓰기를 좋아하게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순전히 개인적 생각을 밝혀봅니다.

손글씨 쓰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전혀 아닙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바른 글씨 쓰기와 성장기 두뇌 및 집중력 발달, 육체 건강, 마음 건강, 그리고 소근육 발달 등에 대해서는 저도 잘 알고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든 글을 '손글씨'로 써야 한다는 부담을 주면 아이가 떠오르는 창의적 생각들을 오직 '쓰는 행위가 싫다'는 이유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럴 때는 이원화 하면 좋겠죠. 필사나 간단한 글 쓰기로 바른 손글씨 쓰기를 익히고 생각을 드러내는 글쓰기는 편한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저 역시 아이의 악필이 너무 걱정이 돼 어릴 때 했던 손글씨 교육이 있습니다. 바로 '엄마와 함께 감사 배틀 쓰기'였는데요. 노트 한 권에 날짜를 적고 매일 그날의 감사 내용에 대해 기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일종의 함께 쓰는 '감사 일기장' 같은?

아이에게 동기 부여를 위해 매일같이 반드시 제가 먼저 '감사 내용'을 적었고요, 그 내용을 확인한 아이가 '배틀에서 지지 않기 위해' 그날의 감사한 일을 잊지 않고 쓰곤 했습니다. 손글씨 교육으로 시작했었지만, 서로의 감사 내용을 확인하게 되는 것, 또 감사한 일을 써야만 하다 보니 아주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게 되는 효과까지 덤으로 있었죠. 여전히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아이의 '감사' 내용이 문득 생각나네요. "엄마가 내 엄마라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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