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술> 문해력 학원이요? 아이와의 '대화'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최근 문해력 학원과 문해력 수업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지대하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가장 빨리 반응하는 곳이 사교육 현장임은 모르지 않지만, 문해력 학원의 등장은 솔직히 다소 충격적입니다. '문해력이 전 과목에 영향을 끼친다'는 논리에는 백 번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문해력이 공부의 한 카테고리가 되다니요. 문해력은 일상 속에서 요구되는 능력이고 따라서 일차적으로 일상 안에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문해력이 학부모들 사이에 화두로 떠오른 지는 좀 됐습니다. 그때 농담으로 그런 말들을 했었죠. 이러다가 문해력 학원까지 생기겠다고. 그런 말을 하면서 어쩌면 많은 분들이 언젠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강한 짐작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에도 '이러다가' 뒤에 따라붙던 것들이 어느 날 버젓이 현실이 된 예는 적잖이 있었으니까요.
아닌 게 아니라 최근 문해력 학원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사교육 메카라는 강남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저기서 문해력 학원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지대하다고 합니다. 보아하니 대놓고 '문해력 학원'이 생겼다기보다는 독서 지도, 논술, 글쓰기 학원 등에서 문해력 수업이 개설된 형태인데요, 심지어 수학 학원에서도 문해력 수업을 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해요. 문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수학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화책을 교재로 읽고 묻고 답하는 형태의 '문해력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사교육 현장의 설명입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대다수의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실제로도 이미 국/영/수/과 등 주요 과목만 하기에도 시간적 비용적 부담이 상당한데 문해력 학원까지 다니는 것은 과한 게 아니냐는 탄식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안감'입니다.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데에 모두가 동감하는 가운데 '문해력 향상이 전 과목에 영향을 끼친다'고 하니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 것인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제 하나둘 문해력 수업을 받고 덕분에 다른 과목 성적이 좋아졌다는 '고백'이라도 나오기 시작하면 '문해력 학원을 보내야 하나?'라는 고민과 망설임은 '보내야겠다'는 다짐으로 바뀌기 쉽습니다.
문해력이란 글자 그대로 문자를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니까 문자로 하는 모든 언어적 활동 즉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언어적 능력을 갖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말을 더 잘하는 누군가도 있고 쓰기를 더 잘하는 능력자도 있고, 독해의 수준도 각자 다를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문해력 저하의 가장 큰 위협은 '높은 수준'의 능력이 기준점이 아니라 지극히 일반적인 수준의 언어적 이해조차 어려운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언어적 능력'이 아닌 일상 활동에서의 언어적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는 데서 오는 문제인 거죠. 경험했다시피 '심심한 사과'와 같은 일상 속 문해력의 문제가 새로운 사회 갈등을 야기하기까지 하고요.
전문가들의 공통적 진단은 '읽기의 부재'가 원인입니다. 어린이,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문해력 저하 현상이 나타나는 가운데, 그나마 어른들의 문해력이 어린이와 청소년에 비해 나은 배경에는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오며 활자를 필수적으로 읽고 이해해야 했던 상황이 깔려 있습니다. 그에 반해 일찍이 디지털 미디어를 접하고 영상과 같은 시청각 자료에 대부분을 의지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다양한 어휘의 부족은 물론, 글자를 읽을 수는 있어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해'가 안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고요.
