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으로 하는 사춘기 대비! 초등 3~4학년이 분기점?!

'토론'으로 하는 사춘기 대비! 초등 3~4학년이 분기점?!

'사춘기'라는 단어가 부모에게 주는 공포와 걱정은 예상 외로 큽니다. 초등학교 3~4학년은 앞으로 닥칠 사춘기를 대비하는 중요한 시기인데요,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떻게 준비를 하면 좋을지 발달학적 측면과 관계적 측면에서 짚어보겠습니다.

anotherthinking

살다 보면 후회하는 일이 많습니다.

자녀 양육과 교육에 관한 후회는 말할 것도 없죠.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라는 후회도 있지만 '그때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라는 후회가 더 많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 후회', '무언가를 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행동 후회'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비행동에 대한 후회를 행동 후회 보다 세 배 정도 많이 한다고 합니다. 후회 심리학을 연구하는 미국의 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의 유명한 연구 결과죠.

주변에 보면 사춘기 자녀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부모님들이 이런 비행동 후회를 많이 합니다. 주로 관계와 대화에 관한 것들입니다. '좀 더 관심을 기울였어야 하는데', '마음을 읽어줬어야 하는데',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대화를 더 많이 했어야 하는데',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자주 만들었어야 하는데'... 후회의 내용은 끝이 없습니다.

아이가 사춘기의 특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부모와 거리를 두고, 방문만 닫는 게 아니라 입과 마음의 문을 닫으며 대화를 거부하면 부모들은 속이 타 들어갑니다. 뒤늦게라도 대화를 통한 소통을 시도해보지만 한창 예민하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는 아이들은 좀처럼 대화의 장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다 마주 앉게 되더라도 '엄마는(아빠는) 말이 안 통해'라는 것만 확인하고 해결은커녕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반대로 사춘기를 무난하게 넘기는 가정을 보면 대부분 '대화'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사춘기 특성이 나타나더라도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해 오던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해결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바람직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죠.

대화가 자녀의 사춘기 시절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문제 해결의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내공이 쌓여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내공'이란 오랜 대화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으로, 감정적 대응이 오가는 '말잔치'가 아닌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경청하겠다는 태도, 상대의 입장이 돼 생각해보는 노력과 이해, 배려와 양보 그리고 조율을 통해 결론을 도출해보겠다는 의지, 한 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해도 언제든 또 다시 마주 앉아 대화하겠다는 열린 마음 등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서로를 대화 상대로 믿고 존중하는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을 때 가능한 일이죠.

다시 말해 단지 일상 속에서 필요한 '말'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터 놓고 어떤 것이든 논의하고 상의하며 결정하는 과정에서 오고 간 '대화'가 축적될 때 비로소 사춘기에 제대로 힘을 발휘하는 무기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이러한 대화의 방식은 결국 '토론'의 형태입니다. 지극히 사소하고 쉬운 문제부터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 방식의 대화를 지속해온 관계라면 정말로 깊은 대화가 필요한 자녀의 사춘기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죠.

이미지_픽사베이

토론(대화)을 시작하는 적정 시기란 따로 없습니다. 가능한 일찍 시작할수록 좋죠. 하지만 데드라인은 존재합니다. 특히 사춘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면 늦어도 10세 전후에는 토론 방식으로 특정 사안에 대해 터 놓고 '주고 받는' 대화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제 전작인 <엄마표 토론>에서 본격 토론을 시작하는 시점으로 '초등학교 3학년'을 제시하며 어째서 3학년이 중요한 시기인가 대해서 이미 거론한 바 있는데요, 두 가지 측면 즉 학습적으로 또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 시기가 분기점이 되는 타이밍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책에서는 '왜 3학년인가'에 대한 부분에 대해 더 이상의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하고 바로 3학년 이상의 아이들과 해볼 수 있는 토론 실전 이야기로 바로 들어갔는데요, 오늘은 그때 설명하지 못했던 '왜?'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들의 발달 단계 및 두뇌 성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아이마다 발달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 기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개 초등학교 3학년에서 4학년 시기부터 논리적, 구체적 사고가 가능해지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도 생기기 때문이죠.

