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머리 생각법?!이런 시험 문제, 어떠세요?

공부머리 생각법?!이런 시험 문제, 어떠세요?

생각하는 힘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공부력 그 이상의 힘을 키우는 질문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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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방영됐던 드라마 '슈륩' 보셨나요?

'조선시대판 스카이캐슬'이라 불린 '슈룹'은 왕실의 특별한 교육법과 엄마들의 치열한 교육열을 다루었는데요, 세자 자리를 두고 후궁들이 벌이는 각종 편법과 음모는 가히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족집게 요약본' 정도는 애교 수준, 시험 문제를 미리 빼돌리고, 공정을 유지해야 할 출제자를 비밀리에 과외 선생으로 들입니다. 판정에 관여할 이들을 '내 편'으로 매수하고, 심지어 경쟁자보다 앞서기 위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나쁜' 방법들을 총 동원하기까지 하죠.

드라마를 보는 내내 '설마 저렇게 까지 한다고?' 와 '세자 자리가 걸린 문제면 그럴 만도 했겠다' 사이의 감정을 오가면서 '목표와 방법은 달라도 어느 시대나 엄마들 교육열은 마찬가지인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다행히(?) 중전의 슬기와 지혜, 현명함이 빛을 발해 아름다운 결말로 막을 내렸습니다. 중전 역시 뜨거운 교육열로는 뒤지지 않습니다만, 교육에 대한 소신이나 철학,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자녀들을 품는 인내와 너그러운 사랑 등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지점도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보며 좋았던 장면은 또 있습니다.

시험으로 세자를 뽑는 절차인 '택현'에서 매번 예상치 못한 존재가 되는 극 중 임금의 활약입니다. 특정 후궁의 왕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시험 방식을 공정한 방식으로 바꾸어 버리고, 이미 출제된 문제를 비밀리에 '임금이 낸 문제'로 바꾸도록 명하기도 합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던 판을 엎어 버린 것이죠.

임금이 내는 문제 방식도 각 왕자들이 평소에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지, 지혜와 통찰력을 갖추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지 등을 평가하는 것들입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과 해석 및 분석력, 창의적 아이디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문제 해결 방식 등을 꺼내게 하는 질문으로, 정답은 없지만 '마음을 울리는' 답은 있는 것들이었죠.

지난해 방영됐던 드라마 '슈룹'의 포스터. 

드라마 전반부에 등장한 한 장면을 볼까요.

왕자들이 모여 수업을 받고 있는데 임금이 불시에 방문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氷(얼음 빙)이 水(물 수)가 되었다. 설명해 보라."

왕자들은 각자 다른 답을 하는데요,

"還(돌아올 환)입니다." "春(봄 춘)입니다.",  "移(옮길 이)입니다."라고 답합니다.

혹시 단어 다음에 올 부연 설명들이 유추 되시나요? 물이 얼어 된 얼음이 다시 물이 되었으니 '돌아올 환'이라는 것이고, 얼음이 녹았으니 '봄 춘'이 됐다는 것이며, 얼음을 가져와 물로 만드니 '옮길 이'라는 것입니다.

거침없는 왕자들의 답을 들은 임금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합니다.

"새로운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 좋겠다."

질문도 답도 매우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는데요, 이와 비슷한 장면들을 보면서 떠올린 책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미래 교육을 위한 제언'이라는 부제가 달린 <IB를 말한다>(창비)입니다. 책에는 드라마가 아닌 실제 조선시대의 시험 문제가 거론된 구절이 있는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 때 과거 시험 문제 중에는 "노비 또한 하늘이 내린 백성인데 그처럼 대대로 천한 일을 해서 되겠는가."에 대해 논하라는 것이 있었다. 신분제가 자연 현상처럼 당연하던 시절에 경천동지할 파격적인 시험 문제였다.
성종 때의 시험 문제로는 "국가의 법이 엄중함에도 범법자가 줄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가 있었고
명종 때는 "교육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가 있었다.
"공납을 장차 토산품 대신 쌀로 바꾸어 내도록 하자는 의견에 대하여 논하라."라는 문제는 광해군 때, 대동법 시행 이전에 출제되었다.
숙종 때"왜인들로부터 울릉도 주변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킬 방도를 자세히 진술하라." 했다.
모두 오늘 날의 시험 문제로도 손색없을 만큼 비판적 판단과 창의적 대안을 요구하는 문제다."

-<IB를 말한다> 1부, 세계 각국의 교육 평가 패러다임 중에서.

