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학습의 '습(習)'이 진짜! 토론 습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매일 집 앞 작은 공원을 산책하듯, 토론 습관은 그렇게 일상에 들여야 합니다. 오랜 습관으로 토론이 곧 가족 문화가 된 필자의 집에서는 생각을 나누고 싶은 이슈를 가족 단톡방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중학생이 된 아이와 일상 토론(대화)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도시는 큰 공원이 아니라 주변의 작은 공원들로 깨어난다."
가든디자이너이자 작가인 오경아 선생님이 어떤 칼럼에서 한 말입니다. 방송작가 출신인 오 선생님은 서른 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가드닝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떠났는데요, 유학 당시 유럽 도시 곳곳의 공원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있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해당 문장의 앞뒤 배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칼럼을 읽었던 당시, 독일 베를린에서 살던 경험을 떠올리며 속으로 '맞아 맞아'를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베를린은 도시 자체가 대규모 녹지 공간을 품고 있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동네 곳곳에 작은 공원들이 정말 많습니다. 어디에 살든 대부분 근처에 공원 하나 쯤은 있기 마련이라 사실상 '숲세권'의 의미가 없는데요, 그 작은 공원들이야말로 일상에 활력을 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었던 것 같아요.
유럽까지 갈 필요도 없죠. 현재 우리의 삶을 보더라도 멀리 있는 큰 공원은 어쩌다 마음 먹고 가는 곳일 뿐, 늘 함께 하는 건 집 주변의 작고 작은 공원들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걸어서 15분 거리에 큰 규모의 공원이 있고, 10분만 걸어가도 중간 규모는 되는 역사 공원도 있어요. 거처를 정할 때 그 공원들이 장점이 되었던 건 분명한데 실제로는 바로 집 앞에 있는 아주 작은 '소공원'이 가장 소중한 곳입니다. 늘 오가는 동선 안에 지극히 일상적 공간으로 자리할 때 숲은 공원은 진짜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거죠.
뜬금없이 공원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는 일상 속 소소한 대화와 토론으로 깨어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요즘 주변에 보면 아이들에게 토론 학습을 시키거나 시키고 싶어하는 부모님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IB(국제 바칼로레아) 프로그램의 도입 논의, 고교학점제의 전면 시행 등을 앞두고 막연히 필요하다고만 생각했던 토론 교육이 '필수'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론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확대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결국 사교육만 더 커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과 우려도 있습니다. 토론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부담감 때문에 일찌감치 '엄마표는 불가능하다'고 포기해버리고 사교육에 일임하는 것은 토론 교육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토론 교육은 단지 바뀌는 교육 시스템, 달라진 시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학습법을 바꾸는 차원이 아니라, 교육의 틀 자체를 바꾸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식을 배우고 암기하는 공부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교육이라야 하죠.
<엄마표 토론>에서도 제가 중요하게 강조했던 바이지만 토론 학습의 '습(習)'이 훨씬 더 중요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생각하는 힘, 생각 근육을 키우는 일은 '학(배울 학, 學)'으로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설령 학원에서 사교육에서 토론을 가르쳐준다 하더라도 '습관을 들이는 일'은 해줄 수 절대 해줄 수 없습니다.
토론을 습관화 하는 것, 즉 내재적인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많이 해봐야 합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큰 규모의 공원에 어쩌다 한번 혹은 가끔 방문하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집 앞에 있는 작은 공원은 밥 먹듯이 드나드는 것처럼 그렇게 일상 속에 매일 반복되는 생활 방식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물론 큰 공원이나 숲에서 얻는 경험과 교훈도 중요합니다. 작은 공원이 주지 못하는 것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그러나 아이의 삶을 채우고 행복하게 하고 정서를 바꾸는 환경은 마음 먹고 가야 하는 먼 거리의 큰 공원이 아니라, 하루 단 10분이라도 매일 경험할 수 있는 동네 작은 공원입니다.
그럼, 토론 습관은 어떻게 들여야 하냐고요?
