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사춘기를 위한 '빌드업'

자녀의 사춘기를 위한 '빌드업'

자녀의 사춘기로 인해 힘들어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자녀가 아직 어려서 아주 먼~ 이야기인 부모님들조차 오지 않은 사춘기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갖고 있고요. 그러나 '사춘기'도 대비하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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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사춘기 자녀로 인해 힘들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각각 조금씩 상황은 다른데 크게 보면 사춘기 겪는 자녀를 둔 가정의 풍경이 거의 비슷합니다. 한 마디로 '단절'입니다. 대화가 단절되고 함께 하는 시간이 단절되고 그렇게 서로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서 관계가 단절되어 갑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이죠.

사춘기는 직접 그 시기를 겪는 아이에게도, 바라보는 부모에게도 모두 낯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기가 단절이 아닌, 새로운 관계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잘 겪는다면 사춘기는 아이가 건강하게 독립하고 부모와의 관계 또한 굳건해지는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준비가 필요합니다. 자녀의 사춘기를 지혜롭게 보낼 수 있는 '빌드업'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합의하고 조율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대부분 부모가 정한 규칙 안에서 생활합니다. 옷을 입는 방식부터 하루의 시간표까지 부모의 결정이 아이의 일상 전부를 채우곤 합니다. 이 시기에는 아이가 의견을 표현해도 ‘고집’이라 여겨지고, 부모는 아이를 '이기거나' 혹은 '져주거나'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복은 아이에게 잘못된 학습을 남깁니다. 늘 부모 뜻대로 끌려가면 무력감을 느끼고, 반대로 고집을 부려 원하는 것을 얻은 경험이 많아지면, 감정적 충돌로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진짜 교육은 갈등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건강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함께 배우는 것이다." 아이가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할 때부터, 사소한 갈등 상황에서 함께 의논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연습해야 합니다. 때로는 아이의 의견이 온전히 수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부모의 판단이 우선될 수도 있지만 일단 논의와 조율 과정을 거쳐 결정되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합의된 결정이라도 이후 문제점이 드러나거나 최선의 판단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면 즉각 수정하는 태도 또한 필요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아이는 변화에 유연해지고, 부모는 아이의 주장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아이는 사춘기 때 부모의 의견을 무작정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태도를 갖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든 자신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조율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 또한 다소 난감한 아이의 요구나 의견에도 '일단' 수용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겠죠. 결정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때는 아이가 부모의 뜻을 반영해줄 것이란 믿음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건강이나 안전, 사회 규범과 관련된 문제처럼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합의의 대상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그 부분에서는 단호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어나더씽킹랩 via Dalle3

2. 울타리를 설계하고, 유연하게 운영하세요

부모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두 가지 바람이 함께 있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뜻을 온전히 잘 따라주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자기주도적으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이 두 가지는 때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적절한 울타리 설계를 통해 조화롭게 이뤄질 수 있습니다.

자기주도적인 아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결정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깨닫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이에게 모든 자율을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부모는 아이가 안전하게 시도할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이 울타리는 아이의 성장에 따라 점차 넓어져야 하며, 필요에 따라 다시 좁아질 수도 있어야 합니다. 유연한 울타리가 핵심입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자주 말하는 단어 중 하나가 '간섭'입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오히려 간섭처럼 느껴지는 시기인 거죠. 그러나 어릴 때부터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면, 사춘기에도 그 갈등은 훨씬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울타리 설계'와 그 안에서 자율권을 주는 연습이 일찍부터 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제 아이가 한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친구 엄마의 육아 방식이 정말 좋은 것 같아."라고 말하더군요. 자신이 보기에 그 친구는 정말 바르게 잘 자랐는데, 겪어 보니 친구 엄마의 양육 방식이 아이의 결정을 수용해주면서 이렇다 할 간섭이나 압박을 전혀 하지 않는 것 같더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그 집 부모님은 나름 엄격한 양육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다만 그 울타리 경계가 다른 부모님에 비해 조금 넓게 형성돼 있는 것일 뿐이죠. 그리고 일찍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아이는 경계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면서도 자율적이고 자기주도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얘기가 나온 김에 아이가 생각하는 우리 부부의 방식에 대해서도 물었더니 "엄마 아빠도 간섭이나 강요가 없는 편이지. 가끔 엄격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는 부분이고."라고 답하더라고요. 필자는 가능한 아이에게 자율권을 주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편이지만,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 부분도 분명 있는데요,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 받은 아이는 부모의 단호함까지 신뢰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답변이었습니다. 부모가 반대하거나 거절할 때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3. 아이가 말을 걸어오게 만드세요