전문가들의 공통적 해법 역시 '텍스트 읽기' 특히 그 중에서도 '책 읽기'입니다. 독서가 가장 좋은 해법이라는 데에 그 어떤 이견이 끼어들 틈도 없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자발적 독서가 아닌, 좋아서 하는 책 읽기가 아닌 문해력 향상이라는 목적을 띤 독서 교육이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책 안 읽던 아이가 독서 교육을 받으면서 책을 좋아하게 되고 이후 스스로 독서를 이어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즐겁게 하던 것도 '학습'의 타이틀을 쓰면 즐겁지 않게 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가장 이상적 방법은 부모님이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갖고 독서와 같은 읽기 활동을 함께 해주면서 읽기의 즐거움을 일상화 해야 합니다.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동화책 읽기'를 학원에 맡길 게 아니라 하루 10분, 20분이라도 '짬'을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보다 돈을 쓰는 것이 가장 편리하고 빠른 방법이라며 문해력 학원을 선택하더라도 말과 글, 이해의 문제를 언제까지 사교육에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어쩌다 보니 문해력이 또 다른 공부 능력의 카테고리처럼 돼 버렸지만, 일차적으로 문해력은 일상 생활 속에서 요구되는 능력입니다. 그 말은 곧 일상 속에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전 세대들처럼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 곧 일상이던 시절과 지금 세대의 일상은 엄연히 다릅니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독서를 '일상처럼 하라'고 권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부모의 언어 사용부터 점검하고 아이와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언어적 측면에서도 자녀에게 가장 첫 번째로 영향을 끼치는 대상은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태어나 막 말을 배우는 시기에 주 양육권자인 부모의 언어가 아이 언어 발달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유아기 때 뿐만 아니라 성장하는 내내 부모와 가장 많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자극을 받습니다. 아이의 문해력을 걱정하면서 학원을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게 아니라 지금 현재 일상 속에서 아이와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 어떤 언어적 자극을 주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엄격하게 따지고 들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등 이 네 가지 영역이 합해져야 완전한 문해력의 습득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우선적으로 말하고 듣고 이해하는 것만큼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겁니다.
"우리집은 대화도 많고 잘 되는데 아이 문해력에 전혀 도움이 안 되던데요!"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화가 많고 잘 된다는 것과 '자극'의 문제는 다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가 정말로 말도 잘하고 친구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지낸다고 아이의 언어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하는 대화는 매일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가고 쓰는 어휘도 반복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대화가 많고 잘 되는 분위기라 해도 매일 일상적인 소재와 주제를 두고 이어지는 대화라면 문해력 향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족 일상이 버라이어티하다 해도 일반적으로 한 가족이 평소에 주고받는 대화나 언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이라도 해도 마찬가집니다. 때문에 의도적으로 어휘의 사용부터 가족 간 대화에 올리는 주제에 이르기까지 언어와 사고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일부러 '문해력'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일상 언어를 통해 아이에게 말의 자극을 주고자 노력하는 편이었습니다. 언어가 아이의 생각과 사고 활동에 영향을 끼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200개의 어휘, 단순한 표현만 아는 아이들의 세상이나 사고 방식은 1000개의 어휘를 구사하고 다양한 표현을 할 줄 아는 어른의 그것과 절대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아이의 언어를 확장시켜 더 넓은 생각을 유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시작은 아이가 9살일 때 시작한 '엄마표 토론'부터 였습니다. 당시 뉴스 읽기를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 나이에 비해 어려운 어휘나 언어적 표현을 접할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는 엄청난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한번 가르친다고 절대로 자기 언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매번 새로운 언어와 표현을 접하다 보니 일상에서 쓰는 언어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 수업이 아닌 일상 속에서도 저는 아이에게 가능한 어른들이 쓰는 표현을 쓰거나 한자어, 신기하다고 느낄 수 있는 어휘를 골라 쓰는 전략도 실행했습니다.
일례로 우리집 아이가 잘 쓰는 표현 중에 '태반'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어느 날 대화 중에 제가 '거의', '대부분'이란 표현 대신 일부러 '태반'이라는 한자어 표현을 썼는데, 아이는 그 뜻을 궁금해 하며 즉각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의미를 알려주면서 '아이들은 잘 쓰지 않는 고급 어휘'라는 부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아이는 그 단어를 꽤 흥미로워 했고 이후로는 '거의'라는 표현을 쓸 일이 있을 때마다 '태반'이라는 단어를 쓰곤 했습니다. 반드시 어려운 어휘만이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매번 다른 언어를 쓰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이가 어리다면 오히려 어휘의 난이도를 통한 호기심보다 이런 '다양성'의 방식이 효과적이죠.
