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의대생이 말하는 독일 교실의 토론 교육
2022 지자체 선거를 앞둔 시기, 전국 교육감 후보들 사이에 ‘IB 도입 공약’이 화두가 됐습니다. IB(국제바칼로레아)는 1968년 시작돼 2021년 1월 기준, 전세계 161개국에서 5464개교가 채택한 국제 공통 교육과정으로 ‘토론식 교육’이 중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토론 교육의 중요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데요, 토론 강국인 독일 교실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토론이 이뤄지는지 인터뷰를 통해 들어봅니다.
독일은 토론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토론은 독일 교육 전반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토론이란 개념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생각과 의견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익숙해진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가 본격적인 논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와도 아주 편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리 되는 것은 아닐 텐데, 자연스러운 토론 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궁금했던 저는 이에 대해 몇 명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답변은 겹치는 지점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것이 토론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토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는 것, 따라서 본격적인 토론을 할 나이가 되면 다들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잘한다는 것, 토론이라는 방식이 아니면 학교 수업 자체가 아예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 이렇게 습관이 들여진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도 누구를 만나든 토론이 가능하고 그 자체를 즐긴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유익했던 인터뷰 한 편을 공개하는 것으로 독일 교실에서 이뤄지는 토론 교육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인터뷰 당시 의대 진학을 앞두고 있었고, 현재는 의대에 다니고 있는 청년이 인터뷰이로 부모님은 한국분이지만 독일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 받은 교포 2세 입니다.
Q. 한국 교육도 잠깐 경험해 본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독일과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었나요?
"가장 다르다고 느낀 건 한국에서는 공부할 때 주로 외워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독일 학교에서는 선생님,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토론을 많이 하거든요. 시험을 볼 때도 객관식 시험이 거의 없어요. 정답을 찾는 시험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과목이 에세이를 통해 자기 '생각'을 쓰는 시험을 보죠."
Q. 에세이로 점수를 매긴다면 선생님들의 주관이 개입할 텐데 결과에 다들 승복하나요?
"충분히 주관적일 수 있어요. 실제로 점수를 둘러싸고 선생님과 논쟁을 벌일 때도 있고요. 하지만 대화를 하면서 결국은 대부분 합의점을 찾고 끝나요. 바로 이 내용을 가지고 어떤 한국인과 이야기해 본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만일 모든 과목을 에세이로 시험을 본다면 다투다가 법정까지 가는 일이 많을 것 같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더라고요."
Q.왜 독일에선 논쟁을 통한 해결이 가능한데 한국은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요?
"항상 그래 왔거든요. 공부만이 아니라 모든 문제에 대해서 토의하고 토론하면서 해결하는 방식을 경험해 왔으니까요. 그럴 때는 대상이 선생님이든 또래 친구들이든 똑같이 평등한 관계가 되는 거예요.
몇 년 전에 필리핀에서 열린 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 캠프에 한국인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면 다들 알았다고만 하고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더라고요. 그게 뭔가 아주 불공평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저는 그게 너무 이상했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자기 생각과 의견을 말해야 한다고 배워 왔거든요. 제가 항상 제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며 토론하는 분위기로 만드니 처음에는 선생님도 좀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나중에는 이해해 주시더군요. 토론이라는 것이 싸우려는 목적이 아니라 답이나 결론을 찾기 위해 대화를 하자는 것이니까요."
Q.아주 어릴 때부터 토론 학습이 된 거군요?
"토론 자체를 배우는 게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게 된 거죠. 이를테면 저학년일 때는 학교 생활 자체가 다 어떻게 보면 토론의 과정이에요. 친구들과 다툼이 있을 때도 선생님은 직접 개입해서 해결하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게 만들죠.
학년이 올라가면 교과에서 본격적으로 토론을 하는데요, 특히 세계 2차 대전이나 홀로코스트 등 역사 관련한 주제와 문제 의식에 대해 자신만의 의견과 가치관을 만들어가도록 엄청나게 토론을 많이 해요. 토론의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각자 자기 주관을 만들어가도록 자연스럽게 학습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Q.저학년과 고학년이 어떻게 다른지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보통 독일에서는 4학년 정도까지 학습을 엄청 중요하게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발표 수업은 정말 많아요. 과목마다 관련 정보가 담긴 페이퍼 등을 받아서 혼자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해요. 발표의 방향 등에 대해서 부모님과 대화할 때도 있지만 결과물은 온전히 혼자 만들어요. 수업 시간에 발표가 끝나면 미리 듣고 있던 친구들은 '의무적으로' 모두 피드백을 주어야만 해요. 어떤 점이 좋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지 등을 이야기해요. 그렇기 때문에 친구의 발표를 잘 들어야 하고 이런 연습을 통해 잘 듣는 능력도 길러지는 것 같아요.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훈련이 될 수밖에 없어요.
