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육 과정으로 본 초등학교 만 5세 입학 논란

독일 교육 과정으로 본 초등학교 만 5세 입학 논란

교육부의 '초등학교 만 5세 입학 추진' 논란으로 한동안 온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교육부 장관의 자진 사퇴로 사실상 철회된 상태지만 급작스러운 발표로 혼란을 초래하며 엄마들 마음에 생채기가 남은 게 사실입니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자연스레 독일의 학제와 교육 과정을 떠올렸습니다.

anotherthinking

초등학교 입학은 부모들에게 커다란 변화의 시기입니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되는 시기로 여겨지기 때문일 겁니다. 유치원 때와는 전혀 다른 마음 가짐이 들고 초조와 긴장을 넘어 불안감마저 생깁니다. 학교에 입학하는 당사자인 아이들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12년의 기본 교육 과정의 첫 시작에 선 아이들에게는 유치원과는 다른 역할과 태도 등이 요구되고, 이처럼 급격히 달라진 환경이 아이들에겐 불편할 수 밖에 없죠.

입학은 8세에 하지만 대다수 부모님들의 마음은 이미 7세 때부터 부담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입학 준비'를 위해 학습과 학습 이외의 것들까지 미리 연습 또는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준비를 했어도 막상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면 이런 걱정이 절로 듭니다. '아직도 이렇게 애기인데 학교에 입학해서 잘 할 수 있을까?' 출생 일이 한 두 달 빠르고 늦음이 큰 차이로 드러나는 유아기 특성 상 생일이 늦은 아이를 둔 부모들의 걱정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그 뿐만 아닙니다. 입시가 교육의 목적이자 목표가 돼버린 우리 교육 현실에서 한 해 일찍 치열한 경쟁의 현실로 내몰리는 아이들에 대한 안쓰러움, 학교에 입학해 교육 과정을 따라가기 위해 사교육이 필수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한 걱정, 초등 돌봄 교실의 부족으로 인해 더 큰 불편과 혼란이 생기는 점 등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반대' 이유는 차고도 넘칩니다.

교육부가 '만 5세 입학'을 추진하면서 내놓은 이유인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 계층을 위한 빠른 공교육의 시행'에 대해서도 방식이 틀렸다는 지적이 강했습니다. 빠른 공교육의 시행은 유치원 교육의 완전 공교육화 등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이행할 수 있으니까요.

독일은 유치원 교육이 세계 최초로 시작된 나라로 유치원부터 공교육이 시작됩니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다시 독일의 학제와 교육 방식을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만 6세(한국 나이로 8세)에 초등학교 과정을 시작하는 독일은 그러나 유치원부터 공교육이 시작됩니다. 또 주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4년의 초등 과정을 거쳐 상급 학교 진학을 결정짓는데, 이때 대학에 진학할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을 나눕니다. 즉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대학에 갈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진로를 미리 결정한 후 각각 다른 학교에 진학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학 교육이 무상인 독일은 '아무에게나' 대학 입학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4년 과정을 보내는 동안 아이가 공부할 자세가 돼 있는지 잠재력이 있는지 성향은 어떤지 본인의 희망 진로 등은 어떤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약 10%에게만 대학 진학을 위한 상급 학교 진학이 허용됩니다. 일부 명문대가 있긴 하지만 대학이 서열화 돼 있지 않습니다.

그럼 10% 이외의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아예 기회를 박탈하는가 하면 또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가 유형별로 구분돼 있어서 직업 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결정을 유보한 학교 등으로 진학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학교들을 다니는 경우라도 후에 성적이 좋아지거나 대학 진학의 목표가 뒤늦게 생기는 경우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집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독일과 같은 학제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당연히 모두가 '대학 입학'을 위한 상급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경쟁이 벌어지고 사교육이 동원됐겠죠. 그러나 독일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물론 갈수록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현재의 학제 시스템에 불만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직업 교육을 받은 기술직이나 실업계 인력이 대학 졸업자 못지 않은 임금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공부에 재능이 없는 자녀를 억지로 공부 경쟁에 내몰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독일 사회 역시 학력의 대물림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관련 기사들이 종종 보도되곤 합니다)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우리처럼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학원을 돌고 몇 년치 선행 학습을 하며 친한 친구와도 경쟁자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이쯤에서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를 공개하겠습니다. 아이의 독일인 친구가 어느 날 자신의 진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요.

"나는 축구가 좋아. 축구를 정말 잘해서 축구 선수가 된다며 최고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체육 선생님이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그런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어. 만약에 축구 선수도, 선생님도 되지 못한다면 환경미화원을 할거야. 환경미화원도 떨어진다면 내 인생은 망하는 거야."

