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이 강한 나라 독일에서는 '교권과 학생 인권'이 어떻게 공존 가능할까

교권이 강한 나라 독일에서는 '교권과 학생 인권'이 어떻게 공존 가능할까

지난 주말 전국의 교사들이 거리에 모여 외친 구호는 '교사 생존권 보장'이었습니다. 교권을 넘어 생존권마저 위협 받는 현실이라니, 병들대로 병든 교육 현장이 참담하기만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례를 접하며 교권이 강한 독일을 떠올립니다. 어쩌면 우리가 찾아가야 할 해법에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요.

anotherthinking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대접 받는 일이 아닐 수 있어요."

지난 7월 19일 수요일, 토론이라는 공감대를 갖고 있으며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가진 한 초등학교 선생님과 통화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인사를 나누다 마침 올해 초 학교를 옮긴 선생님의 이직을 두고 "선생님 같은 분이 부임하셨으니 그 학교 학부모님들은 얼마나 좋아할까요!"라고 말한 저에게 선생님은 낮은 목소리로 위와 같이 말씀하셨죠.

그날 뒤늦게 뉴스를 확인한 저는 선생님의 그 한 문장이 내내 마음에 얹혀 무거웠습니다. 그날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들이 느꼈을 비통함과 참담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요.


다분히 감정적인 대응, 혹은 '한 번 당해봐라' 하는 악의적 의도를 가진 허위 신고 등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 인해 교실 내에서 기본적으로 행해져야 할 교사의 '지도 편달'조차 어려워졌다는 이야기, 교사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학생들의 선을 넘는 발언과 행동 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익히 알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진 참담한 사건들(한 선생님의 극단적 선택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 충격적 수준의 폭행을 당하신 선생님들의 여러 사례)을 접하며 우리가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구나, 모두가 절실하게 깨닫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 동안 검은 옷을 입고 눈물과 한숨 속에 수많은 교사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것은 단지 생을 마감한 선생님에 대한 추모, 교육 현장에서 참담한 일을 겪고 있는 선생님들을 대변하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교육 현장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교권 침해, 생존권 위협은 대한민국 모든 교사들이 처한 현실이고, 이에 대해 더 이상은 참고 인내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일 겁니다.

이미지_픽사베이

지난 주 내내 우리나라 교사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말해주는 수많은 기사와 사례들을 접하면서 저는 독일 교육 현장에서 교권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으며 교사와 학부모, 학생의 관계가 어떠한 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을 마친 지금까지 6년 간 아이와 제가 경험한 독일 교육 현장은 한마디로 '교권과 학생 인권이 동시에 존중 받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형식의 체벌도 있을 수 없음은 당연하고, 그 어떤 나라보다 인권,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을 우선시하는 환경이면서도 교권이 살아있는 곳인 거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교권과 학생 인권은 어느 하나가 희생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방식일 때 훨씬 건강하다는 점입니다.

(교권만이 아닌 학생 인권을 동시에 거론하는 까닭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교권 침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과도한 학생 인권 존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데요,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과도한'이지 '학생 인권'이 아니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교권을 살리기 위해 학생 인권이 침해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교권과 학생 인권이 공존하는 교육 현장이 될 때 건강한 학교, 교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제가 6년 간 직접 경험했거나 간접 체험한 독일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교권이 살아있고 보장받는지, 교사들과 학부모, 학생의 관계는 어떠한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먼저, 독일에서 교사는 어떤 개입이나 간섭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 받습니다. 그 외 기타 필요한 다른 소통에 대해 학교는 별도의 채널을 운영하며 지원하죠. 덕분에 학부모와의 불필요한 접촉을 할 필요가 없으며, 사소한 민원이나 불만을 듣고 처리해줄 그 어떤 의무나 책임도 발생하지 않는 겁니다.

다시 말해, 모든 학부모는 담임 교사와 그 어떤 개인적 연락도 취할 수 없는 건데요, 아파서 학교에 빠져야 하거나 지각이나 조퇴 계획 등 급한 일이 생겨도 담임이 아닌 '담당 오피스'를 통해 연락합니다. 현재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경우는 '결석 및 지각, 조퇴' 등을 담당하는 오피스 담당자가 따로 있고, 학사 일정이나 이벤트, 방과 후 프로그램, 행정적 사안 등을 담당하는 채널은 또 각각 따로 있습니다.

