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술> 날씨 이야기로 과학적 호기심까지 키울 수 있다고요?!

<대화의 기술> 날씨 이야기로 과학적 호기심까지 키울 수 있다고요?!

"친절한 말은 짧고 하기 쉽지만 그 울림은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마더 테레사의 명언입니다. 저는 이 문장에 '대화'를 대입해 봅니다. 일상 속 아이와의 대화는 짧고 하기 쉽지만 그 대화가 주는 효과와 울림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그러려면 그냥 '말'이 아닌 주고받는 '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은 사소한 대화 하나가 어떻게 아이의 지적 호기심을 키우고 앎의 즐거움을 일깨우는지 살펴보겠습니다.

anotherthinking

20대 시절 3년 정도 방송국에서 예능 프로그램 작가를 했습니다. 그때 대본을 쓸 때마다 오프닝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가 매주 가장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예능 작가들은 구성 작가라 불리는데 말 그대로 진행 대본이나 멘트를 쓰는 것보다 프로그램을 어떻게 짜고 풀어갈 지 그 안에 어떤 요소들을 넣을 지 구성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는 게 훨씬 중요한 역할인데요, 그래서 사실 저처럼 글을 쓰는 게 좋아 작가를 하겠다고 생각했던 사람한테는 딱 맞는 일은 아닙니다.

갑자기 지난 시절 고백을 하자는 건 아니고, 그래서 저한테는 오프닝을 정말로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몇 줄 안되긴 해도 진행 대본에서 유일하게 '글'다운 글을 쓸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담당 PD나 진행자들도 오프닝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오프닝부터 재미없으면 채널이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오프닝 소재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바로 날씨, 계절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주로 라디오 매체 오프닝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계절이 바뀔 때는 어김없이 계절 이야기로 시작하고 매일 같은 날씨라도 어느 날 특별히 거론할 만한 이슈가 생기면 날씨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가장 가볍고 쉽게 대화를 시작할 때 날씨나 계절을 통하잖아요, 그만큼 모두에게 적용되고 누구나 관심 갖는 소재라서 그렇습니다.

자, 그러다 보니 시즌 때마다 지겹게 같은 내용이 반복될 때도 많습니다. 봄이 오면 봄 이야기, 여름이 오면 여름 이야기... 아무리 변주를 한다고 해도 쓰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지겨운 법이죠.

2000년 전후 봄이 시작되던 시기, 방송 대본 오프닝에서 계절 이야기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스스로도 너무 식상한 겁니다. 봄 이야기를 좀 다르게 해볼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봄이 온다고 말하는데 그걸 좀 더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일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봄이 오는 속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 검색이 지금처럼 되지 않을 때라 정보를 어떻게 찾았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제주부터 서울까지 벚꽃의 개화 시기를 근거로 속도를 계산해 정확히 수치로 '봄의 속도'를 알려주는 오프닝을 작성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 오프닝을 두고 진행자들과 담당 PD가 두고두고 '좋은 오프닝의 예'로 거론했기 때문입니다.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 문득 20년도 더 지난 일화가 떠오른 것은 오늘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바로 날씨, 계절, 그리고 과학 이야기라서 그렇습니다.

아이와 대화 자체를 힘들어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건 안 돼' 같은 일방적 지시어 말고, '뭐 했니, 어땠니' 같은 단답형의 질문과 답 말고 서로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대화'를 어떻게 시작하고 이어갈 지 막막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때도 날씨, 계절 이야기가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계절이 바뀌는 타이밍이거나 갑자기 날씨가 변덕스러워지는 때라면 더더욱 좋은 소재가 됩니다.

1."이제 여름이 끝나가나 봐. 그러고 보니 매미 소리도 이제 안 들리네?"
2."오늘 기온이 어제보다 10도나 떨어졌어. 그렇게 낮은 기온은 아닌데 갑자기 떨어져서 더 춥게 느껴지는 것 같아!"
3."아침부터 비가 오네? 이번 주 내내 비 소식이 있던데 가을 장마가 시작되는 걸까?"
4."나는 여름이 좋아서 여름이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워. 그래도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 산다는 건 축복인 것 같아."

위의 문장들은 실제로 제가 요 며칠 아이와 했던 날씨 대화의 첫 머리이기도 합니다. 주로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하거나, 학교에 가는 차 안에서 날씨를 소재 삼아 이야기를 했는데, 저 혼자 한 문장을 말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대화'라고 할 수 없겠죠. 즉, 화두를 던지면서 아이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질문이 이어지고 자연스레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1."이제 여름이 끝나가나 봐. 그러고 보니 매미 소리도 이제 안 들리네?"

