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요? 독일 학교는 항상 '시험 중'입니다

중간고사요? 독일 학교는 항상 '시험 중'입니다

대부분의 중고등학교가 중간고사를 치렀거나 치르는 중입니다. 독일 학교는 사실 따로 정해진 '시험 기간'이라는 게 없습니다. 알고 보면 항상 '시험 중'인 것과 다름 없는데요, 이건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anotherthinking
"오늘 프랑스 시험 노테 받는 날이야. '굿 럭(good luck)' 해줘!"
"이번 독일어 시험에서 노테 '1'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난 시험에서 '2-'가 나왔는데 발표 점수가 1이 나와서 아마 합치면 '1-'나 '2+'가 나올 것 같아. J는 이번에 '5'를 받았는데 잘못하면 유급 될 수 있다면서 엄청 걱정하더라고."
"다음 주 수,목에 물리랑 수학 시험이 있는데, 원래 이틀 연속으로 시험 보면 안 되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대. 2시간 연속 수업일 때 시험을 봐야 하는데, 수업 요일을 바꿀 수가 없나 봐. 그런데 물리는 별로 배운 게 없는데 뭐가 시험에 나올지 모르겠네? 아 그 다음엔 프랑스어 문법 시험도 있구나."

요즘 아이는 부쩍 시험에 대한 언급이 많아졌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하나는, 지난 8월 말 김나지움 3년 차인 7학년이 시작되면서 성적에 대한 부담이 커진 것이고 또 하나는 시험 자체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독일 교육 과정 학제에 대한 설명은 독일교육 랩의 '독일 교육 과정으로 본 초등학교 만 5세 입학 논란' 글을 참고해주세요!)  

독일 학교는 한국 학교보다 여유롭다고, 공부를 훨씬 덜 시킨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저도 있었습니다. 1학년부터 4학년 까지에 해당하는 그룬트슐레(초등학교) 과정은 당연히 그렇고, 김나지움 1년 차인 5학년만 하더라도 '초등학교 과정에 비해 공부할 게 좀 많아졌구나' 하는 정도였을 뿐, 한국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 비하면 여유 만만이었죠. 그런데 6학년이 되면서 슬슬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아이가 속해 있는 학교는 독일 전체 주 중 가장 교육열이 강하다는 바이에른 주에 비할 바가 못 되는데도 불구하고, 과제며 발표 수업 준비, 시험이 늘어나는 게 보이더라고요. 8학년 이상 고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아이들이 공부하느라 방에서 나올 시간이 없다"고 하던 말이 괜한 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어나더씽킹랩 via midjourney

7학년이 된 후 6학년 때와는 또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하는 중입니다. 과목 수도 점점 늘어나는 데다 학습도 계속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죠. 과목이 늘어난 만큼 해야 할 것도 많고, 시험 수 자체가 많아지기도 했죠. 아직 '공부하느라 방에서 못 나오는' 정도는 아니지만 아이 스스로 학업에 대한 부담과 책임을 작년보다 조금 더 느끼고 있다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쉽게 생각하면 대학 입학을 위한 내신 성적은 11학년과 12학년, 딱 두 개 학년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꼭 '1등급'에 목을 맬 필요가 없기는 합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아이들 중에는 3~4등급만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결국 시험과 성적을 대하는 아이의 태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학습량과 태도에서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되는 건데요, 누구는 수업 참여나 시험 준비를 학기 내내 항상 열심히 하느라 바쁠 수도 있고, 또 누구는 대충 유급 되지 않을 정도로만 할 수도 있다는 뜻이죠.  아마도 전자의 경우가 다른 엄마들이 말한 "공부 하느라 방에서 나올 시간이 없는" 케이스겠죠. 결국 어떤 길을 갈 것인가는 아이의(혹은 부모님과 함께?) 선택인 겁니다.

언젠가 아이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대학 입시에 반영되는 성적도 아닌데 '1'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뭐냐고 말이죠. 그랬더니 아이가 이렇게 답하더군요.

