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공식 '보충 과외', 독일 학교의 멘토 프로그램

교내 공식 '보충 과외', 독일 학교의 멘토 프로그램

독일에는 학원이 없습니다. 대신 학교가 공부가 부족한 학생들을 도와주는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멘토 프로그램'입니다.

anotherthinking

오랜만에 올리는 독일 교육 이야기입니다.

올해 8학년이 된 아이는 8월 말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1박 2일 멘토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8학년부터 해당되는 '멘토'로서의 역할을 지난 학기 끝날 즈음 선생님에게 제안받은 후, 아이는 선뜻 하겠다고 나섰어요. 정확한 내용도 모르고 그저 '공부가 부족한 후배의 학습을 도와주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이미 몇 번 시험 때 같은 반 친구의 공부를 도와주며 성취감을 느껴본 적 있었던 아이에겐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던 겁니다.

금요일 하루 학교 수업을 온전히 빼고, 두 명의 선생님 그리고 열 명 남짓의 다른 멘토들과 함께 한 워크숍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에게 많은 자극과 영감을 준 기회가 됐습니다. 아이 말에 따르면, 워크숍 기간 동안 선생님이 주력해 알려준 것은 '누군가를 잘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잘 배우는 방법'이었다고 해요.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지를 알게 되면 자연스레 잘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결과적으로 아이는 워크숍이 학습자로서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고 평했어요.  


유급 제도 있는 독일 공교육, 학교가 제공하는 보충 학습들

알려진 대로 독일에는 학원이 없습니다. 필요에 의해 일부 과외 같은 형태로 사교육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처럼 체계적이거나 본격적 사교육으로서의 형태는 아닙니다. 선행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학교 수업 만으로 충분할 수는 없으니 누군가는 학습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특히 독일의 공교육 시스템에는 학생들이 학업 성취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동일 학년을 다시 이수해야 하는 '유급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로서는 학생별 수준차에 따른 충분한 학습을 제공해야 하고 이를 위한 장치가 필요한 거죠. 학교에서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를 지원합니다. 하나는 주요 과목 중심으로 학교가 개설하는 방과 후 '보충수업'이 있고, 또 하나는 '멘토 프로그램'입니다.

전자의 경우, 학교가 해당 수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학생들을 모아 교사가 진행하게 되는데 학기 초 방과 후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 해당되는 학생들에게 특정 수업을 추천합니다. 물론 반드시 따라야 하는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를 수용합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반대의 케이스, 즉 특정 과목에 뛰어난 학생들을 위한 '심화 수업'이 개설되기도 하는데 이 또한 학교 측이 추천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죠.

멘토 프로그램은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일종의 보충 과외입니다. 보통은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게 되는데, 일대일 매칭을 통해 '멘토와 멘티'가 결정됩니다. 독일 공교육 시스템에서 제공되는 멘토 프로그램은 학교마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그 운영 방식에도 차이가 있지만, 목적과 목표로 하는 효과는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나더씽킹랩 via Dalle3

독일 공교육 시스템의 '멘토 프로그램' 목표와 효과

당연히 가장 큰 목적은 학습에 어려움이 있어 학교 수업 외 보충 학습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고, 그것을 통해 학업 성취도를 향상하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멘토와 멘티 간 신뢰를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선배가 후배에게 긍정적인 롤 모델 역할을 해주는 것도 포함되는데요, '멘토-멘티'를 선정하고 매칭할 때 이런 부분까지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죠. 또한 학교 생활에 소외감을 느끼는 친구가 있다면 이들을 사회적으로 통합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도 있고요.

'멘토 프로그램'에서 멘토 모집은 상급 학년 학생들 중 성적이 우수하고 책임감 있는 학생들을 모집합니다. 주로 교사들이 추천하는 경우가 많은데, 강제 사항은 아니며 추천을 받은 학생들 중 자원하는 이들이 멘토로 활동하게 됩니다. 때문에 멘토 수가 매년 일정치 않으며, 학년마다 인원수에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멘티는 반대로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나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들이 대상이 되는데요, 학교마다 멘티 선정 방식에 차이가 있겠으나,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경우 학교가 따로 멘티를 선정하지 않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멘토'의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멘토 프로그램을 위한 커뮤니티를 별도로 운영하면서, 익명인 멘티의 요청과 이를 수용하는 특정 멘토에 의해 '멘토-멘티'가 매칭되는 방식인데요, 예를 들어 A가 수학과 물리 과목에 도움이 필요하고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수업을 받고 싶다고 구체적인 요청 사항을 올리면, 이 내용을 보고 적합하다고 판단한 멘토가 A의 멘토로 활동하겠다고 자원하는 것이죠.

멘토와 멘티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부족한 학습과 시험 준비 등을 도와주게 되는데요, 프로그램의 효과를 고려해 한 학기를 기준으로 '최소 몇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기준은 있습니다.  

멘토도 멘티도 성장하는 시간

앞서 말한 대로 멘토 프로그램은 선배가 후배를 도와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아이의 경우 같은 학년 친구를 대상으로 수학과 물리, 불어 등을 도와주는 멘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콕 짚어서 아이를 멘토로 매칭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인데요, 결과적으로는 최적의 매칭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난 학기에 이미 그 친구를 도와주며 시험 성적이 나아지는 것을 경험해 본 터라 이번에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기도 하고, 같은 교실에 있다 보니 친구가 약한 부분이 어디인지, 가장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에도 쉽다는 장점도 있으며, 친구와 함께라는 이유로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멘토 활동을 의무나 부담보다는 즐거운 시간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바로 그런 장점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멘토 활동에 쏟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또 직접 공부를 도와주는 과정에서도 스스로 공부가 많이 된다고 하니 '멘토 프로그램'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 서로 같이 성장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로서 아이의 멘토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지점이 바로 거기 있습니다. 아이가 누군가를 도와주면서 행복과 기쁨,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나만 잘하는 게 아니라 함께 잘하는 것의 중요함을 안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 그 어떤 교육보다 훌륭하지 않나요. 그런 이유로 앞으로도 멘토로서의 자격이 된다면 아이의 멘토 활동은 적극 찬성입니다.


  • 커버 이미지_©어나더씽킹랩 via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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