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토론 교육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 양성’을 목표로
토론 교육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전통적 학습 방법인 하브루타입니다.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녀, 때로는 친구끼리 나이나 계급, 성별에 관계 없이 두 명이 짝을 지어서 서로 질문하고 답하며 논쟁을 벌입니다. 유교 경전인 탈무드를 공부할 때 사용하던 방식이지만 이스라엘의 모든 교육 고정에 적용될 정도로 보편화된 방식입니다.
독일식 토론 역시 교육 전반에 깔린 철학입니다. 독일 교육의 목표는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독일의 정치 거인인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는 “논쟁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민주주의 시민 양성의 목표, 그 가장 밑바닥에 있는 기본이 바로 자기 생각과 의견을 갖추고 토론할 줄 아는 능력이고, 상대의 전혀 다른 의견도 당연히 수용할 줄 아는 건강한 의식과 태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의 생각과 관점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배우는 과정에서 비로소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보이텔스바흐에서 시작된 독일 토론 교육의 역사
토론 교육이 독일 전반에 뿌리 내리게 된 배경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 독일의 한 작은 도시에서 이뤄진 ‘보이텔스바흐(Beutelsbach) 협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976년 당시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소도시 보이텔스바흐에서는 독일의 교육자, 정치가, 학자,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치열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1970년대 초 사회 곳곳에서 극심한 갈등이 전개되며 보수와 진보 간 대립이 극에 달았고 이것이 초중고 교육 현장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자, 교육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당시 독일 교육 현장에서는 어떤 것을 가르치고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두고도 엄청난 대립이 있었다고 합니다.
열띤 논의 끝에 이뤄낸 이 협약에서는 교사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금지됐습니다. 교육의 목적이 학생 스스로가 독립적인 판단을 하도록 돕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업 시간에 학생이 문제의 당사자로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의식하면서 토론하도록 했습니다. 토론 주제의 논쟁성을 유지하기 위한 원칙인 셈인데,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히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협약의 핵심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모범 답안’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스스로 경험하고 판단하며 비판적 자세, 균형감 있는 생각 등을 배우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정치∙역사 교육의 원칙에서 독일 교육의 기본 가치로
‘사회적 쟁점’이나 ‘사회 문제’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보이텔스바흐 협약이 애초에는 학교 구성원들이 지키고 따라야 할 ‘정치∙역사 교육’을 위한 기본 원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 모든 공교육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독일 교육의 기본 가치로 기능하게 됩니다. 단지 특정 과목을 가르치고 배우는 원칙만이 아닌 전반적인 교육의 목표가 된 것입니다. 토론이니 논쟁이니 하는 것을 알 까닭이 없는 아주 어린아이 때부터 모든 상황에 직접 참여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스스로 교육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