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식, 한국식과 독일식 둘 다 경험해봤더니

초등학교 입학식, 한국식과 독일식 둘 다 경험해봤더니

입학 시즌인 3월만 되면 독일에서 경험한 초등학교 입학식 풍경이 떠오릅니다. 6개월 차이를 두고 한국식과 독일식을 다 경험해본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입학식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anotherthinking

3월이 시작되면서 가장 긴장한 분들이 있죠. 바로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 시킨 부모님들입니다. 그 시기를 이미 겪어본 입장에서는 '지나고 보니 진짜 별 것 아닌 일'이지만 현실로 닥친 분들에게는 매일이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막상 보면 아이들은 잘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님들 걱정이 더 큰 것도 같아요.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 시키는 부모 입장에서 그토록 걱정과 불안이 있는 까닭은 아무래도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일 겁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보육' 중심이었다면 학교는 긴 학습 기간의 시작이니까요. 어느새 다 커서 학교를 가는구나, 하는 대견한 마음 한 켠에는 적어도 12년이라는 기나긴 '공부 레이스'를 앞둔 아이가 안쓰럽게 느껴지는 마음도 분명 있을 테고요.

돌아보면 부모님들을 긴장시키는 데는 '입학식 풍경'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과 독일의 입학식을 모두 경험해 본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그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지죠.  

우리집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식을 두 번 경험했습니다.

2017년 3월,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아이는 그 해 8월 독일 베를린에서 1학년으로 '다시' 입학을 했습니다. 독일이 가을 학기제인 까닭에 한국에서 1학년 1학기를 마친 아이가 또 다시 입학식을 경험하게 된 거죠.

2017년 8월 초, 베를린 살이를 시작한 아이는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8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입학식이 잡혀 있었는데, 들뜬 마음이라곤 전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이미 한 번의 입학식을 경험하기도 했고, 어디든 입학식이 거기서 거기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보다는 오히려 입학식 당일부터 친구며 선생님이며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른 학교 환경으로 인해 독일 이사 후 시작된 아이의 틱 증상이 더 심해지는 건 아닐지 초 긴장 상태였습니다.

입학식 당일 아침, 집을 나서는 아이는 다행히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팔 할이 슐튜테 덕분이었어요.

고깔 모양의 슐튜테들. 사진_어나더씽킹랩

그로부터 보름 전, 아이의 독일 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교 담당자와 나눈 마지막 이메일에서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슐튜테, 잊지 마시고요!”

슐튜테? 깐깐하기 이를 데 없는 독일 살이를 시작한 후 여러 난관에 봉착하고 해결해 나가느라 입학에 관한 디테일한 사항을 챙기지 못하고 있었던 저는 독일 초등학교 입학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인 '슐튜테'를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네모난 검색창에 ‘독일 슐튜테’라고 검색하니 독일에서 초등학교 입학식을 경험해본 엄마들의 후기가 쏟아지더군요. 입학식에 들고 갈 슐튜테를 사지 않고 직접 만들었다느니 슐튜테 안에 넣을 사탕과 과자,  학용품과 선물을 샀다느니 하는 등의 이야기와 함께, 베를린 거리 곳곳, 백화점이나 쇼핑몰 곳곳에서 마주쳤던 거대한 고깔 모양의 종이로 된 콘의 사진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게 슐튜테라는 것이구나.' 학교에 첫 입학하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나 필요한 학용품들을 그 안에 담아 선물로 준다니,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긴장되는 ‘입학식’을 조금은 즐겁게 만드는 좋은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학식 당일, 학교에 가니 아이들 모두 커다란 슐튜테를 하나씩 들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도 자신이 직접 고른 스타워즈 사진이 프린트 된 커다란 슐튜테와 함께였고요. 기념촬영을 할 때도, 강당에서 호명을 받고 무대 위에 오를 때도, 각자의 교실 투어를 갈 때도 아이들은 종일 슐튜테와 함께했습니다. 식이 끝나고 각자의 교실에 모여든 아이들은 슐튜테 속에 들어있던 사탕과 과자, 초콜릿 등을 꺼내,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며 수줍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어요. 달콤한 것들이 가득 들어있는 슐튜테를 들고 있다는 것 자체로, 아이들은 입학식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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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지금 입학식에 와 있는 것인지 축제에 와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입학식 현장은 떠들썩하고 유쾌하기만 했습니다. 선배 학년 아이들의 서툴지만 진심 어린 환영 무대와, 남다른 비주얼 자체로 흥이 폭발케 하는 음악 선생님의 특별 공연,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교장선생님의 농담까지 더해져 강당에 모여있던 모두는 이 날이 다소 긴장된 입학식이란 사실을 잊은 듯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입학식은 곧 긴장되는 순간이란 생각 자체가 저의 편견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지_픽사베이