코로나 19 시국이었을 때는 관련한 내용을 공유하고 알리는 채널 역시 별도로 존재했고요. 그러다 보니 학부모 입장에서는 어떤 사안에 대해 어디로 연락을 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일도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해 묻거나 전달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실제로 담임 선생님 연락처도 공개되지 않고요, 꼭 필요하다 싶으면 학교에 이메일을 보낼 때 담임 선생님을 '참조'로 걸어서 내용을 공유하기는 합니다.

다만 학급 안에서 진행되는 이벤트나 전달 사항에 대해서는 담임 선생님이 전 학부모에게 공통 이메일을 발송하는데, 그에 대한 피드백이나 질문 사항에 대해서는 답장 형태로 메일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대부분 학기 초 학부모 회의에서 선출된 학부모 대표를 통해 전달할 때가 많고요.

아이의 학습이나 학교 생활 등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거나 문의 사항에 대해서는 매 학기 공식적으로 열리는 '교사-학부모 컨퍼런스'를 통해 미리 약속을 잡고 진행합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15~20분 간격으로 약속을 잡기 때문에 이 시간 역시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담임 선생님과 직접 연락을 하지 못하고 한 단계 거치는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도 없진 않습니다. 제 경험을 들자면, 아이가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경우 담당 오피스에 연락을 취했는데도 불구하고 담임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돼 무단 결석이나 무단 지각 처리 되는 일도 있었는데요, 이후 요청을 통해 다시 바로잡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피해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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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학교에서 교권이 살아있는 또 다른 이유는 학부모들에게 교사는 어려운 대상이기 때문인데요, 가장 큰 배경은 교사에게 주어진 '학생들을 평가하는 권한' 때문입니다.

독일 학교의 성적 산출 방식에 대해 '한국과는 다른 독일 학교의 시험 풍경'에서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독일 학교에서 성적은 단순히 필기 시험 점수로만 산출하지 않습니다. 시험 점수와 같은 비중(50대 50)으로 학생의 발표 및 수업 참여 태도 등이 점수화 되어 반영되는데요, 이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교사의 몫입니다. 시험을 아무리 잘 봤다 해도 수업 태도와 발표 등에서 점수를 받지 못하면 학기 말 받는 성적표 결과가 좋을 수 없는 겁니다.

