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책 읽기와 어른의 책 읽기...독서에 관해 지금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어린이의 책 읽기와 어른의 책 읽기...독서에 관해 지금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아이들의 책 읽기와 어른의 책 읽기는 달라야 합니다. 어릴 때의 독서는 무조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일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생 책을 가까이하며 살 수 있게 되죠. 반면 어른의 독서는 때론 치열하다 싶을 만큼 꼭 필요한 공부의 하나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정 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anotherthinking
"엄마는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하면서 왜 맨날 책을 읽고 있어?"

며칠 전 아이가 저를 보고 말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오호, 잘됐다. 드디어 아이의 독서와 어른의 독서가 어떻게 다른지, 달라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왔구나!'라고 말이죠.

저는 엄마표 토론의 매개로 가장 흔한 독서 토론을 권장하지 않는 편입니다. 개인의 경험과 더불어 독서(특히 어린이의 독서!)가 지향해야 하는 지점에 대한 생각 때문입니다.

우선 개인의 경험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이와 공식적인 '엄마표 토론' 수업을 시작했던 2018년, 저 역시 맨 처음 떠올린 게 '독서 토론'이었습니다. 당시 아이는 여가 시간의 상당 부분을 책 읽기에  할애할 정도로 독서를 사랑하고 즐기는 아이었던 데다 저 또한 늘 아이가 읽은 책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죠.

그동안 우리가 나누던 책 대화는 주로 몇 가지 패턴이 있었습니다.

1.아이가 읽는 책이 제가 읽었던 책이라면 "엄마도 그 책 진짜 재밌게 읽었는데! 넌 어땠어?"라고 묻는 것으로 시작해 서로 재밌는 장면, 다른 감상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

2.아이가 책 읽다가 갑자기 크게 웃거나 표정의 변화가 읽히면 제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왜? 무슨 내용인데? 너무 궁금하다!"라고 호기심을 보이며 아이가 책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는 방식.

3.제가 책을 읽고 있을 때 아이가 무슨 책인지 관심을 보이면 책 내용을 알려주며 흥미로운 부분을 소개하는 방식. 이 경우 아이가 '같이 읽자'로 제안해서 함께 읽기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로의 호기심과 관심으로 시작되는 책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그 끝은 전혀 다른 주제 대화로 전개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책을 매개로 한 대화는 그토록 즐거웠는데 독서 토론은 쉽지도 재밌지도 않은 겁니다.  토론할 책을 미리 정하고 알려준다는 것 외에는(심지어 이미 읽었던 책이었는데도 말이죠) 책을 중심에 둔 기존의 대화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는데도 그냥 책 읽기와 토론을 위한 책 읽기는 마음 가짐부터가 달랐던 거죠. 토론을 이끌어가야 하는 입장이었던 저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질문들을 하면 좋을까'를 생각해야만 하는 부담이 컸고, 아이 역시 수업을 위한 책 읽기로 정독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던 것 같아요.

몇 번을 그렇게 진행하다가 안 되겠다 싶었을 무렵 아이에게 물어봤더니 역시나 '책을 억지로 읽어야 해서 재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차 싶었죠. 책이라면 장르 불문하고 모두 좋아하는 저도 심지어 쉬운 어린이용 책이 그렇게 재밌게 읽히지 않았으니 아이라고 달랐을까요. 그날로 독서 토론을 그만두고 평소 우리가 하던대로 책 읽다가 말을 걸고, 재밌는 부분 공유하고, 책 추천도 해주고, 공통적으로 읽은 책에 대해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노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돌아왔어요.

대신 토론은 '뉴스'를 소재로 활용했습니다. 매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뉴스 체크하는 것을 일처럼 했던 저는 그날 읽은 재밌는 뉴스, 새로운 소식, 신기한 발견, 감동적인 사연 같은 것들을 아이에게 브리핑하듯 알려주고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그걸 토론 방식으로 심화한 겁니다. 다행히 뉴스 읽고 토론은 책 읽고 토론과는 달랐어요. 대체로 내용이 짧았기 때문에 아이에게 미리 읽어오라고 과제처럼 내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같이 읽고 어려운 부분은 설명해주고 내용에 대해서 궁금한 건 질문하고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했죠.

