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키우는 '생각' : '지구의 날'에 떠올리는 독일 학교의 '그린 위크' 퍼포먼스
교과서 밖의 경험과 실천이 어떤 때는 더없이 훌륭한 공부이자 생각의 원천이 됩니다. '지구의 날'을 맞아 기념일을 기억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경험'을 기획해보시면 어떨까요. 독일 학교에서 겪었던 사소하지만 특별했던 일주일을 공유합니다.
나 "이번 주 토요일이 '지구의 날'이네. 그날 저녁 8시에 불 끄기 행사를 한대. 이번에도 참여해야지?"
아들 "엄마, 10분 간 불을 끈다고 해서 지구에 그렇게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야. 1년 365일 중에 단 하루 그것도 10분 동안 불을 끄는 건데 지구한테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어? 차라리 평소에 필요 없는 플러그를 빼놓는 게 훨씬 더 좋은 거야!"
나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10분 간 아주 적은 양의 전기라도 해도 아끼면 좋은 거 아니야?"
아들 "평소에 잘 하는 사람이 10분 불 끄기까지 하는 건 좋지만, 아무 것도 안 하다가 딱 10분 불 끄기 하는 사람들이 뭔가 환경을 위해 대단한 것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야."
나 "음, 그건 맞는 말이네. 그런데 소등 행사가 꼭 전력을 아끼기 위해서만 하는 이벤트는 아니라고 생각해. 평소에 아무 생각도 없고 어떤 실천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지구와 환경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을 테니까."
아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사람들이 불 끄기 행사를 하면서 대단히 많은 전기를 아끼고 있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평소에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어떻게 할 지를 고민하면 좋겠다는 거지."
나 "그러게, 나부터 반성해야겠다. 훌륭한 생각이야!"
며칠 전, 지구의 날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아들 아이와 나눈 대화입니다. 매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참여해 온 '10 분간 소등하기' 이벤트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아이로부터 '따끔'한 지적을 들었네요. 행사에 참여하면서, 뉴스 등을 통해 일시에 소등 되는 장면을 보기도 하면서 지구를 위해 큰 일을 하고 있는 듯한 보람도 느꼈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다시 깨닫는 기회였어요. 역시 아이들은 때로 어른들에게 너무나 좋은 선생님입니다.
4월 22일 토요일은 '지구의 날'입니다.
지구의 날은 지구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환경을 위한 지속 가능한 생활 습관을 장려하기 위해 제정된 날인데요, 유엔이 정한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과 달리 민간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구의 날에 대한 아이디어는 게이로드 넬슨 상원으로부터 시작됐는데요,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해상원유 유출 사고를 계기로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 파괴에 대해 범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기 위해 주창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 지구 보호의 중요성에 집중할 수 있는 날을 만들고 싶었고, 1970년 4월 22일에 첫 '지구의 날'이 개최되었습니다. 첫 번째 지구의 날은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집회 및 교육, 기타 행사 등에 참여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이후로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지구 보호와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세계적인 기념일이 되었죠.
현재 매년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관련 활동과 이벤트에 참여하는 등 세계 최대 규모의 시민 기념일로 인정받고 있는데요,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기후 변화 대처의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지구의 날은 기후 행동을 촉진하는 아주 중요한 플랫폼이 되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환경 문제에 대한 위기감은 날로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죠.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손실, 대기 오염, 수질 오염, 산림 파괴 등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문제들로 인해 인간의 삶과 생태계가 큰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매년 있어왔던 '지구의 날'이 해가 갈수록 더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해 보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2009년부터 매년 '지구의 날'을 전후한 일주일을 기후변화주간으로 정하고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저탄소 생활 실천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앞서 아이와의 짧은 대화에서 이미 거론했던 '소등 행사'가 대표적입니다. 당일 저녁 8시, 10분 간 모든 불을 끄는 행사인데요, 전국 지자체, 기업, 그리고 가정이 동참하는 이벤트로 이젠 많은 분들이 함께 하고 있는 행사가 됐습니다.
에너지시민연대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한 10분 소등 행사로 8,589,000kWh 전력을 절감 했다고 하는데요, 사실 이로 인한 에너지 절감량을 정확히 추정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또 그 정도의 전력 절감이 빠르게 진행 중인 환경 오염과 기후 위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도 알 수 없고요.
