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학교의 '심화 수학' 클래스에서는 뭘 배울까

독일학교의 '심화 수학' 클래스에서는 뭘 배울까

'심화 수학' 혹은 '상위권 수학'이라고 하면 어떤 과정이 짐작되시나요? 수학 실력자들만이 풀 수 있는 난이도 높은 '문제'가 떠오르는 게 일반적이죠. 그런데 독일학교의 '심화 수학'은 결이 많이 다릅니다. 생각하고 토론하고 증명하고 깨닫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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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수업을 듣고 나면 여러분은 우리가 굉장히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수'가 무한분의 1 정도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이 문장을 듣고 머리에서 종이 울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을 막 얻은 순간이었거든요. '수학은 생각하는 과목'이라고 믿는 제 생각이 더 확고해지는 순간이기도 했고요. 이 문장을 저에게 전해준 사람은 우리집 아이인데요, 무려 이틀에 걸쳐 수학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수'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드디어 저를 '설득시킨' 아이가 전해준 말입니다.


"자연수랑 정수 개수가 똑같다고?"

지난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가 저에게 문제 하나를 냈습니다. 아이는 매주 금요일마다 학교에서 방과 후 선택 과목으로 '어드밴스드 매쓰' 그러니까 우리말로 하면 '심화 수학'(혹은 '상위권 수학') 클래스를 수강하고 있는데, 그날 수업 시간에 '토론'한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엄마, 자연수와 정수를 일대일 매칭시킨다고 할 때 어떤 수의 집합이 더 클 것 같아?"

독일학교 7학년, 그러니까 한국 학년으로는 중학교 1학년으로 아직 그다지 깊이 있는 수학을 배울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심화 수학' 클래스인데 자연수와 정수의 크기 비교에 대해 한 시간씩이나 토론을 하다니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당연히 정수지. 정수는 음수까지 해당하니까 간단히 생각해도 자연수의 두 배인데다 0까지 포함하고 있잖아."

자신만만하다 못해 어이없어 하는 제 대답에 아이가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한다는 말이,

"틀렸어. 자연수와 정수는 개수가 똑같아."

학교 다닐 때 분명히 자연수가 정수에 포함되고 정수는 유리수에 포함된다고 배웠는데, 개념만 보더라도 당연히 정수보다 자연수보다 많은데, 이게 무슨 소리람?  

아이가 한참을 설명하더라고요. 일차적으로 간단히 설명하면 "자연수도 무한의 수고, 정수 역시 무한의 수이니 그 크기가 같다"고 했습니다. 자연수 하나에 정수 하나를 매칭한다고 할 때 얼마든지 매칭할 수 있는 숫자가 있으므로 '같다'는 논리였습니다. 당연히 제가 반박했지요.

"그렇게 설명하는 건 틀렸지. 자, 매칭할 때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1과 1, 2와 2 등 같은 수를 대응 시킨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정수의 음수랑 0은 누구랑 매칭할 거야?"

내친 김에 좌표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열심히 주장했습니다.

"자 봐봐. 이 좌표에서 정수는 X좌표의 0을 중심으로 해서 좌우로 무한으로 뻗어나간다고 할 수 있지만, 자연수는 X좌표의 1부터 시작해 오른쪽으로만 무한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에 절대로 크기가 같을 수 없지."

'선생님이 뭔가 잘못 생각하신 것 아냐?'라고 의문을 제기하려는데 아이도 역시 그림을 그리더라고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자연수가 반드시 좌표 1에서 시작해야 돼? 자연수 1과 정수1을 꼭 매칭할 필요도 없지. 자연수는 무한이고 정수도 무한이기 때문에 항상 1대 1 매칭할 수 있는 상대방의 수는 늘 존재해. 이 그림을 봐봐. 엄마가 그린 것처럼 자연수를 좌표 1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무한대의 어딘가 '맨 가운데 수'를 중심에 둔다고 생각해봐. 그러면 똑같이 자연수도 좌우로 무한대인 거야."

아이가 좌표 위에 그린 '자연수 무한 직선'과 '정수 무한 직선'을 보는데 놀랍더라고요. '그렇지. 자연수는 무한이니까 굳이 자연수 직선을 한쪽이 막힌 선으로 그릴 이유가 없는 거구나.'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자연수와 정수의 집합 개수가 같다'는 명제 앞에서 마치 새로운 세상을 본 것 같은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수학'을 매개로 한 열띤 토론 혹은 대화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심화 수학' 클래스는 학교에서 수학 좀 잘한다고 평가 받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하는 수업입니다. 학기 초에 '추천 방과 후 수업'으로 '심화 수학(독일어로 Mathe für Asse)'을 추천 받은 아이들만 선택할 수 있는 수업으로, 몇 개 학년의 아이들이 동시에 수강합니다. 현재 7학년인 아이는 6학년, 8학년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는데요, 각 학년 당 2~3명씩으로 전체 8명의 아이들이 해당 수업을 듣고 있다고 합니다.

몇 년 째 줄곧 '심화 수학' 클래스를 듣고 있는 아이지만 사실 지난 학기까지만 해도 그다지 재밌어하지는 않았습니다. 퍼즐을 풀거나 보드 게임을 하거나 선생님이 추천하는 '수학 수수께기'를 풀면서 수업 시간을 보냈는데 어쩌다 흥미로운 수학 수수께끼 문제를 풀 때를 제외하고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더라고요. 그랬던 아이가 7학년이 시작된 지난 9월 이후로는 지난 금요일처럼 들뜬 목소리로 수업 내용을 공유하는 일이 잦아졌죠. 마치 '신기하고 재밌는 수학의 세계'를 접한 것 같은 느낌으로 말입니다.


