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질문> 반장(리더)의 자격은 무엇일까?

<오늘의 질문> 반장(리더)의 자격은 무엇일까?

새 학년 시작과 함께 반장선거 기간이기도 합니다. 독일에서 경험한 '스튜던트 카운실'은 우리의 '반장'과는 역할이 좀 다른데요. 진정한 리더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anotherthinking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열흘 정도 지났습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많은 학급들이 지난주에 반장 선거를 한 모양입니다. 아직 친구들을 파악할 충분한 시간도 없었을 텐데 이렇게나 빨리 학급 대표를 선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하긴, 그 옛날 제가 경험했던 반장 선거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새 학기(1학기와 2학기 각각) 시작된 바로 그 날 반장 선거를 했던 기억도 있어요. 초등학교 시절엔 주로 공부를 인기가 많은 친구들이 반장으로 뽑혔고, 중학생 이상이었을 때는 '성적'이 주요한 기준이었던 것 같아요. 투표 시작 전, 입후보 하고 이런저런 공약을 발표하는 짧은 스피치도 하긴 했지만 다 비슷 비슷 했었죠. 솔직히 말해 '공약'을 보고 후보자를 판단해 투표하는 일이 얼마나 있었나, 싶습니다.

초,중등 시절에 제법 반장이나 부반장을 많이 해보긴 했지만 그 시절엔 그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투표'라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그 반을 대표할 사람을 선출하는 일이지만 실제로 보면 반장이 대표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죠. 선생님에게 드리는 인사, 학급 회의 주재, 그리고 담임 선생님을 보조하는 역할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장'이라는 타이틀이 명예스럽고 또 학급 대표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책임과 역할을 부여 받는 건 분명 있습니다. 다시 말해 투표권을 가진 모두는 '누가 반장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자격과 조건에 대해 생각해 보고 투표를 해야 하는 '의무'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대부분 학급 반장 선거를 치르면서 그렇게까지 깊게 고민하기보다 하나의 이벤트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집 아이는 반장이라는 직책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는 편입니다.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 경험을 공유한 저 또한 '반장'이라는 역할에 대해 생각을 달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독일에 거주할 때의 일입니다. 2019년 8월 말, 3학년이 된 아이는 새 학년이 시작된 지 한 달도 더 지난 10월 초에 스튜던트 카운실(student council) 선거에 나갔습니다. 3학년부터 각 반에서 남자 대표 1명과 여자 대표 1명을 뽑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한국과 비슷하게 치러지는 반장선거려니 생각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책임감 있고 아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으며 학교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갖춘' 학급 대표를 선발한다는 공지를 듣자마자 아이는 나가고 싶어했습니다.

선거일은 공지일로부터 며칠 여유가 있었습니다. 절차는 선거 당일, 반 친구들이 후보자들의 스피치를 듣고 난 후 투표를 해 선발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해보는 스피치를 준비하면서 아이는 꽤 공을 들였습니다. 도와줄 수 있었지만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물어보는 것에 대해서는 답해줄 수 있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모든 과정을 온전히 아이 스스로 겪어보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다른 학교를 다니며 아이보다 먼저 학급 대표로 선발된 동네 친구의 경험담을 들어가며 아이는 결국 스스로 짧은 스피치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선거 전날, 아이는 우리 앞에서 시연을 해보였습니다. '유머'를 주문한 저와 적절한 손짓과 액션 등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아빠의 조언을 받아들여 아이는 몇 분 안 되는 짧은 스피치 안에서도 웃을 수 있는 나름의 포인트와 손동작 등을 해가며 자신감 있게 발표를 하더라고요. 언제나 '열혈 방청객 모드'인 엄마 아빠지만 이날은 진심으로 물개 박수가 절로 나왔습니다. 중간 중간 말을 더듬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스피치 작성 과정에서 학교와 반을 위해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스스로 해냈다는 사실이 기특하기만 했죠.

이미 그 과정만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설령 아이가 선거에서 떨어지더라도 친구들 앞에서 자신이 고민한 것들을 발표하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귀한 경험이니까요. 선거 당일, 아이에게 '선거에서 떨어지더라도 기죽지 말라고, 너의 스피치는 너무나 훌륭하고, 이런 경험이 너를 더 빛나게 할 것'이라는 말을 해준 건 그러니까 순도 100%의 진심이었죠.