"지금부터 열심히 해야 11-12학년 때도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으니까. 계속 공부 안하고 3-4등급 받다가 그때 갑자기 1등급을 받기는 어렵지 않겠어?"

이렇게 제법 의젓한 멘트로 사람을 감동시키다가도 어떤 때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할 게 많아지니까 지금 놀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놀아야 한다"며 '어린이 같은' 말을 하기도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자기 성취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라 발표도 과제도 시험도 제법 성실하게 하는 편이긴 합니다.


자, 그럼 위에서 아이가 했던 말들을 토대로 독일 학교의 시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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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프랑스 시험 노테 받는 날이야. '굿 럭' 해줘!"

노테(Note)는 독일어로 '성적'을 뜻합니다. '노테 받는 날'이란 이전에 치렀던 시험에 대한 결과를 받는  날을 말하는데요, 보통 시험을 치른 후 2~3주 후에 돌려받는 답안지에 어느 부분에서 왜 얼마나 감점인지 등 자세히 설명이 돼 있습니다. '답안지'라고는 하지만 객관식 시험이 아니라 서술형 시험이니 시험지 겸 답안지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네요.  노테는 1부터 6까지 총 6등급으로 나뉘며 각 등급마다 플러스, 제로, 마이너스 등 세 단계로 다시 나뉩니다. 그런데 선생님에 따라 단순히 플러스 마이너스 없이 숫자 등급으로만 주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미지_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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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독일어 시험에서 노테 '1'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난 시험에서 '2-'가 나왔는데 발표 점수가 1이 나와서 아마 합치면 '1-'나 '2+'가 나올 것 같아. J는 이번에 '5'를 받았는데 잘못하면 유급 될 수 있다면서 엄청 걱정하더라고."

독일 학교는 시험 성적과 평소 수업 참여 태도 및 프로젝트 발표 등을 합해 학기 말 최종 '노테'를 결정합니다. 독일어, 영어, 수학, 프랑스어 등 김나지움 주요 과목의 경우 시험과 수업 참여의 비중은 40 대 60 정도. 즉 시험을 아무리 잘 보더라도 수업 태도가 불량하거나 과제를 잘 안 해오거나 프로젝트 발표를 불성실하게 할 경우 최종적으로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죠. 반대로 시험을 다소 못 봤다 하더라도 평소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을 경우 최종 성적을 만회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고학년으로 갈수록 주요 과목의 시험과 수업 참여 비중이 50 대 50 정도로 조정돼 시험 결과가 이전 학년 대비 좀 더 반영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평소 수업 태도에 꽤 많은 비중을 두는 독일학교 성적 산출 방식이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노테를 잘 받고 싶다면 학기 내내 수업이며 발표, 시험 모두 성실하게 임해야 하거든요.  

유급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독일 학교에서는 사실 '유급'도 '월반'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은 아닙니다. 우선 유급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5등급이 두 과목 또는 6등급이 한 과목이라도 있으면 한 학년 아래로 유급됩니다. 아이 친구가 독일어 시험에서 '5'를 받아 유급을 걱정한다는 건 그런 이유죠. 다른 과목에서 하나 더 5를 받으면 유급 되니까요. 반대로 성적이 평균 1.5 이상으로 우수하면 월반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모와 아이와 원하는 경우에 말이죠. 아이와 같은 7학년에도 3학년일 때 4학년으로 월반해서 올라온 여자 친구가 있는데요, 무리 없이 수업을 잘 따라간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한 살 어리다는 게 친구 관계에서 아무 문제도 되지 않고요.