독서 토론을 그만두니 아이는 원래대로 읽고 싶은 책을 맘껏 골라 읽고, 시리즈나 속편 등을 연달아 읽고, 읽은 책을 계속 반복해 읽는 등 저의 간섭이 전혀 없는 채로 재밌게 읽고 신나게 책과 놀았습니다. 제가 해줄 것이라곤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눈빛을 반짝거리며 '진짜 궁금해 죽겠다는 듯' 질문 세례를 퍼붓고 때론 그 이야기의 맥락과 연결된 다른 책, 같은 장르의 재밌는 책을 추천해주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몇 시간이고 책에 대한 이야기로 꽃 피울 수 있는 수준으로 책 대화가 재밌게 인식되도록 하는 것, 그 첫 번째는 다름 아닌 책 읽기 자체가 즐겁고 신나는 일이어야 하는 거죠.(*만일 이런 방식으로 독서 토론이 잘 진행될 수만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 그렇게 하고 계신 분들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우리집 아이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자세로든 책 읽기에 몰두하곤 했습니다. 사진 크레딧_어나더씽킹랩

어린이의 독서는...

그렇습니다. 어린이의 독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재밌어서 읽고, 그래서 몇 번을 반복하고, 그걸 엄마와 아빠와 공유하고 싶어서 신나게 이야기해주고, 아이의 얘기에 귀 쫑긋 세우고 들어주는 부모의 태도가 있고, 그 태도를 보며 아이는 더 즐거워지고... 그렇게 책을 친구 삼아 크는 아이들은 자라는 내내 책 읽으라는 잔소리가 전혀 필요없어 집니다. 누구보다 본인이 책이 얼마나 재밌는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죠.

이제는 많은 부모님들이 알고 있는 '독서권리장전'이라고 있습니다. 프랑스 작가 다니엘 베다크가 쓴 <소설처럼>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내용인데  독서에 관한 열 가지 권리가 나와요. 그 중에는 '책을 읽지 않을 권리',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군데 군데 골라 읽을 권리'가 있습니다. 모두 독서를 '토론'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라면 절대 누릴 수 없는 권리들입니다. 읽지 않고 토론은 당연 불가하고, 끝까지 읽지 않는 것도 군데 군데 골라 읽는 것도 허락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방점을 찍고 싶은 권리는 바로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아주 재밌는 책을 읽는데 그걸 읽고 나서 반드시 어떤 질문들에 답해야 하고 토론을 해야만 한다고 하면 그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요. 진짜 좋은 책을 읽고 나서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어질 때도 있지만 반대로 오롯이 그 감정과 떠오르는 상념들을 혼자 간직하고 싶을 때도 분명 있잖아요.

저는 아이들의 독서야말로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를 지켜줄 때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이 주는 기쁨은 정말 위대합니다. 그 즐거움과 기쁨을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겨질 만큼 책이 주는 행복과 위로, 지혜와 성찰은 측정 불가입니다. 내 아이가 그렇게 평생을 책을 반려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의 책 읽기는 무조건 즐거워야만 합니다.

반면 어른의 독서는 어때야 할까요.

개인적 경험을 고백하자면 20대,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설, 에세이 등을 주로 읽었어요. 가끔 자기계발 관련 책도 읽었고요. 말 그대로 '취미가 독서'라고 할 수 있는 류의 책들입니다. 그런데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독서의 세계가 훨씬 넓어졌어요. 인문학과 철학 서적은 가장 좋아하는 류이고, 과학 서적도 좋아합니다. 전혀 모르는 낯선 분야의 책을 일부러 찾아보기도 하고,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다 읽지 못한다 해도 일단 시작하고 보는 용기도 생겼습니다. 전에 읽었던 소설이나 에세이 중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을 반복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나 궁금한 작가의 소설을 챙겨 읽기도 하지만 그저 '말랑말랑한' 일상 에세이는 전혀 읽지 않아요. 독서를 더 이상 취미로 하지 않는 겁니다.

40대가 되면서 독서는 더 치열해졌습니다. 제가 늘 아이에게 "엄마는 세기의 명작이라 불리는 책들을 읽지 않았을 때 부끄럽다고 느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 말은 너무나 진심입니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책을 열심히 읽습니다. 틈만 나면 어떤 책들이 새로 나왔나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호기심이 드는 책들은 여러 권 장바구니에 담아 놓거나 구매합니다. 늘 읽지 않은 책 몇 권은 집안에 '미리' 비치를 해두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상태이기까지 하죠. 한때는 저 스스로도 '왜 이렇게 책 읽기를 강박적으로 생각할까'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준 최재천 교수님의 책 일부를 소개합니다.