고학년 특히 김나지움(대학 입학을 목표로 한 인문계 중등과정)에 입학하고 나면 본격 토론 수업이 진행됩니다. 거의 전 과목에서 토론을 하지만 역사와 독일어, 영어 같은 과목에서 토론이 많이 이뤄져요. 토론이 적용되는 수업들의 공통점은 토론을 통해 관련 배경지식을 풍부하게 터득하고 깊이 있는 오피니언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에요. 토론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또 한 가지는 서로의 의견이 맞고 틀리다가 아니라 왜 그렇게 '다른지'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거죠."
Q.토론의 과정을 거치면 비판적 사고가 가능하겠군요.
"당연히 그렇죠. 독일에서는 모든 과목에서 시험을 볼 때 에세이를 쓰는데 에세이라는 게 팩트를 쓰는 게 아니라 주제에 대한 자기 의견을 써야 하는 것이거든요. 보다 중요한 건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근거가 무엇인지 정확히 써야 해요. 그 논리를 펼친 다음에 '그래서 내 생각은 이러이러하다'가 되어야 하는 식이죠. 다시 말해서 에세이를 쓰는 건 글로 쓰는 <혼자 하는 토론>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나의 결론을 내기까지 그 주제에 대한 어떤 다양한 논쟁이 있는지, 그 논쟁들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서술한 후에 나만의 오피니언이 결론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Q.에세이의 주제는 주로 어떤 것들인가요?
"보통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 많아요. 독일은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역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는데요. 그렇다고 해도 옛날 이야기로만 끝나지는 않아요. 과거가 현재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의미가 있는지, 동서독의 경제적 차이의 발생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 등 현재와 관련해서 생각해 보도록 만듭니다.
사회, 문화 등 시사적인 이슈도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최근의 이슈를 다룬 뉴스 기사를 읽은 뒤 본인의 가치관이 반영된 의견을 쓰게 한다거나,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빅 토픽에 대한 생각을 서술하게 하는 경우도 있죠. 특히 11학년 이상이 되면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중에 '폴리티컬 사이언스' 혹은 '소셜 사이언스'라는 과목이 생기거든요. 그 수업들을 통해서 현 세대의 문제점이라든가 정치,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배우게 됩니다."
Q.뉴스 기사 등이 중요한 교재가 되고 있군요. 그럼 필독서 같은 건 없나요?
"필독서도 있어요. 한 학년에 한두 권 정도? 굉장히 클래식한 책들이고요. 이 책들을 읽을 때는 스토리가 중요하다기보다 분석하면서 읽는 게 훨씬 중요해요. 시험을 볼 때는 보통 이런 책들 중에 한두 페이지를 주고 그 페이지 자체를 분석해서 글을 쓰게 하기도 해요."
Q.끝으로 독일 교육의 가장 큰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토론을 통해 자기 의견을 만들어간다는 겁니다. 어릴 때는 친구들하고 의견 차가 있을 때 싸우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소리만 지르는 게 솔루션이 아니라는 걸 자연스레 깨닫게 돼요.
요즘 저는 친구들하고 사회 이슈나 정치 이야기도 많이 나누는데 세상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기본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에 어떤 주제든 토론이 가능해요. 내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의견을 들으면서 같이 대화를 하는 거잖아요. 심하게 논쟁하다 보면 마치 싸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다음 날 우리는 또 웃으면서 만나고 그 이야기를 다시 진지하게 이어서 할 수도 있어요. 각자의 다른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요. 내 의견이나 생각이 다 옳을 수 없잖아요. 토론할 때 친구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생각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상황이라고 해도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저 친구 의견이 맞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많아요. 친구, 친구 부모님, 선생님, 심지어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과 그 어떤 주제로도 토론이 가능한 문화, 그게 독일의 강점인 것 같아요. 자기 가치관, 의견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 위 글은 필자의 저서 <생각이 자라는 아이>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