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는 다른 독일 학교의 시험 풍경

한국과는 다른 독일 학교의 시험 풍경

새 학기가 시작됐습니다. 가을 학기제인 독일은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새 학기, 새 학년의 일정을 정리하면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게 시험 관련 일정일 텐데요, 독일 학교의 시험 풍경은 한국의 그것과 좀 다릅니다. 아이들에게 최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한 방향으로 '설계'됐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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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가을 학기제입니다. 대개 8월 말에 새로운 학년이 시작됩니다.

새 학년이 시작하고 1주일 정도가 지난 뒤 새로운 학년에 대해 소개하고 설명하는 '엘턴 아벤트(Eltern Abend)'가 열렸습니다.  '학부모의 밤'이란 뜻으로 매 년 신학기에 열리는 '학부모 총회' 성격입니다. 영어 식 표현으로는 '백 투 스쿨 나잇(back to school night)'이라고 합니다.  

내용은 어느 나라든 비슷합니다. 선생님 소개, 전반적인 학년 과정 소개, 과목 별 담당 선생님 소개, 학기 주요 일정, 학교 운영이나 소통에 관한 정보 공유, 기타 부모님들이 알아야 할 내용들, 그리고 반 대표 학부모를 선출하는 과정 등이 포함됩니다.

매해 이 행사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게 있는데요, '주요 일정'에서 한국 학교와 가장 큰 차이가 보이는 점이 바로 '시험 기간'이라는 점입니다. 한국 학교의 학부모 총회에서도 시험 기간에 대해 공지하는 순서가 별도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있다면 아마도 중간 고사와 기말 고사를 언제 보는지, 그 외 평가는 어떻게 하는지 등이 가장 중요하고 궁금한 지점이겠지요.

그런데 독일 학교에서는 대개 "시험은 언제 시작합니다. 과목별 자세한 일정은 해당 서버(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서버)에서 확인하세요"라고 하고 끝납니다. 부모님들도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요. 시험 일정 보다는 오히려 방학이나 연휴, 학년 별 혹은 전체 행사 및 이벤트 일정이 더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시험 기간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성적이 중요하지만 시험 결과가 성적의 전부가 아니기도 하고, 또 시험은 전적으로 학습의 당사자인 아이들의 몫이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별다르게 해줄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시험 기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 역시 시험 때마다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아서 제가 아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나 : "너는 시험 볼 때 스트레스 받지 않니?"
아들 : "긴장은 되지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아"
나 : "음, 긴장하는 것과 스트레스 받는 것이 어떻게 다르지?"
아들 : "시험이니까 당연히 신경은 쓰이지만 그게 엄청 걱정되거나 스트레스 쌓이는 일은 아니란 뜻이지."
나 :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시험이잖아!"
아들 : "평소에 배운 걸 시험 보는 거잖아. 배운 대로 보면 되는데, 왜 스트레스 받아?"

혹시 우리 아이의 개인 성향인가 싶어서 친구들은 어떤지 물었더니 "우리 반 애들 다 그래"라고 합니다.


비슷한 맥락의 얘기인데, 작년 가을 즈음에 있었던 일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아 맞다, 오늘 영어 시험 있구나!"

등교 10분 전, 가방을 챙기던 아이가 '쏘 쿨'하게 말했습니다. '시험'이란 단어에 귀가 번쩍 뜨인 나는 물었죠.

"어떡해? 잊어버렸던 거야? 준비는 했어?"

나는 말이 입에서 바쁘게 나가는데, 여전히 아이는 쿨합니다.

"무슨 준비? 학교에서 다 배운 거잖아. 그냥 보면 돼."

그 전 주에 독일어 시험과 수학 시험을 앞두고 전날 미리 공부하던 모습을 본 기억을 꺼내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 독일어랑 수학 시험 볼 때는 미리 공부했던 것 같은데? 영어는 할 게 없는 거야?"

"그건 수학 시험 보는 내용 중에서 헷갈리는 게 좀 있어서 미리 몇 개 해 본 것 뿐이야. 독일어는 어휘가 아직 어려워서 찾아본 거고. 영어는 몇 개 까다로운 게 있긴 한데 괜찮아, 다 알아!"

자신감이 넘치더라고요.  그래도 긴장을 전혀 안 한 건 아니었는지 차에서 내리면서 "나 영어 시험 잘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줘!"라고 했습니다.

그날 하교와 동시에 나는 시험부터 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로 "시험 잘 봤어?"라고 직진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아침에 네가 부탁한 대로 시험 잘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어땠어? 내 기도가 통한 거야?"

"괜찮았어. 그런데 다 맞지는 않았을 거야. 정답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는 문제가 두세 개 있었거든."

묻는 사람 민망하게 일관되게 쿨한 태도를 보이더라고요.

"뭐야,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난 또 당연히 다 맞는 줄 알았네."

"엄마, 88점(만점) 중에서 몇 점 잃는다고 큰 문제 아니야."

중학교 과정을 시작하고 첫 번째로 보는 시험이 2주 째 계속되고 있는데도 딱히 스트레스라고는 없는 것 같은 아이가 신기해 그때도 역시 같은 질문을 했었습니다. 어쩌면 '시험 기간인데 왜 공부를 안 하니?'란 말을 돌려서 묻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고요.