"독서는 일이어야만 합니다. 독서는 빡세게 하는 겁니다. (중략) 우리나라 도서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은 마음을 살살 건드리는 책 혹은 자기계발서입니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를 읽고 성공했다는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중략) 우리는 기획서를 작성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치밀하게 기획해서 공략해야죠. 한 번도 배우지 않은 분야의 책을 공략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중략) 독서량이 늘어날수록 완전 새로운 분야의 책을 접할 때, 전보다 덜 힘들어하는 자신을 발견할 거예요. (중략) 학문은 모두 연결되어 있잖아요.(중략)
100세 시대에 20대 초에 배운 지식으로 수십 년 우려먹기가 불가능합니다. 학교를 다시 들어갈 게 아니라면, 결국 책을 보면서 새로운 분야에 진입해야 하죠. 취미 독서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중략) 어른이 배우고 훈련받을 곳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지금, 결국 책밖에 없어요. 취미 독서는 아예 깨끗이 잊으세요. 독서는 일입니다."

-<최재천의 공부> '3부 공부의 양분' 중에서-

위 문장들에서 저는 해방감을 얻었습니다. 저의 '강박적'인 독서가 어쩌면 '어른의 독서'로서는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자, 한번 정리해볼까요. 어른에게 독서는 배움의 또 다른 과정이어야 합니다. 취미가 아니라 학교 다니듯이 열심히 찾아 읽고 배워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어른들 중엔 책을 읽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읽는다 해도 최재천 교수님 말씀처럼 '말랑말랑한' 책들을 선호하고요.

어른들의 현저히 부족한 독서량에는 시간의 문제도 작용하겠지만 저는 그보다 독서에 대한 좋은 경험과 기억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어렸을 때의 경험과 연결되는데요, 어린 시절 독서는 곧 공부의 연장선상에 있었고, 따라서 대학 입시까지 죽어라 공부하고 대학에 입학하면 '이제 해방이다!' 했던 것처럼 독서 역시 공부로서의 책 읽기를 졸업하고 나면 (특히나) 공부하듯 읽어야 하는 인문학, 철학 같은 책들을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릴 때 책 읽기가 부담이 아닌, 학습이 아닌 자발적인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좀 다르지 않을까요. 책을 오래 읽을 수 있는 힘은 책을 좋아하고 즐거운 것으로 간직하는 데서 시작하니까요. 그건 곧 평생을 걸쳐 해야 할 자기 성장의 너무나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한데 왜 우리는 반대로 하고 있을까요. 어릴 때 독서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으로, 때로는 '시켜서' 하는 것으로, 공부로 학습으로 인지하게 하고 그러다 보니 어릴 때 책을 그렇게 좋아하던 아이들이 더 재밌는 것들이 생겨나면 바로 책을 놓고 말죠.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재미를 추구하는 '취미형' 독서를 하려고 합니다. 정작 다양한 분야의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 세상 많은 것들을 공부하고 깨닫고 적용하고 습득해야 할 시기에 말이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제가 아이에게 해준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너는 책을 왜 읽어? ('재밌어서'라는 답을 할 줄 알고 물었고, 예상대로 답하더군요) 어릴 때는 엄마도 너처럼 책 읽는 게 그냥 재밌고 좋아서 했었어.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좀 달라졌지. 엄마한테 독서는 공부야. 세상에는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잖아. 그런데 엄마는 지금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또 예전에 학교 다닐 때 공부한 것들 중에도 업데이트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아. 책에는 모든 경험, 지식, 방법, 현명한 지혜까지 다 들어있잖아. 그러니까 엄마는 아무리 바빠도 책을 열심히 읽을 수밖에 없어. 네가 학생 신분으로 학교에 열심히 다니고 공부를 성실하게 하는 것처럼 말야. 그래서 엄마는 네가 책을 좋아하는 그 마음이 참 예뻐. 지금처럼 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간직하면 어른이 된 후에 엄마처럼 공부로 독서해야 될 때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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