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과정 도입? 토론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IB 과정 도입? 토론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과 경기교육청에서 IB프로그램 도입에 적극적인 가운데, 이미 시행 중인 대구, 제주 등 일부 교육청 뿐만 아니라 기타 다른 시,도 교육청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IB의 핵심은 토론식 논술 교육인데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은 만큼 전반적 도입을 통한 교육 혁신이 언제 이뤄질지는 모를 일이지만, 논의가 이뤄지는 것만으로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2028학년도 대입에 논서술형 수능이 도입될 것으로 보이는 것도 그 중 하납니다.

anotherthinking

토론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대안처럼 제시되던 방식 중 하나였죠. 주입식 교육, 점수를 매기고 그 성적으로 줄 세우는 교육, 입시 결과가 오로지 단 하나의 목표가 되는 교육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해내는 것, 토론 교육이 그것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본 겁니다.

그러나 토론 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아는 것과 실천의 여부는 전혀 다른 얘깁니다. 당장 눈앞에 닥친 공부와 시험, 입시와 진학이 훨씬 중요합니다. 공부도 그렇고 세상 모든 일이 이상과 현실은 다른 거니까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상을 추구하기엔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이 더 급합니다. 학교 수업에 학원 공부에 선행 학습에 각종 수행 평가까지, 어차피 과목으로 배우는 것도 아닌 토론은 당연히 뒤로 밀릴 수밖에요. 게다가 부모 세대부터 토론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경험이 없으니 아무리 중요하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다 한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일 뿐인 겁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괜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거죠.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현 상태로는 토론식 교육이 공교육 안으로 들어오는 게 부모 입장에선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학교도 가정도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죠. 말로만 '토론이 중요합니다' '토론식 교육으로 가야 합니다'라고 외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육 시스템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데 이 상태에서 토론만 들여온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토론식으로 배우는 공부는 또 어떻게 평가하나요, 누가 하나요. 객관적이라고 어느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결과에 이의제기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혼란만 가중되겠죠. 그렇다고 토론식으로 배우고 시험은 여전히 지금처럼 객관식으로 치르면 그건 또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래서 부모들은 교육계에서 토론식 교육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불편한 게 당연합니다. 그냥 지금처럼 과목별로 공부하고 정답이 딱 떨어지는 시험을 보고, 정직하게 점수를 받아 진학하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죠. 몇 해 전 독일 대학생을 인터뷰했을 때 그 친구가 토론식 수업과 에세이 방식의 시험에 대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한국에서 만일 모든 과목을 에세이로 시험을 본다면 다투다가 법정까지 가는 일이 많을 것 같다.”
IBO 웹사이트 화면 캡처.

이상향이던 토론 교육은 현실로 닥쳤습니다

불안과 걱정 속에 우리는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임이 분명한데도 교육계는 끊임없이 토론 교육의 본격 도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야기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미래형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토론식 교육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죠. 더구나 교육이란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바꾸자’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닌 만큼 긴 시간을 들여 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지금부터 서서히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교육계가 주목하고 있는 방식은 IB입니다.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비영리 교육재단인 IB본부(IBO)에서 개발‧운영하는 국제인증 학교 교육 프로그램인 IB(국제 바칼로레아, International Baccalaureate)는 1968년부터 운영되어 온 국제 공인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현재는 전 세계에 지역별 본부를 두고 운영되고 있을 정도인데요, IBO 홈페이지에 따르면 전 세계 150개 이상의 나라, 5000개 이상의 학교가 채택한 국제 공통 교육 과정입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IB 프로그램이 스위스에서 시작된 이유가 있습니다. 스위스에는 많은 국제 기구가 모여 있죠. 그리고 국제 기구 직원들은 그 특성 상 국제적으로 이동이 잦을 수밖에 없고요. 그러다 보니 자녀들의 교육이 일관성을 가질 필요가 제기됐고 그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 바로 IB 프로그램입니다. 이후 그 교육의 가치와 우수성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엘리트 교육을 한다는 사립 학교는 물론이고 일반 공교육 현장에도 많이 도입이 되었죠.

IB 프로그램은 연령별, 과정별 4가지 종류로 운영됩니다. 간단히 초등 과정의 PYP, 중학교 과정의 MYP, 고등과정인 DP, 그리고 DP 과정과 같은 연령대에 해당하지만 직업 과정인 CP가 있습니다. 이런 용어의 정의보다 더 중요한 건 당연히 교육 방식일 텐데요, IB 프로그램은 자기주도적 학습을 추구하는 교육 체제로 ‘토론형 논술 교육’을 그 핵심으로 합니다. 당연히 시험은 모두 논술, 서술형으로 보고 평가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이뤄집니다. 지금 우리가 하듯이 주입식으로 교육받고 객관식으로 시험보고 점수를 매기는 게 아니라,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쓰고 정리하는 등 고도의 사고력을 기반으로 한 방식으로 이뤄지죠. 이는 모든 과목에서 예외가 없습니다. 심지어 문제를 풀고 정답을 맞히는 게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수학에서도 말입니다. IB 교육을 현 교육 시스템의 대안으로 보고 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동안에는 토론 교육의 중요성이 말로만 설파돼 왔다면 이제는 그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주로 외국인학교나 국제학교에서만 채택하던 IB 프로그램을 도입한 공교육 현장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죠.

