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성장 기록을 위해, 내 아이를 인터뷰하는 엄마입니다

내면 성장 기록을 위해, 내 아이를 인터뷰하는 엄마입니다

저는 아이를 인터뷰하는 엄마입니다. 몇 달 간격을 두고 아이를 주기적으로 인터뷰하며 '내 아이 인터뷰 시리즈'라는 타이틀로 기록도 남기고 있습니다. 아이를 인터뷰하게 된 건 내 아이의 온전한 내면 성장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거 아세요? 토론도 인터뷰도 결국은 대화라는 것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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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해서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내면에 관해서요. 떠오르는 생각, 느낌, 기분 이런 것들이 날아가 버리거나 흩어지기 전에 늘 기록해두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체계적이진 않습니다. 책을 볼 때 직접 책에 글을 적거나 메모지를 붙이기도 하고, 두서 없이 적어두는 용도의 노트, 스마트폰의 기록장을 이용할 때도 많습니다. 글 쓰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본격적으로 써서 남기거나 발행은 안 하고 저장만 해두기도 하고요.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아이에 관해서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의 내면 성장에 관해서는 보다 체계적으로 기록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는 티가 나지 않을 뿐 매 순간 성장하고 있고, 기록해두지 않으면 그저 '아 그때 그랬었지' 정도로만 희미하게 남을 뿐이니까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저도 여느 엄마들처럼 사진을 수백장씩 찍고 휴대폰 저장 용량이 넘치도록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뒤집기라도 하는 날에는 사진이며 영상이며 아주 난리가 나죠. 나중에는 너무 쌓이기만 하다 보니 정리하는 데도 힘이 들더라고요.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부터 아이의 내면 성장이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 손을 잡고 학교를 데려다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누는 대화에서 '아!' 하는 외 마디 탄성이 나올 때가 많았죠. 아마 다들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아이 키가 자라고 몸무게가 늘어나면서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부쩍 자란 아이를 보는 순간의 기쁨도 그렇지만 내면의 성장을 깨달을 때 느껴지는 희열 말입니다. 아이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감정의 변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내적 성장이 감지될 때면 얼마나 벅차오르던지요.

그래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찍는 사진으로, 동영상으로는 내면을 담아낼 길이 없었거든요. 성장 기록은 한 개인의 역사일진대 우리가 갖고 있는 건 외적 성장에 치우쳐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그렇지만 외적인 성장 기록 만으론 반쪽짜리 역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사진이든, 신체검사 결과표이든 바로바로 데이터와 자료를 통해 보여지는 정확한 기록과 달리 내적 성장은 기록을 남기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더 가치가 있을 지 모릅니다.

그때부터 <관찰일기>를 썼습니다. 주변에 다양한 형태로 육아일기로 아이 성장 기록을 남기는 분들이 있었는데 일종의 같은 방식이었던 거죠. 개인 블로그를 비공개 상태로 유지하면서 아이와 있었던 일, 아이의 행동과 언어들, 내 아이에 대해 주변에서 해주는 이야기들, 아이가 크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나만의 감정들을 기록했습니다.

당연히 좋은 이야기만 있을 리는 없었습니다. 때로 아이 마음에 상처가 생겼던 일, 아이와 겪었던 갈등, 엄마로서 힘든 점까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담아 냈습니다. 지나고 나면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질 육아 시기를 잊지 않고 간직하고 싶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가 그렇듯 아이 스스로 세세히 기억하지 못할 자신의 어린 시절, 자라는 동안의 이야기들을 남겨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부터 시작한 <관찰일기>는 1년 여 만에 중단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 기록들이 나의 시각에서 포장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관찰을 통해 기록되는 것들은 관찰자의 시선과 주관적 감정이 개입될 수밖에 없으니 온전한 내 아이의 내면 기록이 아니라는 자각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가장 진솔하게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게 '내 아이 인터뷰'였습니다.

기자 시절에 인터뷰 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인터뷰 읽기를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개인의 히스토리며 가치관, 세계관과 철학이 드러나는 인터뷰를 선호하죠. 그런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상대와 마주앉아 그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어떤 생각들을 해왔는지, 어떤 굴곡을 거치고 그 안에서 무엇을 깨치고 또 배웠는지, 그 모든 경험들을 통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고 애정하게 되기도 하죠. 그렇듯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속내를 꺼내어 보이는 데는 인터뷰 만한 방법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가 만으로 9살이던 겨울에 첫 공식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라는 게 뭐지도 모르는 아이와 나눈 첫 번째 인터뷰는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당시 베를린 생활 1년 반을 넘긴 시점에서 '베를린 생활 중간 정리'라는 주제를 던지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아이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 경험에 대해서 들여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까,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수준의 유려함에서 오는 놀라움이 아니라 그 내면의 깊이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대화가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아이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했고 아직 어린아이라고만 생각했던 제 모든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죠. 아이는 이미 자신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해 나가고 있었던 겁니다.

이후 주기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온 것이 3년이 넘었고 그 기록물도 꽤 됩니다. 몇 개월 텀으로 진행하는 공식 인터뷰는 물론이고 그때그때 아이에게서 어떤 변화가 감지되면 특정 주제로 인터뷰를 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한 두 시간 훌쩍 넘기는 긴긴 인터뷰가 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짧은 미니 인터뷰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인터뷰 기록은 그 자체로 세상에 하나 뿐인 아들의 내면 성장사로서 의미가 있지만, 인터뷰어인 저에게도 끊임없이 생각할 화두를 던지며 성장시킨다는 점에서도 너무나 훌륭한 매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당일도 그렇지만 어쩌다 아이의 지난 인터뷰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아 그때와 지금은 이런 면에서 달라졌구나' '그 시절엔 이런 고민을 했었구나' '우리에게 그때 그런 일들이 있었지' '앞으로 이런 면이 좀 필요하겠네' 라면서 스스로를 그리고 아이와 저의 관계를, 우리 가족의 관계를 돌아보고 다짐하게 합니다.

얼마 전에는 아이와의 첫 인터뷰부터 최근의 기록까지 다시 한번 차근차근 보는 시간을 가져봤어요. 한국 나이로 14살, 어엿한 청소년 길목에 접어든 아이를 보고 있으니 이렇게 자라준 게 대견하다 싶더라고요. 아이 어린 시절 사진부터 꺼내보듯이 저는 인터뷰 기록들을 꺼내보면서 우리 아이 내면이 어떻게 자라왔나, 자라고 있는가를 또 한 번 보고 싶었던 거죠.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사진을 보며 울다 웃다 하는 것처럼 아이 인터뷰를 보면서 혼자 많은 감정을 겪었습니다.

아이와 토론하세요, 대화하세요, 생각이 자라게 해주세요, 라고 늘 강조하는 제가 오늘은 그 생각이 자라고 커가는 것을 기록하는 것까지 말씀드렸습니다. 인터뷰라는 방식이 토론 만큼이나 낯설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인터뷰도 결국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대화'라는 것을요.

벌써 오래전이 됐는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분들에게 '내 아이 인터뷰 하는 법'에 대해 소통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만난 한 분은 실제로 아이와 인터뷰를 시작하셨고, 아직 어린 아이의 내면 성장을 목도하면서 벅찬 행복과 감동을 느끼고 있다고 해요. 토론이든 인터뷰든 결국 시작하는 사람만이 그 기쁨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엄마라서 토론을 하는 것도, 인터뷰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토론하고 인터뷰하면서 점점 특별한 엄마가 돼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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