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야단 치기 '목표는 비난이 아니라 변화'

전략적 야단 치기 '목표는 비난이 아니라 변화'

방학은 부모와 아이 간에 신경전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기간입니다. 학교 다닐 때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붙어 지내니 안 보이던 것들도 보이고 또 사소한 것들도 하나하나 더 거슬리고요. 그런데 야단을 치는 일은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에너지 소모, 감정 소모가 많습니다. 보다 효과적인 결말을 위해 전략적 야단 치기가 필요합니다.

anotherthinking

방학, 잘 들 보내고 계신가요?

방학은 많은 부모님들에게 '고달픈' 시간으로 여겨집니다. 방학 기간 동안 어떤 프로그램을 계획할지, 어떤 학원 특강을 선택할지, 어떤 체험을 할지, 어디로 여행을 갈지 등 플랜을 빼곡히 채워 넣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낍니다. 주변 엄마들 보면 어디서 그렇게 잘도 찾아내는지 알차게 계획을 세워 놓아서 그렇지 못한 엄마들을 좌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아 나는 왜 그렇게 못했지?'

이런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한 자기 검열 혹은 반성 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아이들은 또 생각만큼 따라와 주지 않으니 더 힘이 들죠. 방학은 부모와 아이 간에 신경전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기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 다닐 때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붙어 지내니 안 보이던 것들도 보이고 또 알고는 있었지만 '모른 척' 넘어갈 수 있었던 것들도 하나하나 더 거슬리고요.

지난 번 '한 줄 토론'에서 제시했던 <방학은 왜 필요할까>라는 질문으로 진지하게 대화하고 서로 타협할 만한 만족스러운 계획을 세웠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않아 또 다시 부딪치는 지점이 생깁니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그러는 건 당연한 일인데 사람 마음이 또 '그래 그럴 수 있지'라면서 태평양 바다와 같은 너그러움을 유지하기가 어렵죠. 이와 같은 이유로 방학 기간이 어쩌면 엄마가 가장 많은 잔소리를 달고 살고 아이들이 가장 많이 야단 맞는 기간이 아닐까 합니다.

방학 계획은 왜 늘 '계획은 계획일 뿐'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할까요.

예외 없이 저 역시 그렇습니다. 사교육 기관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긴 방학 동안 거의 24시간 내내 붙어 지내다 보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평소 마땅치 않게 생각했던 습관들이 자주 수시로 눈에 들어오니 거슬리고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태도도 불만입니다.

그러나 저는 못 마땅할 때마다, 거슬릴 때마다 매번 잔소리를 하거나 야단을 치지 않습니다. 자녀 교육에 대해 조언하는 일부 전문가들은 '야단치기의 기술'을 논하며 대체로 '그 즉시 혼내라'고 말하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모든 대화에는 다 가장 효과적인 타이밍 즉 T(Time)P(Place)O(Occasion)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야단 칠 때의 TPO가 가장 중요합니다. 야단치기의 첫 번째 덕목인 '인내'가 발휘되어야 할 순간이죠. 당장 그 순간 솟구치는 화를 참고 삭히며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으로' 말을 꺼내야 가장 효과적일 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내심은 좋은 덕목이다. 최근 연구가 보여주듯이 인내심은 자신에게도 좋다. 여러 연구가 인내심 있는 사람이 안달 내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고 건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내심 있는 사람은 더 이성적으로 행동할 확률이 높다. 이들은 대처 기술도 더 뛰어나다. 하지만 인내는 그리 즐거운 느낌을 풍기지 않는다. 인내심을 뜻하는 영어 단어 'patience'는 고통과 끈기, 참을성을 뜻하는 라틴어 파티엔스(patiens)에서 나왔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중에서

그렇습니다. 위에 인용한 글과 같이 야단을 쳐야 하는 상황에서 일단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는 것만으로 이미 더 나은 결과는 보장되는 셈입니다. '더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대처 기술도 뛰어나기' 때문에 같은 내용으로 야단을 친다 해도 순간 화를 이기 못해 뱉어내는 것과는 결과가 다를 수 밖에 없죠.

