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를 사랑하는 나라, 독일 가정의 '소비 교육' 들여다보니...

중고를 사랑하는 나라, 독일 가정의 '소비 교육' 들여다보니...

우리나라도 어린이, 청소년 경제 교육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죠. 경제와 금융에 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어릴 때 정립하는 기본적인 경제 관념과 소비 교육은 정말 중요한데요, 독일 교육에서 그 힌트를 찾아보겠습니다.

anotherthinking

탄산음료를 마셔본 적 없고, 그 맛을 몰라 더욱 탄산음료를 찾지 않던 아이가 중학생이 된 후 사이다를 '마실 줄' 알게 됐습니다. 며칠 전 피자를 먹으면서 사이다를 찾는 아이를 보더니 남편이 묻더군요.

"그런데 어떤 계기로 사이다를 마시게 된 거야?"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마셔보게 됐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결정적 계기'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던 터라 저 역시 남편 질문에 대한 아들의 답이 궁금하더라고요. 아빠의 물음에 아들의 답은 이랬습니다.

"아, '2+1'때문이야."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남편과 제가 얼굴에 물음표를 한 가득 떠올리고 있었더니 부연 설명이 이어집니다.

"7학년 되면서 애들이랑 수요일마다 편의점 가서 컵라면 먹곤 했잖아. 그때마다 우리가 컵라면이랑 음료를 고르는 기준은 무조건 '2+1 제품'이거든.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사이다를 살 수밖에 없어서 마시게 된 거지."

제가 생각했던 시나리오에서 100% 벗어난 스토리더라고요. 친구들이 '사이다도 못(안) 마시는 아이' 쯤으로 놀릴까 봐 먹게 됐다는 이야기 정도 예상했었는데 말이죠. 아이의 답변에 남편이 '합리적 소비'라고, 아껴 쓸 줄 아는 좋은 태도라며 아이와 친구들을 칭찬을 해주자 아이는 목소리가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누가 비싼 거 사려고 하면 다들 엄청 지적하고 혼내. 한 번은 F가 신발을 새로 사러 간다고 해서 애들이 다 한 마디씩 하면서 못 사게 했다니까. 신발이 사실 많이 낡고 지저분하긴 했거든. 근데 우리가 F한테 한 6개월은 충분히 더 신을 수 있다고 강조해서 신발 사러 못 갔잖아!"

이쯤 되면 소비 철학인지 남자아이들 사이의 놀이인지 헷갈리긴 합니다만, 그런 분위기 덕분에 아들 아이도 무릎에 구멍이 난 운동복 바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학교에 가고, 신발이 해져서 새로 장만하자고 해도 충분히 더 신을 수 있다며 거부하는 등 오래 입고 쓰는 데 더 큰 가치를 두는 건 분명 있는 듯합니다.


사실, 아이의 친구들 중에는 양쪽 모두 독일인 부모를 둔 전형적인 독일인인 아이가 드물고 대부분 부모 국적이 혼재 된 다국적 아이들이 많긴 합니다만, 가끔 아이들의 소비 성향 등에 대해 듣고 있으면 독일에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독일 부모들의 경제 교육 방식'이 떠올리게 됩니다. 아이의 학교 친구들도 가정에서부터, 또 독일 사회의 문화적 영향으로 절약하는 소비 습관을 갖게 된 건 아닐까 짐작하는 거죠.  

©어나더씽킹랩 via Dalle3

어릴 때부터 벼룩시장 참여하고 주급 또는 월급으로 용돈 관리

2024년 새해가 되면서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독일 통계사이트에 올라온 '독일인들의 새해 다짐'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였는데요, 1위는 바로 '더 많이 돈 절약하기'였어요. 분석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생활 물가 등이 급격히 오르면서 전년도 3위였던 항목이 1위로 올라선 결과라고 하는데요, 더 흥미로운 건 그 어느 답변에도 재테크 성공이나 부자 되기 같은 항목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뭐, 우리도 새해 다짐에 빠짐없이 '저축하기' 같은 답변이 제기되곤 하니 딱히 특이점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독일 사회에서 독일인들의 성향을 직접 겪어본 입장에서 보자니 '너무나 독일스러운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일인들은 몸에 근검 절약 정신이 배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관이 자녀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는데요, 부모로부터 보고 배운 환경의 영향도 크지만, 교육을 통해 돈을 대하는 태도와 경제 관념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독일 아이들이 받는 경제 교육은 대부분 가정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인데요, 대표적인 예가 바로 '플리마켓' 즉 벼룩시장 참여입니다.

독일 전역에서는 이루 셀 수 없는 정도의 수많은 플리마켓이 고정적으로 열립니다. 우리나라에서 경험하듯 새 물건이나 거의 새 것 같은 고급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이벤트 성격이 마켓 개념이 아니라, 그야말로 자신이 쓰다가 필요 없어진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수 있는 '진짜 중고'를 거래합니다. 독일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플리마켓을 구경하러 갔다가 문화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요, 누가 봐도 쓰레기처럼 보이는 물건이며 의류 폐기함에 넣을 만한 옷들까지 팔고 사는 현장을 보면서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의 중고에 대한 인식은 어디까지인가' 하고 놀란 경험이 있어요.

