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지능과 토론은 어떻게 연결돼 있을까?

정서지능과 토론은 어떻게 연결돼 있을까?

요즘 자녀 교육 분야에서 자주 회자되는 '정서지능'은 아주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개념이고 가치긴 하죠. '정서 교육'을 실천하는 데는 '토론'만한 게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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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 및 인간 심리에 관한 연구는 자녀 양육 및 교육의 근간이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여러 개념이 새로 등장하고 또 유행처럼 지나가기도 하는 등 그 트렌드는 종종 바뀌었습니다.

'멘델의 유전학은 1900년에, IQ는 1902년에, 존 왓슨의 행동주의(Behaviorism)는 1918년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1900년대 초반에 등장'했고, '2000년 전후로 새로운 이론과 개념들이 대거 등장'하는데요, '1995년에 IQ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EQ(정서지능)가 등장했고, 1998년에는 마틴 셀리그먼 박사가 인간의 부정적이고 병든 부분보다는 긍정적이고 번영하는 면을 연구하는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 미국심리학회의 주요 연구 주제'가 되었죠. '2000년대 들어서는 관계 치유에 초점을 맞춘 심리상담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2010년 10월에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타임>지 표지기사로' 실리는 등 그 흐름이 변화해 왔습니다. (**)

이처럼 주된 이론이나 개념, 혹은 연구 주제적인 차원을 굳이 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녀 양육과 교육의 트렌드가 끊임없이 달라지고 있음을 우리는 체감할 수 있습니다. 사실 큰 맥락에서 보면 중요한 핵심은 흔들릴 수 없고, 기본 가치 또한 전혀 변한 게 없는데도 무엇을 강조할 것인가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볼 것인가 지금 이 시대에 더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가 등에 따라 마치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 것처럼 여겨지는 내용도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흐름을 무시하기도 어렵죠. 시대는 변했고 어떤 개념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따라 양육과 교육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날 테니까요.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오늘 이야기해보려고 하는 양육 및 교육 트렌드는 '정서지능'에 관한 것입니다. 10대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는 물론이고 초,중등 아이들과 함께 토론 교육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도 변화하는 교육 트렌드를 기민하게 살피는 편인데요, 최근 들어 '정서지능'이 엄마들 사이에서 '다시' 강하게 회자되고 있더라고요. '다시'라고 강조한 까닭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실 정서지능 즉 EQ의 등장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잡지사에서 교육 담당 기자로 일했던 2000년대 초반에도 정서지능(EQ)의 중요성과 실천에 대해 다루는 기사들을 상당히 많이 다루었을 정도로 꽤 오랜 기간 유행했던 개념이었죠. 어느 시점을 중심으로 폭발적 유행이 사라진 것도 정서지능의 중요성이 퇴색해서라기 보다는 정서지능에 대한 사회 전반의 공감이 깔린 후 그 위에 또 다른 새로운 개념, 트렌드가 중요하게 등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지_픽사베이

요즘 다시 정서지능의 중요성이 회자되는 것은 시대적 특징과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공', '인재'에 관한 기준이 과거 시대와 달라졌다는 것이 그 배경 중 하나인데요, 이를테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클라우스 슈밥 이 자신의 저서에서 내린 다음과 같은 결론이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네 가지 능력을 제시한다. 상황맥락(정신)지능, 정서(마음)지능, 영감(영적)지능, 신체(몸)지능이 바로 그것이다."(**)

공부와 학습 능력, 성적 같은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한 시대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들이대개 사고력도 공부력도 뛰어나다는 경험적 연구와 분석을 바탕으로 '정신지능'이 강조되는 시대인 것입니다.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사회정서학습법으로 수많은 영재들을 가르쳤다는 김소연 저자가 펴낸 <결국 해내는 아이는 정서지능이 다릅니다>라는 책은 정서지능의 중요성에 대해 심도 깊게 다루며, 미국 사회에서 정서학습에 얼마나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요, 책에서는 정서지능을 키우는 '사회정서학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관심사, 가치관 등의 형성을 도모하는 교육
-나와 타인의 감정을 인지해 충동적인 감정 조절을 돕는 교육
-타인의 상황에 공감하는 것을 도와 갈등 해결을 가능케 하는 교육
-사회적 규범에 부합하는 결정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

이 대목에서 저는 다시 한번 토론 교육의 중요성과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모든 설명이 토론의 장점을 그대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론은 상대와 대화하는 동안 경청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며, 나만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양보와 배려를 통해 서로의 갈등을 해결하고 해법을 찾아가는 능력도 키워줍니다. 또 모두의 의견은 틀린 게 아니라 다 다를 수 있다는 다양성에 대해 이해하고 '역지사지'의 태도를 통해 상대의 감정과 의견을 공감하게 되기도 하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 나와 친구의 경험, 그리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슈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토론하는 동안 세상을 보는 시각을 키우고, 바른 가치관 확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뿐인가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옳고 그름의 기준은 무엇인지, 어떤 문제에 부닥쳤을 때 우리는 어떤 관점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등 자기 소신은 물론 인격 형성에도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결국 아이의 고유성, 즉 퍼스널리티(personality)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게 되지요.

