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쓰캥거루 국제수학경시대회와 독일 수학

매쓰캥거루 국제수학경시대회와 독일 수학

얼마 전 3월 16일 매쓰캥거루 국제수학경시대회가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역에서 치러졌습니다. 수학 공부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시사점을 주는 매쓰캥거루 대회와 독일의 수학 교육에 대한 경험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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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6일, 아이는 학교에서 단체로 참가하는 '매쓰캥거루 국제수학경시대회'를 치렀습니다.

(*독일의 많은 학교에서 수학 실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는 '매쓰캥거루'는 국제 수학 경시 대회입니다. 1980년 호주에서 시작해 현재 전 세계 80여 개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참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지난 2018년 이 대회가 도입됐습니다. 그러나 한 날 한 시에 치러지는 글로벌 대회와 달리 한국 대회는 일정이 좀 다르더라고요, 올해 대회 역시 다른 나라들은 모두 3월 16일에 치렀지만 한국 대회는 오는 4월 8일에 열린다고 하네요.)

독일에서 돌아와 4학년으로 편입한 후 올해로 세 번째 참가입니다. 그런 걸 하는 줄도 모르고 참가한 첫 해부터 아이는 줄곧 성적이 좋습니다. 첫해에도 교내 학년 1등을 했고, 작년에는 딱 한 문제를 틀려서 교내 시상식 단상에 오르며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매쓰캥거루는 3-4학년, 5-6학년, 7-8학년 식으로 두 개 학년이 같은 문제지를 풀기 때문에 작년에 5학년이었던 아이가 5-6학년 문제에서 한 문제를 틀린 것은 학교에서도 꽤 이슈가 됐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올해 시험은 아이가 더 자신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슷한 난이도의 시험을 이제는 6학년이 되어서 치르는 것이니 작년보다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그것도 그렇지만 시험 스트레스가 별로 크지 않은 아이는 학교 성적에도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쓰캥거루'에 대한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름 국제수학경시대회이니 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저와 달리 아이는 '평소대로 하면 된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더라고요.

시험 당일 아침, 아이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매쓰캥거루'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지만 내심 그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그날 아이의 반응은 놀랍게도 '눈물'이었습니다. 긴장이나 걱정이라곤 1도 하지 않고 시험을 치렀을 것으로 예상했던 저는 뜻밖의 반응에 당황했죠.

매쓰캥거루 국제수학경시대회 2023 포스터.이미지_매쓰캥거루 독일 홈페이지 캡처.

정확한 결과는 나중에 나와봐야 알겠지만, 아이는 자기가 맞춰본 정답으로 한 문제를 틀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작년과 같은 결과이고 굉장히 잘했는데도 속이 상해 눈물이 났던 이유는 학교 끝나기 직전까지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맞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룰루랄라'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아이는 마지막 수업 시간에 옆자리 친구를 통해 문제에 제시된 어휘 하나를 잘못 이해한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쉬운 문제를 자신만만하게 다 풀어놓고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많이 속이 상했던 거지요.

뼈 아픈 실수지만 이번 기회로 문제를 더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을 테니 그 또한 배우는 과정이란 말로 위로와 조언을 건네면서도 '무심한 척 하더니 나름 경시 대회 성적에 욕심은 있었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더군요.

다음 날, 아이가 책상 위에 두고 간 매쓰캥거루 문제지를 보았습니다. 각각 3점, 4점, 5점 배점인 A, B, C 난이도의 문제들을 보고 있으니 '간단치 않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C난이도의 문제들은 (매년 그랬던 것처럼)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문제들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매쓰 캥거루는 철저히 사고력을 동반한 문제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해당 학년에서 배우는 수학적 개념만 정확히 알고 있다면 그 어떤 공식도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합과 차의 간격이 일정한 수 혹은 비율이 일정한 수들의 나열에서 규칙을 찾아 특정 번째의 수를 찾는 문제는 각각 등차수열과 등비수열이지만, 수학적 규칙의 정확한 개념만 알고 있다면 수열 자체를 몰라도 '생각해서' 문제를 풀 수 있는 식이죠.  

문제 자체도 수학 하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융합적인 사고력을 필요로 합니다. 문제마다 난이도가 다르지만 그 난이도 역시 고학년 수학을 선행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난이도'에 비례할 뿐입니다.