아이와 저는 이런 식으로 '수학'을 매개로 열띤 대화를 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닌 '대화'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배웠거나 혹은 유튜브를 보다가 알게 된 흥미 진진한 수학 이야기를 들려주며 먼저 대화를 시작할 때도 있고, 제가 어디선가 들었거나 예전에 경험한 수학 관련한 내용을 던지며 대화를 열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수학의 특정 개념이나 법칙, 공식 등에 대해 필수적으로 이야기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저는 바로 이런 순간들이 아이가 수학을 좋아하게 된 절대적 이유라고 믿고 있죠.

예를 한번 들어볼게요. 역시 최근에 있었던 대화인데요, 공부 관련한 TV 프로그램에서 봤던 수학 문제가 꽤 흥미로워 아이에게 한번 생각해보라고 한 적이 있어요.

"자, 좌표 위에 두 개의 점이 있다고 생각해봐. 그럼 그 점과 점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길이를 재면 되잖아."
"자를 쓸 수 없고, 그리고 원래 수학 문제라는 게 반드시 진짜 측정한 것과 답이 같지는 않잖아. 첫 번째 점의 x좌표를 x1이라고 하고 두 번째 점의 x좌표를 x2라고 할 거야. 마찬가지로 y좌표를 y1, y2라고 하면, 첫 번째 점의 위치는 (x1, y1)이고 두 번째 점의 위치는 (x2, y2)가 되는 거지. 자, 그럼 이제 어떻게 구하면 좋을까?"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에게 좌표 위에 점을 찍고 선분으로 연결해 그림을 보여주었죠. 그래도 아이가 알 리 없습니다. 왜냐, '두 점 사이의 거리' 문제는 고등 수학이고 선행을 하지 않는 아이는 알 길이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이에게 이 문제를 제시한 이유는 수학에서 단순히 공식을 외워 문제를 빨리 푸는 것이 아니라 원리와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고등학교 1학년에서 배우는 거야. 그리고 공식이 있어. 공식을 외우면 아주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야. 근데 말야, 바로 그 공식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를 아는 게 훨씬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많은 아이들은 그냥 공식을 외우기만 한다는 거지."

이렇게 시작한 대화는 '두 점 사이의 거리'를 구하는 공식이 탄생한 배경, 즉 직각삼각형의 변의 길이에 관한 '피라고라스 정리'까지 이어졌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피타고라스 정리는 왜 그런 것이냐"라고 묻더라고요. 그 질문으로 다시 대화가 시작돼 직각 삼각형의 각 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를 비교하는 '피타고라스 정리'가 탄생한 배경으로까지 이어졌지요.    

'피타고라스의 정리'의 증명. 

엄마가 수학을 대하는 태도를 답습하는 아이

언젠가 서점에 갔다가 우리집 아이 학년에 해당하는 한국 수학 심화 문제집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푸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난이도가 상당한 문제들이 대거 포함돼 있더라고요. 그 중에서도 '상위권' 타이틀을 달고 있는 어떤 문제집들은 '좌절을 경험하게 해주려고 작정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렵더군요.

제가 이번에 아이에게 '자연수와 정수의 크기 비교'에 관한 '심화 수학' 수업 내용을 전해 들으면서 놀랐던 이유는 단순히 처음 접하는 명제에 대한 신기함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수업이 지향하는 내용 자체가 너무나 신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수학을 매개로 생각하고 토론하고 깨닫고 나아가 수학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들게 하는 '심화 수학'은 빠른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정확하게 풀어야 하는 우리 교육 과정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일까,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고요. 수학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학을 싫어하고 심지어 많은 아이들이 일찌감치 '수포자'가 되는 현실이 늘 안타깝기만 저로서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미지_픽사베이

'자연수와 정수 개수 비교'에 대한 열띤 논의가 끝난 후 신이 난 아이는 또 다른 문제를 던지더군요.

"그 다음으로 토론하기 시작한 건 무리수에 대해서야. 무리수는 분수로 표현할 수가 없는 무한소수를 말하잖아. 그런데 분수로 표현할 수 있는 두 개의 유한소수 사이에는 무한 개의 무한소수가 존재한대. 우리는 다음 시간에 이 명제를 증명하는 토론을 하게 될 거야."

지금껏 알아온 수의 체계가 완전히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던 저는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그동안 수학을 꽤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너랑 이야기하다 보니까 완전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기분이야! 와, 정말 놀라워! 앞으로도 나에게 많이 알려줘!"
"너무 재밌지? 첫 날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 이번 학기 내내 우리는 '무한'에 대해 배우게 될 텐데, 학기가 끝나고 나면 우리가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수'라는 것이 겨우 무한분의 1 정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라고 말이야."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전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상기돼 있었습니다.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것도 있겠지만 대화 상대가 되어준 저의 반응을 보면서 더 들뜬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공부와 관련해 다른 학부모님들로부터 질문을 받거나 조언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제가 늘 하는 말은 "엄마 먼저 재미와 흥미를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엄마가(아빠가) 수학에 대한 걱정과 공포를 그대로 드러내면 아이는 '수학은 어렵고 두려운 것'이라고 선을 그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수학만이 아니라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고요.

독일학교의 토론하고 대화하는 '심화 수학' 방식이 우리 교육 과정에서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부모가 수학을 매개로 즐겁게 대화해주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어려운 명제일 필요도, 뭔가를 증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수학 개념을 다룬 동화가 될 수도 있고, 교과서나 문제집 속 특정 문제 하나가 매개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생활 속에서 무수히 발견할 수 있는 수학의 세계가 화두가 될 수도 있겠고요. 독일학교의 '심화 수학'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통해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바로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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