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질문> 반려 동물 키우기,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오늘의 질문> 반려 동물 키우기,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엄마, 우리도 강아지(고양이) 키우면 안돼? 제발~~" 아이를 둔 집집마다 한 번은 벌어지는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벌써 몇 년 째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데요, 전에는 그저 어린 나이를 핑계 삼아 미루기 급급했다면 지금은 '입양 가능성'을 전제로 좀 더 진지하고 깊이 생각해보도록 유도합니다.

anotherthinking

저는 일요일이 두렵(?)습니다. <TV 동물 농장>이 방송되는 날이기 때문이죠. 우리 집은 일주일에 시청하는 고정 TV 프로그램이 딱 두 개 인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일요일 오전에 방송되는 <TV 동물 농장>입니다. 본 방송을 놓칠까 싶어 매주 알람을 설정해두고 어지간히 중요한 일이 아니면 그 시간에는 일정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일주일 중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의 애정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방송을 보면서 아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엄마, 이리 좀 와서 봐봐!" 혹은 "엄마, 이 강아지(고양이) 너무 귀엽지?" 그리고 늘 이어지는 다음 질문이 있으니 바로 "엄마, 우리도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면 안돼?"입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의 대화 패턴이 반복이 됩니다.

매주 있는 일이지만 저는 '매주'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반려 동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아이의 마음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토요일 밤에는 꼭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꿈을 꾼다고 하고요, 방송을 보다가 안타까운 소식이 나오면 "우리가 키우면 안돼?"라면서 어김없이 눈물을 보입니다. 온라인 게임 '마인크래프트' 속에서 자신의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면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름도 '제프리'라고 지었다면서 제프리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반려 동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서 당장이라도 "그래, 우리 키우자!"라고 말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한 생명을 책임 지는 일을 그렇게 감정적으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죠.

아이가 반려 동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지는 제법 됐습니다. 아주 어릴 때는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도 무서워하던 아이가 독일에 가서 살기 시작한 이후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독일은 반려 동물의 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동물들에게 최적의 환경입니다. 어디든 반려 동물과 함께 동행할 수 있고 복지 시스템도 잘 돼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반려 동물, 특히 애완견을 키우는 집이 정말 많습니다. 아파트 이웃들은 물론이고 학교 친구들 집에 가도 대부분 반려 동물과 함께 살고 있으니 아이의 인식이 바뀌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막연히 '네가 13세가 되면 그때 생각해 보자'라는 식으로 미루기만 했습니다. 많은 가정에서 제가 겪는 것과 같은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아마 다들 비슷하게 반응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반려 동물을 키우는 데 필요한 '책임감'을 근거로 들면서 아이가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언젠가'로 미루는 것 말입니다. 이를테면 아이들이 가장 쉽게 설득 당하는 '강아지 똥 치우기' 같은 것을 들이밀면서 "네가 직접 할 수 있을 때"라고 일단 나중으로 미뤄 놓고 보는 식이죠.

문제는 제가 늘 입에 달고 살던 '열세 살 즈음'이 와 버린 후입니다. 올해 한국 나이로 13세가 되자마자 '약속을 지킬 때'라며 다시 반려 동물 입양 종용을 하기 시작한 아이에게 저는 "틴 에이저가 시작되는 만 13세를 말하는 것"이었다며 구차한 변명을 해보지만 통할 리 없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다들 키우고 있으니 그게 만 나이를 말하는 것이든 아니든 더 이상 나이를 핑계 삼을 수도 없게 됐습니다.

그 후로 저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실제로도 '우리가 반려 동물을 키울 수도 있다'는 전제를 깔고 아이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만 가족 구성원 모두 공통적으로 우리가 충분히 준비가 됐다고 느끼는 시점이라야 한다는 조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아이와 하는 대화에는 이런 내용이 바탕이 돼 있습니다.

반려 동물을 입양하는 일은 가족 구성원 한 명을 새로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
반려 동물을 키우는 일은 아이 한 명을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은 책임감과 때로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
오히려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라는 것.
반려 동물을 키우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
모든 반려 동물들이 TV에서 보는 것처럼, 남의 집에서 보는 것처럼 예쁘고 사랑스럽지 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여 평생을 돌봐줄 마음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반려 동물의 좋은 보호자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제가 들려주는 일화가 있어요. "동물 농장 아저씨인 신동엽 아저씨도 프로그램을 진행한 지 21년 만에 비로소 반려견을 입양했다"는 얘기입니다. 신동엽 씨는 반려견 입양 소식을 전하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반려 동물에 대해 많이 알게 되니 오히려 선뜻 입양을 할 수가 없었다고도 했는데요, 그 말은 곧 반려 동물을 입양하는 데 있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책임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잘 드러낸 표현이었습니다.

너무 부정적인 내용들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주변에서 반려 동물을 키우면서 겪는 수많은 일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다 보니 장점만 먼저 생각하고 결정하기란 쉽지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매년 10만 마리의 반려 동물이 버려진다는 뉴스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유행처럼 혹은 당장 눈 앞의 사랑스럽고 좋은 면만 보고 반려 동물을 키우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결과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막상 반려 동물을 키우게 되면 또 그 기쁨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클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아이를 키울 때 매사 좋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키우는 것처럼 반려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같은 마음을 갖고 키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에서 열거한 조건들을 가족 모두가 깊이 생각해 보고 대화하면서 '이제 어떤 노력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다짐이 들 때 입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이 과정이 단지 반려 동물 키우자고 조르는 아이를 설득하거나 시기를 미루기 위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아이가 생명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반려 동물의 어린 시절부터 어른 개체가 된 후까지의 전 생애를 이해하고 각 시기마다 어떤 돌봄이 필요하고 어떤 훈련을 해야 하며 좋은 가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지 '자격'을 논하는 것, "엄마, 강아지(고양이) 키우자!"라고 졸라 대는 아이들과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이자 대화가 아닐까요.  

<오늘의 질문> : 반려 동물 키우기,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1 이달에 읽은
무료 콘텐츠의 수

이달의 무료 콘텐츠를 모두 읽으셨네요.

유료 구독하시면 갯수 제한 없이 마음껏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