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질문> 어느 것이 (진짜) 사과일까?

<오늘의 질문> 어느 것이 (진짜) 사과일까?

토론은 배경 지식으로 무장하고 말발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경쟁 학습이 아닙니다. 생각의 깊이를 만드는 철학적 활동이자 창의적 사고의 시작이며 세계관을 넓히고 사회성을 기르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 시작은 질문입니다. 어떤 질문으로 '열린 생각'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오늘은 그 예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anotherthinking

최근에 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그 과정을 보면 저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하게 하는 자극을 줄 뿐,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표현함으로써 자신만의 깊이를 만들어갑니다. 한 회 한 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생각이 점점 자라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집 아이와 토론 활동을 하면서 엄마로서 내 아이의 내면이 어떻게 성장해가는지 직접 지켜보며 느끼는 감정과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잘 모르겠어요'거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던 아이들이 차츰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며 그동안 별 관심 없던 세상에 눈을 뜨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동을 느낍니다. 역시 아이들은 툭툭 건드려주기만 해도 스스로 성장해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갖추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엄마들이 나서서 아이들과 직접 토론해야 합니다"라며 '엄마표 토론'을 주장하는 제가 직접 가르치는 일에 나서게 된 이유는 '예시'의 의미가 큽니다. 제가 하는 과정들을 보며 그렇게 어렵지 않구나 하는 것을 알려드리고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더 있는데, 그것은 토론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의 부모님의 피드백을 통해 직접 들려드리겠습니다.

"아이와 나눠보지 못했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너무 좋아요. 저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또 찾아보면서 대화하게 되니 함께 배운다는 느낌이 들어요."

주로 아이들에게 숙제로 '부모님과 대화해보고 의견 들어오기'를 내주고 있는데, 성실하게 숙제를 함께 해주고 있는 부모님들도 아이와 함께 즐겁게 대화하며 유익한 성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야기하는 방식은 철저히 '호기심' 위주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토론 수업이 처음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애초 저는 모두의 머릿속에 있는 '스테레오 타입'의 찬반 토론은 '지양'하는 편입니다. 찬반토론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그 스킬 만을 가르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상대를 이기는 것부터 가르치는 경쟁 토론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비경쟁 토론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가치관을 확립하고 세계관을 넓히고 바른 시각을 갖는 아이들로 자라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수업을 시작할 때 본격 논제를 다루기 전에 늘 워밍업으로 '생각 열기'를 합니다.

오늘 갑자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핵심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엄마들을 망설이게 하고 주저하게 만드는 '토론'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가볍게 '생각을 열어가는' 질문이나 활동 만으로도 아이에게 필요한 토론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할 수도 있지만, 가능하다면 아이에게 시각적으로 자극을 주거나 흥미로운 무언가를 던져주는 방식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보통 특정 키워드를 말한 뒤 상상하게 하거나, 뉴스 제목만 보여주고 내용을 추측하게 하거나, 사진이나 삽화를 보여주고 배경을 추측하게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이들이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정답이 없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항상 토론을 '가치관을 만드는 활동'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이러한 질문의 힘 때문입니다. 토론을 통한 일종의 철학적 사고 활동인 것이죠. 그런 이유로 저는 토론과 철학 사이 어딘가에 '좋은 토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경쟁 토론이라 하더라도 상대를 공격해 궁지에 몰아넣거나 당황하게 만든 후 "이겼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더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자극을 주고 동시에 상대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훌륭한 태도를 갖출 때 비로소 진정한 토론의 궁극적 목표가 달성 되는 것입니다.


그럼 '정답이 없는' 질문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 수업에서 활용한 내용이기도 한데, 독자 여러분들도 잠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Q. 다음 중에서 어떤 것이 사과일까요? 여러 개 있다면 모두 골라도 좋아요.


어떤 분들은 '모두 다 사과'라고 선택했을 수도 있고, 어떤 분들은 '모두 사과가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각자의 이유로 어떤 것은 사과이고 어떤 것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고요.