기출 문제를 한번 살펴볼까요.

<2019년 5-6학년 기출 문제- 난이도C>

The parcels with the prizes for the Kangaroo competition are stacked on pallets. In the evening, there are 11 pallets with a total of 370 parcels standing in a row. On the individual pallets there are different numbers of parcels, but on 3 consecutive pallets there are always exactly 99 parcels in total. How many parcels are on the 6th pallet?

(A) 26      (B) 30      (C) 33      (D) 35      (E) 36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일렬로 된 11개의 팔레트 위에 모두 370개의 소포가 쌓여 있습니다. 연속된 3개의 팔레트 위에 쌓인 소포 수는 각각 다르지만 그 셋을 합하면 항상 정확히 99개입니다. 6번째 팔레트에는 몇 개의 소포가 있습니까?

이 문제를 풀 때 저는 방정식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연속된 세 개의 팔레트 위에 있는 소포의 수가 각각 다르고 그 합이 항상 99라면 x+y+z=99 인 거죠. 그리고 팔레트가 x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그 순서는 항상 x, y, z, x, y, z, x, y, z .... 가 되어야만 합니다.

왜냐, 그래야만 몇 번째 팔레트를 기준으로 하던지 상관없이 항상 x와 y, 그리고 z가 포함돼 그 합이 '99'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1개의 팔레트를 늘어놓을 경우 x와 y는 각각 4개씩이고 z는 3개입니다. 즉,

4(x+y) + 3z = 370 이라는 식이 성립하죠.

그런데 우리가 구해야 할 6번째 팔레트는 순서상 z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x+y+z=99라는 조건을 이용해 위의 식을 풀면 z=26이라는 답을 구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이 문제를 연립방정식 개념을 활용해 풀고 있는 사이에 아이는 저보다 먼저 문제를 풀었습니다. 아직 학교 수학 과정에는 연립방정식은 커녕 일차 방정식도 나오지 않았는데 연립방정식을 활용한 저보다 더 빨리 풀다니요. 풀이 과정을 물어보니 방식은 제가 생각한 것과 일치하더라고요. 팔레트가 늘어선 '규칙'을 찾으면 방정식을 전혀 몰라도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죠. 등차수열과 등비수열 개념을 몰라도 초등학교에서 배운 수의 규칙 개념을 적용해 수열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미지_픽사베이

아이는 수학을 좋아하고 잘합니다. 좋아해서 잘하는 것도 있고 잘해서 좋아하는 것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좋아하고, 잘하는' 이 두 가지 조건이 가능한 이유는 수학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아, 수학에서 싫어하는 게 있긴 한데 연산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라고 하더라고요.) 여태 수학 학원 근처에 가본 일이 없고 그 흔한 연산 학습지는 물론, 기본 중에 기본이라는 구구단조차 외워본 적이 없습니다.(혼자서 한국 학교 진도에 맞춰 수학 문제집을 매일 한 페이지씩 풀어온 게 전부입니다.)

예닐곱 살 때 아빠와 함께 부루마블 게임을 하면서 수 감각을 익히긴 했지만 아이는 그게 아빠의 '의도'가 어느 정도 포함된 것인 줄은 전혀 몰랐을 겁니다. 차를 타고 이동 중에 앞에 보이는 차나 사물들을 이용해 은근히 더하기 빼기 놀이를 하기는 했지만 그게 숫자와 친하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전략인 것도 몰랐을 겁니다.

선행 차원에서 한 행동들이 아닙니다. 남편과 저는 바라보는 지점이 같았습니다. 아이가 수학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재미있어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죠. (물론 모든 부모님이 아이가 어릴 때 같은 생각을 하실 겁니다. 다만 현실이 그 생각을 흔들 때가 많죠. 선행, 반복적 문제 풀이를 통한 문제 유형 학습, 그리고 학교 성적에 대한 부담 등 눈앞에 닥친 상황을 생각하면 마냥 즐거운 수학을 고집하는 여유를 부릴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수학을 좋아했던 아이가 학년이 올라가고 학습량이 버거워지거나 선행 속도가 빨라지면서 수학을 싫어하게 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죠.)