관련해서 또 다른 풍경 하나를 소개합니다. 일 년 전 쯤인가, 장래 희망 중 하나가 뮤지션인 아이와 언젠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매주 꼬박꼬박 시청했습니다. 그때 저와 남편은 대부분 참가자들의 반응이 '대박', '미쳤다', '찢었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짧고 굵게 '너무 놀람'을 표현하는 방식이란 건 알겠는데 한 두 번도 아니고 왜 매번 같은 감탄만 하는 것인지 이상한 생각까지 들더군요. 반대로 당시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나온 가수 이적 씨의 심사평은 놀라웠습니다. 천편일률적이지도 않고 심지어 시적인 표현을 곁들이며 매번 최적의 평을 쏟아내는데 찬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그걸 보면서 남편이 제안을 했어요. 우리 가족 모두 참가자들의 음악을 들은 후 각자 자신만의 심사평을 해보기로 한 겁니다. 참가자의 실력에 대한 평은 물론이고 음악을 듣고 난 후의 감상까지 구체적이면서도 다양한 어휘를 사용해 표현해보기로 한 것이었죠. 그때 서로 독창적인 표현을 발굴해가며 심사평 말 잔치를 벌였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TV를 보는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언어적 자극을, 그것도 '재미있게' 줄 수 있는 상황이 가능한 겁니다.
어휘적인 자극만이 아니라 밥상머리에서 또 잠자리에서 일부러 가족의 일상을 벗어나는 화제를 대화에 많이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주일에 한 번 뉴스 토론 수업 외에도 저는 매일 수시로 그 날 읽었던 흥미로운 뉴스나 신기한 이야기를 알려주기도 하고, 읽었던 책의 내용을 공유하기도 하고, 하다 못해 엉뚱한 상상에서 비롯된 질문들을 쏟아내는 식으로 '다른 대화'를 하고자 노력합니다. 이를 통해 독서 만큼의 효과는 아닐지 몰라도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 언어와는 분명 다른 자극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틀 전의 대화를 복기해 보겠습니다. 곧 생일이 다가오는 아이와 '생일에 뭘 할까'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실험적인 음식에 꽂혀있는 아이는 커다란 와플 베이컨을 만들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와플을 직접 구워서 10개 정도의 층을 쌓은 후 어마어마한 양의 바싹 구운 베이컨을 올려 새로운 형태의 와플 케이크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대화는 뜻밖의 맥락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다 먹지도 못할 와플 베이컨'에서 '음식물 쓰레기'로 '환경 문제'로 나아가다 우주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되었습니다.
바로 그날 제가 읽었던 우주 여행에 대한 뉴스를 들려주었습니다. 지난해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이끄는 우주 기업의 로켓을 타고 우주 여행을 다녀온 미국의 한 배우가 뒤늦게 펴낸 우주 여행에 대한 책이 그 내용이었는데요, 놀랍게도 그의 고백은 "우주 여행은 장례식 같았다' "내가 본 모든 것은 죽음이었다" "어둡고 공허함을 봤다" "내가 만난 가장 슬픈 감정 중 하나였다"는 식으로 이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주의 맹렬한 차가움과 지구의 따뜻함이 대조를 이루었다", "우주를 바라봤을 때 어떤 신비도 장엄한 경외심도 없었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굴곡, 푸른 하늘은 생명이었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안에 진짜 아름다움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아이와 이 내용을 공유하는 동안 두 가지 측면에서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생각했던 우주 여행에 대한 예측과 기대를 뒤엎는 감상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의 언어적 표현들을 따라가며 새로운 이미지를 상상해볼 수 있었다는 겁니다. 공허함, 맹렬한 차가움, 장엄한 경외심과 같은 어휘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아이 혼자는 시도해볼 수 없지만, 부모와 함께 대화하고 구체화된 설명을 곁들이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세상 안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죠.
물론 대화를 통한, 말로 하는 언어적 자극이 문해력의 전부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첫걸음은 반드시 가족 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어리다면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이미 아이의 머리가 굵어져 가족 안에서의 대화 형태가 굳어진 경우라 하더라도 변화하기 위한 노력은 해야만 합니다. 학원에 가서 배우는 문해력은 학습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짜 문해력은 일상 속에서 발휘되어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