특히 11학년과 12학년, 2년에 걸쳐 받는 성적표는 아비투어라 불리는 대학 입시에도 꽤 많은 비중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교사의 '학생 평가권'은 대입 입시와도 직결되는 부분인 거죠.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사의 존재는 성적과 직결된 어려운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때로는 이 부분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학생과 학부모도 있습니다. 발표 등 수업 참여도 적극적으로 했고, 태도 또한 좋았다고 스스로 평가하는데 교사의 '수업 참여도' 점수가 낮게 나온 경우 이의 제기를 하는 건데요, 그렇다고 바로 성적이 정정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교사의 의견이 전적으로 존중되는 거죠. 다만 이의 제기를 한 학생에 대해 교사는 다음 학기에 더 신경을 써서 지켜보겠다는 약속을 하고 학생과 학부모도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4년제인 초등학교에서는 4학년 때를 제외하곤 수치화 된 성적을 받지는 않는데요, 대신 초등학교 교사는 상급 학교에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발행한 글 '독일 교육 과정으로 본 초등학교 만 5세 입학 논란'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한 번 더 상기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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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초등학교 과정은 각 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보편적으로 4년제를 택하고 있습니다(베를린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6년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칠 때 쯤 상급 학교 진학을 결정합니다. 아이의 학업적 능력과 적성, 태도 등을 고려해 각각 김나지움, 레알슐레, 하웁트슐레 게잠트슐레 등으로 가게 됩니다. 이 결정은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부모님의 면담 하에 정해지는데 보통은 선생님의 의견이 가장 많이 반영됩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독일 학교는 초등 전 과정을 한 명의 담임 선생님이 맡습니다. 아이의 학업 과정이나 발달, 성장 등을 완전히 꿰고 있어야만 진학 지도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대학에 진학하는 코스와 그렇지 않은 코스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데 이때 어떤 진학 코스로 갈 것인가에 대해 교사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게 받아 들여지는 것이죠. 학부모와 교사가 의논을 통해 결정한다는 점을 원칙으로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담임 교사가 학생의 학업 태도와 잠재력 등을 바탕으로 평가한 서면 평가와 추천이 가장 영향력 있습니다. 물론 이 역시 일부 학부모들은 불만과 이의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반드시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대학 진학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판단을 보류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등 구제를 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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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학교 교사들은 문제 학생에 대한 징계 권한도 갖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론 이 부분은 '징계권'으로만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왜냐, 수업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하거나 교사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학생을 수업에서 배제하는 등의 징계는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나아가 모두의 안전을 위한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잇따라 보도되고 있는 학생의 교사 폭행은 그 현장을 보고 겪는 자체로 다른 학생들의 인권 침해이며 학습권 침해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동학대'가 되지 않기 위해 교사가 온전히 폭행을 감내하고 참아야만 하는 교육 현장이라면 가해 학생 단 한 명 때문에 수많은 다른 학생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상황 아닐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경험이 있습니다. 아이가 독일에서 학교를 다닐 때 두 학년 선배였던 한국인 남학생이 학급 내 폭력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놀려서 겁만 줄 생각으로 폭행을 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만 준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어요.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폭력 비슷한 분위기를 만든 자체가 다른 친구들은 물론 교사에 대한 교권 침해라고 본 겁니다. 당시 상황을 전해 듣기론 담임 교사가 "만일 그런 상황이었다면 내게 와서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어야지 친구를 때릴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은 대단히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교장 선생님까지 개입해 징계를 위한 절차가 시작된 후, 한국인 남학생의 상황 설명이 참작돼 며칠 간 수업에서 배제되는 처분을 받았는데요, 이후 다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가중 처벌 논의가 이뤄졌고 한 번 더 폭력적 분위기를 만들 경우 '퇴학 조치하겠다'는 강력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때 학교는 단지 경고만 한 건 아니었어요. 학생의 학교 생활 적응이나 심리적 문제가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상담을 권유했죠. 결국 그 학생은 학교가 추천한 외부 상담 및 교장 선생님과의 지속적 상담을 통해 행동에 긍정적으로 변화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물론 퇴학도 당하지 않았고 교실과 학교에서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죠.  

저는 이 케이스야말로 교권과 학생 인권이 공존한 좋은 사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은 비록 교권 침해를 이유로 징계를 받는 상황에 몰렸지만, 그렇다고 오직 가해자나 문제 학생으로만 몰지 않고 심리적 문제와 상황에 따른 문제를 파악한 후 교화하고 지도하기 위한 노력을 교사와 학교가 함께 실천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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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란 무조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권리가 아닙니다. 학생 인권도 마찬가지죠. 학생 인권은 학생이라는 신분 안에서 학교라는 사회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구성원으로 책임감을 가지면서 자유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뒤늦게'라는 수식어를 달고 수많은 교사들의 피해 사례가 뉴스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교사들이 그간 겪었던 일들을 토로하는 글들도 넘쳐 납니다.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됐을까 싶을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아 한 명의 학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 중에서 '학생 인권 존중 어쩌고 하다가 교권이 죽었다'는 식의 보도와 댓글을 보고 있자니 답답해집니다. 학생 인권의 본질은 무엇이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지, 교권을 되살려 선생님들이 자부심과 명예를 갖고 교육 현장에 헌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모두의 고민과 논의, 그리고 실질적 방안이 절실한 때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며칠 전 토론 수업에서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해당 문제를 두고 이야기를 하던 중 한 학생이 했던 발언을 전합니다. 교권 침해가 반드시 학생과 교사의 관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무수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을 많은 학부모들 역시 새겨들어야 할 말인 것 같아서요.  

"학생들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선생님들의 교권도 보장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교의 역할은 가르침과 배움이잖아요. 국어 영어 수학 같은 과목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하고 배우면서 한 인간으로 성장해나가는 곳이 학교인데 지금은 뭔가 비정상적인 것 같아요. 작은 불편도 감당하기 싫고, 어떤 손해도 보고 싶지 않고, 하고 싶은 말하고 행동하면서 배려심 없이 오직 자기 자신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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