저는 사안이 중대하지 않는 한, 반드시 '그때'라야 할 큰 사건이 아닌 한 야단치기를 미루는 편입니다. 인내심을 발휘는 거죠. 그 상황을 우선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마음이라던가 에너지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기회'를 주는 차원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야단을 쳐야 할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당장 혼을 내기 보다 지켜보면서 지금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아이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전략을 택하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는 그런 식으로 했을 때 스스로 상황 판단을 하고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상황이 반복될 때입니다. 그럴 때는 분명히 '야단 치기'를 해야 할 타이밍입니다.

지난 7월 말에도 인내하고 인내하다가 '그렇지만 이제는 해야 할 때'라는 판단이 서서 아이를 '몰아서' 야단친 경험이 있습니다.

때는 무려 7주 간의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3주 이상이 흐른 7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방학이 밀린 공부를 해야 한다거나 선행 학습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또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방학이 말 그대로 '학습을 놓는' 기간어서도 곤란하죠. 제가 생각하는 방학은 새로운 배움 혹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학기 중 하지 못했던 취미나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면 아이가 늘 시간이 없어 충분히 할 수 없음을 아쉬워했던 드럼 치기나 피아노 연습, 시작만 해놓고 멈춘 지 몇 달 째인 대형 레고 완성, 밀린 독서 리뷰 블로그 등을 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기간인 거죠. 합기도 말고는 학원 근처에도 가지 않으니, 그것도 충분히 놀고 쉬는 시간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방학 시작 후 3주를 독일에서 실컷 놀기만 하다 돌아오는 길, 아이와 남은 방학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방학이 왜 필요할까?>라고 질문을 던지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그 질문을 바탕에 깔고 '남은 기간을 잘 보내기 위한 계획'을 논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들, 도전해보고 싶은 일들, 거기에 저의 바람과 조언까지 잘 버무려 '잘 보낼 결심' 혹은 다짐을 했죠.

그런데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같은 생활 패턴이 지속되고 있었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월을 앞둔 날이기도 했고,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도 여러 번 지적했던 '같은 문제'가 야단 치기의 내용 중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미루면 스스로 생활 패턴을 고치기 어려워질까 걱정스러운 것도 있었고요.

야단 칠 때 만큼은 화법에 더 신경을 씁니다. 짜증이나 비난이 아닌 더 따뜻한 어투를 유지합니다. 

야단을 칠 때 저는 일단 가장 적절한 타이밍을 고민하는데, 일단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는 한 마디 정도로 주의만 주고 더 이상 지적하진 않아요. '엄마가 이 문제에 대해서 마음이 불편하다'는 신호 정도만 주는 거죠. 그리고는 '아이와 사이가 좋은 때'를 고릅니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저는 차분하게 할 이야기를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어요.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지, 어디까지 말할지, 어떤 내용을 포함할 지 등 '야단 치기'의 범위도 정하고 화법도 고민합니다. 평소보다 차분한 톤을 유지하되 목소리에 따뜻함을 잃지 않죠. 짜증이 묻어있거나 비난의 어투가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안 됩니다.

많은 분들이 야단 칠 때 한 가지만 하라고, 지난 일까지 꺼내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잔소리나 야단 치기를 자주, 그것도 감정적으로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야단 치기' 이전에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식으로 하기 때문에 야단을 칠 때 몇 가지를 한 번에 할 때가 많은데요, 오히려 '그 순간 욱해서'가 아니라 '지켜보고 인내하다가' 하는 말들이란 걸 아이가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받아들입니다.

야단을 치는 상황에서 저의 핵심 사항은 늘 '자기 스스로'입니다. '엄마' 중심에서 못 마땅하다고 지적하거나 비난하는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네 상황을 한번 반성해봐' 하는 식이죠.

예를 들면 디지털 디바이스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아이에게,

"너무 오래 붙들고 있잖아! 그만 좀 할 수 없어?"가 아니라 "디지털 기기를 허락해준 건 네 스스로 조절이 가능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야. 그런데 지금은 네가 생각했을 때 어떤 것 같아?"라고 말합니다.