뿐만 아니라,  여전히 주입식 교육에 올인하게 만드는 우리나라의 객관식 평가 제도를 지적하며, 토론식 수업과 논서술형 평가가 핵심인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 책에는 논서술형 대입 시험을 치르는 여러 나라의 시험 문제 역시 '예'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아래는 같은 책의 1부 '세계 각국의 교육 평가 패러다임'에서 각 나라의 시험 제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제시된 시험 문제들입니다.

이미지_픽사베이

<영국의 시험, 에이레벨 문제 예시-역사>

*10점 짜리 문제 하나와 20점 짜리 문제 하나를 골라서 90분 동안 쓰는 방식

산업화는 중산층에 왜 그렇게 큰 영향을 미쳤는가?(10점)
1912년 대선에서 루스벨트는 왜 패했는가?(10점)
19세기 말까지 정치 구조에 산업화가 왜 그렇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2개 국가의 사례를 들어 그 이유를 평가하시오.(20점)
"히틀러의 대외 정책은 독일이 1차 대전 패배를 복수하고 싶은 원한에 기반했다."라는 주장에 대해 당신은 얼마나 동의하는가?(20점)

<프랑스의 시험, 바칼로레아 문제 예시>

 1) 인문학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2) 자연과학

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3) 사회 과학

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권력 남용은 불가피한가?

<독일의 시험, 아비투어 문제 예시-외국어(영어) 과목>

교육부 장관을 인터뷰하려고 한다. '학교는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인생을 준비해 주고 있나?'라는 주제에 대해 인터뷰 문안을 작성해 보시오. 인터뷰 문안은 직접 묻는 질문이나 제안을 모두 포함할 수 있다.
유럽 의회 대표에게 당신과 당신 세대가 걱정하는 이슈들에 대해 편지를 써 보시오. 가능한 해결책도 제안해 보시오.
학교 폭력은 지난 몇 년 동안 증가해 왔다. 유력 일간지에 그 원인과 효과를 분석하는 신문 기사를 써 보시오.
'부모는 성인의 나이에 이른 자녀의 의사 결정에 어느 정도로 관여할 권리 혹은 의무가 있는가?'에 대하여 쓰시오.

위 문제들을 보면서 각자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문제를 접하고 깊이 생각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교육을 받아오지 않았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한 여전히 '출제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딱 하나의 '정해진 답'을 골라야 하는 우리의 교육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분들은 한결같이 공교육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사교육의 역할이 커지는 건 공교육이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사교육을 했을 때 공교육에서 점수를 잘 받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학교의 기 출제 문제며 출제 성향을 분석하고 예측하며 '대비 문제'를 풀어주는 학원에 다닌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시험을 잘 보고 내신을 잘 받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이미지_픽사베이

위에서 보았던 각 나라의 시험 문제들 그리고 조선시대의 시험 문제 예시로 드렸던 질문들은 누군가 '예상'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예측'해서 '정답'을 대비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무 말 대잔치로 대충 써내고 끝낼 수 있는 질문들은 더더욱 아닙니다. 평소 누가 책을 많이 읽었는지, 배경 지식이 많은지, 생각 훈련이 돼 있는지, 비판적이고 창의적인지, 논리적 표현과 쓰기가 가능한지 등을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진짜 변별력 있는 방법인 거죠.

교육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답답해지는 건, 우리나라 교육이 개혁의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도가 너무 더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공교육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생각하고 토론하는 아이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고, 그 부분은 사교육이 감당해줄 수 없습니다.

일상 속 아주 작은 질문부터 생각하는 훈련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슈룹'에서 임금이 왕자들에게 던졌던 "氷(얼음 빙)이 水(물 수)가 되었다. 설명해 보라." 역시 가만 들여다 보면 아이들을 위한 질문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벚꽃이 모두 땅에 떨어졌네. 왜 이렇게 됐을까?"

누군가는 비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시적인 답변이 나올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연의 순환을 떠올릴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끝으로, 하나 더 흥미로운 시험의 예시를 보여 드립니다.

아들 아이가 '윤리' 시간에 치렀던 시험 문제였는데요, <엄마표 토론이 학습에 반영된 사례> 글에서도 언급했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민이는 햄스터를 키웁니다. 그런데 민이가 소풍을 간 사이에 햄스터가 그만 죽고 말았어요.

당황한 엄마는 잠시 고민합니다. 햄스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 민이가 얼마나 슬퍼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엄마는 생각했어요. '똑같은 햄스터를 구해다 놓으면 민이가 모르지 않을까?'

민이 엄마는 어떤 결정을 하는 게 좋을까요? 여러분이 민이 엄마에게 편지를 써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조언'을 해주세요.>

이런 시험 문제들,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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