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질문> 영국 왕을 군주로 섬기는 나라들, 21세기에 왕은 왜 필요할까?

<오늘의 질문> 영국 왕을 군주로 섬기는 나라들, 21세기에 왕은 왜 필요할까?

지난해 왕위를 승계한 영국 찰스 3세의 대관식이 열렸습니다. 찰스 3세는 이로써 영국을 포함한 16개국의 새로운 군주가 되었는데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왕은 도대체 왜 필요한가,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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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현지 시간으로 지난 5월 6일 오전 11시,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됐습니다. 지난해 9월 모친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의 나이로 서거한 직후 왕위를 승계한 찰스 3세는 8개월 간의 준비를 마친 뒤 드디어 왕관을 쓰게 됐죠. 그의 나이 올해 74세. 엘리자베스 2세의 장남으로 태어난 찰스 3세는 출생부터 왕위 승계 서열 1위로 줄곧 주목 받는 삶을 살다 드디어 왕세자 타이틀에서 영국 왕이 되었습니다.

이번 대관식은 1952년 왕위를 승계한 후 이듬해 1953년에 치러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이후 70년 만에 열린 것으로 영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1066년 윌리엄1세의 대관식을 시작으로 찰스 3세는 웨스트민스트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른 40번째 왕이 되었는데요, 성 에드워드라 불리는 무게 2kg 상당의 왕관을 쓰고 대관 의식을 치르며 머리에 성스러운 기름을 바르는 성유 의식 등으로 새 국왕의 탄생을 선포했습니다. 이로써 찰스 3세는 영국을 포함한 16개 영연방 국가의 군주가 되었으며, 이날 대관식에서 찰스 3세는 "섬김 받지 않고 섬길 것"이라고 다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5월 6일 치러진 찰스 3세의 대관식 장면. BBC 유튜브 영상 화면 캡처. 

영국은 물론 전 세계가 찰스 3세의 대관식을 지켜본 이날, 그러나 영국 본토를 비롯해 새로운 군주의 탄생를 맞게 된 일부 연영방 국가에서는 식민 지배 유산인 군주제와 작별하자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기도 했습니다. 대관식 당일, 영국 런던 시내에서는 군주제 반대 단체인 '리퍼블릭' 회원을 비롯한 시민 2000여 명이 "나의 왕이 아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에 나섰고,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 영국 내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특히 극심한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이때에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왕실을 유지할 필요가 있냐는 목소리도 큽니다.

호주, 캐나다, 자메이카, 바하마 등 영연방 12개 국가 원주민 지도자들은 대관식 전날 찰스 3세에게 서한을 보내 식민 지배에 대한 공식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기도 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군주제 자체에 대한 인식도 약해지고 있습니다. 영국 젊은층에서는 특히 더 군주제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가 지난 4월 조사한 결과, 영국 내 18~24세 응답자 중 군주제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3분의 1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CNN 조사에서는 같은 나이대 응답자의 55%가 왕실이 좋은 모델이 아니라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영국 본토만의 일은 아닙니다. 지난 4월 캐나다의 여론조사 업체인 앵거스리드연구소의 조사 결과 응답자 중 무려 60%가 찰스 3세를 국왕으로 인정하는 데 반대한다고 답했고, 군주제 자체에 대한 반대도 52%에 달했다고 하네요.

영연방국인 호주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호주에서는 이미 군주제 폐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일각에서는 호주가 조만간 공화국을 선포하고 군주제를 폐지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큽니다. 대표적으로 엘리자베스 2세 전 여왕의 초상이 그려진 5호주달러 지폐의 변화인데요, 호주 중앙은행은 지난 2월 이 지폐의 디자인을 원주민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하는 것으로 변경한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이들 나라 외 다른 영연방 국가에서도 영국 왕실 이탈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기사 참고.)

70년 만의 새로운 영국 왕의 탄생을 지켜보는 이때,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21세기에 왕이 왜 필요한가"하고 말이죠.

영국 왕실의 공식 왕궁 역할을 해오고 있는 런던의 버킹엄 궁전. 픽사베이

이와 같은 반발은 어쩌면 영국 국왕이 갖는 위치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영국 왕은 영국을 포함한 무려 16개국의 왕으로, 그저 한 나라의 왕위 승계로 그치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영연방 국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영연방은 영국 본국과 구 대영제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들로 구성된 자유로운 연방체로, 52개국이 영연방에 포함돼 있습니다. 영연방 국가들은 대부분 과거에는 영국 영토였지만 지금은 독립국이며, 영국 왕은 영연방으로 수장으로 인정되나 각 국가는 자치권을 갖습니다. 즉 영연방은 국제법적인 기구가 아니라 보다 자유로운 형태의 국제기구 성격을 띠는 것이죠.