독일 아이들은 부모님의 중고 거래를 보고 자라는 것을 넘어 직접 참여를 통해 물건을 대하는 태도와 소비에 대한 철학, 경제 활동의 개념까지 배웁니다. 어린이를 위한 플리마켓이 따로 열리기도 하고,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플리마켓을 여는 등 스스로 경험할 기회가 많은 덕분입니다. 이때 아이들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자기 물건을 정리하고, 판매하고, 그 수익으로 다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식의 순환적 경제 활동을 경험하게 되죠.

플리마켓이 일상에서 문화적, 환경적으로 경제 교육을 하는 방식이라면 보다 직접적으로 '돈'에 대해 가르치는 방식도 있는데요, 바로 '용돈 교육'이 그것입니다.

독일에서는 어릴 때부터 용돈을 주며 돈의 가치를 가르칩니다. 보통 학교에 입학하는 시기 전후를 용돈을 주기 시작하는 적절한 타이밍으로 봅니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경제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용돈 규모를 정하고 스스로 운용해보게 하는 부모님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독일에서는 연령별로 '적당한 용돈 규모'에 대한 가이드가 있을 정도로 용돈을 통한 교육이 일반화돼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용돈을 지급하는 간격 또한 9세까지는 '주급' 형태, 10세부터는 '월급' 형태로 주는 방식을 통해 계획적이고 꼼꼼한 돈 관리를 미리 경험해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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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청소년 연구소가 제시한 가이드에 따르면, 6세 미만은 0.5~1유로 / 6세는 1~1.5유로 / 7세는 1.5~2유로 / 8세는 2~2.5유로 / 9세는 2.5~3유로를 주급으로 주는 것을 권장하고 있어요. 10세부터는 월급으로 주는 것을 권하는데요, 10세는 16~18.5유로 / 11세는 18.5~21유로 / 12세는 21~23.5유로 / 13세는 23.5~26유로 / 14세는 26~31유로 / 15세는 31~39유로 / 16세는 39~47유로 / 17세는 47~63유로 / 18세는 63~79유로 정도를 적정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의 한 플리 마켓. ©어나더씽킹랩

만 13세부터 경제 활동 가능, 노동의 가치와 돈 개념 배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형태가 바로 직접 돈을 벌어보는 '아르바이트'입니다.

독일에서는 만 13세 이상이면 경제 활동이 가능한데요, 보통 15세 미만의 아이들은 하루 한 두 시간 정도 아주 간단한 노동을 합니다. 예를 들면, 이웃에 사는 동생을 돌봐주거나 부족한 공부 등을 가르치는 일, 휴가를 떠난 집의 반려 동물이며 식물 등을 보살펴주는 정도의 일인데요, 이를 통해 일의 가치도 배우고 돈도 버는 일석이조의 경험을 하고 있죠.

15세 이상의 청소년들은 경제 교육은 물론, 보다 본격적으로 직업의 세계를 미리 경험해보는 차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직접 돈을 벌어보는 경험은 자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일인들의 교육 가치관과 결부된 방식이기도 한데요, 덕분에 대부분의 독일 청소년들은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마인드가 강한 편입니다.

이처럼 알뜰하고 절약하는 마인드, 합리적인 소비, 돈과 노동에 대한 가치 교육 등은 대부분 가정 교육으로 이뤄지지만, 학교 역시 관련해 기여하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교과서 대물림'이 그것인데요, 학년마다 새 교과서를 지급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학교에서 선배가 쓰던 교과서를 물려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새 교과서 하나 당 4~5년 정도를 사용한다고 들었는데요, 따라서 아이들은 교과서를 굉장히 깨끗하게 사용하고 다음 학년에게 물려주는 것이 습관화 돼 있죠.

경제 교육으로 유명한 유대인의 방식과 달리 독일의 경제 교육은 딱히 이상향이나 롤 모델로 제시되는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본 입장에서 독일인들의 근검 절약, 소비 철학 만큼은 배울 점이 많아 보입니다. 특히 '그래야 한다'고 학습을 통해 배우는 방식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또 환경과 문화를 통해 자연스레 몸에 배고 깨닫게 된다는 점이 가장 강력한 강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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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별개로 독일 사회 역시 청소년들의 금융 및 경제 지식 수준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고 해요. 이에 따라 모든 연방주에서 경제 과목을 필수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고요. 주마다 교육 정책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 독일에서는 일부 주에서 경제 과목이 도입되어 있을 뿐 전체적으로 공통된 경제 과목은 없는 상황입니다.

  • 커버 이미지_©어나더씽킹랩 via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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