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질문> 집안일은 누가 하는 것이 좋을까?
명절을 코앞에 두고 요즘 '전'이 뉴스에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차례상 간소화 얘기인데 핵심은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갈등입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많은 기혼 여성들에게 여전히 명절은 머리 무거운 시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시대는 달라졌는데 여전히 일은 여성의 몫인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한 번 쯤은 반드시 다뤄봐야 할 토론 주제인 집안 일 문제, 명절이라는 타이밍에 맞춰 제안해 봅니다. 이 질문을 '아빠들'이 먼저 나서 던져준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뉴스에서 '전'이 이슈입니다. 얼마 전 성균관(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차례상 간소화 방안을 내놓았는데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음식 가짓수에 관한 것입니다. 이번에 발표한 표준안에 따르면 간소화한 추석 차례상의 기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 김치, 과일, 술 등 6가지이고 여기에 육류, 생선, 떡 등을 추가해 9가지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전'에 관한 것입니다. 성균관 측은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는 문헌을 근거로 들면서 '전을 부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기름진 음식에 대한 기록은 사계 김장생 선생의 <사계전서> 제41권 의례문해에 나오는데, 밀과나 유병 등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했다고 성균관 측은 전했습니다. 또 그간 차례상을 바르게 차리는 예법처럼 여겨왔던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밤·배·감)'는 예법 관련 옛 문헌에는 없는 표현으로, 상을 차릴 때 음식을 편하게 놓으면 된다고 했고요.**)
이 발표 후에 관심은 온통 '전'에 쏠렸습니다. 뉴스 댓글에 보면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것인가"라는 식이 압도적이더군요.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요, 그 문헌이 갑자기 나타났거나 새롭게 해석되었을 리 없고, 차례상 혹은 제사상에 전을 올려온 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건만 갑자기 '전을 안 부쳐도 된다'고 말하면 모두가 '아 그렇구나, 이제 하지 말아야겠다'할 것도 아니지 않나요.
어떤 기사에 보니 성균관의 발표를 보고 <이번 추석에는 "우리 이젠 전 부치지 말자"라고 하는 시어머니가 늘어날 것 같다>라고 썼던데, 음 글쎄요. 반대로 "어머니, 뉴스 보셨어요? 이제 우리 전 부치지 말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며느리는 또 얼마나 될까요. 사실 성균관의 '표준안'에 따라 차례나 제사를 차리는 집이 얼마나 되겠어요. 각자 자신의 상황과 형편, 때론 '산 사람의 입맛'에 맞게 하고 있는 집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 역시 결혼 해 차례와 제사를 지낸 지 13년이 됐지만 시댁의 제사상이 '표준안'에 따른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전'이 이슈의 중심에 섰지만 성균관 측이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새로운 표준안을 발표한 배경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회견문 입장을 요약해서 살펴보면,
"유교는 오랜 세월 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현대화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옛 것만을 지나치게 생각하며 선구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유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명절만 되면 '명절증후군'과 '남녀 차별'이라는 용어가 난무했다. 명절 끝에는 '이혼율 증가'로 나타나는 현상이 유교 때문이라는 죄를 뒤집어써야 했다. 차례는 후손의 정성이 담긴 음식인데 고통 받거나 가족 사이 불화가 초래된다면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번 추석 차례상 표준안 발표가 가정 의례와 관련해 경제적 부담은 물론 남녀 갈등, 세대 갈등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차례를 지내는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렇습니다. '전'이나 '음식 가짓수'는 방법적인 것일 뿐 실은 명절 때마다 똑같이 갈등 상황이 반복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의 표명 혹은 성균관 측의 표현대로 '반성문' 성격을 띠는 발표라 하겠습니다. 성균관에서 '반성'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절이 누군가에게(특히 여성들에게) 고된 기간이고 그 근거에 유교적 사상이 깔려 있는 건 어느 정도 맞습니다. 지난 7월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가 13.6% 정도이니 여전히 차례가 명절의 '핵심'인 건 틀림 없는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꼭 차례상이 이유가 아니라도 갈등을 겪는 집들이 있습니다. 명절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인데요. 저의 친정만 하더라도 종교상 이유로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데도 명절만 되면 차례상보다 더한 음식들을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니 음식이 풍성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생각 때문인데요, 재밌는 건 가족들이 다 가까이에 살아서 수시로 만나고 보면서 산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부모님을 설득해봐도 변하는 게 없더라고요. 그건 그거고 명절은 명절이라는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당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고 딸, 며느리 시키지 않고 혼자서 감당하시니 토 달지 말라는 식인데 자식 입장에선 맘이 편할 수 있나요. 나이 든 부모님의 건강을 건강하면 종일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 맛을 느끼기는커녕 불편하기만 합니다.