발달 단계로 본 토론 활동의 적기

자, 이쯤에서 참고 삼아, 아마도 많은 부모님들이 한 번 쯤은 들어봤고 어쩌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피아제의 인지 발달 단계'에 대해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는 장 피아제는 인지 발달 단계를 4단계로 구분하고 있는데요, 이 이론은 교육학에서 널리 활용되며 심리학 인지 이론에서 상당히 영향력 있는 이론이기도 합니다.

  • 감각운동기(0세~2세)

시각, 지각적인 자극의 패턴을 파악하면서 인지를 발달시키는 단계입니다. 이 시기에는 모방이 가능해지고 '대상영속성'이 발달한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사람이나 사물이 시야에서 사라져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지만 점차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발달하면서 나중에는 눈앞에서 사라진 대상이 영원히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네요.

  • 전조작기(2~7세)

전조작기에서 '전'은 한자로 '前'을 뜻합니다. 즉 사고 자체는 아직 미숙하고 비 체계적이지만, 모든 것을 감각으로만 느끼던 시기를 벗어나 상징과 비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아직 자기 중심적인 시기로 협동이 어렵고 타인의 마음을 읽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또,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지 못해 무생물에게도 생명과 감정을 부여하는 경향을 보이는 시기라고 해요. 이 시기에는 본격적으로 언어 사용이 시작된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 구체적 조작기 (7~11세)

이 시기에는 논리적 사고가 가능해집니다. 다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 즉 구체적 사물이나 행위에 대해서만 정확한 사고가 가능합니다. 또 자기 중심적 세계를 벗어나게 되는데요,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협동이 가능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생깁니다. 본격적인 학령기에 진입하는 단계로, 초등학교 3~4학년이 되면 보다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해집니다.

  • 형식적 조작기 (11세 이상)

11세부터 성인기까지 해당되는 시기입니다. 이때는 보다 구체화된 사고를 통해 추상적 사고까지 가능해지며 가설 검증, 추론도 가능해집니다. 여러 데이터를 모아 귀납적 가설을 세우거나, 가설을 세운 후 팩트를 추론해나가는 연역적 사고도 가능해지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보다 과학적 사고 및 본질적 탐색과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사고와 같은 고차원의 인지 발달이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발달 단계가 '아무런 노력 없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란 겁니다. 몸이 자란다고 해서 누구나 철학적 사고, 고차원의 인지 능력을 갖게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죠. 따라서 특히나 깊이 있는 사고 체계, 공감 능력과 같은 발달과 관련해서는 이와 같은 능력을 잘 발달 시킬 수 있는 자극과 환경이 주어져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김붕년 교수님은 자신의 저서 <10대 놀라운 뇌 불안한 뇌 아픈 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인지적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 상황에 대한 그 사람의 판단을 존중하게 됩니다. 상대의 사고 체계를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은 아동기 후기부터 발달합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 많은 독서와 대화, 토론, 여러 경험이 쌓여야 촉진됩니다. 이것이 가정법에 대한 이해와 가설 검증 능력과 만나면 청소년기에 공감 능력이 거의 완성되는 것이죠."

이미지_픽사베이

즉, 뇌 발달의 측면으로 보더라도 '구체적 조작기'의 후기인 초등학교 3~4학년의 시기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해하는 '토론 활동'을 하기에 적기인 셈입니다. (*물론 앞에서도 전제한 바와 같이 아이마다 성향과 발달 단계가 다르고, 또 요즘 아이들은 장 피아제의 이론이 제시된 시점보다 훨씬 성장이 빠르다는 지적까지 감안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더 빠른 시작도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제 경우 역시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2학기에 접어들었을 때 토론 수업을 시작했는데요, 아이 눈높이를 배려한 주제와 이슈를 두고 서로의 의견과 생각을 나누는 활동은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었고요.)

