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토론, 그러니까 토론!

그래도 토론, 그러니까 토론!

우리에겐 '토론' 하면 떠오르는 대명사가 된 '100분 토론'이 지난 달 1000회를 맞아 특집 방송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큐멘터리 <그래도 토론>을 보며 다시 한 번 이 시대의 토론의 역할과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는데요, 사회적 담론만이 아닌 일상 토론으로 확대해 그 가치와 필요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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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초, 국내 토론 프로그램의 대명사인 MBC '100분 토론'은 3부작 특집을 방영했습니다. 1999년 10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1000회 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달성하면서, 지난 방송의 역사를 돌아봄과 동시에 이 시대 토론의 역할과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프로그램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토론이 숱한 논제들을 다루며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 토론 문화를 싹 틔웠다는 점에서 '100분 토론'의 가치는 결코 폄하될 수 없을 겁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100분 토론'이 우리에게 '토론이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죄(?)가 많다는 생각도 합니다. 어디까지나 일상 속에서의 토론 습관화를 부르짖는 토론 교육자로서의 아쉬움이니 오해는 없기 바랍니다.)  

3부작 특집의 두 번째는 '100분 토론'의 최장수 진행자였던 손석희 전 앵커가 출연한 다큐멘터리 <그래도 토론> 편이 방송되었는데요, 이 특집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제 머릿속에 맴 돌았던 말은 "그러니까, 토론"이었습니다. 손석희 전 앵커와 현 진행자인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의 대담을 기본 틀로, '100분 토론'이 배출한 많은 스타들이 출연한 이날의 방송은 지난 방송에 대한 각자의 소회 뿐만 아니라 토론이 왜 중요하고, 좋은 토론이란 무엇이며, 그 가치는 어떠한지 등을 담아냈습니다. 많은 명언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중에 인상적이었던 문장들은,

"사회 전체적으로 토론이 죽어가고 있다"-유시민  작가
"그래도 토론은 존재해야 하는 것"-손석희 전 앵커
"귀 기울여 들어주면 다 이야깃거리가 되고 토론 거리가 된다"-김제동 방송인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토론하는 것이다"-유시민  작가

(우리가 토론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 시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볼 수 있다는 믿음" -손석희 전 앵커
"입장이 정해졌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좋은 토론" -정준희 교수
100분 토론 1000회 특집 <그래도 토론>의 한 장면. 방송 화면 캡처. 

첫 두 문장처럼, 어느 때보다 토론이 필요한 시대인 지금, 사회 전반에는 토론이 실종돼 있죠. 분열과 반목, 대화를 거부하고 귀를 닫으며 각자의 입장만 내세우는 극도의 갈등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래도 토론'은 존재해야 하는 것이죠. 어렵더라도 도저히 허물지 못할 벽처럼 느껴지더라도 마주 앉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상대 이야기를 들어야만 조금이라도 거리를 좁힐 수 있을 테니까요.

'100분 토론'에서 다루는 논제들은 주로 사회 거대 담론들이지만 우리 삶 속에서의 토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또 다양한 인간 관계에서도 수많은 갈등과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너는 너, 나는 나'로, 결코 넘어서지 못할 선을 긋고 살아간다면 우리 삶이 어떻게 되겠어요.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벽을 세우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토론'을 통해 서로의 입장과 차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조금씩 나은 지점을 향해 가야 하는 것이죠.

토론이 얼마나 아름다운 변화를 이끌어 내는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데요, 함께 토론 수업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변화가 저에게는 결정적 증거로 다가옵니다.

매 토론 시간마다 1.본격 토론 전 논제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먼저 묻고 2.각각 찬성과 반대의 입장으로 번갈아가며 두 번을 토론한 뒤 3. 마무리 시간에 생각과 입장의 변화를 물어봅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토론을 거치는 동안 생각과 입장의 변화를 경험하는 때가 많아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제가 반대 입장이 돼 토론하다 보니 그 입장도 이해가 돼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 "토론하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어요"라고 까지 합니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처럼 강력하게 입장을 피력하던 아이들이 막상 토론이 다 끝난 후 상대를 이해하는 발언을 할 때면 '이게 토론의 힘이지'라는 자부심이 절로 듭니다.  

최재천 교수님이 <최재천의 공부>에서 우리나라 교육의 최대 약점이 '토론'이라고 지적하며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교육 과정을 마칩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미국 교육에 비해 좋은 점이 참 많아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모자라는 부분이 바로, 학생들이 자기 의견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훈련을 거의 못 받고 정규 교육 과정을 빠져나간다는 점입니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요, 오랜 경험에 비추었을 때 토론 교육의 효과는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태도와 가치관을 만들고 나아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역할까지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유연하고 균형 잡힌 사고, 날카롭지만 따뜻한 비판, 상대에 대한 예의와 배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의견과 시각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분명 달라지겠지요.