명절이 빚어내는 불편한 풍경이 반드시 음식을 만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이유로 남녀와 세대의 갈등이 존재하고 분란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요즘은 명절을 '새롭게' 보내는 가정들도 제법 많아졌습니다. 주변에만 보더라도 한 주 먼저 가족들이 모여 명절 분위기를 내고 명절 연휴는 온전히 쉬거나 여행 등을 하며 즐기는 집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도 조상에게 지내는 차례를 건너 뛸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집들은 역시 일주일 먼저 차례를 지내거나 심지어 여행지에서 간단히 차례를 지내는 경우도 봤습니다. 일각에서는 '면피용'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분명 있을 테지만, 시대가 변화했고 그 변화한 시대에 맞춰 (물론 가족의 합의 하에) 형식과 절차가 변하는 것을 나쁘게 볼 일은 아닙니다. 남녀 차별을 떠나 세대 갈등을 떠나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한 명절이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요. 명절의 의미 자체가 원래 가족이 모여 감사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아닌가요. 즉 중요한 건 차례를 지내느냐 지내지 않느냐, 음식을 많이 만드느냐 만들지 않느냐가 아니라, 그래서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모두가 원하고 즐거운 방식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고백을 하자면 명절 때마다 차례상 준비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이 크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던 집안 분위기 속에 살다가 결혼과 함께 달라진 문화가 어색하기는 했어도 그렇게 고되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시어머니가 대부분 다 준비해주신 덕분도 있고, 시누이들의 성화로 남편이 명절에 일손을 많이 보탠 까닭도 있고,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간소화되는 측면도 힘 들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굉장히 자주 만나는 사이인데도 서로 자주 만나기를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가족들의 면면도 한 몫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저도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명절 연휴가 온전히 나의 휴일이 될 수 없는 게 안타깝다는 것, 모여서 노는 자체에 집중하고 음식 준비는 '사는 것'으로 대신하면 안될까 하는 생각, 경우에 따라 융통성 있게 참석과 불참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것 등 말입니다.
명절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정작 오늘 던지고 싶은 질문은 '집안일'에 관한 것입니다. 평소에도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지만, 타이밍 상 명절은 이 질문을 꺼내고 대화해보기에 최적입니다. 기왕이면 엄마와 아빠가 명절 준비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질문하는 것이 좋겠죠. 엄마가 집안일을 독박 쓰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집안 일은 누가 하는 것이 좋을까?"라고 묻는다면 아이는 생각이 좀 복잡해질 거예요. 평소에 늘 엄마가 하던 모습만 보아왔으니 자연스레 "엄마"라는 답이 튀어 나오다가도 엄마 눈치를 살피게 되겠죠. '아, 지금 엄마가 저 질문을 통해서 아빠에게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일까'라고 저의를 의심할 수도 있고요.
간단한 질문과 답으로 끝날 수 있는 질문일 것 같지만 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성 역할을 가르치고 사회적 가치관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실제로 저는 이 주제로 아이와 1시간 가량 토론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신문을 보는 아빠와 앞치마를 두른 엄마'로 이미지가 대표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꼭 '남녀 평등'이라는 의식적인 문제를 떠나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양보, 존중이 깔려 있는 질문과 토론이라는 점에서 아이의 바람직한 생각을 형성해주는 좋은 문제 의식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같은 상황을 두고 말하더라도 '아빠는 밖에서 돈을 버니까 집안 일은 엄마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집안 구성원 누구나 각자의 역할이 있는데, 지금은 아빠가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건 완전 다른 얘깁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다면 할 이야기는 더 많아지죠. 경제 활동도 함께 하고 집안 일도 당연히 함께 하는 식의 인식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어떤 일이 있어도 똑같이 반반씩'이라고 억지스럽게 설정하는 건 건강하지 않습니다.
물론 설문 등에 보면 맞벌이를 하는 가정도 가사 일이 대부분 여성의 몫인 경우가 많은데요, '기본적으로 집안 일은 여자의 몫이고 남자는 도와주는 것'이라는 인식을 지적해야 하는 것은 분명 맞습니다. 그러나 '같이 평등하게 해야 한다'는 전제에만 집중해서 서로의 다른 여건을 무시한 채 50대 50으로 역할을 나누고 '네 일, 내 일'을 칼 같이 구분하는 것도 아이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기 쉽습니다. 가족은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는 반면 서로 돕고 배려해야 하는 사랑과 존중을 기본으로 한 관계니까요.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 관계 안에서부터 잘 형성된 가치관은 나중에 아이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역할을 할 때에도 큰 힘을 발휘합니다.
오늘의 질문은 <집안일은 누가 하는 것이 좋을까>이지만, 다짜고짜 그 질문에 답을 하라며 아이를 당황케 하기 보다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생각을 이끌어보시길 권합니다.
1.우리 집, 우리 가족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로 스몰 토크를 시작합니다.
(예) "우리 집에서 집안 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누구지?")
2.집안일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해 대화하며 아이가 ‘집안일도 힘들고 중요한 것’이란 인식 갖도록 유도합니다.
3.‘집안일은 여자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에 대한 설명과 그 시대적 배경 등에 대해 공유합니다. '남성 전업주부'가 늘어나는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면 좋겠죠.
(시대 현황에 대해서는 다음의 뉴스를 참고하면 좋습니다.)
4.현대 사회에서 여자의 사회적 역할 확대를 주변의 예를 들며 대화하고 평등의 개념을 생각해 봅니다.
5.우리 집에서 엄마, 아빠, 아이 자신까지 평등한 역할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논의합니다.
명절이 코앞입니다. 가족이 모이든 모이지 않든, 명절 준비를 위해 많은 양의 집안일을 하든 안 하든 전통적인 명절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그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며 '오늘의 질문'을 통해 대화 꽃을 피워보면 좋지 않을까요.
모두 즐겁고 행복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질문> : 집안일은 누가 하는 것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