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질문> '정치' 이야기, 아이들과 왜 해야 할까요?
"아이가 난감한 질문을 해서 답변하느라 진땀 흘렸어요!" 온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는 뉴스 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대화를 하고 계신가요? 아이들과의 정치 이야기는 왜 필요한지 그 이유부터 짚어봤습니다.
오늘은 부모님들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고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아이들과 정치 이야기를 하는 편인가요? 정치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는 건 왜 필요할까요?"
정치적 논제를 다루어야만 하는 두 가지 이유
아이들과 토론 수업을 하다 보면 정치적 논제를 다루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걱정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또한 그분들이 말하는 '정치적 논제'라는 것의 성격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거나 고집으로 비쳐질 수 있어 그러한 요청에 대해 일일이 설득에 나서지 않는 편이지만, 개인적으로 필자는 정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아니 다루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하나는 '정치'라는 개념을 좀 더 넓게 바라보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정치와 무관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이슈들을 한 번 볼까요?
'AI 디지털 교과서 논쟁', '의대 정원 확대', '정년 폐지 및 연장 문제', 이 중 정치적 문제가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AI 디지털 교과서는 정부의 교육 정책과 관련한 이슈이고, 의대 정원 확대는 의료 정책과 사회 보장 정책, 교육 정책 등이 복잡하게 맞물리며, 정년 폐지 및 연장 이슈 역시 인구 정책과 경제 정책 등 정치 범주에 들어가는 이슈들입니다. 대통령의 통치, 정당 및 국회의원들의 정쟁 등으로 불거지는 이슈만이 정치 문제인 것은 아니란 거죠. 온 나라를 집어 삼키고 있는 최근의 정치적 문제만 보더라도 과연 좁은 개념의 '정치', 즉 정치권 내에서의 다툼이나 그들끼리의 갈등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보통의 우리, 국민들의 삶에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때문에 아이들과 정치 문제를 논하는 것에 대해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 논제를 다루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올바른 판단력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에 관한 양극화가 심각합니다.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정치색도 극적으로 달라서 다른 의견을 가진 이와 대화하려 하지 않고,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말만 절대적으로 믿는 경향도 있습니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가짜 뉴스의 생산과 파급은 더욱 쉬워졌고 우리는 언제든 거기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미디어를 판단하는 능력, 정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균형감을 찾기 위한 노력은 더더욱 중요해졌는데요, 평소 정치적 논제에 대한 건강한 대화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이러한 능력을 갖추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한 언론에 소개된 칼럼에 따르면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언어, 즉 정치적 프레이밍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접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는데요, 비판적 사고를 방해하는 프레이밍의 함정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위해 토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_ 정치권이 짜는 교묘한 ‘프레임’… 시민 열린 토론땐 영향력 80% 감소[박재혁의 데이터로 보는 세상])
'아이들과 정치 이야기 어떻게 하나요?' 고민하는 부모님들에게
최근 우리에게 벌어지는 정치적 폭풍 속에서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져 난감하다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 필자가 해주는 조언은 위 두 가지 이유를 들며 "어릴 때부터 정치 이야기는 반드시 필요한 대화이니 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의 나이와 정서를 고려해 '우회'하거나 축소해서 전달해야 할 내용도 있고, 나름의 기준을 정해 그 선을 넘지 않아야 할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를 회피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사건 자체를 다루며 '갑론을박'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을 해보는 것, 그 사건이 우리에게 끼치는 다양한 파장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 해결책을 고민해보는 것 등 정치와 삶, 가치를 연관 시킨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앞서도 말했지만 정치는 우리 삶에 관한 것이고, 어릴 때부터 이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그것도 부모님과 함께 해보는 경험은 아이에게 엄청난 성장 동력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건강한 대화를 위해서는 부모님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이나 가치관을 강요하거나, "너는 어려서 잘 몰라"라며 무시하거나, 근거 없이 감정적으로 '토로'만 하거나,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잔뜩 해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정치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필자의 집에서는 정치 이야기가 "밥 먹었니?"라는 인사 만큼이나 보편적 일상 대화입니다. 이제는 아이가 먼저 뉴스를 보거나 주변에서 듣고 겪은 내용을 가지고 먼저 정치적 대화를 시작하는 일도 다분합니다. 얼마 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친구의 사례를 꺼내며 해리스 지지자와 트럼프 지지자의 특징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어떤 공약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인지, '자국민 보호주의'라는 것이 미국인 입장에서는 어떠한지, 또 세계인들에게는 어떤지, 트럼프 2.0 시대가 열리면 우리나라는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지 등등의 문제로 확장해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상적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는데요, 오늘 아침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팝그룹이 우리나라에 왔으면 좋겠다는 아이의 바람으로 시작해 계엄령 사태와 지금의 사회 혼란,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대한민국, 이 상황에 과연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투어 도시로 한국을 택하겠는가의 문제로 대화가 전개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가능한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주제를 한정하지 않고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대화해왔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빌드 업'이죠. 덕분에 나름의 소신도 있고 복잡하고 어려운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주저하지 않고 내놓을 수 있는 아이로 성장했습니다만, 아직 청소년이라 어른 만큼의 경험과 식견은 부족해 가치 판단에 혼란을 느낄 수 있기에 필자는 더더욱 아이와 정치 이야기에 공을 들입니다.
