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획 시리즈 : 한국 부모가 경험한 생생한 독일 교육 현장> (3) "선행 학습은 '해서는 안되는 것', 어릴 때부터 '자기주도'로 자란 독일 아이들 성숙해요"
한국 교육을 받고 성장한 한국 부모님들은 독일 교육을 받고 자라는 자녀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자신의 경험과 자녀의 경험을 통해 한국 교육과 독일 교육 양쪽 모두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부모님들의 목소리로 생생한 독일 교육 현장에 대해 들어보고자 합니다. 현재를 기준으로 한국, 독일, 싱가포르에서 자녀들에게 '독일 교육'을 시키고 있는 부모님 3인의 인터뷰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독일 교육과 한국 교육은 어떤 면에선 극과 극의 지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독일은 답답할 정도로 느리고 천천히 가는 과정을 지향합니다. 교육이라는 목표 하에서도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행복은 절대 침해할 수 없습니다. 뛰어난 몇 명을 위한 교육이기 보다 모두를 이끌고 가는 교육이 핵심이고요.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빠릅니다. 남들보다 더 빨라야 하기 때문에 선행 학습은 해가 갈수록 그 연령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목표와 목적 앞에서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행복은 잠시 유보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교육 수준은 탑입니다. 모두를 위한 교육이기 보다는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엘리트 교육을 지향하죠.
이와 같은 상반된 지점 때문에 누군가는 독일식 교육을 '유토피아'처럼 높이 평가하고, 또 누군가는 '평준화 교육'이라며 지적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강점을 높이 평가한다 하더라도 독일 교육이 절대 유토피아일 수만은 없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교육의 방향과 목표에 따라 어떤 점은 긍정적이고 어떤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나더씽킹랩이 '한국 부모가 경험한 생생한 독일 교육 현장'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데는 위와 같은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같은 독일 교육이라 해도 독일인들이 느끼는 지점과 한국 교육을 받고 자란 한국 부모가 느끼는 지점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독일 교육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이나 평가가 아니라 우리의 시각, 우리의 평가를 통해 얻어내는 '결론'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교육 방식이나 시스템을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도움이 될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것이니까요.
한국에서 나고, 한국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자녀들은 독일 교육을 받고 있는 3인의 부모님을 인터뷰했습니다. 한국과 독일, 양쪽의 교육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입장에서 독일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장단점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등을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 여기서 말하는 한국 교육과 독일 교육이라 함은 반드시 공교육 만을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며, 전반적인 교육 방향을 발하는 것입니다. 또한 독일은 주마다 다른 교육 정책을 펴고 있으며 교육 방식이나 수준, 경쟁력도 천차만별입니다. 일반적으로 뮌헨이 있는 바이에른 주의 교육 수준과 경쟁력이 높은 편입니다.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3인의 학부모님은 현재 각각 서울, 뮌헨(독일), 싱가포르에서 '독일 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서울과 싱가포르는 독일 튀링겐 주의 교육 방식을 따른 '독일 학교'로 독일 현지의 일반적 공립 학교보다 높은 수준임을 밝힙니다. 독일 밖 다른 나라에 있는 '독일 학교'는 대부분 튀링겐 주의 교육 정책을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터뷰-세 번째>
독일 뮌헨에서 두 자녀를 교육하고 있는 백은경 님
Q) 본인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한국에서 졸업했어요. 석사 과정 중 영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1년 계획으로 유학을 갔고요. 이후 어쩌다 보니 영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고 일도 하게 됐습니다. 또 결혼하고 가정도 꾸리게 돼 영국에서 만 11년, 이후 독일에서 11년 째 살고 있습니다. 독일 교육을 받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각 6학년과 8학년입니다.
Q) 아이들이 독일 교육 받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한국 교육과 독일 교육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차이는 선행의 유무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학원이나 기타 기관에서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 가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아요. 그런데 독일에서 선행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선생님들도 학생들이 미리 배워서 오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이른 나이(보통 초등학교 4학년)에 인문계 학교, 직업 학교 등으로 아이들 진로를 나누는 것인데요. 이것은 장단점이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장점은 공부에 뜻이 있고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 아이들과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을 구분해서 맞춤 교육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발달 시기가 다 다른데 너무 어린 나이에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이(물론 나중에 학교를 바꿀 수 있는 방법과 제도가 있기는 합니다) 단점이라고 생각해요.
세 번째는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한국의 교육은 소수의 뛰어난 학생들을 지원하고 독려하는 경향이 있다면, 독일의 교육은 다수의 미래의 소시민들을 양육하는 데에 초점을 두는 교육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뛰어난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고 발휘할 기회가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지만, 독일에서는 그런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교육 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주변에 한국 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사실 저는 외국 생활을 오래해서 실제로 한국 교육이 현재 어떠한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물론 뉴스를 통해 듣는 내용이나 건너 건너 듣게 되는 이야기들은 있습니다만, 그것만 가지고 제가 판단하기엔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Q) 독일의 교육 방식에 대체로 만족하시는 편인가요?
저는 영국과 독일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보았습니다. 두 나라 모두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있지만, 독일에서 교육 받고 졸업한 대학생들이 좀 더 어른스럽고 성숙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자기 주도 학습과 생활 전반에 대한 좋은 태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Q) 학부모로서 독일의 교육 방식에 불만이나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인가요?