사춘기 자녀가 부모를 무시한다고 느끼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대화 자체를 거부하며, 태도 또한 불량하다고 느껴질 때 부모는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이런 상황들이 거듭되면 결국 관계는 틀어지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마주 앉아 대화하려 하지 않는 이유는 대개 "부모에게 말해봐야 소용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존의 경험들로부터 내린 판단일 수도 있고, 지레짐작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불안하고 고민이 많습니다. 이때 부모가 아이의 대화 상대가 되어줄 수 있다면 건강한 사춘기를 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려면 일단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야 하는데요, "무슨 말을 해도 소용 없어"가 아니라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들어주겠지"라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필자는 자녀가 부모에게 갖는 이러한 신뢰와 믿음이야 말로 진정한 부모의 권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학창시절 배운대로 권력은 내가 휘두르는 것이지만 권위는 상대가 세워주는 것입니다. 즉, 부모로서의 권위는 아이가 세워줘야 하는 것이죠. 아이가 힘들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그 대상으로 부모를 떠올릴 수 있는 것, 부모에게 조언을 요청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부모에 대한 오랜 신뢰와 존중이 있어야 가능하고, 이것이 바로 권위 있는 부모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부모의 권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역시 우리가 배워온 대로 권위는 일방적이 아닌 상호작용 하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상기하면, 평소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 속에 답이 있을 겁니다. 결국 부모의 말과 태도 같은 일상적 모습이 쌓여 굳건한 믿음과 신뢰로 자리잡게 되는 겁니다. 사소한 고민이라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아이의 관점에서 함께 고민해주는 태도, 아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해주되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애쓰는 태도, 일방적 명령조의 해결책 제시가 아닌 함께 대화하며 답을 찾아가는 등의 태도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 스스로 삶을 대하는 방식 또한 부모의 권위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가는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난관이 닥쳤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나아가 평소에 쓰는 언행과 습관, 버릇까지 아이들은 늘 부모를 지켜보고 있죠.

빈틈없이 완벽한 부모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잘못 판단할 수도 있고 거듭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합니다. 마음과 다른 말과 행동이 튀어나와 당황할 때도 많고요. 실수하면 사과하고, 잘못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개선하며,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삶 속에서 보여줄 때 아이는 부모를 '신뢰할 수 있는 어른'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죠.

저는 일상적 대화 외에 매일 하루에 한 두 번 정도는 아이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뉴스나 책에서 읽은 내용을 공유하면서 질문하고 대화하는 건데요, 길 필요도 없이 짧게 5분, 10분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서 아이는 엄마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관과 태도에 대해 느끼고,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게 되겠지요. 중학교 3학년 나이인 아이는 여전히 이런저런 고민을 토로하며 조언을 요청할 때가 많은데요, 엄마가 함께 고민해주면서 조금 더 지혜로운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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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못한 채, 지금 사춘기가 도래했다면...

가장 당황스러운 건 바로 아무 준비가 안 된 채로 아이의 사춘기를 마주하는 상황일 텐데요,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아닙니다. 간단히 말해 상황은 바꿀 수 없어도 '태도'는 바꿀 수 있죠.

최근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아이가 갑자기 변해서 당황스럽다는 친구의 하소연을 들었습니다. 더없이 다정하던 아이가 퉁명스러워지고, '숙제 다 했니?'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엄마의 질문에도 버럭 소리를 지를 때가 많다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우리 아이에게 말해준 뒤 "인생 선배(?)로서 엄마 친구 아들이 왜 그러는 것 같니?"라고 물어봤더니 한다는 말이, "그 아이는 점점 자라고 있고 변하고 있는데,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과연 그렇더군요. 사실 많은 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갑자기 변했다"고 하지만 '갑자기'가 아닐 겁니다. 부모 눈엔 여전히 똑같이 보이는 아이도 어제에 비해 오늘 더 성장했고, 그만큼 매일매일 몸도 마음도 조금씩 자라고 달라지고 있는 것이죠. 아이의 주변 환경 또한 계속 변화하고 있고요.

결국 아이의 성장에 맞추어 부모도 변하고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달라진' 아이를 느꼈다면 "나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야"라는 아이의 내면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성숙해져 가는 존재로서의 아이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그리고 울타리가 없다면 새로 설정하고, 혹 이미 설정해두었던 울타리가 있다면 아이의 변화된 모습에 맞게 다시 설정하는 변화도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은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새로운 경계를 설정하고,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자율의 영역과 권한을 분명히 제시하는 한편, 그 권한을 행사한 뒤에는 아이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도 함께 합의해야 합니다. 만약 그 합의가 무너졌다면, 다시 테이블에 앉아 조율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도 미리 알려주어야겠죠. 중요한 것은 경계와 권한 설정에 대한 대화에서 아이가 조금이라도 '얻는 것'이 더 많은 방향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대화는 했는데 결국 부모의 뜻대로 되었다면 아이가 다시 대화에 나서지 않을 테니까요.  

혹시라도 "그렇게 자율권을 줬다가 오히려 더 상황이 나빠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화의 테이블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무섭고 걱정되는 일은 없다는 점입니다. 부모와 아이가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가장 중요한 신뢰의 시작이며, 관계 회복의 출발입니다.

사춘기는 혼란과 갈등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이에게는 성장의 시간이고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이해하려는 태도, 함께 조율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부모와 아이는 다시 손을 맞잡을 수 있을 겁니다. 아이가 혼자 걷고 있다고 느끼는 그 길의 가장 가까운 곳에, 여전히 부모가 따뜻하게 함께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그리 해야 합니다.


  • 커버 이미지 출처_©어나더씽킹랩 via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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