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비테도 강조한 '어른과의 대화', 부모가 그 첫 상대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

칼 비테도 강조한 '어른과의 대화', 부모가 그 첫 상대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

가족 안에서 이뤄지는 토론은 토론의 일상화, 습관화라는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해서인 것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어른과의 대화 경험'이 가져다주는 수많은 장점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anotherthinking
"요즘 베를린은 어때요? 친구한테 들으니 날씨가 엄청 추워졌다고 하던데..."
"어 맞아, 예전보다 겨울 날씨가 더 추워진 것 같아.  그래도 뭐, 이제 우리는 익숙하니까. 너는 어때? 한국 돌아와서 제일 적응하기 힘든 건 뭐였어?"
"음, 주변에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어요. 지금은 완전히 적응했고요. 아무래도 친구들이 없다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학교는 안 힘들었어?"
"학교는 ..."

올해 초, 베를린에서 손님이 오셨을 때의 일입니다.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하고 초대했는데, 남편은 퇴근이 늦어지고 손님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겁니다. 끝마치지 못한 요리를 마저 준비하느라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저는 아이에게 '손님과 대화를 하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여러 번 만난 적 있는 분이라 익숙한 것도 있지만, 베를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호스트의 한 명으로서 주도적으로 손님들과 대화 나누기를 좋아했던 아이는 기꺼이 그 시간을 맡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거실 탁자에 앉자마자 자연스레 베를린 날씨를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더라고요. 이후로도 학교 생활이며, 취미, 베를린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기억, 아이가 어느 식사 자리에서 선보였던 카드 마술 등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대화가 끊김없이 오고 가더라고요. 뒤늦게 손님 한 분이 더 오셨을 때는 아이가 직접 집 구경 가이드를 해주기까지 했고요.

이미지_픽사베이

독일에 사는 3년 반의 기간 동안, 정말 많은 가족 모임과 식사 초대가 있었어요. 우리나라는 주로 밖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헤어지지만 독일은 집에서 만나는 게 보편적이기도 했고, 한국에서 오시는 손님들도 적지 않아 집에 초대해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편안하게 느껴졌죠.

친구네 가족이 놀러와 아이들끼리 따로 노는 시간을 가질 때를 제외하고, 어른들만 초대하는 경우에 아이는 식사와 더불어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늘 어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시간을 보냈어요. 처음엔 아이에게 이런저런 질문이 쏟아지지만 이내 대화는 어른들 중심으로 돌아갈 때가 많았는데도 말이죠.

아이가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그런 상황이 반복됐는데요, 아이의 태도는 한결 같았어요. 대화가 재미없고 어렵다고 혼자 방으로 들어가 놀거나 지루하다는 티를 낸 적이 없습니다. 엄마 입장에서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신경 쓰였던 것도 사실인데, 확실히 기억나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가 오갈 때도 아이의 눈은 초롱초롱 했다는 거예요.

때로는 아이가 중간 중간 끼어들어 물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 우리 부부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어른들이 아이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었습니다.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있거나 혹은 중간에 끼어들어 질문하는 타이밍을 놓쳤을 경우에는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뒤 따로 묻기도 했어요. "아까 그 얘기가 무슨 말이었어?" 하고요.

그런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아이는 점점 대화를 주도하기도 하고, 분위기를 더 즐겁게 만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가령 피아노 연주나 카드 마술 같은-을 준비하기까지 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식사 준비로 바쁠 때면 먼저 손님을 맞고 가벼운 대화를 시작하며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고요.

한국에 돌아온 후 그때처럼 손님을 집에 초대하는 일은 드물지만, 지난 번처럼 어쩌다 손님이 오시면 여지없이 대화에 동참합니다. 인사만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는 일은 절대로 없죠. 심지어 제가 친한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도 동행하고 싶어할 정도에요. 어른들과의 대화가 재밌기 때문입니다.


무려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 받으며 자녀 교육서의 바이블이자 고전으로 꼽히는 칼 비테의 책에서도 '어른들과의 대화 경험'이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칼 비테는 자녀에게 각 분야의 전문가나 학자와의 대화 경험을 주려고 노력했는가 하면, 집안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게 했다고 합니다. 자녀의 견문을 넓히고 세계를 확장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대인 관계의 경험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집에 초대할 학자나 전문가가 없다'는 실망이나 좌절이 아니라 '어른들과의 대화'가 중요하고 우리가 '그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지_픽사베이

부모는 아이가 만나고 경험하는 첫 번째 어른이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대화하는 '어른'입니다.

따라서 부모가 어릴 때부터 아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대화 경험을 쌓아가느냐에 따라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집 아이가 어린 나이일 때부터 집에 오는 어른 손님들과 대화로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던 건, 그 이전부터 어떤 대화에서든 아이를 배제시키지 않았던 저와 남편의 태도가 한 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와 말이 통하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집에서는 "너는 몰라도 돼"라는 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말이었거든요.

