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질문> 교황은 왜 중요할까?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교황과 바티칸, 콘클라베 이야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 소식에 온 세계가 애도했습니다. 이후 지금은 누가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될 것인가에 이목이 쏠려 있습니다. 교황은 가톨릭 교회와 종교를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2018년 3월, 저는 바티칸 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해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취임한 지 5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바티칸 '입국'을 위해 높은 담장 아래에서 길게 줄을 서 기다렸던 기억부터, 시국 안의 공간 하나하나가 전해주던 깊은 울림까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특히 엄청난 인파 속에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올려다보며 목이 뻐근한 줄도 모르고 감탄사를 연발하던 순간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아쉽게도 교황님을 직접 알현하는 행운은 얻지 못했지만, 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스러운 장소가 주는 경건한 공기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단 몇 시간의 짧은 방문이 주는 전율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교황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최고 지도자입니다. '교황'이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으며, 그만큼 교황은 신자들에게 신앙의 아버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교황은 단지 종교적 지도자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특정 종교를 넘어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상징적 존재이며, 어떤 면에서는 정치인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88세를 일기로 선종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전 세계가 종교를 초월해 깊은 슬픔에 잠기고 애도를 표한 데에는 '교황'이라는 상징적 존재의 의미뿐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남긴 삶의 궤적이 주는 울림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 소식과 더불어, 교황의 역할, 바티칸 시국의 의미, 그리고 차기 교황 선출 과정 등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교황님의 장례식과 소박한 무덤
지난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거한 후 며칠 뒤인 4월 26일, 교황은 전 세계의 애도 속에 영면에 들었습니다. 장례 미사는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렸으며, 약 25만 명의 시민과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되었습니다. 운구 행렬에는 15만 명의 시민까지 더해 최소 40만 명이 교황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기도와 눈물로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교황의 유언에 따라 목관은 아무런 장식 없이 십자가 문양만 새겨졌고 그 위에 복음서가 놓였습니다. 평소 청빈을 강조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처럼 삼중관을 사용하지 않고, 아연으로 내부를 덧댄 목관 하나만 쓰도록 생전에 장례 예식을 개정했다고 해요. 또한 대부분의 교황들이 안장된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가 아닌, 로마 테르미니역 인근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지하에 안장해 달라는 뜻을 2022년 6월 29일 작성한 유언에 남겼다고 해요. 이곳은 교황이 즉위 직후부터 자주 찾았던 성당인데요, 이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은 1903년 로마 라테라노 대성전에 안치된 레오 13세 이후 122년 만에 바티칸이 아닌 장소에 안장되는 첫 교황이 되었습니다.
또한 교황님은 비문에 특별한 장식 없이 자신의 라틴어 이름인 '프란치스쿠스(Franciscus)'만 새겨지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실제로 공개된 교황의 무덤을 보면 이름만 적힌 비석과 생전 그가 가슴에 걸었던 철제 십자가 복제품이 무덤 위 벽에 걸려 있어 '무덤마저 그답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장례식 후에는 5월 4일까지 '노벤디알리'로 불리는 9일의 애도 기간 동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추모 기도회가 열릴 예정이며, 교황의 무덤은 4월 27일부터 일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어떤 분?
프란치스코 교황, 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Jorge Mario Bergoglio)는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7세 때 고해성사를 받던 중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체험하며 사제의 길을 결심했다고 해요.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해 1969년 사제가 되었으며, 이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 신학교 학장 등을 거쳤습니다. 이후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로 주교품을 받고, 1998년 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며, 2001년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되었어요.
2013년 3월 13일, 로마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린 콘클라베를 통해 교황에 선출된 그는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과 남반구 출신 교황이 되었습니다. 시리아 출신의 그레고리오 3세가 741년 선종한 이후 비유럽 출신의 로마 주교는 처음이었어요. 또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자인 베네딕토 16세가 거의 600년 만에 자발적으로 퇴위한 이후 선출된 교황으로, 2022년 베네딕토 16세가 선종할 때까지 10년 가까이 바티칸 안에 두 명의 교황이 공존했다는 사실은 교회 역사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 '두 교황'이 제작되기도 했어요.)
교황명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던 13세기의 성인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의 이름을 딴 것으로, 실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후 교도소 재소자들의 발을 씻는 미사를 집전하고, 난민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등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는 "나는 가난한 교회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원한다"고 신자들에게 도덕적 사명을 제시하기도 했어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통적인 교황 궁전이 아닌 바티칸의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거주하는 등 평생에 걸쳐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또 전쟁 반대와 환경 오염, 기후 위기,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엄을 강조하는 등 종교를 넘어 모든 인류를 위한 지도자로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은 어디?
로마의 중심, 높다란 담장 안에 자리 잡은 초소형 국가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State)은 작지만 큰 존재감을 가진 나라입니다.
하나의 도시이자 하나의 국가인 바티칸시국은 1929년 이탈리아와 교황청 사이에 체결된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독립 국가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이 조약에 따라 바티칸은 완전한 주권 국가로서 독립성을 보장받았고, 이탈리아는 바티칸의 영토와 외교적 중립을 인정하게 된다. 현재도 바티칸은 이탈리아 영토 안에 위치한 독립국가이며, 국경을 넘는 순간 로마에서 바티칸으로 ‘입국’하게 되는 셈이다.