-> 여름 대표 곤충인 매미 이야기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매미는 보통 5년 이상의 오랜 시간을 땅 속에서 '굼벵이'로 보내고 지상으로 나와 그 해 여름을 보낸 후 생을 마감하기 때문에 '인내심'을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곤충이기도 합니다. '맴맴' 하고 울어 대는 매미는 수컷인데 즉 매미의 울음은 암컷을 부르는 짝짓기를 위한 노래인 셈입니다.

매미 종류에 따라 탄생하는 주기가 다른데 우리나라는 보통 5년이고 미국 중서부에 서식하는 매미는 주기가 17년이라고 합니다. 다른 나라들에 서식하는 매미들을 봐도 주기는 대체로 3, 5, 7 등의 소수라고 하는데, 이 또한 천적과 만나는 주기를 최대한 길게 하기 위함이라고 해요. 굉장히 지혜롭죠.

매미로 시작해 소수(수학), 나아가 가을 곤충 이야기까지 할 수 있는데요, 매미의 생애를 들려주면서 아이의 생각과 느낌을 물으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호기심도 자극할 수 있고요.  

2."오늘 기온이 어제보다 10도나 떨어졌어. 그렇게 낮은 기온은 아닌데 갑자기 떨어져서 더 춥게 느껴지는 것 같아!"

-> '더' 춥게 느껴지는 건 '상대성'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똑같은 20도라고 해도 줄곧 25도 정도의 날씨였다가 20도가 되는 것과 내내 30도 이상의 기온이었다가 20도가 되는 것은 체감 상 너무 다르다는 것을, 그것이 '상대성'이라고 설명하면 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이해할 수 있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슬쩍 끼워 넣을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물리 이론이라 다소 어렵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설명하는 방식 즉,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또 다른 움직이는 기차를 볼 때 느끼는 속도와 기차역 플랫폼에 서서 움직이는 기차를 바라볼 때 느끼는 속도가 다르다는 식으로 쉽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엄마와 아이의 대화에서는 그 정도로만 '상대성'을 이해하고 아인슈타인까지 떠올릴 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3."아침부터 비가 오네? 이번 주 내내 비 소식이 있던데 가을 장마가 시작되는 걸까?"

->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8월 중순까지 오는 장마를 '여름 장마'라고 하고 8월 말부터 10월까지 나타나는 장마를 '가을 장마'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장마의 특성이 사라지면서 '우기'와 같이 대체할 용어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기상청 발표도 있더라고요.

어마어마한 피해를 가져왔던 지난 폭우를 다시 상기하면서 기후 변화와 환경에 대해서 또 한 번 이야기해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아도 좋겠습니다. 기후 변화 위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비 오는 날 어떤 기분이 드는지, 비를 좋아한다면(싫어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으며 감성적 대화도 가능하겠죠.

4."나는 여름이 좋아서 여름이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워. 그래도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 산다는 건 축복인 것 같아."

-> 제 경우는 싱가포르로 이사한 아이의 친구 가족이 일 년 내내 여름인 나라에 살면서 한국의 가을 날씨를 그리워한다는 일화로 확장해서 대화를 했습니다. '열 두 달 동안 계절이 똑같다면 어떨까'와 같은 질문을 하면서, 몇 년 간 살았던 독일 역시 사계절이 있긴 했지만 우리나라처럼 뚜렷한 차이는 아니라서 한국의 사계절이 훨씬 축복이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어떤 나라는 왜 일 년 내내 여름이고 어떤 나라는 왜 사계절이 있는지, 그 사계절의 특징들이 왜 다른 지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대화하기 좋은 소재입니다. 계절이 생기는 이유는 지구가 약간 기울어진 채로 태양 주위를 돌면서 자전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죠. 일상 소재에서 계절의 변화를 이해하고 있으면 나중에 교과를 통해 배울 때에도 훨씬 이해가 빠르고 재밌게 배울 수 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계절과 싫어하는 계절, 엄마의 선호 계절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며 경험과 감성을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보셨다시피 날씨와 계절 이야기는 서정적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과학적'입니다. 감성적인 이야기 뿐만 아니라 재밌는 대화를 통해 아이들로 하여금 과학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아주 유용한 지식과 정보도 알려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공부가 그렇겠지만 과목으로, 공부로 접하면 일단 어렵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대화 속에서 먼저 이야기로 접했다면, 우리 일상과 연결해서 이해하고 있다면 상황은 달라지죠. 물론 매번 대화할 때마다 '공부'와 '학습'을 염두에 두고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평소에 자주 이야기하는 날씨와 계절만 소재로 삼더라도 얼마든지 더 깊은 대화를 만들어 가고 나아가 지적으로도 충만해지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니 그 어떤 것이든 많이 질문하고 대화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처서로 시작해 24절기, 일 년 열 두 달의 역사까지 호기심 가득한 대화도 가능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확장되는 대화를 좋아하고 자주 하는 편인데요, 얼마 전 '처서'를 지나면서 아이와 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 영역을 아우르는 대화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8월 23일은 24절기 중 '처서'에 해당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일부러 아이에게 "오늘이 처서래"라면서 '처서가 뭔데?'라는 질문을 유도했습니다. 역시 아이는 그대로 질문했고 저는 처서가 '곳 처'에 '더울 서'를 쓰는데 '곳'은 장소의 뜻을 갖고 있지만 여기서는 멈춘다는 뜻으로 쓰여서 '더위가 끝난다'는 의미의 날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야기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재밌는 속담도 곁들입니다. "처서가 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인데요. 말 자체가 재밌어서 아이가 호기심을 갖더라고요.