하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메시지 전달과 상징적 제스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이벤트라고 생각해요. 다만 앞서 아이가 지적했던 것처럼, 한 번의 소등 행사 참여가 주는 만족과 보람, 혹은 보여주기 식 이벤트로 끝나면 절대 안 되겠죠. 이를 시작으로 일 년 내내 에너지 효율을 실천하고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등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니까요. 예를 들면 모든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전등 끄기, 전자기기 플러그 뽑기와 같은 간단한 행동만 습관화 하더라도 기후 위기에 적잖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끊임없이 주어져야 하겠죠.
사실 우리집 아이가 환경 문제에 대해 예민할 정도로 생각이 깊은 데는 독일에서의 경험이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은 독일에서는 학교에서도 관련 행사나 이벤트를 주기적으로 끊임없이 실천합니다. 반 대표들로 구성된 스튜던트 카운실(학생자치회)에도 아예 '환경 분과'가 따로 있어 전교생이 함께 참여하고 실천할 만한 일들을 나서서 도모하고 진행하기도 했죠.
그 중에서도 지구의 날처럼, 환경과 관련된 기념일이라던가 관련 이벤트 등이 있을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독일에 살 때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서 일주일 간 진행했던 '그린 위크(green week)'입니다. 당시 한창 그레타 툰베리의 'Fridays for future'로 시작된 학생들의 자발적 환경 운동이 급속도로 확산되던 시점이었습니다. 금요일마다 학생 신분이 아닌 환경운동가가 되어 학교 대신 길거리로 나왔던 10대 청소년들의 이 운동을 두고 당시 독일 내에서도 찬반 여론이 팽팽했어요.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환경 운동이 이유라 하더라도 '결석'은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고요.
아이가 다니던 학교는 좀 달랐습니다. 선생님들이 금요일의 환경 시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전체 학부모들에게 '아이가 금요일에 환경 운동 참여로 인해 학교에 못 온다면 알려 달라'는 식의 공지문을 발송하며 은근 지지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그린 위크' 퍼포먼스를 하겠다는 공지가 날아왔습니다. 금요일에 시작해 그 다음주 금요일에 끝나는 이 행사는 매일 매일 환경에 관한 하나의 주제로 하루를 온전히 '겪어보는' 방식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 금요일 '웰컴 그린 위크 데이' :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그린 색 혹은 깨끗한 공기를 상징하는 블루 색의 옷을 입고 등교하는 날.
- 월요일 '음식물 쓰레기에 대해 알기' : 학교 점심 시간에 얼마 만큼의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는지 알아보고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날.
- 화요일 '지구의 날' :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보기 위해 온종일 불을 끄고 컴퓨터 플러그도 뽑고 모든 디지털 디바이스를 다 오프(off) 상태로 지내보는 날.
- 수요일 '누드(nude) 푸드' : 매일 아이들이 가지고 가는 스낵 박스에 플라스틱, 종이, 포일 등을 일절 사용하면 안 되는 날.
- 목요일 '로컬 푸드 데이' : 독일에서 나는 로컬 푸드로 스낵 박스를 채워오는 날.
- 금요일 '워킹 스쿨 데이' : 학교에 걸어서 등교하는 날. 첫날과 마찬가지로 그린과 블루 색상의 옷을 입고 등교하기.
- 그밖의 이벤트 '사진 콘테스트' : 학생들이 직접 찍은 '그린' 포토 제출하기.
그린 위크 퍼포먼스를 진행한다는 이메일을 받고 학교의 '즐거운' 기획력에 박수를 보냈던 저는 그 한 주 동안 아이가 환경에 대해 생각하고 경험했던 것들을 집에 와서 나누는 상황을 지켜보며 '이런 교육이야말로 진짜'라고 감탄했습니다. 아이들의 그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어른들에게까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번 '지구의 날'을 시작으로 아이들이 직접 환경에 대해 경험하고 겪어보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아이가 어릴 때 독일에서 접했던 책이 있는데요, '플라스틱 없는 생일 파티'에 관한 동화책 <Join the No-Plastic Challenge!>이었습니다. 책 속에서 생일 파티에 모인 아이들은 일회용품 없는 파티를 합니다. 당연히 장식용 풍선도 없어요. 그 대신 자연 소재로 만든 연과 색 테이프로 파티 분위기를 내죠. 뿐만 아니라 파티 장소인 해변 공원을 청소하기도 합니다.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여전히 선명합니다. 생일이라는 아이들에게 굉장히 행복하고 기쁘고 의미 있는 날에 환경을 생각한 '플라스틱 없는 파티'를 선물해 준다면 얼마나 특별할까, 그 경험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해보면서 꼭 한 번은 이런 기획을 해보고 싶다는 다짐도 했던 것 같아요.
환경 문제는 특히 우리 아이들 세대를 위해서 어른들이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