"요즘 계속 시험 기간인데 너는 시험이나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거 같아. 엄마는 중고등학교 때 시험 기간이면 스트레스 많이 받았거든. 준비를 철저히 못하고 시험을 보게 되면 더 그랬고. 넌 어때?"
"걱정되는 과목이 없는 건 아닌데 스트레스는 별로 없어.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면 되니까. 그리고 큰 문제가 없는 한 1이나 2가 나올 거야. 또 3이나 4가 나오면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마지막 문장은 보통 부모들이 아이를 격려하거나 위로할 때 쓰는 말 아닌가요. '괜찮아,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모든 과목에서 '1'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긴 하지만 아이 스스로 자신에게 그렇게 관대한 성적 기준을 세우고 있는 줄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뭐, 어쨌든 시험 스트레스는 없단 거니까 좋은 쪽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일화에서 느끼신 대로 아이는 '따로' 공부를 거의 하지 않으면서 시험 기간을 보냅니다. 대개는 8월 말 새 학년이 시작된 후 9월 말부터 중간 시험이 시작되는데 거의 한 달 내내 시험 기간이 이어집니다. 어떤 때는 한 달을 훌쩍 넘기기도 하고요.

한 달 내내 시험 기간이라고 하면 어마 무시한 것처럼 들리지만, 그건 일주일에 최대 두 과목까지만 시험을 볼 수 있는 독일 학교의 규칙 때문에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겨우 두 과목인데도 불구하고 날짜를 '연달아서' 시험 보는 것도 안 됩니다. '월/화', '화/수', 이런 식으론 안 되고 '월/수', '월/목', '화/목'처럼 적어도 하루 이상의 간격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느냐 하면, 시간표 배치 상 어쩔 수 없이 요일이 붙어있는 과목의 경우에는 아예 다른 주에 시험을 보도록 배치하거나 아니면 수업 시간을 임시로 바꿔서라도 반드시 하루 이상의 간격을 유지하고 시험을 봅니다.

'일주일에 최대 두 과목, 하루 이상의 간격 유지'라는 이 규칙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대체로 부모님 입장에서는 공부할 시간이 확보돼 좋아할 수 있고, 한 달 내내 시험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끔찍한 규칙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시험 기간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아이들이 스트레스는 엄청날 테니까요.

독일 학교가 이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이유는 정 반대입니다. 시험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이죠. 일주일에 많아야 두 과목 시험 보는 데도 과목 당 시험 시간은 짧게는 10분, 길어야 30분 정도입니다. 한 과목 수업 시간이 45분이라고 해서 45분 동안 시험을 보는 건 아니란 뜻이죠. 말이 한 달 내내 시험이지 아이들은 그 한 달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한국 아이들이 시험 기간 겪는 극도의 스트레스도 있을 리 없고요.

시험 기간에 관한 규칙은 아니지만 하나 더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요인이 있다면 바로 과목에 따라 '수준별' 시험을 치른다는 거예요. 전 과목이 그렇지는 않은데 일부 주요 과목의 경우 수준에 따른 그룹 별 수업을 하고 시험도 해당 그룹 수준에 맞게 치르게 되는 겁니다.

이처럼 여러 장치를 통해 시험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점수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점수(Note)는 최고 1에서 최저 6까지 매겨지는데 각 점수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어서 꼭 6단계라고 할 수는 없어요. 1보다 잘하면 '1+'가 되고 3보다 못하면 '3-'가 되는 식이죠.

그러나 시험 점수가 학기 말에 받는 성적표의 절대적 기준은 아닙니다. 시험 점수는 오히려 40% 정도만 반영되고 나머지 60%는 평소 수업에 참여하는 태도와 발표, 숙제 제출 등으로 평가합니다. 앞에서 '성적이 중요하지만 시험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독일 교육 현장의 중요한 가치인 '교육은 학교가 책임지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고 보면 됩니다. 학교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숙제를 성실하게 하면 따로 공부하거나 사교육 받을 필요 없이 누구나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숙제를 많이 주는 것도 아니에요. 독일은 아이들이 집에서 숙제를 하는 시간도 나이 별, 학년 별로 제한을 두는 '학교에 관한 법률'이 있을 정도로 공부에만 '매몰'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과정은 30~45분 정도, 중학교 과정인 5학년~7학년은 최대 1시간 정도가 보편적 수준입니다. 아이가 4학년일 때 담임 선생님은 심지어 "숙제를 하다가 30분이 넘어가면 그만해도 된다"라고 말씀하셨을 정도죠.

심지어 그나마도 학교 밖으로 숙제를 가지고 나가지 않을 수 있게 방과 후 선택 수업에 별도로 '숙제(Hausaufgabe)' 클래스가 있기도 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 이 클래스를 선택하는데 그러다 보니 집에 가서는 숙제를 할 필요가 없어져요. 숙제(homework)는 있지만 '홈(home)'에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독일 교육의 글로벌 경쟁력은 국가 별 성취도만 놓고 봤을 때 한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독일 내에서도 '너무 널널한' 교육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일각에서는 객관식 시험을 보지 않는 독일 교육의 특성 상 국가 별 성취도 측정에서 상위권에 들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항변'을 하기도 합니다.

어찌 됐든 개인적으론 적어도 시험이란 단어가 그 자체로 압박이나 극도의 긴장 혹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란 것만큼은 좋아 보입니다. 너무 마음을 놓은 나머지 시험 일정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하는 아이를 보고 어쩔 수 없이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한국 엄마'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제가 매번 겪었던 시험의 압박을 느끼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해야 하는 공부를, 그 과정에서 늘 겪어야 할 시험이 유년기, 그리고 청소년기를 갉아먹는 괴로운 존재로만 인식된다면 너무 불행한 일일 테니까요.

아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시험 기간이 널널하다고 해서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인문계 학교인 김나지움에 진학한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량이 어마어마합니다. 대학에 가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어쩌면 어릴 때부터 가능한 스트레스를 줄이며 공부하는 방식이 길게 오랫동안 그리고 진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나중을 대비하는 방식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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