우리 아이가 내내 수학을 재미있고 즐거운 것으로 지속할 수 있었던 데는 독일에서 받은 수학 교육의 배경이 한 몫 합니다. 1학년부터 4학년 1학기까지 3년 반을 다니는 동안 아이는 수학에 대한 스트레스나 부담은커녕 늘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학년 때는 내내 '숫자 세기'만 반복했고, 3학년이 되어서도 겨우 덧셈과 뺄셈을 할 정도로 더디고 천천히 흘러갔습니다. 한국의 수학 교육과 비교하면 정말 극단적으로 느립니다.

4학년이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아서 아주 기초적인 곱셈과 나눗셈 연산 정도를 했는데요, 이때는 아이들이 스토리형 문제를 만들고 친구와 바꿔서 풀어보는 '놀이'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수 개념, 연산의 체계 등에 대해 지루할 정도로 반복하고 익숙하게 만드는 방식을 통하다 보니 아이는 한번도 외운 적 없던 구구단을 척척 해내고 있더라고요. 3x3은 '3을 세 번 더한 것'이라는 개념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죠.

사실 독일에 살 때는 그런 수학 교육 방식에 불만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저렇게 느리게 배우는데도 학교 과정에서 필요한 수학 공부를 제 때에 다 할 수는 있는 것인가, '천천히'도 정도껏이지 아이들이 너무 지루하게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죠.

그러나 돌아보면 그렇게 차근차근 다지면서 수학 개념을 정리하고 배운 덕분에 아이가 수학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수학 동화를 너무나 좋아해서 수 십 번씩 반복해 읽던 아이였지만 만일 학교 교과를 통해 수학은 어렵고 힘들고 지루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됐더라면 지금처럼 좋아서 하고 또 잘하게 되는 지점까지 올 수 있었을까 싶은 거죠.  

다시 매쓰캥거루로 돌아와, 3년 째 아이가 치르고 있는 매쓰캥거루 문제들을 볼 때마다 저는 '어떻게 수학이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을까' 라고 감탄합니다. 정답을 구하지 못한다 해도 생각하는 그 과정이 즐거운 도전으로 느껴지면서 '이런 방식의 수학 교육이 진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합니다.

얼마 전 발표된 챗GPT4는 이미지를 인식한다고 하죠. 이제는 모르는 수학 문제를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면 인공지능이 친절하게 풀어주고 설명해주는 시대가 됐습니다. 수학만이 아니라 모든 학습, 공부가 달라지겠죠.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절대 바뀌지 않는 근본적인 것, 즉 펀더멘털에 집중해야 할 겁니다. 수학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즉 수학적 사고와 수학적 추론력을 기르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하는 거죠. 몇 년 치 수학을 선행하고 세상의 모든 문제 유형을 익히겠다는 듯 많은 문제를 푸는 방식이 수학적 사고와 추론력을 기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아이가 일단 수학을 하기 싫은 것, 재미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마지 못해 공부하는 상황이라면요? 즐겁게 자발적으로 하는 공부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한다 해도 결국 더 큰 무언가를 이루게 됩니다.

하나 더, 아이들이 수학을 즐거운 것, 재밌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접근할 수 있게 해주려면 부모님의 인식과 태도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부모님이 수학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공포감을 드러낸다면 아이 역시 자기도 모르는 새 '수학은 어려운 거야'라고 인식하고 두려운 마음마저 갖게 됩니다.

진심이기도 하지만 저는 늘 아이에게 "이 문제는 어렵긴 한데, 정말 재밌는 문제다!"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끙끙대며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때도, 설령 제가 풀어줄 수 없는 문제일 때도 "오, 이 문제 너무 신선하고 새롭다"는 식으로 반응합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유튜브 등에서 정말 재밌는(그리고 어려운!) 수학 수수께끼를 볼 때마다 저에게 알려주면서 말합니다. "엄마, 이런 문제 진짜 좋아하잖아, 같이 풀어보자!"

느린 '독일 수학'이냐 빠른 '한국 수학'이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이마다 성향과 기질이 다르니 똑같이 적용하기도 어렵고요. 다만, 아이들이 수학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압박이나 두려운 대상이 아닌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이라야 한다는 것 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부모인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부터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계기를 드리는 시간이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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