2년 전, 대선이 끝나고 당시 12살이던 우리집 아이와 '정치'에 대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이가 "어린이들이 정치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세상이 돌아가는 걸 알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해결할 능력이 생길 것 같다"라고 답했던 게 기억납니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정치 문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고 어른들의 기대보다 더 현명한 답을 내놓을 때도 많습니다.
그동안 정치 이야기 나누는 게 꺼려졌다면,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이었다면 "네가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이니?" 혹은 "좋은 정치(인)란 무엇일까?", "어린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왜 필요할까?" 같은 가벼운 질문으로 먼저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아이가 대답하기 힘들어한다고 해도 기다려주세요. 아이가 질문을 듣고 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 의미있는 일이니까요.
참고로 아이와 나눌 정치 이야기에 힌트가 될까 하여, 2022년 어느 날 필자가 아이와 나누었던 '정치'에 관한 인터뷰 내용을 공유합니다.
Q. 너는 정치에 관심이 많지? 어떤 관심이야?
관심 많지. 정책에도 관심 있고, 국민들이 원하는 것들이 잘 실천이 되는지 안 되는 지에도 관심 있어.
원래 좋은 정치는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좀... 아닌 것 같아.
Q. 친구들은 어때? 정치에 관심 있는 아이가 있어?
거의 없어. 주로 내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고 대화하는 편이야.
Q. 어린이들이 정치에 대해 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어릴 때부터 알아야지. 어른들은 많은 걸 듣고 보니까 잘 알겠지만 어린이들은 알기가 어려워.
그런데 나중에 직접 정치를 할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면 좋잖아.
세상 돌아가는 걸 알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해결하는 능력도 생길 것 같아.
Q. 네가 생각하는 좋은 정치인은 어떤 사람이야?
국민들이 행복해지도록 노력하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최대한 많은 국민이 행복해지도록 하는 사람이어야지.
Q. 너는 나중에 직접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
아니. 그런데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다른 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Q. 우리나라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괜찮지 않다고 생각해. 정치인들이 자기들에게 이익인 것만 하는 것 같아.
국민들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하는데 막상 되고 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자기들 위한 일만 하는 것 같아.
Q. 그럼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나 제도가 있어?
음.. 특별히 지금은 정치를 잘하는 나라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Q. 대통령 선거 때 토론회 봤지? 어린이들이 토론회에서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봤어.
정말 좋을 것 같아. 어린이들은 순수하게 하고 싶은 질문들을 다 할 수 있으니 재밌을 것 같아.
Q. 어떤 질문들을 하고 싶은데?
'당신 자신과 당신의 가족, 그리고 국민이 강에 빠졌습니다. 누굴 구할 겁니까?'
이 질문은 그 사람이 누구를 가장 먼저 위할 것인가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재밌지 않아?
'왜 대통령이 되고 싶나요? 왜 꼭 당신이어야 하나요?'
'당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나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뭔가요?'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요?'
같은 질문들...?
Q. 너는 전에 '생각당'이라는 정당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지? 왜 생각당이야?
생각 없이 아무 정책을 내면 안 되니까, 당연히 생각을 해야 하니까 생각당이지.
좋은 정치를 생각한다는 의미지.
Q. 국민을 생각하는 게 아니고?
정치라는 게 당연히 국민을 위하는 거니까 좋은 정치를 생각하는 게 곧 국민을 생각하는 거야.
Q. 너한테 선거권이 있다면 후보의 어떤 점을 보고 판단할 것 같아?
그 사람이 주장하는 정책이 논리적 근거가 있는지를 볼 것 같아.
그리고 말투도 중요해. 친절함이 있는지 말이야. 나는 착한 정치가 좋다고 생각해.
또 그 사람의 철학과 가치관, 정치와 국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볼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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