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질문> 카이스트는 왜 실패 주간을 만들었을까?
카이스트에서 2주 동안 '실패주간' 행사를 열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엔 희망을 보았습니다. 실패를 기념하고 독려하는 문화와 환경, 늘 부러웠거든요.
개인적인 '고백'으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지난해 8월, "토론으로 대한민국 교육을 한번 바꿔보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내걸고 '어나더씽킹랩'을 오픈했습니다. 대학 졸업 직후부터 20년이 훌쩍 넘도록 항상 큰 조직에 몸을 담고 살았던 저는 비로소 내가 꿈꿔왔던 일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사실에 부풀었지만, 한 편으로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회사 밖은 추워도 너무 춥다'고 말하던, 일찌감치 조직으로부터 독립해 자신의 길을 간 선배들의 조언도 생각나면서 과연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잘 버텨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그때 저를 격려해준 가족과 친구들의 힘도 물론 보탬이 되긴 했지만, 결국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은 '일단 시작해야 뭐라도 된다', '잘 안 되더라도 분명 남는 게 있을 것'이라는 내 안의 목소리였습니다. 기대만큼 잘 굴러가지 않더라도, 성장하지 못하더라도, 이익은커녕 투자만 하다 끝나더라도 내가 노력하는 만큼 결과물을 남길 테고, 그만큼 나는 또 성장하게 될 것이란 믿음도 어디선가 생겨났고요.
그러나 용기백배하고 시작한 사이트 운영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초반에는 구독은커녕 방문자 수도 극히 미미했고, 늘어나는 속도도 한없이 더디기만 해서, 들이는 시간과 노력 대비 얻는 아웃풋은 사실상 거의 없는 상태가 오래 지속됐습니다. 일주일에 상당 시간을 아이디어 고민하고, 자료를 찾고, 컨텐츠를 만드는 데 들이는데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니 지친 마음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겁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내가 너무 이상적인 생각만 한 것일까, 오래 공부해서 좋은 교육 자료를 제공하는데 왜 알아주는 이가 이렇게 없는 것인가... 어느 날, 구독자 한 명만 늘어나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며 희망에 부풀고, 이후 한 동안 또 같은 상태가 유지되면 절망감에 싸이는 패턴이 오래 지속됐죠.
놀라운 건, 좌절의 순간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것 또한 저 자신이었다는 겁니다. '이제 겨우, 1년도 해보지 않았으면서 벌써 절망한다고?', '처음 0이었던 구독자를 생각해 봐. 천천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잖아.', '그 사이 스스로 엄청나게 공부하고 성장했으면, 그걸로도 이미 성과를 낸 거지.', '앞으로 교육은 토론에 주목할 수밖에 없을 거야. 언젠가는 더 많은 독자들이 진심을 알아줄 거야.', '좋은 결과를 내려면 결국 성실하고 꾸준하게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와 같은, 긍정을 위한 긍정이 아니라 놓치고 있었던 사소한 성취 혹은 성장에 더 집중하며 감사하게 만드는 포인트를 스스로 찾아낸 겁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1년 하고도 3개월이 흘렀는데요, 여전히 가끔은 생각만큼 늘지 않는 독자 수에 고민도 하고, 내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허탈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쌓여가는 콘텐츠와 그만큼 또 성장하고 깊은 내공을 만들어가고 있는 제 자신, 용기와 격려를 보내는 독자들, 토론 교육의 필요성에 절대 공감하며 성원해 주는 주변분들 덕분에 더 좋은 자료, 필요한 콘텐츠를 고민하고 제작해야겠다는 목표, 그리고 언젠가는 그 노력이 빛을 보게 될 것이란 확신과 기대를 놓지 않습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제가 지난 이력과 결이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실패하더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저는 어쩌면 실패하는 중일 수도 있고, 성공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이 주는 의미가 훨씬 크기 때문에 어떤 결과를 맞게 되든 그 첫 시작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있습니다. 아이비리그 출신의 재미교포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여러 글로벌 IT기업에서 프로그램 개발자와 관리자로 오래 일한 분인데요, 몇 년 전 한국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미국과 한국의 다른 기업 문화를 경험한 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젊은 사람들에게 실패할 용기와 자유를 주지 않는다는 점 같아요. 미국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젊었을 때 진짜 엄청나게 실패하고 또 실패해 본 사람들이거든요. 스타트업이 넘쳐나는 이유도 다 성공할 거라고 확신하고 하는 게 아니에요. 실패할 줄 알면서도 도전하고, 막상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또 창업하고 시도하죠. 그게 가능한 환경이라서 그래요. 실패해도 괜찮다는 생각, 실패하면 어때 하는 용기, 실패할 수도 있다는 자유가 있다는 게 한국과는 큰 문화적 차이죠. 한국은 한번 실패하면 기회를 주기는커녕 그냥 '실패자', '루저'가 되어버리니까 누구도 용기를 내기가 어렵죠."