아이는 반 대표로 선발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스피치를 제대로 준비해온 아이가 그리 많지 않았고 어떤 아이는 아예 원고를 들고 읽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후기를 전하면서 아이는 '발표 중간에 아이들이 한번 크게 웃었는데 그때 당선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도 했습니다. 청중 반응을 보고 그런 판단도 하다니, 여러 면에서 참으로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좋은 일들은 학급 대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전에 독일 학교 경험이 많은 한국 학부모에게 한국의 반장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지 못했던 우리는 아이의 활동을 보면서 어째서 '반장'이 아닌 '스튜던트 카운실'이라고 불리는지도 이해하게 됐죠.

"다음 주부터 스튜던트 카운실 회의가 일주일에 두 번씩 있대."

학급 대표가 된 후 아이는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알려주었는데요, 도대체 뭘 하기에 한 달에 두 번도 아니고 일주일에 두 번씩 정기 회의를 여는 것인지 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스튜던트 카운실'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 '학생자치위원회'였습니다. 아이는 그 위원회의 학급 대표가 된 것이었죠. 한국의 '반장'이라는 직책이 갖는 아주 사소한 권한 같은 것조차 없는, 학교를 위해 오로지 '봉사'하고 '노력'하는 자리였어요. 운영 방식으로 보면 국회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 반에서 선거를 통해 대표할 사람을 뽑고 그들이 모여 꾸려진 '학생자치위원회'를 통해 각 반을 대표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니까요.

스튜던트 카운실 활동의 주된 목적은 '더 나은 학교'를 만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위원회의 결정 사항이나 진행되는 일에 대해 학급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공유하는 역할 및 아이들의 의견을 모아 전달하는 역할도 포함이었고요.

분과별 활동 역시 국회와 비슷합니다. 아이 학교의 스튜던트 카운실은 네 개의 분과로 돼 있었습니다. 학교의 전반적 상황 등을 학생들에게 알리고 홍보하는 분과, 각종 행사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분과, 자원봉사 몇 결연을 맺은 빈민국 자매학교에 대한 기부 등 행사를 담당하는 분과, 환경에 관한 활동을 하는 분과 등이었습니다. 3~5학년까지 전체 18명의 아이들이 스튜던트 카운실로 활동하며 각 분과 당 4-5명 정도가 활동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2지망으로 선택한, 교내 각종 행사 기획 및 진행 등을 담당하는 '스쿨 이벤트' 분과에 배정됐고 결과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러워했습니다.

'스쿨 이벤트' 분과의 첫 번째 기획은 각 학년별 쉬는 시간을 좀 더 즐겁게 해주기 위한 특별한 놀이 퍼포먼스의 기획 및 진행이었습니다. 이 분과에 소속된 학급 대표들은 아이디어부터 소품 준비, 행사 진행, 마무리 청소까지 풀타임으로 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약 한 달간의 준비 기간 동안 아이는 수업을 빠지고 회의에 가야 하는 일이 잦았고, 행사 일정이 다가오면서 더 바빠졌습니다.

이후로도 봉사를 담당하는 분과와 공동으로 '기부와 이벤트가 결합된' 행사를 준비하고 환경 분과와 협업해 '환경을 주제로 한 즐거운 이벤트'를 기획하는 등 학생자치위원회는 자발적인 아이디어와 활동, 봉사 마인드를 통해 굴러갔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전체 네 개의 분과가 한 자리에 모여 학교 발전 방안 등에 논의를 하기도 했고요.

(독일의 경우,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등 과정 일부 학교의 스튜던트 카운실 대표들은 그 지역 자치의회의 회의에도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역 정치에 청소년 대표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일 것으로 짐작되는데, 고등학교 시절 스튜던트 카운실 활동을 하며 자치의회 회의에도 참석한 경험이 있었던 독일 대학생 지인은 "내가 속한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배울 게 많았던 시간"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1년 간의 스튜던트 카운실 활동을 통해 학교를 위해 봉사하고 노력하며 진정한 리더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아이 성장에 관한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때의 경험이 자신에게 정말 좋았다고, 커다란 성취감도 경험했고, 다른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은 바쁘고 힘들었지만 그 모든 걸 잊을 정도로 말입니다.

학급 반장 선거를 이미 치렀을 수도 있고, 앞두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내 아이가 후보로 나가느냐, 안 나가느냐, 당선이 되느냐 떨어지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선거 시기'를 기회 삼아 우리가 나눠야 할 대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장의 자격은 어떠해야 할지, 나아가 어떤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 될 것인지, 우리가 우리의 '대표'를 뽑을 때는 어떤 기준을 세우면 좋을지 등에 대해 질문하고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오늘의 질문> : 반장(리더)의 자격은 무엇일까?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1 이달에 읽은
무료 콘텐츠의 수

이달의 무료 콘텐츠를 모두 읽으셨네요.

유료 구독하시면 갯수 제한 없이 마음껏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