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치 뉴스를 보다가 어떤 정치인의 멘트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소모적인 정쟁을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문장만 놓고 보면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정치'는 온 데 간 데 없고 비난과 싸움만이 난무한 정치인들의 행태에 신물이 날 지경이니까요. 그런데 박수는커녕 코웃음이 나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상대 당의 입장에 있었다 해도 저런 말을 하면서 같은 당 정치인들에게 품위를 지키자고 설득하는 역할을 했을까 생각하니 안 봐도 답이 나오더군요. 입장이 달라질 때마다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180도 돌변해 전혀 다른 프레임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정치인들을 보고 있으면 딱 그 말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혹은 반대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좀 유식하게 사자성어로 표현하자면 '아전인수(我田引水)'입니다.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다 놓는다'는 뜻으로 자기 이익만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나 억지로 자기에게 이롭도록 궤변을 늘어놓을 때 쓰는 표현입니다만, 우리가 가장 흔하게 인식하는 '아전인수'의 상황은 어떤 경우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때입니다. 예전에는 'A가 아니라 B'라고 주장하더니 입장이 바뀐 후  지금은 'B가 아니라 A'라고 하는 식이죠. 지금은 A가 맞지만 그때는 A가 틀렸던 것입니다. (물론 살다 보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도 합니다. 세상이 달라지고 상황이 변했는데도 줄곧 옛 사고방식에만 젖어 '죽어도 A가 맞다'라고 주장하는 태도를 옹호하고자 하는 말이 아님을 독자 여러분은 이해하실 것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