디지털 교육 자료와 시스템 구축 부분에 있어서 독일은 한국이나 영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 홈 스쿨링 운영 방식은 좀 아쉬웠어요.
Q) 독일 교육 중 저 학년 교육 방식과 고 학년 교육 방식의 차이가 있나요?
저 학년에서는 학부모들의 서포트가 필요한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아이들이 고 학년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거의 학교 일을 모를 정도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학교 생활도 학습도 자기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당연시되는 교육을 받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방침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운영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고 학년이 되면 각자 알아서 하죠. 그러니 부모 입장에서 개입할 일들이 없는 것 같아요.
Q) 아이들 스스로는 독일식 교육에 만족하나요?
큰 아이는 라틴어 공부가 어렵다고 툴툴대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학교 가는 것을 즐거워 합니다. 상대적으로 아직 저 학년이라 할 수 있는 둘째 아이는 아주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고요.
Q) 한국 교육과 독일 교육을 비교했을 때, 이런 점은 한국에 도입되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학습 능력이 고려되지 않은 채 나이와 생년월일에 따라 학년을 배정 받고 올라가는 한국에 비해, 독일은 아이들 각각 개별적 능력과 상황에 따라 일 년 늦게 학교에 가는 일도, 한 학년을 다시 다니는 것도, 또 월반을 하는 것도 아주 흔한 일입니다. 대학에 가서도 전공이 맞지 않으면 다시 수능 시험(아비투어)을 치르지 않고도 학과를 바꾸거나 학교를 바꾸는 일이 굉장히 수월한 편이고요. 한국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이 도입되어 각 학생의 상황에 맞게 교육 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위 질문과 답에서 거론되지 않았지만 독일 교육에 대해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제가 한국 교육을 받은 시기는 30년 전이라 요즘의 한국 교육은 잘 모르지만, 저는 나름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이곳에 살면서 한국 교육의 문제점, 독일 교육의 훌륭한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기사를 종종 보는데, 엄밀히 말해서 '독일 교육이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더 좋고, 한국의 교육이 상대적으로 더 큰 문제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독일 역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좋은 점을 발견하기도, 아쉬운 점이 있기도 하니까요.
부모님 한 분 한 분이 타인이나 미디어 등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기준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아이들에게 맡겨준다면, 또 그렇게 하시는 학부모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한국의 좋은 인프라와 교육 시스템까지 더해 아이들에게 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교육 문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인터뷰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세 분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답변을 듣고 정리하면서 그동안 흩어져 있던 '독일 교육'에 대한 많은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세 분의 답변 중에는 제가 이미 깨닫고 있는 것도 있고, 경험한 것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저보다는 훨씬 더 오래 아이들에게 독일 교육을 시키는 입장이라 그런지 깊고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세 분의 이야기 역시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같은 교육 시스템 하에 있다고 하더라도 각자가 받아들이는 방식은 너무 다르니까요.
세 편의 인터뷰 시리즈를 놓치지 않고 보신 독자 분들은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공통적으로 거론된 독일 교육의 장단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독일 교육의 특징이자 장점으로 거론된 것들은 '자기 주도'와 '천천히 학습',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는 환경',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낼 줄 알고, 모두의 생각과 개성이 존중 받는 것이 가능한 독일의 교육 환경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되는데요. 독일 학교에서 아주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하는 '토론식 학습'을 통해 이와 같은 결과물이 얻어진 만큼, 우리도 토론을 일상으로 들여와 '습관적 토론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 분의 인터뷰이가 한 목소리로 지적한 독일 교육 현장의 문제점은 바로 어린 나이에 대학에 진학할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일찍부터 구분한다는 시스템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독일 사회 내에서 늘 문제로 거론되는데,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스템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다만 이러한 교육 시스템은 독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도 있습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실업계를 졸업하고 직업 현장에 뛰어들어도 경제적으로 대학 졸업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고, 삶의 질도 만족스럽기 때문입니다. 또 굳이 공부에 뜻이 없고 흥미가 없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킬 필요가 없다는 부모님들의 인식도 바탕으로 하고 있고요. 어쩌면 이 부분은 앞서 장점으로 거론된 자기 주도나 다양성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하는 주체는 아이이니 부모가 공부에 뜻이 없는 아이를 부모 뜻대로 끌고 갈 수 없고요, 또 각자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분위기도 있는 것이죠.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했던 이유는 <편집자 주>에서도 밝힌 대로 독일 교육 현장에서 우리가 배울 '무언가'를 발견하고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그 또한 독자 한 분 한 분의 '무언가'는 다 다를 겁니다. 다만, 저는 세 번째 인터뷰이였던 백은경 선생님의 마지막 멘트가 꽤 인상적으로 남습니다.
부모님 한 분 한 분이 타인이나 미디어 등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기준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아이들에게 맡겨준다면, 또 그렇게 하시는 학부모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한국의 좋은 인프라와 교육 시스템까지 더해 아이들에게 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교육 문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맞습니다. 어느 나라의 교육이 더 좋으냐, 그래서 우리나라의 문제는 무엇인가를 따지고 드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교육 시스템,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수십 년의 교육 문화는 우리가 바꿀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모님 각자가 자녀 교육의 기준이나 가치관을 달리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큰 것을 바라고 좌절로 끝나버리기 보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실천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