1000회 특집이 마무리된 후 '100분 토론'의 현 진행자이자 손석희 전 앵커의 뒤를 이은 두 번째 최장수 진행자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인 정준희 교수가 4월 말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도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가 꽤 많았습니다. 또한, 사회적 담론을 다루는 공적 영역에서의 토론을 염두에 둔 질문과 답을 보면서 우리 삶 속에서의 일상 토론으로 확장해 생각해볼 만한 내용도 있었고요. 인터뷰 기사의 일부를 발췌 해 옮겨 적으며, 5년 째 제가 일상 속 토론을 경험하고 교육하며 깨달은 점을 추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100분 토론 1000회 특집 <그래도 토론>의 한 장면. 방송 화면 캡처. 

<‘100분 토론’ 정준희 “말로 하는 전쟁, 기억에 남는 토론자는…”> 중에서, 2023년 4월 29일자, 한겨레

―토론을 잘 못 하는 유형은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내 편에게 칭찬받으려고 토론하는 유형입니다. 고집스럽고 타협 불가한 태도로 토론에 나서는 사람은 지지하는 편에서 “잘 찔렀어”라는 평가를 받을지는 몰라도 상당히 안 좋은 토론 스타일입니다. 주변에서야 박수받으며 ‘정신 승리’를 끌어낼 수야 있겠지만, 대다수에게 불쾌감을 주는 유형입니다.”

어나더씽킹랩 /

'타협 불가한 태도'는 토론에서 최악이죠. 토론이란 것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마주 앉아 대화하고 타협하기 위한 과정인데 '나만 옳아'라는 태도를 갖고 있다면 애초 토론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토론 교육을 할 때 가장 먼저 지적하고 경계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인데요, 토론은 경쟁이 아니고,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며,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훌륭한 토론자라는 점을 먼저 주지 합니다.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경청'이에요. 경청은 곧 열린 마음을 뜻하고요.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겠다고 하는 토론자라면 결코 자기만 옳다고 고집 부리며 상대를 공격하지 않지요.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합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토론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토론 프로그램이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는 건 오해라고 봅니다. 오히려 차이를 잘 드러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차이를 보며 많은 사람이 어떤 의사 결정을 할지를 결정하게 되는 거죠. 그런 차이가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게 하고, 그렇게 움직인 사람의 힘이 여론의 힘으로 바뀌고, 그 여론이 민주주의 힘이 되는 게 토론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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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토론의 존재 이유 역시 다양성의 확인입니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이런 의견도 있을 수 있구나' '내 생각은 어떠한데 이런 점은 좀 잘못 생각했구나' 하면서 끊임없이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이 바로 토론인 것이죠. 그렇다고 매번 '그래, 너와 나는 다르구나' 하는 차이만 확인하고 끝나는 건 또 아니에요. 김영민 교수님이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토론이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것, 견해가 없으면 토론이 아예 시작될 수도 없다"라고 전제한 뒤 "토론의 목적은 다양성을 무한정 확보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여 좀 더 나은 지점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주고받는 동안 예상치 못했던 결론에 다다르기도 하고 더 창의적인 생각을 이끌어내 조금씩 발전해나가는 게 토론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 하겠습니다.  

―‘토론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조건(~하면)이 아니라 현재형(~하는)으로 살짝 바꿔 ‘토론하는 좋은 친구’가 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이 말은 평소에 토론하는 좋은 친구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상에서 서로한테 감정적으로 자극되지 않은 좋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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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하는 좋은 친구'도 '토론하면 좋은 친구'도 둘 다 가능하다는 것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험을 통해 깨달았어요. 처음부터 친구 사이였던 아이들이 함께 토론하면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더 좋은 친구가 되는 것도 보았고, 친구가 아니었던 아이들도 토론이란 장치를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좋은 친구가 되는 것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친구'의 개념이 꼭 또래에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의 일상 안에 토론이 정착돼 있을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깊어질 뿐만 아니라 갈등이 생겼을 때 역시 감정적으로 치닫지 않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죠.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서 토론은 왜 필요한지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만든 이유는 칼이나 총으로 의사 결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토론은 말로 하는 전쟁입니다. 말의 힘이, 담론의 경쟁력으로, 다수의 경쟁력으로, 의사결정의 경쟁력으로 상승작용 하면서 민주주의는 발전합니다. 첫 단계인 말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게 바로 토론입니다"

어나더씽킹랩 /

공적 영역에서의 토론이 말로 하는 전쟁이자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라면, 사적 영역 즉 일상 토론은 사랑과 관심을 바탕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상대에게 관심이 없다면 굳이 마주 앉아 다른 생각을 주고 받을 이유도 없을 뿐더러 인정도 존중도 하지 않게 되겠죠. 비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유도 근거도 없는 비난과 건강한 비판은 전혀 다른 것인데요, 애초에 사랑이 없다면 굳이 비판에 에너지를 쏟을 이유도 없습니다. 결국 이런 과정들이 쌓이면서 정 반대에 있던 이들조차 조금씩 거리를 좁히게 되고 좀 더 따뜻하고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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