장 피아제의 인지 발달 이론에 대입해 보자면,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시작된 토론 활동은 '형식적 조작기'에 이르러 더욱 생각의 깊이와 사고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더욱 고차원적인 토론과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즉 사춘기가 포함된 이 시기에 민감하고 까다로운 문제를 앞에 두고도 얼마든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셈이죠. 토론에 대한 워밍업이 돼 있다는 전제 하에서요.

사춘기 아이와의 관계를 대비하려면

이제 관계적 측면에서 왜 초등학교 3~4학년이 토론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발달학적으로도 보통 초등학교 5학년 정도를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로 봅니다. 즉 부모와의 관계 형성에 있어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짙어지는 시기죠. 따라서 그 이전인 초등학교 3~4학년 시기에 아이와 깊이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단단한 관계를 형성해야만 사춘기 시기에도 마주 앉아 눈 맞추고 대화하며 슬기롭게 지나갈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인 이현수 박사님은 <아이가 10살이 되면 부모는 토론을 준비하라>라는 책에서 "부모가 얘기 좀 하자고 하면 무조건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춘기 아이와의 관계 대비를 위해 일찌감치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열 살이 되기 전에 부모와 사이가 아주 좋았다면 사춘기 때의 태풍의 강도는 상당히 약하다. 정서적 안정이라는 든든한 자산이 있기에 살짝 휘청거릴지언정 잘 헤쳐 나간다. 아이가 어렸을 때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키우는 것은 사춘기를 가뿐히 넘기는 데에도 무척 중요하다."

물론 정서적 안정은 토론 같은 대화 방식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이뤄질 수 있겠지만, 사춘기 시기에 아이가 겪는 혼란과 고민을 들어주고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와 아이 사이에 진지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아이가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부모에게 털어놓고 상의할 수 없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말입니다. 반대로 아이 입장에서 항상 내 부모님은 어떤 문제든 들을 준비가 돼 있다는 것, 함께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아줄 것이란 점, 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사춘기를 지나는 동안에도 얼마나 든든할까요.

이러한 신뢰는 당연히 오랜 대화 경험으로 축적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도 싸움이나 갈등으로 끝나지 않고  조정과 타협, 자기 의견 수용의 단계를 끊임없이 거쳐본 경험이 있다면 사춘기가 아니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는 기꺼이 부모와 대화하기 위해 마주 앉게 될 겁니다.

이미지_픽사베이

다시 맨 앞의 후회 이야기로 돌아가, 누구나 사춘기는 찾아옵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사춘기를 통과할 것인가는 저마다 다릅니다. 어느 집은 사춘기가 왔는지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고, 어느 집은 하루 아침에 집안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도 있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을 만나면 대체로 '사춘기 공포증'을 갖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갑자기 '돌변'하게 되는 '그날'이 올까 봐 막연히 두려워하는 것이죠. 걱정이 된다면 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중에 혹독한 사춘기를 지나면서 "그때, 아이와 토론하는 습관을 들였어야 했어"라는 후회를 하지 않기를, 지금부터 일상 속 사소한 문제들을 두고 마주 앉아 말하고 경청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함께 '결론'을 찾아가는 경험들을 축적함으로써 내 아이의 사춘기를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앞서 소개한 김붕년 교수님의 저서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소개할까 합니다.책에서 교수님은 어느 때보다 불안한 시기를 보내는 사춘기에는 영유아기보다 애착 관리가 더욱 필요하다며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애착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특히 청소년기의 애착은 힘들 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이 사람은 나를 마지막까지 지지해 줄 사람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고난을 받아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도전합니다. 도전해야 성공하고요. 결국 애착은 고통이 있을 때 빛을 발하는 것이죠. 그것이 엄마 아빠라는 존재 의의입니다."

사춘기에 그 어떤 힘든 문제를 맞닥뜨리더라도 털어놓고 상의할 부모가 있다는 믿음을 내 아이가 가질 수 있도록 꾸준히 대화의 힘, 토론 경험을 쌓아나가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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