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그리고 '행복'에 대한 질문과 답이 만드는 따뜻한 관계

새해 그리고 '행복'에 대한 질문과 답이 만드는 따뜻한 관계

희망으로 가득한 새해를 시작하셨나요? 올해는 '어떤 시간'이 되길 바라시나요? 한 해를 열면서 우리가 늘 떠올리는 '행복'이란 단어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볼 수 기회와 자극의 순간을 나누고자 합니다.

anotherthinking

'2023년 올 한 해도 행복하게!'

새해 인사에 빠지지 않는 항목이 바로 건강과 행복입니다. 한 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목표를 세울 때도 궁극적인 지향점은 '행복'으로 귀결되고는 합니다.

그런데 '행복'은 뭘까요? 확실한 점 하나는 객관화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누구나 각자의 행복은 기준점이 다르고 또한 상대적이니까요. 그래도 누구나 '행복'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공통적인 감정 상태는 분명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평온한 것, 한 순간 터지고 마는 기쁨이라기 보다는 서서히 차오르는 정서적 충만감 또는 만족감 같은 것.

오늘 아침, 새해의 시작과 아주 잘 어울리는 뉴스 하나를 읽었습니다. “한국인, 서울대 꿈꾼다지만… 하버드는 행복과 관련 없었다”(동아일보)라는 제목의 기사인데, 사실 제목만 봤을 때는 치열한 경쟁, 학벌 사회 뭐 이런 이야기에 관한 것인 줄만 알았어요. 그래도 '서울대' '하버드' '행복'과 같은 단어의 나열이 호기심을 자극하긴 하더라고요.

뉴스를 다 읽고 난 뒤에는 제목에 물음표 몇 개쯤 달고 싶긴 했습니다만,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뉴스를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사실 앞의 몇 문장이 모든 내용을 말해줍니다.)

대공황이 덮친 1938년, 하버드대에서는 세계 최장기 연구가 시작됩니다. '미국 하버드대 재학생과 보스턴 빈민가 청년들 중 누가 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된 인생에 관한 연구죠.

Tiles with Be Happy written on them.
Photo by Nick Fewings / Unsplash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은 '좋은 인생의 비결'을 과학적으로 추적해보자는 취지로 당시 하버드대 2학년 재학생 268명을 모집합니다. 그 중엔 미국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도 포함돼 있었다고 하네요. 뿐만 아니라 연구팀은 사회, 경제적 대조군으로 보스턴 시내 저소득 가정 10대 후반 456명을 추가, 총 724명의 남성이 80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을 추적해왔죠. 설문조사, 신체 건강 측정, 심층 면접을 하고 과학의 발전과 함께 뇌 인지능력 검사, 유전자 연구까지 병행됐다고 해요. 지금은 그들의 자녀 1300여 명에 대한 연구까지 더해져 부모와의 관계 등 아동기가 중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중이고요.

1938년에 시작해 85년 간 이들의 삶을 추적하며 얻어낸 답은 “행복은 부-명예-학벌 아닌 ‘관계’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버드대 성인 발달 연구'의 네 번째 책임자인 로버트 월딩어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인터뷰에서 “우리의 방대한 과학적 연구의 메시지는 의외로 간단했다. 인생에 있어 오직 중요한 한 가지는 ‘사람들과의 따뜻하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라는 점이다”라고 말했는데요, '따뜻하고 건강한 관계'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그의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자신을 숨길 필요 없이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고 느끼는 관계다. 또 상대방에게 ‘너는 이런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녀에게 의사, 변호사 등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 아니다. 연구 결과 아동기 가족과의 관계는 70, 80대 행복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흥미로운 연구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뉴스를 참고하시면 좋겠고요, 저는 뉴스를 읽으면서 지난해 6월 우리집 아이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내 아이 인터뷰-행복에 관하여'의 내용을 다시 상기했습니다. 그때 아이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이란 감정, 행복의 기준, 행복이란 가치 등에 대해 말하며 '관계'를 여러 번 이야기했었거든요.

아이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행복과 '따뜻한 관계'의 '상관 관계'가 85년간 이어진 하버드대의 인생 연구와 결국 같은 맥락이란 얘기는, 우리에게 행복에 관한 '과학적 증명'이 엄청 새롭다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에 대한 또 한 번의 확신 같은 과정이란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Admiration | Instagram: @timmossholder
Photo by Tim Mossholder / Unsplash

당시 아이와 했던 인터뷰의 일부 내용을 공개하면 이렇습니다.

Q. 요즘 너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건 어떤 거야?

“성취감이야. 특히 어려운 일 앞에서 더 많은 노력을 통해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낄 때 행복하다고 느껴. 간단하게는 대단히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냈을 때도 그렇고, 평소 어렵게 느끼는 공부나 과목 시험에서 예전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 성취감을 느끼지.”

Q. 그랬구나. 들어보니까 예전에 네가 느끼던 행복과 지금 13세가 된 후의 행복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 (*1년 여 전인가 어떤 노교수의 인터뷰를 매개로 행복에 대해 논했을 때 아이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노는 게 행복’이라고 답했었다.)

“달라졌다고 하기보다는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 행복과 개인이 그때그때 느끼는 행복이란 감정의 차이인 거 같아.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노는 시간이 기본적으로는 가장 행복해.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성취감이 개인적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는 요소라는 거지.”