아이 눈높이와 수준에 맞춘 대화로 제한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이가 어른의 관심사를 궁금해 하면, 100% 이해가 어렵더라도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설명해주었고, 아이와 관련된 사소한 일들까지 상의하며 의견을 묻고 결정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어쩌면 아이는 그때부터 이미 어른과의 대화 경험이 익숙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학자와 전문가를 찾아가거나 집에 초청하는 등, 보통의 부모가 하기 어려운 적극적 방식이 가능했던 칼 비테도 '어른과의 대화 경험'의 시작은 가족 안에서 였습니다. 자녀와 평소에 활발하게 대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 회의라는 장치를 통해 다양한 토론을 벌인 것인데요,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전문가나 학자를 만나는, 추측건대 난이도가 제법 있었을 대화 경험도 가능할 수 있었던 거겠죠. 칼 비테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 이뤄진 대화가 가져온 힘에 대해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의사소통은 부모와 아이 사이를 더욱 가깝게 만들 뿐더러  이 자체로도 아이에게 좋은 교육이 된다. 또한 아이는 부모의 말과 행동을 모방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이고 현명하게 대처할 것이다.

칼은 네 살 때부터 가족회의에 참여해 부모와 하인들과 함께 문제를 토론했다. 비록 어른들의 말을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얘기를 나누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가족 회의에서는 중요하지만 그냥 지나치기 쉬운 문제들도 다뤄졌는데 일례로 아내는 자신이 빨래를 하거나 옷을 널 때 칼이 도와주면 기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족회의 때 아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은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가 부모를 믿고 교육에 협조하는데 도움이 된다."

-<칼 비테의 자녀교육법>, 칼 비테 지음, 베이직북스

이미지_픽사베이

어른들과의 대화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칼 비테의 말을 토대로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과의 대화가 아이의 성장에 끼치는 영향을 몇 가지로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 어른들을 모방하며 자연스레 많은 대화의 스킬을 습득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비롯해 어른들을 모방합니다. 이런 모방 능력은 발달심리학적으로도 검증된 바 있죠. 어른들이 대화를 지켜보면서 아이들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지, 어떤 표현이 효과적인지, 나아가 적절한 행동과 유머 감각 등 많은 대화의 기술을 보고 배웁니다. 이 말인 즉, 긍정적인 면 뿐 아니라 부정적인 면까지 모방할 수 있다는 뜻이 되는데요, 따라서 아이를 대화에 참여 시킬 때는 어른들이 좋은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겠죠?

  • 경청하는 힘을 키우고 이해력을 높입니다.

어른들과의 대화는 아이들 또래에서 이뤄지는 것에 비해 수준이 높고 그 주제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아이는 온 힘을 다해 잘 듣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죠. 그 자체고 경청하는 태도를 기르고 천천히 이해의 수준을 높여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어른들이 쓰는 표현, 어휘 같은 것도 자연스레 배우게 될 테고요. 물론 어른들도 아이의 말을 경청해주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경청의 좋은 모범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칼 비테는 "부모는 아이에게 자신의 말만 경청하고 무슨 일이건 자신과 상의해서 의견을 구하라고 강요하지 말고, 먼저 경청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본인도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해야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교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 아이의 세계를 넓히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아만다 구머는 "아이들을 어른의 대화에 참여시키는 것은 굉장히 이상적"이라면서 "아이들은 단순히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른들의 대화는 아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상을 간접 경험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아이는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다양한 지적 호기심이 싹트며 내면에서 질문이 생겨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각 근육을 키우고 두뇌를 깨우는 자극을 받게 되는 것이죠.

이를 위해 가끔은 '의도된' 어른들의 대화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주제가 있을 때 일부러 둘이 즐겁게 대화하는 분위기를 만들곤 하는데요, 그럴 때면 아이가 어김없이 관심을 드러내며 대화에 참여합니다.

  • 자존감을 높이고 대인 관계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어른들과의 대화 경험이 쌓이다 보면 아이들은 점점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아이가 자신도 이 대화에서 대등한 존재라고 인식하고 다른 어른들로부터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아이는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뿐만 아니라 후에 어떤 대인 관계든 두려움 없이 시작하고 관계를 지속해나갈 수 있는 힘과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이미지_픽사베이

개인적으로 또 하나 추천하고 싶은 '어른과의 대화' 방식은 '아이에게 조언 구하기'입니다.  

대화라는 형식을 통해, 인터뷰를 통해, 또 5년 째 지속되고 있는 '엄마표 토론'을 통해 아이와 대등한 입장에서 적극적 소통을 해오다 보니 이제는 한 단계 나아가 아이에게 고민과 문제를 상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제 문제를 가볍게 듣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한 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이야기해주곤 하는데요, 매번 느끼지만 때론 아이의 지혜가 어른의 그것보다 훨씬 현명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상담'이 지속되면서 이제는 정말로 아이에게 지혜를 구하고 싶어 물을 때도 많은데요, "아이는 어른의 일에 참여했을 때 부모를 더 잘 이해하고 적극성을 발휘해서 부모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다"고 칼 비테가 말한 것처럼 아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것 자체를 기뻐하고, 진심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과정이 아이와 저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아이와 주제의 한계 없이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얻게 된 또 다른 이점이 있다면, 더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끊임없게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대화를 통해 부모의 가치관과 태도가 아이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한 강의에서 청중 한 분이 비슷한 맥락의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대화하고 토론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부모의 가치관을 아이에게 주입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고민될 때가 많다고 했죠. 그때 저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많이 생각하고 공부하고 좋은 태도와 가치관을 지닌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1 이달에 읽은
무료 콘텐츠의 수

이달의 무료 콘텐츠를 모두 읽으셨네요.

유료 구독하시면 갯수 제한 없이 마음껏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