대표적인 예가 대구 교육청입니다. 초등학교 4개, 중학교 3개, 고등학교 1개 등 10개교가 IB월드스쿨 인증(IB본부가 IB프로그램을 완벽히 수행하는 학교로 인증한 학교)을 받았을 정도입니다. 놀라운 성과는 또 있습니다. IB본부와의 오랜 협의를 통해 한국어 지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IB의 기본 언어는 전통적으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였고 추가적으로 독일어와 일본어 버전이 출시됐는데 여기에 한국어 모국어가 채택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대구뿐만이 아니라 제주도 역시 교육청이 나서서 IB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서울교육청과 경기교육청도 IB프로그램 도입 의지를 드러내면서 학부모들의 관심이 폭발적입니다. 서울과 경기권의 인구 밀집도를 생각한다면 서울교육청과 경기교육청의 IB 도입은 실질적으로 전국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부산, 광주, 전남, 충남 교육청 등도 IB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지자체만의 일이 아니라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IB프로그램 도입을 장기적 목표로 여러 번 밝혀 왔는데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는 “학생 주도의 프로젝트 학습과 토론식 수업을 늘리고 모든 학생이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IB교육 방식에 대한 기존의 의견을 한 번 더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IB 도입을 두고 반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면 모두가 필요하다고 지적해왔던 교육 혁신이 빠르게 이뤄질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복잡합니다. 제가 이미 이 글의 앞에서 긴 문장들을 할애해가며 말했던 것처럼 여러 이유로 혹은 각자의 이유로 반대가 만만치 않은 것입니다.

일부 정치권과 교육계의 반대 근거 중 하나는 예산입니다. 교육 혁신에 들어가야 할 비용이 간단치 않은 겁니다. 그간 IB교육이 비싼 교육으로 인식됐던 건 영어 원어민 교사의 채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만, 한국어 지원이 가능해진 후에도 전체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데는 당연히 많은 비용 지출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IB교육을 추진하던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경기도의회가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기도 했죠. 정치권 논리는 현행 대입제도와 부합하지 않다는 겁니다. (서울대에서 IB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공식화되진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이유로 예산을 삭감한 겁니다.

또 다른 반대 논리는 IB 도입이 불러올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대한 우려입니다. 언제나 새로운 교육이 제시되면 그러했듯이 부모의 교육열, 소득에 따라 해당 사교육을 받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으로 나뉘어졌고, 결국 그것이 결과로 이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IB 프로그램 도입을 만류하는 측은 같은 맥락에서 결국 또다른 사교육을 부추기게 될 것을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국가 주도 차원의 교육 혁신이 쉽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과연 IB교육이 얼마나 빨리 얼마나 넓게 퍼져 나가게 될 지, 과연 정착이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아무리 좋은 방식이라 해도 사회적 합의 없이 진행됐을 때 의도와 달리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도 가늠할 수 없고요. 국가의 모든 운명이 결국은 교육과 관련될 정도로 중요한데 그처럼 절대적인 교육을 하루 아침에 바꾼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죠.

그러나, 우리는 모두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인정합니다. 다만 급작스러운 변화가 당장 나에게, 내 아이에게 끼칠 영향을 걱정하다 보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라는 이름으로 계속 미뤄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생각하는 힘은 사교육으로 길러지지 않습니다.

토론은 사교육으로 해결되는 영역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교육 혁신은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IB교육에 대해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고 관심을 갖고 있고 물꼬를 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상, 예상보다 시간은 더 걸릴지 몰라도 분명 교육의 흐름은 조금씩 바뀌어 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IB냐 IB가 아니냐는 어쩌면 중요한 문제가 아닌 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현재의 교육 체제를 벗어나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생각하고 성장해 나가는 진짜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많아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현재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입시를 치르는 2028학년도 대학입시에는 현행 방식이 아닌, 논서술형 수능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합의는 필요할 겁니다. 토론식 교육이 또 다른 줄 세우기 방식이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IB를 도입하면 교육의 빈빅인 부익부가 심화될 것이라는 논리의 바탕에는 당연히 사교육이 자리합니다. 즉, 토론이든 뭐든 그것이 새로운 평가의 지표일 뿐이라면 토론 사교육을 시키고 그걸 통해 높은 결과치를 내는 아이들만 유리해질 것이란 거죠.

그런데 토론은 근본적으로 사교육으로 해결이 안 되는 영역입니다. 토론 학원에서 수많은 토론 논제를 미리 연습해본다 한들 그게 과연 고도의 사고 훈련이 됐다 할 수 있을까요. ‘이런 논제엔 이런 찬성과 반대의 예시를’ 이라며 선행을 한다 해도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비판적 시각을 갖추게 될 수 있을까요? 생각하는 힘은 학원이, 사교육이 해줄 수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많이 읽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자기 생각과 의견을 말해보는 습관이 들어있어야만 진짜 토론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죠.

교육은 결국 토론식으로 바뀌어 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거기에 진정한 교육의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토론의 시대는 이미 도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 말이 주는 위압감 때문에 기가 눌려서 그렇지, 일상 속에서 이미 하고 있고 또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토론하는 힘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길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 완성형이 될 수도 없어요. 당장 필요할 때 시작한다고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것이 토론인지도 모르고 어릴 때부터 습관이자 태도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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