그로부터 6개월 전 경험한, 한국에서의 입학식이 비교 대상으로 떠오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경험한 입학식의 기억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잔뜩 긴장한 채로 학교에 갔던 것, 각자 이름표를 달고 국민의례부터 선생님 소개, 교장 선생님 말씀, 학교 위원 소개 등으로 이어지는 지루한 순서를 끝내고 교실로 갔다는 것, 그나마 담임 선생님이 준비해 놓으신 백설기 떡을 나누어주던 순간에 아이들이 좋아했다는 것 정도였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불만이었던 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그러할 테고, 우리가 경험했고 들어왔던 입학식의 보편적 풍경이 그러했으니까요. 다만, 입학식 자체의 분위기만으로도 ‘이제 너희들은 유치원생이 아니야’ ‘학교는 노는 곳이 아니야’ ‘규칙과 규율은 중요해’ 등의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전달 받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습니다. 여전히 유치원생 티를 벗지 못한 아이들이 입학식 한 장면으로 인해 혹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건 아닌지, 안 그래도 달라진 환경이 낯설 아이들에게 더 큰 긴장과 부담을 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될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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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튜테 이미지로 대표되는 독일학교에서의 입학식은 진정 신입생, 재학생, 학부모와 친인척, 교사들이 함께하는 축제였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18세기 후반부터 슐튜테 전통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전쟁과 같은 역사 속 위기에도 이 전통은 계속 유지됐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슐튜테는 단지 경건하고 긴장되고 지루할 수 있는 입학식을 위한 ‘달콤한 위로’의 의미가 아니라, 아이와 온 가족이 새 출발하는 날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죠. 아닌 게 아니라, 부모와 형제자매 정도만 참석한 동양인 가족들과 달리, 독일 가족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며 이모, 고모, 삼촌으로 추정되는 친인척들이 그것도 잔뜩 차려 입고 입학식에 참석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집 아이가 귀한 아이인가 보다’ 했는데, 모두가 다같이 새 출발을 축하하고 축복하고 응원하며 행복한 축제로 기억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독일식’이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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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마냥 즐겁던 입학식 분위기 덕분에, 피부색도 머리색도 다른 낯선 친구들이 건네는 초콜릿과 사탕 덕분에 아이는 첫날부터 학교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입학식 후 소감을 묻는 내게 아이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처음엔 좀 떨렸는데 나중엔 너무 재밌었어. 엄마, 근데 번개 머리 음악 선생님 너무 재밌지? 아까 교실에서는 어떤 애가 나한테 사탕도 줬어. 우리 친구 된 거 맞지? 선생님도 너무 친절해. 그리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이어가는 아이를 보면서 앞으로도 학교 생활이, 교실이 즐거움으로 가득하겠구나, 싶은 마음에 진심으로 안도했고 감사했죠.

아이는 생각보다 걱정보다 학교 생활에 잘 적응했습니다. 보통 한 달은 울면서 학교에 간다던 얘기도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았을 정도였죠. 내내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주던 틱 증상도 학교 입학과 함께 마법처럼 사라졌고요.

이미지_픽사베이

매해 입학 시즌인 3월이 되면, 독일에서 겪은 축제 같던 입학식이 생각납니다. 최근의 한국 초등학교 입학식을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아이를 입식시킨 지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별반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의 입학식은 왜 독일 같을 수 없을까, 좀 더 재밌고 유쾌하고 친절할 수는 없을까, '이제부터 달라져야 해!'라는 압박과 부담이 아니라  '이제부터 너무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될 거야'이라는 기대감을 주는 방식이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러면 아이도 부모님들도 좀 더 행복한 출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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