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대학을 아시나요?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교육의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많은 것이 바뀔 겁니다. 지금 소개할 대학 '미네르바'의 방식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 하버드보다 입학하기 어려운 대학
- 합격률 1% 미만, 소수 정예 대학
- 세계 1위 혁신 대학
- 캠퍼스가 없는 대학
- 정형화된 입학 시험이 없는 대학
- 뇌 수술(Brain Surgery)을 핵심 교육 철학으로 내세우는 대학
위의 설명들이 '모두' 해당되는 학교, 어디일까요?
아는 사람은 알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미네르바(Minerva) 대학' 이야기입니다.
미네르바 대학은 올해 설립 10년 차인 신생 학교로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 2012년 설립자 벤 넬슨(Ben Nelson)이 미국 대학 연합체(KGI)의 인가를 받아 설립했습니다.
이 대학은 매년 150~200명 선의 신입생을 선발하며 전체 학생 수를 합해도 60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합격률이 굉장히 저조합니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합격률이 1% 미만으로 그해 하버드 입학률이 5.2%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바늘구멍' 수준입니다. (아이비리그 합격률이 일반적으로 5% 정도입니다.) 전공 학과도 극히 제한적입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사회과학과, 자연과학과, 컴퓨터 사이언스학과, 예술인문학과, 비즈니스학과 등이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미네르바 대학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혁신성 때문입니다. 미네르바 대학은 전세계 주요 100대 대학의 혁신성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WURI’(The World’s Universities with Real Impact Ranking 2022)랭킹에서 쟁쟁한 명문대를 모두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습니다.
미네르바 대학의 혁신성에 대해 알아볼까요.
미네르바 대학은 모든 면에서 기존의 대학 시스템과 완전히 다른데요, 먼저 캠퍼스도 강의실도 없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부'가 있지만 다른 대학들처럼 그것이 캠퍼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최대 정원은 19명입니다.
온라인 기반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오프라인' 프로젝트도 중요합니다. 캠퍼스가 없는데 어떻게 하는 걸까요? 대학은 '본부'인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7개 나라 7개 도시에 기숙사를 마련하고, 학생들은 매 학기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공동 생활과 함께 프로젝트 등을 진행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인도 하이데라바드, 대만 타이베이 그리고 대한민국 서울이 7개 도시에 해당하는데, 이들 도시에서 학생들은 봉사 활동 및 산학 협력, 지방자치 단체 및 비정부기구(NGO)와 공동 과제를 수행하는 등 철저히 '현장형' 공부를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그 나라, 그 도시의 일원이 되어보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설립자 벤 넬슨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요 기업, 정치, 교육, 문화 인사 등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경험이다. 미네르바는 캠퍼스가 없다. 캠퍼스에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체육관, 도서관, 식당, 기숙사를 오간다면, 그 도시에 거주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로지 침대, 욕실, 부엌만 주어져 있다. 학생들은 지역 주민이 사는 것처럼 동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대중교통도 이용해야 한다. 울타리 밖을 나가지 않으면 정말 굶어 죽는다. 이 활동은 학생들이 성인이 돼서 실제로 해야 하는 활동이다. 학생이 도시에 적응할 때쯤 되면, 다른 도시에서 학기가 시작된다. 학생들을 안전지대 밖으로 계속 밀어내는 것이다."
-2022년 9월 18일자, 한국경제 인터뷰 중
온라인 강의 역시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는 줌 형태가 아닙니다. 모든 수업은 토론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교수는 이 학교가 지칭하는 그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협력자'의 역할을 합니다. 한국인 재학생의 말에 따르면 '강의'라는 표현 자체가 적합하지 않을 정도이고 교수가 연속으로 몇 분 이상 발언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고까지 합니다.(미네르바 한국 재학생인 임하영 씨 인터뷰 내용 중.)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 미네르바 대학의 모든 배움은 철저히 자기주도 방식으로 능동적인 학습으로 이뤄집니다. "교수는 학생에게 끊임없이 왜 그런 의견을 냈는지, 구체적인 근거는 무엇인지 질문하며 토론을 이끌 뿐"입니다.
