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 3년 정도 방송국에서 예능 프로그램 작가를 했습니다. 그때 대본을 쓸 때마다 오프닝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가 매주 가장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예능 작가들은 구성 작가라 불리는데 말 그대로 진행 대본이나 멘트를 쓰는 것보다 프로그램을 어떻게 짜고 풀어갈 지 그 안에 어떤 요소들을 넣을 지 구성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는 게 훨씬 중요한 역할인데요, 그래서 사실 저처럼 글을 쓰는 게 좋아 작가를 하겠다고 생각했던 사람한테는 딱 맞는 일은 아닙니다.
갑자기 지난 시절 고백을 하자는 건 아니고, 그래서 저한테는 오프닝을 정말로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몇 줄 안되긴 해도 진행 대본에서 유일하게 '글'다운 글을 쓸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담당 PD나 진행자들도 오프닝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오프닝부터 재미없으면 채널이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오프닝 소재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바로 날씨, 계절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주로 라디오 매체 오프닝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계절이 바뀔 때는 어김없이 계절 이야기로 시작하고 매일 같은 날씨라도 어느 날 특별히 거론할 만한 이슈가 생기면 날씨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가장 가볍고 쉽게 대화를 시작할 때 날씨나 계절을 통하잖아요, 그만큼 모두에게 적용되고 누구나 관심 갖는 소재라서 그렇습니다.
자, 그러다 보니 시즌 때마다 지겹게 같은 내용이 반복될 때도 많습니다. 봄이 오면 봄 이야기, 여름이 오면 여름 이야기... 아무리 변주를 한다고 해도 쓰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지겨운 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