또 방학을 보내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방학 때 그렇게 놀기만 하면 어떻게 할 거야?"가 아니라 "방학은 소중한 시간이야. 너도 방학 때 하고 싶었던 일들 많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지금 너는 어떻게 보내고 있는 것 같아?"라고 하는 식입니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그게 왜 문제인지를 알려주는 것까지만 저의 몫이고 나머지는 아이 스스로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하고 반성하며 앞으로를 계획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공부든 독서든 자기 계발이든 스스로 하지 않으면, 엄마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효과가 떨어질 뿐더러 지속 가능하지도 않으니까요

야단을 칠 때 전략적 방식이 또 있습니다. 나름의 '기승전결'을 세워서 시작과 마무리의 전략을 세우는 것입니다. 혹자는 아이를 야단 한 번 치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아이를 야단 치는 일은 정말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그 과정을 겪을 거면, 어차피 해야 하는 거라면 품이 좀 더 들더라도 효과적인 게 낫지 않을까요.

야단 치기를 시작할 때는 아이에게 반론권을 줍니다.

"엄마가 할 이야기가 있어. 그동안 너를 보면서 지적하고 싶었던 문제점들을 얘기할 건데 혹시 들으면서 내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거나 반박할 내용이 있으면 말해줘. 엄마 입장에서는 충분히 지켜보고 생각한 것들이지만 너는 또 입장이 다를 수 있을 테니까."

실제로 보통 아이가 부모에게 야단을 맞는 상황은 100% 일방적일 때가 많습니다. 아이가 그 상황에서 반론이라고 해봐야 상황 모면을 위한 '변명'으로 받아 들여져 더 혼나기만 하죠. 그러나 저는, 특히 자기 생각이 체계화 된 나이의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자기 반론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엄마의 판단이 다 맞는 것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저렇게 반론권을 주고 시작하면 아이는 대부분 반박하지 않고 잘 받아들입니다. 이 상황이 이미 민주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야단 치기에서는 훈훈한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야단 치기를 마무리할 때는 반드시 격려와 응원, 당부의 말로 '훈훈한' 끝을 맺습니다.

"엄마가 매번 네가 하는 걸 지적하거나 야단치지 않는 건 너를 믿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스스로 잘 해왔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오늘 우리가 한 이야기들 잘 기억하고 잘해보자.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생각대로 계획한 대로 살 수만 있는 것도 아니야. 엄마도 그랬고 다들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잘못된 채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잘 이끌어주는 게 내 역할이니까."

이와 같은 '전략적 단계'를 거치면 아이는 혼나는 상황, 야단 맞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기분이 나빠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반성하는 마음도 들고, 자신을 배려해서 이야기하는 엄마의 태도에도 고마움을 느끼죠.

저는 주로 잠자리에 들기 전을 '최적의 타이밍'으로 고르는 편인데 그 이유는 대화를 마무리하고 잠이 들면 다음 날 아침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어투로 전략까지 고민해 가며 야단 치기를 했다 해도 서로의 마음이 그 이전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이라는 '완충재'를 두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야단을 치고 난 후에도 아이들은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고 엄마는 또 한숨을 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 또 한번 인내가 필요합니다. "내가 그때 그렇게 말했는데 넌 왜 똑같니? 왜 달라지는 게 없어?"하고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이는 대신 '그때 했던 다짐 혹은 약속'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방식을 택해 보세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패드부터 들고 밤 사이 친구들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습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저 역시 그날의 야단 치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상황이 또 생기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 뜨자 마자 화면부터 보면 시력이 더 나빠질 것 같은데..." 그 말을 듣자마자 아이는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바로 캐치하고 내려놓더라고요.  다음에 또 같은 일이 벌어지면 그땐 어떤 '말'로 상기를 시켜야 하나 고민을 해봐야겠죠.

아이를 야단치는 건 지금 당장 벌어진 상황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보다 거시적인 변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수고롭더라도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고요. 엄마가 강한 말로 다그치면 아이는 반성을 했던 안 했던, 동의하건 하지 않던, 상황 모면을 위해 알았다고 수긍하는 것으로 끝이 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끝일까요.

위에서 '인내'에 관해 인용한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목표는 비난이 아니라 변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저의 '야단 치기' 전략이 바로 이 구절과 정확히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에 참여하세요 (1건)
1 이달에 읽은
무료 콘텐츠의 수

이달의 무료 콘텐츠를 모두 읽으셨네요.

유료 구독하시면 갯수 제한 없이 마음껏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