나이 문제가 나와서 말인데요, 독일 학교에는 같은 학년인데도 나이가 다 같지는 않습니다. 성적을 기준으로 한 유급이나 월반의 이유가 아니라, 부모가 아이의 학업 속도 등을 고려해 일부러 한 학년을 낮추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남들보다 일 년 천천히 가는 게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아이들이나 다른 학부모들도 한 학년을 '내려서' 다니는 친구들에 대해 그 어떤 편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아이와 같은 반에도 원래 8학년이어야 하지만 7학년 과정인 친구들이 둘이나 있는데, 두 아이 모두 학교 생활도 교우 관계도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교육 방식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_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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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수,목에 물리랑 수학 시험이 있는데, 원래 이틀 연속으로 시험 보면 안 되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대. 2시간 연속 수업일 때 시험을 봐야 하는데, 수업 요일을 바꿀 수가 없나 봐. 그런데 물리는 별로 배운 게 없는데 뭐가 시험에 나올지 모르겠네? 아 그 다음엔 프랑스어 문법 시험도 있구나."

그렇습니다. 독일에서는 이틀 연달아 시험을 보면 안 됩니다. '월/화', '화/수', 이런 식으론 안 되고 '월/수', '화/목'처럼 하루 적어도 하루 이상 간격을 두어야 하는 거죠. 그것만 안 되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최대 두 과목까지만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수업 시간표를 임시로 바꿔서라도 하루 이상의 간격을 유지해야 하죠. 그런데 원칙적으로 그렇고요, 경험적으로 보니 아이의 말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요일을 붙여서 시험을 보기도 하더라고요. 주 당 3시간 이상 배우는 주요 과목의 경우, 과목 당 수업 시간 배분이 2시간인 날이 있고, 1시간인 날도 있을 수 있는데, 시험은 반드시 2시간 배정인 날에 치러야 하기 때문에 요일 조정이 어려운 상황이 생기는 거죠. 2시간 연속 수업일 때 시험을 치러야 하는 이유는 서술형 시험을 치르다 보니 보통 시험 시간이 1시간 수업 시간인 45분을 훌쩍 넘어가는 경우도 많아서 그렇습니다. 아이 경험을 토대로 하면 많이 써야 하는 경우 60분 정도 서술하기도 하더라고요.

시험 범위는 보통 '지금까지 배운 것'입니다. 과목에 따라 어떤 선생님의 경우 범위를 따로 정해주는 분도 있더라고요(어디까지나 개인의 성향입니다). 주요 과목(독일어, 수학, 영어, 프랑스어)의 경우는 한 학기에 두 번 이상의 시험을 보는데요, 처음에 작문 시험을 보고 나중에 문법 시험을 보는 등 '범위'가 아니라 시험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주요 과목이 아닌 경우에는 학기 중 한 번만 시험을 보거나 일 년에 한 번 보기도 합니다. 한 학기에 한 번 보는지 일 년에 한 번 보는지 그 기준은 주간 시간표에 따르는데요, 주요 과목이 아니면서 일주일에 단 한 시간 수업하는 과목의 경우는 일 년에 한 번 시험을 치르고, 시험을 치르지 않는 학기의 성적은 100% 수업 참여로만 평가합니다. 미술, 체육 같은 과목은 아예 시험이 없고 수업 참여로만 성적을 매깁니다.

이렇게 띄엄띄엄 시험을 보기 때문에 사실 시험 기간이 따로 없고 학기 내내 '시험 중'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가령 '중간고사' 성격의 시험이 지나가면 바로 '기말고사'가 시작되는 식이죠. 최종 성적을 기준으로 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과목마다 한 두 번 치르는 시험이 아닌 평소 수업 참여와 발표, 과제 등이 성적에 반영되는 더 비중이 높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항상 시험 중'이라는 게 내내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스트레스일 것 같지만, 막상 우리 아이를 보면 그렇진 않더라고요. 평소에는 과제와 발표 등에 집중하고 해당 과목 시험이 있기 며칠 전부터 시험 준비를 조금 더 열심히 하는 패턴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교과를 외워서 정답을 맞춰야 하는 객관식 시험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한국 학교의 학생들이 받는 시험 스트레스나 긴장감과는 결이 좀 다른 느낌입니다. 시험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뭐랄까, 학교에서 배운 것을 한 두 번 더 복습하고 예상 질문 등을 뽑아보면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정도로 시험 준비를 하더라고요. 물론, 문법 시험 같은 경우는 벼락치기로 열심히 암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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