역시 공원에 빗대어 설명이 가능한데요, 멀리 있는 큰 공원에 가려면 가는 교통편을 확인하고, 그곳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한 후 가능한 동선도 짜야 합니다. 즉, 크고 작은 계획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동네 공원을 갈 땐 그렇지 않죠. '우리 산책 갈까?' 하는 한마디로 충분하고, 그런 시간이 일상 속에서 반복되면 아예 '가자'는 말조차 필요하지 않습니다. 동네 공원에서 보내는 시간도 딱히 무엇을 할 지 미리 계획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날은 걷기만 하고, 어떤 날은 벤치에 앉아 이야기만 할 수도 있고, 공원에 마련된 그네를 타거나 운동 기구를 이용할 수도 있겠죠.
토론을 습관화 한다는 건 매일 동네 공원에 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수시로 드나들고, 자유롭게 누리면서 동네 공원이 삶 속에 온전한 루틴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처럼, 밥을 먹다가도 TV를 보다가도 소파에 앉아 편히 쉬다가도 화두를 던지고 생각을 묻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지속적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모르는 사이 매일 매일 일상 대화하듯 토론을 생활화 하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다만 신경 써야 할 것은 토론이 이뤄지기 위한 '질문'입니다. 단답형의 대답으로 끝나는 질문이 아니라, 아이에게 생각할 틈을 열어주는 '질문'을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죠. 그 매개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아이가 빠져있거나 흥미를 느끼는 분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소재, 재밌게 읽었던 책이나 애니메이션, 최근에 했던 이색 경험, 세상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특이하거나 감동적이거나 논쟁적인 뉴스 등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죠. 반드시 서로 찬성과 반대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을 주제여야 한다는 강박도 버리세요.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내면서 경청하고 배우고 조율하는 과정이 토론의 큰 장점이긴 하지만, 그 시작은 생각을 묻고 나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자연스러운 '시작'하는 자체가 어렵다면 약속된 패턴을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저녁 먹고 다같이 '공원 산책'이라는 일상 루틴을 만들듯이 특정 이슈 등에 대해 대화하는 가족 문화를 만드는 거죠. 일주일에 두 번은 반드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그때는 각자 대화해보고 싶은 화두 하나씩 갖고 모이자는 약속을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주말마다 중, 장거리의 드라이브나 외출 계획이 있다면 차 안에서 흥미로운 소재를 던지고 대화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좋을 테고요.
참고로 저희 집에서 하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아이가 어릴 때는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특별한 패턴을 만들거나 의식하지 않아도 수시로 "네 생각은 어때?"하고 묻고 대화하는 시간이 잦았는데요, 중학생이 되고 예전처럼 시간이 자유롭지 않더라고요. 짧게 나눌 수 있는 질문과 대화는 아침 등교길에 공유하기도 하지만, 그것마저도 시험이 있는 날이거나 많이 피곤한 날에는 충분한 의사소통이 어렵게 되었죠.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가족 단톡방 활용하기'입니다. 가족 구성원 누구나 '의견을 나눠보고 싶은 주제'를 단톡방에 공유한 뒤, 다같이 모이는 시간에 대화를 해보기로 한 건데요, 보통 뉴스를 토론 매개로 활용하는 저희 집은 각자 흥미롭게 읽은 뉴스나,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뉴스, 찬성과 반대가 격렬한 사회 문제, 새로운 발견이나 탐구에 관한 뉴스, 떠오르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까지 장르를 막론하고 이슈를 활발하게 공유하는 편입니다. 어떤 때는 의견을 나눠볼 소재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소화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요, 그럴 때는 각자 짧게 자기 의견이나 생각을 단톡방에 올리는 식으로 대화를 나누곤 하죠.
처음은 누구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습관만 잘 만들어 놓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저절로 굴러갑니다. 그냥 굴러가는 정도가 아니라 점점 대화에 살이 붙고 풍성해지는 마법도 일어나죠. 자, 오늘부터 시작하세요. 습관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내일부터 해야지'가 아니라 '오늘 당장'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