아이가 전한 이 말을 들으며 우리는 마지막 문장에서 크게 웃었지만, 축구 선수와 체육 선생님 그리고 환경미화원이 자신의 진로에 나란히 등장하는 것을 들으면서  '독일 아이라서 역시 좀 다른 건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글쎄요, 만일 아이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다면 부모님들 반응이 어땠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독일의 학제는 우리의 그것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독일의 교육 체계와 그 내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유치원(킨더가르텐, Kindergarten)

독일은 유치원 교육을 시행한 세계 최초의 나라로 유치원 과정부터 공교육이 시작됩니다. 만 6세(우리나라 나이로 하면 취학 연령인 8세)가 되기 전에는 대부분 유치원에 다닙니다. 킨더가르텐은 만 3세부터 취학 전 연령의 아이들이 다니는 기관으로 종일반 운영이 아닌 시간제 운영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반일제 유치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종일반을 뜻하는 킨더타게스슈태테(Kindertagesstaette)는 줄여서 키타(Kita)라고 부르는데 유치원(킨더가르텐) 과정까지 포함한 우리나라의 통합형 어린이집을 생각하면 됩니다. 키타에는 영아반과 어린이반이 있는데 크리페(Krippe)라 불리는 영아반은 생후 6개월부터 만 3세 이전까지 보낼 수 있습니다. 영아반을 졸업하면 같은 키타 내의 어린이반으로 진급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영아반을 운영하는 키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맞벌이나 한부모 가정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로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공급이 부족한 이유는 만 3세 이전에는 부모가 직접 양육하는 것이 좋다는 독일 당국의 인식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죠.

키타에서 가장 연장자인 7세가 되면 '예비 과정'이라고 해서 아이들은 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체험 학습을 좀 더 멀리 가본다던가 초등학교와 연계해 직접 수업을 참관하는 기회도 갖습니다. 학교 학습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지, 성장 과정 등을 꼼꼼히 살펴보는 '신체검사'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만일 이 과정에서 '부적합' 결과를 얻게 되면 아이는 그 해에 입학을 하지 못하고 1년 더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아이의 경우 이 '신체검사'에서 청력 검사 결과 '재검사' 통보를 받아 가슴이 철렁 했었는데요. 2차 기관 검사에서 다시 적합 판정을 받아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2. 초등학교(그룬트슐레, Grundschule)

만 6세가 되면 초등학교 입학합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가을 학기제를 택하기 때문에 만 6세가 되는 9월 생~8월 생까지가 해당 연령이 됩니다. 우리 아이의 경우를 예로 들면, 2017년 9월 1학년을 시작할 때 2010년 9월 생부터 2011년 8월 생까지가 같은 1학년으로 입학했습니다.

독일의 초등학교 과정은 각 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보편적으로 4년제를 택하고 있습니다(베를린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6년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칠 때 쯤 상급 학교 진학을 결정합니다. 아이의 학업적 능력과 적성, 태도 등을 고려해 각각 김나지움, 레알슐레, 하웁트슐레 게잠트슐레 등으로 가게 됩니다.

이 결정은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부모님의 면담 하에 정해지는데 보통은 선생님의 의견이 가장 많이 반영됩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독일 학교는 초등 전 과정을 한 명의 담임 선생님이 맡습니다. 아이의 학업 과정이나 발달, 성장 등을 완전히 꿰고 있어야만 진학 지도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1. 김나지움(Gymnasium)

대학 진학을 위한 인문계 학교로 초등학교 학생의 10% 미만이 진학하며 우리나라 중고등 과정을 통합한 9년제(베를린은 7년제) 교육 과정입니다. 김나지움의 11학년~13학년은 상급 과정(Oberstufe)이라고 하며, 5학년부터 13학년까지 전 과정 수료 후(일부는 12학년 후) 졸업 시험인 '아비투어'를 보게 되는데 이 시험은 동시에 대학 진학을 위한 시험이기도 합니다. 아비투어는 상급 과정의 내신 성적이 반영되기 때문에 김나지움의 학생들은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하기로 유명합니다. 학습량이 많아서 학생의 자립적인 학업 수행 능력이 가장 많이 요구되는 특징도 있습니다.

독일 대학의 특징은 입학은 쉬워도 졸업이 어렵다는 점인데 김나지움 역시 적당히 해서는 대학 입학이 쉽지 않습니다. 아비투어에 합격하지 못하면 1년 뒤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베를린에 있는 흄볼트 대학. 독일은 대학 교육이 무료이며, 서열화가 돼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3-2. 레알슐레(Realschule)

6년 과정의 실업 중등학교입니다. 독일 교육 목표에 따라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 교육, 직업 교육을 기초부터 깊이 있게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졸업 후 미틀러레 라이페(Mittlere Reife)라는 학력 증서를 받는데 이 증서를 받은 사람은 일반 교양을 지닌 지식인으로 인정받습니다.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김나지움 상급 코스로 진학해 아비투어를 볼 수도 있습니다.

3-3. 하웁트슐레(Hauptschule)

직업학교 성격을 띠며 보통 레알슐레나 김나지움에 진학하기 어려운 학습 능력의 학생들이 진학합니다. 5년제로 14~15세 정도에 졸업하고 직업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본을 배웁니다. 졸업장 취득 후 공공기관 등에서 기초적인 직업 훈련을 받거나 성적에 따라 레알슐레, 김나지움 상급 과정 등으로 진학도 가능합니다.

3-4. 게잠트슐레(Gesamtschule)

1970년대 이후 비교적 늦게 생긴 상급 학교 형태로, 너무 이른 나이에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인문계와 직업계를 합친 종합학교의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단어 그대로 김나지움, 레알슐레, 하웁트슐레 이 세 학교를 합쳐 놓은 종합학교 성격을 띱니다.

5~6년 과정이며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학생들이 진학해 인문계, 직업계 구분 없이 배우며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게 됩니다. 직업계를 선택하면 되면 현장 실습형 직업 교육인 아우스빌둥(Ausbildung)에 뛰어들고 인문계를 선택하면 아비투어를 보기 위해 김나지움 상급학교에 진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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