온라인 수업은 미네르바 대학에서 자체 개발한 '포럼(forum)'이라는 교육 플랫폼을 활용하는데요, 오프라인보다 더 효과적인 학습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 개발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교수는 실시간으로 학생들의 참여도를 측정해 보여주는 데이터를 참고해 모든 학생이 발언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수업을 이끌 수 있는 식입니다. 수업 중 즉각적인 여론 조사도 가능하고 타 그룹 발표에 대해 수시로 피드백을 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강의는 녹화 되어 학생들에게도 반복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교수들도 녹화 강의를 다시 보며 학생의 발언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식으로 객관적 점수를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리포트 제출과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을 합산해 평가하는 일반 대학의 평가와 달리 미네르바 대학에서는 모든 강의마다 점수가 매겨지고 학생의 발언까지도 평가 대상이 됩니다. 그러니까 매 학기마다 모든 시간과 모든 활동이 평가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1학년 학생들은 굉장히 힘들어한다고 해요. 기존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설립자가 내세우는 세 가지 핵심 철학 중 첫 번째에 '뇌 수술'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철학은 앞서도 거론한 능동적 학습과 피드백입니다.)
"미네르바 교육 철학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는 한 상황에서 배운 지식을 다른 상황에도 적용시키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다. 단순히 한 과목을 배우고 다음 과목으로 나아가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미네르바대 1학년은 전공지식을 배우지 않는다. 비판적·창의적 사고, 효과적 의사소통을 배우는 4가지 과목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 정보를 배울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하고 사고 방식 자체를 바꾸는, ‘뇌 수술(Brain Surgery)’와도 같은 과정이다."
-설립자 벤 넬슨, 위 같은 인터뷰 중.
그렇습니다. 미네르바에서는 현재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지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배워야 할 공부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즉, 지금 필요한 공부를 해봐야 10년 뒤에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미네르바에서는 '배우는 방법'을 가르치고, '사고 체계'를 교육합니다. 그때그때 공부해야 할 내용이 달라져도 언제든 적용 가능한 진짜 능력을 배우는 것입니다.
2022년 기준 미네르바 대학에는 1학년 11명, 2학년 3명 등 총 14명의 한국인 학생이 재학 중이라고 합니다. 전체 재학생이 618명이니 약 2.27%에 불과한 수치입니다. 전체 학생 중 80%가 미국이 아닌 나라들에서 온 학생들이고 대략 50개국 정도의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모인다는 점을 감안해도 굉장히 적은 비중이죠.
그럼 이 학교는 도대체 어떻게 입학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기존 대학 시험을 위한 성적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에세이와 면접이 가장 중요한데, 절차는 세 가지 항목으로 구분돼 있습니다.
먼저 'who you are'입니다. 지원하는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는 항목입니다.
두 번째는 'how you think'입니다. 지원할 때 쓰는 필수 에세이를 통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등을 보는 것으로 미네르바에서 준비한 자체 시험을 본다고 합니다. Math, Creativity, Expression, Writing 등 6개 시험으로 이뤄져 있다고 하는데 이 시험들의 공통적 특징은 준비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평소 자기 생각과 가치관이 정립돼 있어야 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의견을 정확히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지지 않고서는 어려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what you have achieved'입니다. 지원자가 그간 어떤 일들을 했고 이루었는가를 보는 항목으로, 살면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성취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즉 공부만 열심히 하고 성적이 뛰어난 학생을 뽑는 것이 아니라 미네르바가 추구하는 바대로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했으며 그것을 통해 어떤 배움이 있었는가를 보는 대목인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너무 짧은 역사를 지닌 대학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미네르바 대학이 소개된 지는 불과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인 관심은 한국인 학생이 입학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인데요, 개인적으로도 미네르바 대학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지난해 미네르바 대학에 입학한 임하영 학생의 책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접하면서입니다. 유치원 이후 학교에 다닌 경험 없이 오직 홈스쿨링으로만 공부한 임하영 학생의 입을 통해 듣는 미네르바 대학 이야기는 혁신을 넘어 충격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방식의 대학도 존재할 수 있구나' '이런 식의 가르침과 배움도 가능하구나' 부터 미네르바 대학이 앞으로 보여줄 비전과 성과가 어디까지일지 그 기대감에 가슴이 콩닥거릴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미네르바 대학이 추구하는 교육의 방식 즉 지금 현재를 위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미래 지향적인 교육 방식이 너무나 와 닿았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지금 우리가 예측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발전한 모습일 겁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차고 넘치고 어디서든 찾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 비판적이고 분석하는 능력,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 등 시대가 바뀌어도 교육 패러다임이 변화해도 언제든 활용될 수 있는 것이라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토론으로 귀결됩니다.
교과서 중심으로 외우고 익히고 시험 보고 평가 받는 방식은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바뀌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토론 교육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공교육이 학교에서 맡아 해준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습니다. 앞으로 점점 토론 교육은 확장되겠지만 준비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토론 교육은 또 다른 지루한 공부나 학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부모님과 함께 질문 하나로 시작되는 '일상 속 토론'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