모두 나름의 이유와 근거가 있을 테니 다 맞는 말입니다. 생각이 '다를' 뿐 '틀린' 건 아니니까요.

이제, 제가 아이들에게 하는 방식대로 '생각을 자극하는'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음, 그런데 3번은 '사과 나무' 아닌가? 1번도 '사과'이기도 하지만 '책'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은 눈빛이 달라집니다. '아,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며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고민 끝에 전혀 다르게 볼 여지가 없는 '순수한' 사과만 골라서 2번과 5번이라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저는 다시 묻습니다.

"그래? 그런데 너희들이 보고 있는 게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합니다. 그때 제가 아래의 사진을 보여줍니다.

윤병락 작가의 '가을 향기', 2022, 사진 출처_호리 아트스페이스 웹사이트

그렇습니다. 사실 2번은 화가의 극사실주의 사과 그림의 일부였습니다. 확대해서 안을 들여다 보면 사과 그 자체로 보이지만 전체를 보면 상자 안에 가득 채워진 사과를 그린 '그림'인 것이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위의 이미지 모두 다 사과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 하나 다 빼고 마지막으로 남은 5번 사과도 알고 보면 사과 모형의 '초'일 수도 있고요, 저 뒤에 흐릿하게 보이는 것들은 교묘하게 사과처럼 보이지만 사과가 아닌 것이 섞여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점이 없다 하더라도 5번은 진짜 사과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과를 촬영한 '사진' 아니고요?

생각을 비틀어보는 훈련, 다양한 방식으로 창의적인 사고를 하며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저는 사과 그림과 사진들만 가지고도 한참을 이야기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활용해볼 수 있는 것들은 집안에 넘치도록 있을 겁니다.

위와 같은 '열린 사고'의 재료를 착안해 낸 것은 전에 읽었던 철학 책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그 강은 같은 강이 아니고 우리도 같은 우리가 아니다"라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느냐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A라고만 알고 있던 것들은 A1이 되기도 하고 A2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아예 다른 B나 C가 되기도 하는 겁니다.

언뜻 생각하면 어려운 개념이지만 아이들은 이런 수업을 참 좋아합니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이유를 들어보면 그럴싸하니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입니다. 백미는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가 또 다른 깊이 있는 사고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선생님, 그렇지만 저게 귤이나 수박은 아니잖아요! 사과 맞는데요!"

맞습니다. 아이의 지적대로 그것들은 분명히 우리가 '사과'라고 부르는 본질적 요소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과임에 틀림없습니다. 애초에 '다음 중 사과는 어떤 것인가?'라는 뭉뚱그린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요. 이처럼 깊이 들어가면 끝이 없는 철학적 질문과 생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관점도 가능하구나',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친구는 나와 보는 시각이 다르구나' 하는 것만 깨달을 수 있어도 충분한 성과가 있습니다. 또 열린 사고를 통해 워밍업을 한 후 머릿속이 최대한 말랑말랑 해졌을 때 본격 논제로 들어가면 수업 효과 역시 더 좋다는 장점도 있고요.

오늘 당장 냉장고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한 손에 사과, 한 손에 사과 사진이나 그림을 들고 질문해 보세요.

"어떤 것이 사과일까?"

추가적 질문도 필요하겠죠.

"왜 그렇게 생각했어? 그러면 진짜 사과는 뭘까?"

자녀의 답변에 따라 다양하고 흥미로운 의견이 오고 갈 수 있을 겁니다. 이때 엄마는 아이의 대답을 긍정해주고 인정해주고 생각의 근거를 칭찬해주면서 의도적으로 조금 다른 의견을 말하는 방식으로 다른 '생각'을 자극하는 것도 좋습니다.
토론의 기본은 질문입니다. 평소 하던 대화에서 질문 방식을 살짝 바꾸어도 토론의 장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어쩌면 나중에 아이가 엄마를 모방해서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장면을 경험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은 재밌는 것은 항상 따라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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