면적은 0.44제곱킬로미터로 축구장 약 60개가 들어갈 정도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인 바티칸 안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박물관, 시스티나 성당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과 문화유산이 밀집해 있습니다.
바티칸시국의 상주 인구는 약 800~900명(2023년 기준)으로 대부분 교황청에서 근무하는 성직자, 수녀, 경비병 외교관들로 구성돼 있어요. 시민권은 혈통 등에 따라 세습되는 것이 아니며, 바티칸에서의 직무 수행 여부에 따라 부여되고 직무가 끝나면 소멸됩니다. 군대도 없고, 국제 분쟁에 개입하지 않으며 평화 중재자 역할을 수행
정치 체제는 절대 군주제에 가깝습니다. 교황이 독립국의 국가 원수로서 입법·사법·행정권은 물 외교 관계, 국가 정책, 재정 운영까지 책임집니다. 또한 교황청이 중립국이기 때문에 교황이 주권자인 바티칸시국 역시 중립국으로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합니다. 자체 군대는 없으며 바티칸의 국방은 이탈리아에 위임하고 있는데요, 다만 바티칸 시민권자이자 군인의 신분을 가지는 스위스 교황청 근위대가 교황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지만 이들은 교황청 소속으로 바티칸의 군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티칸의 재정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헌금과 바티칸 박물관의 입장료 수익, 출판 및 기념품 판매, 자산 투자 수익 등이 주요 수입원입니다. 특히 한 해 수백만 명이 방문하는 바티칸 박물관은 중요한 재정적 기반이 됩니다. 그러나 바티칸시국 내 자산을 관리하는 바티칸은행이 각종 부패 등에 휘말리며 재정 투명성 문제가 불거졌고, 프란치스코 교황 주도 아래 대대적 재정 개혁이 추진됐으며,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업적 중 하나로 꼽힙니다.

#교황 선출과 '추기경단 비밀회의' 콘클라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후 교황청은 5월 7일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Conclave·추기경단 비밀회의)를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규정에 따라 콘클라베는 교황이 선종한 뒤 15~20일 사이에 시작해야 합니다.
'콘클라베'라는 말은 라틴어로 '열쇠로 잠근 방'이라는 뜻인데요, 실제로 추기경단이 투표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밖으로 강제로 문을 잠가버립니다. 추기경들은 그 안에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새로운 교황 선출 기준인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무기한 투표를 반복해야 합니다. 콘클라베에는 만 80세 이하의 추기경들이 참가하는데 이번 콘클라베는 투표권을 가진 전 세계 135명의 추기경 중 건강 문제 등으로 불참하는 인원을 제외한 133명이 참여한다고 해요.
매 투표가 끝나면 결과를 확인한 투표 용지를 즉각 소각하게 됩니다. 이때 성당 굴뚝을 통해 피어오르는 소각 연기가 검은 색이면 교황 선출에 실패했다는 의미, 흰 연기가 피어오르면 새 교황이 선출됐다는 의미입니다. 콘클라베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흰 연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마침내 새 교황이 선출되고 교황이 교황직을 수락하면 즉시 교황이 되는데요, 곧이어 추기경이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서서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우리는 교황을 모셨습니다)"이라고 외쳐 새로운 교황의 즉위를 선포하게 됩니다.
추기경은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 다음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고위 성직자입니다. '추기경'이라는 말은 라틴어 '카르도(cardo)'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경첩'이나 '중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교회의 문을 여닫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해요. 추기경은 일반적으로 주교 중에서 교황이 임명하며, 전 세계 가톨릭 교회의 교구를 이끌며 교회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참여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세례명 안드레아), 유흥식 대전교구장(세례명 라자로)가 현직 추기경으로 재임 중이에요. 한국인 최초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에 오른 유흥식 추기경이 이번 콘클라베에 참여하며, 올해로 82세인 염수정 추기경은 만 80세 이하만 참여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참석하지 못합니다. 한편 유흥식 추기경은 일부 이탈리아 언론에 위해 12명의 교황 후보군에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가장 진보적인 교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콘클라베를 통해 어떤 교황이 선출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죠. 다시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교황이 선출되느냐 보수적인 교황이 선출되느냐에 따라 가톨릭 교회의 방향성이 결정될 테니까요. 뿐만 아니라 교황은 특정 종교만을 위한 사람이 아니며, 그의 말과 행동, 메시지 등이 전 세계적으로 끼치는 영향을 생각했을 때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 소식과 함께 교황은 왜 중요한 존재이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나아가 종교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대화하는 기회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새로 선출될 교황님은 어떤 사람이면 좋겠는지, 투표권이 있다면 어떤 면을 보고 투표 여부를 결정할 것인지 등에 대해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네요.
<오늘의 질문> 교황은 왜 중요할까?
- 커버이미지_영화 '콘클라베' 포토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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