Q. 음, 그러니까 성장 단계에 따라 행복에도 변화가 있다는 건가?

“전에는 감정이 더 단순했던 것 같아. 행복이냐 슬프냐 등 단순하게 구분되는 면이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감정이 좀 구체화됐다고 할까. 행복이란 감정도 굉장히 다양해. 성취감도 행복이고 재밌다고 느낄 때의 행복도 있고, 특별히 슬프거나 불편한 감정이 없기 때문에 느끼는 행복도 있지. 심지어 나는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에도 행복한 지루함과 그렇지 않은 지루함이 있어. 할 일을 다 해놓고 쉴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느끼는 지루함은 행복한 지루함이고, 무지한 상태나 무력감을 느끼는 지루함은 행복하지 않은 지루함이야.”

Q. 생각보다 굉장히 섬세하구나. 그럼 너한테는 행복의 단계가 세분화돼 있는 건가?

“그 정도는 아니고 소리의 웨이브와 같은 형태인 것 같아. 0을 기준점으로 해서 소리의 폭이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웨이브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0 이상이면 행복이고 0 보다 아래이면 행복이 아닌 거지.”

Q. 그럼 기준점이 되는 ‘0’의 감정은 뭔데?

“기본 감정이지. 사람에게 무감정 상태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에게는 기본 감정이 행복이야.”

Q. 네 기준으로 보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행복하게 태어나는 건가? 성선설, 성악설처럼 성행설?

“태어날 때부터 행복한 건 아니야. 그 사람이 자란 환경,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행복이 기본 감정이 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지. 그런데 나는 어린이였을 때 행복했고 자라면서 점점 그 감정이 깊어지고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내 기본 감정은 행복이라고 느끼는 거야.”

Q. 환경, 주변 사람들에 의해 행복이란 감정이 좌우된다면 부모가 중요한 영향을 끼치겠네?

“가장 큰 영향 중 하나지.”

Q. 그럼 네가 보기에 엄마 아빠가 행복해 보였고 그게 너에게 행복이 기본 감정이 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 건가?

“행복해 보였어. 지금보다 더 많이 행복해 보였어. 그때는 항상 웃고 있었지. 지금은 노력이 좀 필요한 것 같아.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걸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어.”

Q. 엄마 아빠가 예전보다 덜 행복해 보여서 너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있니?

“꼭 그렇지는 않아. 나는 정신력이 강하고 이제는 나 스스로 감정 컨트롤이 가능하거든. 주변에서 내 감정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은 아니야. 하지만 옆에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나도 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 엄마 아빠가 좀 더 행복함을 격하게 표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행복은 학교나 사회에서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야. 자기 스스로 연습이 필요한 거지.”

Q. 너는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니?

“노력하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좋은 면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 원하는 무언가를 못하게 됐다고 생각해봐. 그럴 땐 오히려 다른 일에 도전해 볼 기회가 생겼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식이야.”

Q. 행복이란 객관적일까 주관적일까?

“주관적인 거 같아. 사람마다 각자 행복의 기준이 다르니까.”

Q. 그럼 객관적인 기준은 없나? 가령 많은 사람들은 성공, 돈 이런 가치를 객관적 행복의 기준으로 삼기도 하잖아.

“그럴 수도 있겠지. 성공해서 자기 여유 시간이 많아지는 거, 또는 돈이 많아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거, 그런 것도 행복이겠지. 하지만 그 자체로는 행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예를 들면 나도 돈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런데 돈이 많다는 자체로 행복한 게 아니라 돈을 이용해서 행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거야. 돈을 기부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던가 해보고 싶던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서 행복해지는 식이지. 돈 자체는 행복이 아니야. 오히려 돈이 많아서 불행해지는 경우도 있고.”

Q. 사람들은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라고 말해.

“나도 동의해. 다만 마음속에서 꺼내는 게 어려운 거지. 그걸 꺼낼 계기가 있어야 되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행복을 더 쉽게 꺼낼 수 있을 것 같아.”

Q. 부모와 아이의 행복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둘 다 행복할 방법을 찾아야 해. 부모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가 행복할 수 없어. 자기 자신부터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

Q. 아이의 미래를 만드는 데 있어 어릴 때의 행복은 어떤 작용을 할까?

“만일 어릴 때 행복을 모르고 스트레스만 가득하다면 막상 어른이 됐을 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 행복해지기 어렵고 그런 방법도 잘 모를 수 있어.”

Q. 행복을 수치화하긴 어렵겠지만 100이 최대치라고 했을 때 너는 지금 어느 정도야?

“나는 내 행복 지수가 꽤 높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평균 85 정도는 되는 것 같아. 그 부족한 15를 찾아가는 게 내 인생의 목표지.”

Q. 행복이 100이 되는 시점이 올까?

“아니, 100퍼센트 행복이라는 건 없어. 행복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면에서 100은 존재하지 않아. 어떤 진리라도 해도 100퍼센트 확실한 건 없는 것처럼 말이야. 엄청 행복해졌는데 더 행복해지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잖아.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100이 되기는 불가능하겠지. 만일 100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면 그건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야. 행복에 대한 목표가 사라져 버리는 거잖아. 어느 정도는 부족한 면을 남겨두는 게 계속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지.”

Q. 사람들은 성공해야 행복하다고 하는데 성공과 행복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스스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걸로 성공이라고 생각해. 그 행복은 각자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기 기준에 도달했다면 그게 곧 성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새해를 시작하는 지금, 아이가 느끼는 행복에 대해 우리가 올 한해 어떤 행복을 추구하며 살면 좋을까에 대해,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감정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저는 가끔 아이가 오래 전 했던 이야기의 기록이나 인터뷰 했던 기록들을 다시 꺼내보며 '아이의 성장'을 확인하기도 하고, 아이에게 보여주면서 "전에는 네가 이렇게 이야기 했었어"라며 기억을 되살려 주기도 합니다.

꼭 그런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아이가 아이 기준에서 아이 나이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들어보는 기회를 갖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일'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질문과 답의 순간이 '따뜻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장면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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