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질문> 선물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의 질문> 선물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나요? 아이들은 선물을 받고 행복해 했나요? 연말연시까지 이어져 선물을 주고 받는 일이 많은 때입니다. 이럴 때 아이와 '선물의 가치'에 대해서 대화해본다면 선물을 준비할 때도 받을 때도 좀 더 남다른 마음이 되지 않을까요.

anotherthinking

2년 전, 아이가 4학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을 때 우리 부부는 산타의 존재를 커밍아웃했습니다.  

자꾸만 친구들이 '산타는 없다'고 '부모님이 산타 대신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며 끊임없이 의혹을 품던 아이를 보며 '드디어 말해줄 때가 왔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남편과 저는 각자 긴 사연의 편지를 쓰고 산타는 공식적으론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하고 또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선물을 주는 건 엄마 아빠가 맞다'라는 팩트는 알려주되 동심은 지켜주고 싶은 애매모호한 방식을 취했죠. 그때 아이는 편지를 읽으며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차라리 알려주지 말지 그랬냐'고도 하면서 산타가 없다는 걸 아무도 증명할 수 없으니 산타는 있을 수도 있고, 자신은 산타가 있다는 걸 앞으로도 계속 믿을 것이라며 보는 우리 맘을 짠하게 했었죠.

나중에 남편하고 둘이서 '계속 매직으로 남겨둘 걸 괜히 알려줬나?' 하며 살짝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 다음 해부터 훨~씬 편해진 게 사실이었습니다. 항상 '산타가 어떻게 아이의 마음을 그렇게 딱! 알고 주는지 모르는 기막힌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와 놀랍다'하는 연기력까지 요구되던 시절이 지나고 이제 대놓고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고 티를 내면서 선물을 준비해도 됐으니까요.

그리고 한 해가 더 지난 올해 크리스마스, 급기야 크리스마스 선물을 두고 아이와 '이견'이 발생하는 바람에 뒤늦게 부랴부랴 선물 마련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는 정상가 보다 무려 60%나 할인된 가격에 판매 중이라는 이유를 들며 'FIFA23 온라인 게임'을 사고 싶어했고, 제가 망설이는 사이 남편이 흔쾌히 'OK' 하는 바람에 결국 결제를 해주었죠. 이 과정에서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그걸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했고 아이는 아니었던 거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 아이와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가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트리 앞에 놓인 산타의 '선물'을 여전히 기대하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사줬단 생각에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던 저는 너무 당황했지만 '내일 아침에 선물은 없다'라는 고백을 하지 못한 채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나:FIFA23이 크리스마스 선물 아니었어?
아들:아니? 그건 아빠가 사준 거잖아!
나:그러니까, 산타 대신에 아빠가 선물을 '사준' 거지. 너도 이제 산타 대신에 엄마 아빠가 선물을 준다는 건 알고 있잖아.
아들:엄마 아빠가 산타를 '대신해서' 선물을 주는 거라고 했잖아. 산타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잖아.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날 아침을 얼마나 기다리는데! 선물을 풀어볼 때 행복이 얼마나 큰데!
나:이미 받고 싶은 걸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꼭 그날 선물을 풀어봐야 하는 거야?
아들:응! 크리스마스 선물은 기다리는 것부터가 행복한 거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선물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크기만 보고 뭐가 들어 있을까 상상해보고 포장지를 뜯으면서 확인하는 과정이 다 선물이지. 내가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건 그런 설렘 때문이기도 해. 그럼 나 내일 아침에 선물 없는 거야?
나:(당황하며) 아니, 그...그런 건 아니야. 선물은...있을 거야. 있을 건데, 예전처럼 네가 엄청 갖고 싶었던 거나 바라던 건 아닐 수도 있을 거야.
아들:난 괜찮아. 나는 선물 자체가 주는 행복이 좋아.

남편에게 SOS를 치고 서둘러 소소한 선물 두 개를 준비한 뒤 다시 아들과의 대화를 곱씹어 보았어요.

저는 아이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게 갖고 싶었던 것, 원하던 것을 드디어 얻게 되기 때문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는데 아이는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산타가 무슨 선물을 줬을까, 선물이 있긴 할까, 새벽같이(보통 크리스마스날은 새벽같이 일어나죠) 일어나 확인하고 저 안에 무엇이 있을까 한껏 상상하고, 조심스레 포장지를 열면서 내용물을 확인하는 그 모든 과정이 아이에겐 대단히 큰 기쁨이고 행복이었던 겁니다.

그렇죠. 선물의 가치란 그런 건데 여태 저는 어른의 관점(다소 물질적인)에서만 생각하고 아이의 그 순수한 마음을 몰라준 것 같아 너무 미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우리가 항상 '선물 안에 담긴 주는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용물'에 집착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고요.  

Photo by Joshua Lam / Unsplash

예전에 읽었던 '선물의 가치'에 대한 글도 생각났습니다.  

예일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였던 조엘 왈드포겔이 1993년 '크리스마스의 후생손실'(The deadweight loss of Christmas)이란 논문을 발표했다고 해요. 학생들과 크리스마스 선물에 얼마까지 돈을 낼 용의가 있는지에 대해 대화한 것을 바탕으로 했죠. 학생들과의 대화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석을 거친 후 왈드포겔은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 약 10%에서 25퍼센트 가량의 '가치 파괴'가 발생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즉, 선물을 받은 사람은 선물을 준 사람이 쓴 돈보다 낮은 가치로 선물의 가치를 받아들인다는 거죠. 그래서 결국 '후생 손실'이 생긴다는 거고요. 2009년에 왈드포겔은 이런 내용을 담아 <스크루지믹스>라는 책을 썼는데 부제가 '왜 명절 선물을 사서는 안 되는가'였다고 해요. (오피니언 뉴스 참조_선물의 역설)

이른바 '선물의 역설'인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 받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흔히 쓰는 그 표현처럼 '마음과 정성' 때문이겠죠. 5만 원짜리 선물을 4만 원의 가치로 인식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준비한 사람의 따뜻한 마음은 가격으로 매길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경제학적으로만 보면 '후생손실'이 생길지 몰라도 선물을 받을 때의 기쁨, 포장지를 열 때의 행복, 실물을 확인한 후의 감사까지 생각한다면 도저히 가격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이죠.

실제로 왈드포겔 역시 부모와 애인 등이 준 선물은 교환되거나 반품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감정이 섞이지 않은 무심하게 받은 선물은 교환 비율이 훨씬 높다는 아주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고도 합니다.

우리집 아이에게도 산타가 주는 선물, 혹은 엄마 아빠가 산타를 '대신해서' 주는 선물은 가격과 가치로만 따질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행복 그 자체였던 거겠죠. 그것이 무엇이든 말입니다.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선물 이벤트가 지난 다음이겠죠? 여전히 산타의 선물로 알고 있는 아이도, 산타가 아닌 엄마 아빠가 주는 선물로 알고 있는 아이들도 자신들이 생각하는 '선물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응용 버전도 있겠죠? '비싼 선물이라고 다 좋은 걸까?' '선물 가격과 선물의 가치는 비례할까?' '내가 주고 싶은 선물이 좋을까, 받고 싶어하는 선물이 더 좋을까?' '선물에 마음을 담는다는 건 어떤 뜻일까?' 등등 말입니다.

<오늘의 질문> : 선물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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