듣다 보니 너무 정확한 지적이더라고요. 저를 비롯해 그 누구도 실패가 예견된 길은 가려고 하지 않죠. 그게 설령 혁신의 길이라 하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대단한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크게 실패하지 않을 '안정'을 훨씬 선호하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인 건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놀랍고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언론에서도 앞다퉈 다룰 정도로 신선한 바람이었는데요, 다름 아닌 '카이스트(KAIST) 실패주간'에 관한 소식이었습니다. 카이스트는 지난 10월 23일부터 11월 3일까지 ‘실패주간’을 지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열었는데요, 이번 행사를 기획한 건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였습니다. 카이스트에 그런 연구소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괴짜 교수'라 불리는 이광형 총장이 2021년 3월 부임한 뒤, 같은 해 6월 조직문화 혁신을 위해 만든 조직이 바로 '실패연구소'라고 해요. 이번 '실패주간'은 실패연구소가 실패를 주제로 처음 시도하는 행사이고요.
'실패주간' 동안 카이스트 대전 본원 캠퍼스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이라는 타이틀로 실패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 전시를 열었는가 하면, '실패학회: 망한 과제 자랑 대회'를 열어 학업을 비롯한 다양한 실패 경험담을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으로 발표하는 자리도 가졌다고 합니다. 이 '대회'는 대회 답게 상도 주어졌는데요, 인기상(청중 현장 투표 기준 최다 득표자), 마상(가장 마음 아픈 실패 경험 발표자), 떡상(가장 응원하고 싶은 발표자), 연구 대상(자신의 실패를 가장 흥미롭게 풀어낸 발표자) 등 수상 부문도 재치 넘치게 선정이 되었습니다.
수상자들의 실패 경험 면면도 다양했는데요, 과외로 번 돈을 주식으로 날린 실패담은 인기상을, 낡은 티코로 유라시아 횡단하려다 6중 추돌 사고를 당한 경험담은 떡상을, 부모님을 돕고자 숱한 도전과 좌절 끝에 전액장학금을 받고 KAIST에 합격한 필리핀 유학생의 실패담이 마상을, '이러다 암 걸리겠다'고 할 정도로 암 연구를 하다 만24세에 뇌혈관종 환자가 됐지만 더 열심히 연구해서 쓴 암 논문이 '한빛사(한국을 빛낸 사람들)'에도 선정됐다는 실패담은 연구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들의 실패 경험담은 각각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된 맥락이 있었습니다. "그런 실패도 경험해봤는데 앞으로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는, 실패를 겪고 일어선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를 장착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카이스트 실패주간'을 접하면서 저는 희망을 봤습니다. 이제 우리도 실패할 수 있는 자유, 실패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해가고 있는 것일까, 실패를 기념하고 독려할 수 있는 문화가 조금씩 생기는 것일까, 하는 희망 말입니다.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는 조성호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장은 한 언론에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혹시 아직 실패를 많이 안 해봤다면 그걸 더 걱정해야 한다”고 "젊었을 때 신나게 실패를 해보는 게 오히려 나중에 인생을 위한 엄청난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청년들에게, 젊은이들에게 '마음껏 실패 해보라'고 '그것이 힘'이라고 격려와 용기, 응원과 지지, 그리고 희망을 불어넣는 어른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면, 그래서 우리 사회가 실패한 사람을 '루저'로 보지 않고 '성공의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좀 더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이겨내고 성취하며 결국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와 함께, '카이스트 실패주간'에 관해 대화하던 중 큰 흥미를 보이는 아이에게 "우리도 한번 '실패 경험담'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하고 제안했습니다. 조만간 자리를 만들어 크고 작은 실패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요.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사소한 실패부터 위기라 느꼈던 실패까지. 우리 부부의 실패담은 그 자체로 아이에게 교훈이 될 테고, 아이의 실패담은 부모로서 아이를 한 번 더 격려하고 응원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동참해보면 어떨까요?
<오늘의 질문 : 카이스트는 왜 실패주간을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