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질문> 과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이로운 것일까?

<오늘의 질문> 과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이로운 것일까?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한 후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가 더 가치 있는 지점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펜하이머의 고뇌 만으로 끝나지 않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과학과 인류의 문제 말입니다.

anotherthinking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 지도 모르는 선택을 해야 하는 천재 과학자의 핵개발 프로젝트.>


지난 8월 15일 개봉해 여전히 뜨거운 인기 몰이 중인 영화 '오펜하이머'를 소개하는 짧은 문장은 강렬하기만 합니다. 세계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름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의 전기를 다룬 이 영화는 천재 과학자의 일대기는 물론, 세계 역사를 바꾼 거대한 역사적 과학적 사건, 그리고 그 이면의 스토리와 고뇌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있어서 굳이 따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책을 통해 비교적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기에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미 감정이입이 시작되는 느낌입니다. 과학을 통해 전쟁을 끝내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념,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과학 기술(원자폭탄의 개발)이 반대로 세상을 멸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후회와 두려움 사이에서 '인간' 오펜하이머가 겪었을 복잡 다단한 감정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아쉽게도 영화는 15세 관람가 등급 판정을 받은 데다 많은 분들이 '15세가 보기에도 민망한 장면이 포함돼 있다'는 평을 하고 있어서 자녀와 동반 관람하기에 좋은 영화 한 편을 놓친 기분도 없지 않습니다만, 영화 관람을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를 계기로 우리가 생각하고 나누어보아야 할 질문들은 아주 선명합니다. 그건 바로 과학이 존재했던 이래로 꾸준히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과학과 인류의 관계', '과학의 양면성', '과학적 윤리' 등에 관한 것들입니다.

원자폭탄이 가진 어마무시한 파괴력이 대단히 상징적일 뿐이지, 사실 둘러보면 비슷한 예는 많습니다. 단적인 예로, 플라스틱의 개발로 인류는 더 값싸고 풍족한 삶을 살게 됐지만, 플라스틱이 야기하는 각종 환경 문제와 건강 문제는 인류에게 심각한 위험이 되고 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AI 관련 과학 기술들은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여는 놀라운 발전인 동시에 '인공지능 윤리'에 관한 다양한 고민과 문제를 제기하며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과학 철학'에 관심이 많은 탓에 아이와 토론할 이슈를 고를 때도 과학을 중심으로 선택할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부터 과학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닌데, 4차 산업 혁명을 밥 먹듯이 거론하는 현대 사회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맥락이 과학이다 보니 자연스레 과학을 매개로 한 질문과 고민으로 생각이 확장되었다고 할까요.

제가 아이에게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과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이로운 것일까?' 하는 겁니다. (이런 질문을 많이 주고 받은 탓인지 아이는 물리학자를 장래 희망에 추가했습니다. 아직 물리라는 과목을 학교에서 접해본 경험도 없는데 학습이나 공부가 아닌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로 받아들인 아이는 물리학이 세상에 꼭 필요한 학문이자 대단히 흥미롭고 가치 있는 연구라고 생각하더라고요.)  AI의 발전이든 유전자 편집 기술이든 3D 프린터의 대중화든 혁신이라 불리는 신소재의 발견이든 나아가 지구상에 벌어지는 모든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 중인 모든 과학 기술까지, 어떤 식으로든 인류의 필요에 의해 발견 혹은 발명되는 과학 기술이 과연 전적으로 인간에게 이롭게 작동하는지, 부작용이 있다면 무엇일지, 완벽하게 이롭지 않더라도 과학 기술은 당연히 진보하고 진화하는 방향이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습니다.

모든 철학이 그러하듯 당연히 답이 있을 리 없습니다. 과학기술을 두고 벌어지는 양 극단의 논리인 '과학기술 지상주의'(과학기술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심지어 과학기술로 인한 부작용까지 해결할 것이라 믿는 것) '과학기술 혐오주의'(과학기술은 비윤리적, 비인간적이며 합리적이지 않다는 비관적 주장)를 부추기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답은 없지만 반드시 고민해야만 하는, 끊임없이 논의되어야만 하는 문제들을 나누는 과정이 있을 때 과학의 진보는 모든 인류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과제이고요.

이미지_픽사베이

'본방 사수'를 철저히 할 정도로 애청하는 방송프로그램인 tvN '알쓸별잡'에 최근 '오펜하이머'를 제작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나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놀란 감독은 "나치가 핵무기를 만든다고 해서 우리도 똑같이 핵무기로 대응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감독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겠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라고 묻는 김상욱 박사님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선택권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도 아마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과학자들은 원자의 분열과 에너지 방출을 자연의 섭리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발명이라기 보다는 활용할 수 있는 자연 법칙에 가까웠던 거죠. 자신들이 아니라 해도 다른 누구라도 할 것이다, 믿었고 또 그들 스스로와 미국 정부의 관리 능력을 믿었을 겁니다. 그 믿음이 잘못된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요.
간단한 답을 원하는 누군가 있다면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확한 건 과학자들은 핵무기 사용 결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입장이었단 겁니다. 이 영화는 그들을 판단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이 당시 최선의 선택을 했음을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이 옳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논의될 복잡한 문제죠."

누군가는 이미 흘러간 과거의 일, 이미 결과 값이 나온 과학 기술에 대해 고민이나 논의가 불필요하다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런 가치 있는 질문과 생각들이 모일 때 과학은 단지 하나의 혁신적 '기술'로 끝나지 않고 인류와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펜하이머'라는 영화가 핵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턴 프로젝트' 자체나 전쟁을 다루는 것이 아닌 사람을 그 중심에 내세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과학이라는 것이 가장 인간 기본적인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생각도 들고요.

끝으로, 아이에게 "네가 오펜하이머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라고 물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도 핵개발에 참여했을 것 같아. 그때는 나치를 막는 것만이 세상을 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을 시기니까. 솔직히 그때 핵폭탄 개발에 실패했고 만약 독일이 먼저 핵폭탄을 만들었다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 같아. 독일이 핵폭탄을 못 만들었다 해도 2차 세계대전이 훨씬 더 오래돼서 어떻게 끝났을지 모르는 일이잖아. 모든 과학 기술에는 빛과 어둠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 처음 개발 당시의 목표가 빛이었는지 어둠이었는지, 그것도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

과학 기술에 대한 다소 철학적 질문을 던질 때마다 아이는 "과학 기술의 발전은 막을 수도 막아지지도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는데요, 얼마 전 어떤 계기로 작성하게 된 'AI 시대와 인류'에 대해 쓴 에세이를 보니 마지막에 '인간과 AI의 건강한 공존'이라는 표현을 썼더라고요.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우리가 과학과 건강한 방식으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논의하면서 나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의 질문> 과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이로운 것일까?
💡
질문이 다소 어려워 보이지만 실은 어린 아이들과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질문과 대화입니다. 전작인 <엄마표 토론>에 예시로 제시했던 것처럼 '뽀로로' 만화 영화에 등장하는 '발명가 에디가 만든 인공 태양이 눈을 녹이는 장면'만 가지고도 충분히 '과학 철학'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1 이달에 읽은
무료 콘텐츠의 수

이달의 무료 콘텐츠를 모두 읽으셨네요.

유료 구독하시면 갯수 제한 없이 마음껏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