한데 영연방 국가는 52개국인데 왜 16개국만 영국 왕을 군주로 인정하는 걸까요? 영국 왕이 군주인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헌법상 국가 형태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즉, 군주(왕)를 국가 원수로 인정하는 영연방 국가는 '영연방 왕국'이고, 군주를 국가 원수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영연방 공화국'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다시 군주제와 공화제의 개념 차이가 나오는데요, 군주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공화제와 달리 군주(왕)라는 1인이 최고 권력을 갖는 정치 체제를 말하죠. 그러나 오늘날에는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군주제를 택한 나라들도 전통적인 개념의 군주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극히 드뭅니다. 다만 군주는 국가의 상징이자 일반 국민과 신분이 다른 존재의 개념이죠.

영연방 국가가 군주를 국가 원수로 삼을지 말지는 일반적으로 선택적 개념인데요, 이러한 선택은 해당 국가의 역사, 문화, 정치적 선호가 반영돼 결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52개 영연방 국가 중 찰스 3세를 국가 원수로 섬기는 국가는 영국을 물론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를 비롯해 자메이카,  앤티가 바부다, 벨리즈, 바하마, 솔로몬 제도 등 16개국이며, 나머지 나라들은 공화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영연방 공화국에는 대표적으로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싱가포르  등이 있는데요, 이들 나라의 국가 원수는 일반적으로 국민에 의해 선출되거나 입법부에서 임명된 대통령입니다.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영연방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도 있고, 식민지가 아니었지만 영연방에 가입한 나라도 있습니다. 홍콩, 미얀마, 소말리아,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가 전자에 해당되고, 포루트갈의 식민지였던 모잠비크와 벨기에 식민지였던 르완다가 후자에 해당합니다.

그런가 하면 영연방에 가입했다가 탈퇴한 국가도 있는데요, 아일랜드, 짐바브웨, 몰디브 등 3개 국가입니다. 대표적으로 아일랜드는 1949년 영연방에서 탈퇴한 후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독립했죠. 하지만 여전히 영연방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탈퇴했다가 재가입한 사례입니다. 파키스탄은 1999년 정치 쿠데타로 인한 정권 선언으로 회원자격을 박탈 당했으나 2004년 재가입됐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61년 영연방을 탈퇴했다가 1994년 재가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찰스 3세의 대관식이 치러진 웨스트민스터 사원 내부 장면, BBC 유튜브 영상 화면 캡처.

그런데 말이죠, 궁금해집니다. 각자 고유한 헌법과 정치 체계를 가진 독립국임에도 영연방이라는 체계를 유지하는 이유가 뭘까요? 게다가 대다수의 국가가 영국 식민지였는데, 어떻게든 영국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게 정상 아닐까요? 강제성도 없는 자발적 선택이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여기에는 국가의 이해관계가 작용합니다. 영연방 국가들은 각자 체계임에도 다른 회원국들과 공통의 유산과 가치, 목표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죠.  즉, 영연방 소속 국가의 자격을 유지함으로써 다른 회원국과의 정치, 경제, 문화 협력, 기술 지원 및 개발 프로그램 이용, 국제 무대에서 공동의 이익과 가치를 증진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영연방 국가들은 개별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넘어 더 크고 넓은 국가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갖게 됨으로써 얻는 이익이 적지 않기 때문에 영국 왕을 국가 수반으로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회원국 자격은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영연방 자체가 아니라 그 중에서도 군주제를 택해 영국 왕을 국가 원수로 둔 나라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왕이라는 존재와 역할을 둘러싼 논란입니다. 군주제가 갖는 전통과 상징성도 중시되는가 하면 반대쪽에선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군주는 왜 필요하며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군주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국가 정체성의 상징은 물론, 국가의 통합과 사회 결속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또 정치적 결정권은 없지만 정치적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하죠.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군주제의 탄생 자체가 위계적이고 불평등하며, 왕이란 존재는 세습된 사회 특권층의 상징적 존재로서 그 자체로 타파해야 할 낡은 규범이라고 말합니다.

왕은 역사 속의 인물 정도로 생각할 아이들에게 찰스 3세의 대관식 소식, 그리고 그로 인해 새로운 왕을 군주이자 국가 원수로 두게 된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의 이야기는 굉장히 새롭고 신기한 얘기로 들릴 수 있을 겁니다. 오랜 전통의 상징으로 또 고유의 역할을 기대하며 21세기 새로운 왕의 탄생에 큰 의미를 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왕이란 존재는 결별의 대상일까요. 나아가 현대 사회에서 왕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 게 바람직할까요? 사람들은 왕에게 무엇을 기대할까요?

어쨌든 세계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역사의 페이지가 열린 이 시점에, 아이들과 흥미로운 질문과 대화를 나누며 지적 즐거움을 누려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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