어떤가요. 이렇게 들으니 사회정서학습이란 것이 결국 우리가 일상 속에서 토론을 습관화하기만 해도 충분히 길러지는 역량이자 정서지능 강화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나요?  뿐만 아니라 토론을 통해 자기 내면을 키운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자기 통제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토대로 그토록 바라던 자기주도력과 공부력도 덤으로 갖추게 되는 거죠.

이미지_픽사베이

김소연 저자 또한 정서지능 강화와 관련, 저서에서 미국 학교에서 중요하게 행해지고 있는 질문 활동 및 생각 나누기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합니다.

"미국 학급은 학기 내내 또래 관계 형성을 위한 '서로를 알아가는 질문' 활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중에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엉뚱하고 가벼운 주제부터, 유기견 안락사 찬반과 같이 진지하고 깊은 주제까지 폭넓은 대화 소재를 다루는데요. (...) 생각을 나누는 활동은 나와 접점이 없다고 느꼈던 친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기회이자, 대화 소재의 폭을 확장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따라서 생각 나누기를 경험하며 자란 아이는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는 등 자아 성찰과 인식에서도 능숙한 경우가 많은데요. 특히 가족 구성원들끼리 더 많은 대화를 나누어본 아이들은 편안하게 맞장구를 친다거나, 상대의 눈빛과 제스처를 살피는 등 암묵적인 대화 기술이 몸에 배어 있어 학교나 또래 집단 사이에서도 자신감 있는 교류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해내는 아이는 정서지능이 다릅니다> 중 챕터 2 '정서교육:자아가 탄탄한 아이로 키우기' 중에서

이쯤에서 '정서지능'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드러내 놓고 강조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래 전부터 '정서'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분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제가 몇 해전부터 아이들의 토론 교육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기 시작할 무렵, 실은 토론의 효과적 측면을 떠올리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분들이기도 했는데요, 우리나라 '감정코칭'의 대표격인 최성애, 조벽 박사님 부부가 주인공입니다. 수많은 연구 결과 등을 토대로 2000년대 초반부터 육아 및 교육에 있어 정서가 끼치는 절대적 영향을 강조해온 두 분은 관련해 수많은 저서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책은 2018년 초에 출간된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해냄출판)입니다. 이 책에서는 정서의 시작을 '부모와의 연결'로 보고 있는데요, 책의 타이틀에서 '수저'를 거론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그러나 애초 우리가 생각하는 '수저'처럼 타고난 그대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족의 환경과 분위기가 '수저'의 가치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정서'라는 건 영원불멸의 것이 아니라 애착과 사랑 등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죠.

저자가 설명하는 '정서지능'에 대해 한번 들어볼까요.

가트맨 박사는 (...) "방대한 연구 결과 인지지능(IQ)은 인간의 지능 중 5퍼센트에 불과한 능력을 측정할 뿐이고, 장기적인 성공과 행복에는 정서지능(EQ)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서 인지지능을 높이기 위해 어려서부터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처럼 정서지능을 키우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이고 체계적이며 과학적인 방법이 감정코칭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감정코칭은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방법은 구체적으로 경청, 위로, 이해, 공감, 배려, 존중, 소통, 감사, 효도 등이며 이 또한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생존 기술이라고도 강조했습니다.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 중 제 2장 '애착 손상 권하는 사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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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도 등장하는 '경청, 이해, 공감, 배려, 존중 소통' 등은 토론이 불러오는 대표적인 효과들입니다. 공부나 학습, 경쟁의 도구로서가 아닌 진심 어린 대화와 질문, 생각 나누기의 기술로서 토론이 활용될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죠. 같은 맥락에서 보면 토론이 곧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사실 오랫동안 아이와 토론하고 또 토론을 빌어 수많은 대화를 해오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깊어졌고 그만큼 더 많이 사랑하게 됐다는 점 또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정서지능'이라는 귀가 쫑긋 할 만한 개념이 아니더라도, 이처럼 엄마가 아빠가 아이와 일상적으로 토론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넘치는데 여전히 '토론'을 어렵게만 생각하는 분위기가 아쉽기만 합니다.

얼마 전,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과 토론 수업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아이들에게 '부모님과 토론해본 적 있는지' 물었더니 아이들 모두 '없다'고 답하더라고요.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외식 할 때 어떤 메뉴를 고를지, 여행 갈 때 어디로 갈지 등등 사소하게 의견을 나누는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느냐고요. 아이들이 말합니다. "아, 그건 해본 적 있어요!"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것, 그게 바로 토론의 시작이라고,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아주 작은 문제부터 부모님과 대화하고 의견을 나눠보라고 말해주었는데요, 실은 뒤에서 듣고 있던 부모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 부분은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최성애, 조벽 지음)의 내용 중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힙니다.

커버 이미지_©어나더씽킹랩 via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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