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토론한 게 시험에 나왔어!"엄마표 토론이 학습에 반영된 사례

"엄마랑 토론한 게 시험에 나왔어!"엄마표 토론이 학습에 반영된 사례

얼마 전 아이가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돌아와 엄마와 토론했던 내용이 나왔다며 신이 나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표 토론은 관계와 학습력 둘 다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줄곧 그렇게 말해 왔는데요,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번 더 그 주장에 힘을 실어보겠습니다.

anotherthinking

얼마 전  윤리(Ethic) 시험을 보고 온 아이가 신이 나서 시험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아들 : 엄마 오늘 윤리 시험 봤는데 재밌는 문제가 나왔어.
나: 그래? 무슨 문제였는데?
아들: 어떤 아이가 키우던 햄스터가 있었어.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서 여행을 간 동안에 갑자기 죽은 거야. 엄마는 고민을 해. 아이가 돌아오면 햄스터가 죽었다고 말할지 아니면 똑같이 생긴 햄스터를 구해서 원래 키우던 햄스터인 척 할지 말이야. 아이가 너무 사랑했던 햄스터였기 때문에 죽은 걸 알면 크게 슬퍼할 거라고 생각한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는데, 그 엄마에게 조언을 해주는 편지를 쓰는 거였어.
나: 어려운 문제네. 넌 뭐라고 썼어?
아들: 당연히 엄마가 아이에게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고 썼지. 나는 그 아이가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자기가 키우던 햄스터잖아. 그리고 많이 슬프겠지만 그 경험을 통해서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썼어. 그런데 친구들은 대부분 거짓말을 포인트로 쓴 것 같더라고. 아이를 위해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거짓말을 하는 건 좋지 않다, 식으로 말이야.
나: 오, 그래? 엄마가 듣기에 네 생각이 너무 훌륭한 조언 같은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아들 : 전에 엄마랑 토론했던 적 있었잖아. 그때 가족이 큰 병에 걸려 곧 죽게 된다면 그 사실을 알려야 하는가, 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게 생각났어.  
나: 아 그랬지? 그거 정말 오래 전에 한 토론인데, 그걸 기억했구나. 엄마도 잊고 있었는데, 대단하다!

불치병환자에 시한부 알려줘야 하지만…내 가족이면 ‘머뭇’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말기 암이나 에이즈, 파킨슨병, 치매 등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아이가 말한 토론은 위 뉴스를 주제로 한 내용이었습니다. 벌써 2년 정도 지난 일입니다.

오래 전 일인데도 아이가 여태 기억하는 이유로 제가 판단하는 근거는 단지 사실을 알려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토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다양한 의견을 '일부러' 고민해보게 만드는 '찬반 토론'을 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때 아이가 어떤 의견을 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늘 자신의 의견과 별도로 찬성하는 입장으로 한번, 반대하는 입장으로 한번 토론을 하기 때문에 양 측 입장을 모두 경험하면서 생각하고 발언을 해야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의견을 직접 '말해 보는' 과정을 통해 '자기 것'이 되는 셈입니다.

물론 찬반 토론이 아닌 그냥 자신의 생각만 이야기하는 토론이었다 해도 아이는 '그런 일이 있었대'라고 듣기만 하는 것보다 훨씬 기억을 잘 했을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 나아가 하나의 주제(논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직접 경험해보는 '찬반 토론'을 했으니 찬성하는 입장의 의견도 반대하는 입장의 의견도 '자기 경험'으로 남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기억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의 '망각곡선(forgetting curve)에 따르면 배운 지 10분 만에 이미 망각이 시작돼 1시간만 지나도 무려 50%를 잊어 버립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거의 기억은 0에 수렴하죠. 에빙하우스가 강조하는 건 '반복 학습'입니다. 배운 후 10분 이내 한 번 복습하고, 1일 이내에 다시 복습하고, 일주일 이내에 한 번 더 복습하고, 한 달 이내에 또 복습하면 기억은 거의 100에 가까워질 뿐만 아니라 장기 기억이 돼 오래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복습의 중요성을 말할 때 거론되는 이론이지만 한 두 번도 아니고 네 번씩 복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안 그래도 할 것 많은 아이들인데 모든 공부를 저런 식으로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망각'이 되도록 둘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여러 번 복습이 아니더라도 기억을 장기화하는 법에 대해 여러 방식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토론입니다. 아래의 표를 한번 볼까요.

미국행동과학연구소(NTL)의 학습 효과 피라미드. 

미국행동과학연구소(NTL)의 '러닝 피라미드' 입니다. 학습 효과에 대해 분석한 것인데요, 보다시피 강의를 듣기만 했을 때는 5%만이 남고, 읽기는 10%, 시청각 수업이 20%, 시범 강의 보기를 했을 때 30% 정도가 남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까지가 보통 '수동형' 학습이라면 그 다음부터는 참여형 수업인데요, 집단 토의가 50%, 실전으로 해보기는 75%,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학습을 하면 80%가 남는다고 합니다. 이 피라미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래서 '참여형 수업'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피라미드에 적용하면 토론은 50% 정도의 기억이 남는 학습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교에서 이뤄지는 대다수 '집단 토의'가 아닌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말할 기회를 제공하는 '엄마표 토론'은 효과가 더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집단 토의는 '듣는' 시간이 많지만 엄마와 하는 토론에서는 직접 '말하는', 즉 머리를 써서 많이 생각하고 생각한 바를 말로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더 활발한 참여가 가능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엄마표 토론을 적극 권장하는 이유로 그 첫 번째가 '학습적 효과' 때문은 아닙니다만, 결론적으로는 엄마와의 잦은 토론 활동, 수많은 주제를 가지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생각을 자극하는 활동이 학습 효과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학교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주제, 어디에서도 생각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토픽을 엄마가 일상에서 수시로 툭툭 던져주고 함께 논의해본다면 아이의 공부 그릇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사교육을 통해 토론을 '공부'로 접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죠. 더구나 이와 같은 학습은 지극히 미래 지향적인 방식이고요.

사진 크레딧_어나더씽킹랩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엄마와 토론했던 내용을 시험에서 마주치는 경험이 아이는 굉장히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그동안에도 토론을 통해 생각하는 훈련이 온전히 글로 써내야 하는 시험에서 도움이 된다고 말했던 아이지만 정확히 같은 논제가 주어진 상황은 또 다르게 느껴진 거겠죠. 친구들과 다른 시각에서 다른 관점으로 에세이를 썼다는 자부심도 느꼈을 테고요. '효과'를 강하게 체감한 아이는 엄마와의 토론 수업에 더 적극적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토론은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오늘 한 번 수업 했다고 내일 당장 변화가 일어나진 않습니다. 전문가도 아닌 엄마가 하는 '엄마표 토론'은 더더군다나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토론이 낯설다고 해서 내가 모르는 분야라고 해서 나중으로 미루고 주저하기만 한다면 엄마표 토론이 주는 너무나 명백한 효과를 놓치는 셈입니다.

정재승 교수님의 저서 <열 두 발자국>의 한 부분으로 오늘 글은 마무리할까 합니다.  

"처음 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나이 들어 가장 많이 하는 후회 중 하나가 '이거 괜히 했다'라는 후회보다 '내가 그때 그걸 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라고 합니다. (...) 기회를 놓치는 경우들이 훨씬 많아서, 사실은 'Go /No Go 순간'에 'Go' 버튼을 누르는 의사 결정을 하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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