물론 그 다음은 24절기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과학적인 날씨 예측이 가능하지만 과거에는 그럴 수 없었으므로 태양 위치를 기준으로 각 계절마다 6개 씩 '절기'를 두어서 농사 짓는 데 활용했다고 쉬운 설명을 해주었죠. 이때 아이가 매년 같은 절기는 날짜가 똑같은 지를 물어봅니다. 질문에 대해 저는 일 년 365일을 24로 나누면 약 15가 나오는데 그래서 절기마다 약 15일 정도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설명해주며 하지만 정확히 15가 아니기 때문에 매년 날짜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대화는 곧 8월이 지나고 엄마가 좋아하는 여름이 진짜로 끝난다는 것으로 이어졌다가 문득 아이와 함께 읽었던 과학 인문학 책에서 본 내용이 생각나 아이에게 다시 상기시켜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근데 혹시 그거 기억나? 8월이 왜 31일 까지 있는지 말이야. 7월도 31일 인데 8월도 31일 까지 있는 이유..."
"아, 그거! 기억나지! 그 로마의 황제가 자기 달력 만든 거 아니었어?"

오래 전 읽은 내용이라 잊어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는데 대략 떠오르는 모양이었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저는 다시 한 번 설명해주면서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했죠.

"그래, 우리가 지금 쓰는 달력은 로마 시대 때 시작된 거잖아. 율리우스력이 그 시초인데 그때 홀수 달은 31일, 짝수 달은 30일로 규칙을 정했지. 그런데 율리우스의 후계자이자 로마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율리우스가 자기 이름을 따서 7월(July)을 만든 것처럼 자신의 달을 갖고 싶어했지. 그래서 8월을 자신의 달(August)로 정하면서 마찬가지로 31일로 만든 거야. 자기 달이 짧은 달이었던 게 싫었던 거지. 그런데 그러려면 하루를 어디선가 가져와야 하잖아. 그래서 2월에서 하루를 떼온 거였어. 왜냐하면 그 시절에는 2월이 한 해의 마지막 해였거든. 농사가 중요했기 때문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 있는 3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봤다고 해.  그 시기는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때거든. 그러니까 아우구스투스는 별 생각 없이 한 해의 마지막 달인 2월에서 하루를 빼서 자기 달에 붙였던 거야. 엄청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알고 보면 굉장히 비과학적이지?"

(**내용은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오후 지음)에서 읽었던 것입니다.)

이 날의 대화는 아이와 함께 읽었던 책을 기반으로 한 내용이 많았는데 그런 이유로 아이는 그 책을 다시 읽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눈 자체로도 흥미롭고 유익했지만 지적 호기심이 더 강해져 반복 독서에 대한 필요성으로 연결됐으니 대화가 가져온 효과가 얼마나 큰지는 두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처럼 대화가 가지는 힘은 그 크기와 영역을 측정할 수 없습니다. 날씨 이야기 하나로 아이는 계절이 주는 서정적 감상부터 자연의 변화와 이치, 과학과 철학, 역사까지 넘나들 수 있으니까요.

자, 8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가을의 문턱이라는 9월을 앞둔 오늘, 날씨와 계절 이야기로 아이의 감성을 채우고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즐거운 대화를 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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