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랑하는 아이, 시작은 부모로부터

책을 사랑하는 아이, 시작은 부모로부터

독서 교육에 대한 부모님들의 관심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디지털 시대에 문해력 이슈와 맞물리면서 그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진짜 힘이 될 독서력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그 바탕에 책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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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 책에 관한 행사나 축제 소식이 유난히 많은 시기입니다.

지난 주말, 집 인근에서 열린 책 축제를 다녀왔습니다. <숲에서 만난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공원에 마련된 책 축제는 12개의 다양한 체험 형 부스 외에도 숲 속 보물찾기와 같은 여러 이벤트가 준비돼 있었습니다.

잔뜩 기대감을 가지고 간 아이는 솔직히 조금 실망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구경하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프로그램이 대체로 초등학교 저 학년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어서 줄을 서서 기다리더라도 해 볼 만한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일반적 독서 단절 모델'이란 게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이유 때문에 주로 저 학년 아이들 위주로 프로그램이 꾸려진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현장이었습니다. 실제로 축제를 찾은 가족 단위도 대체로 유아와 저 학년 아이들을 동반한 부모님이 대다수였습니다.

짐작하시는 대로 '독서 단절 모델'이란 유아기 때 독서량이 정점을 찍는 것으로 시작해 초등학교 저 학년 때까지 가장 많은 책을 읽고, 초등학교 고 학년이 되면 확 줄었다가 청소년 시기가 되면 아예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아무래도 학습이나 공부와 관계가 있습니다. 학교 공부며 학원 숙제 등 해야 할 공부가 많아지는 초등학교 고 학년부터는 독서가 다른 공부보다 우선 순위가 되지 못하는 것이죠. 그 중에는 책을 정말로 좋아하고 읽고 싶지만 시간이 부족한 친구들도 있겠고, 어릴 때  잘못 형성된 독서 습관 때문에 저절로 책과 멀어지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나마도 초중고교 학생들의 독서량은 매년 더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초중고교생 독서량 감소)

지난 주말, 인근 공원에서 열린 책 축제 현장.

꼭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제 주변 역시 이러한 패턴을 따라가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책을 너무 사랑하지만 공부에 쫓기다 보니 독서에 할애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스스로 안타까워 하던 아이도 있었고, 어릴 때 책을 많이 읽긴 했지만 즐거움보다는 목적을 띤 독서였던 아이의 경우 초등학교 고 학년 이후로 책을 완전히 끊다시피 한 사례도 보았습니다. 독서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학습량에 허덕이는 아이들에게 '독서가 공부보다 먼저'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공부 하다가 쉴 때 유튜브나 게임, SNS 같은 데 매달리지 말고 '독서'를 하면서 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하겠지만, 그건 말 그대로 욕심일 뿐입니다.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는데 어떤 책에서 대략 이러한 표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회사에서 지쳐 돌아온 부모님에게 "쉬는 동안 독서를 하세요"라면서 사서삼경 같은 것을 내밀면 어떻겠느냐고, 아이에게 쉴 때 독서를 하라고 말하는 건 비슷한 맥락이라고 말이죠.

독서와 관련해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 줄 것은 공부는 공부대로 하고 쉴 때 책을 읽는 지극히 이상향을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사랑하고 책이 주는 즐거움을 스스로 깨닫는 독서 습관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공부 때문에 마음껏 독서하지 못하는 상황을 스스로 안타깝게 여길 것이고, 상황이 받쳐준다면 언제든 독서의 즐거움에  다시 빠져들 테니까요. 부모님이 말하지 않아도 쉴 때 알아서 책 읽는 '바람직한' 모습은 그러니까 진심으로 책을 사랑하고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아는 경우에 기대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집 아이는 책을 많이 사랑하는 편입니다. 물론 유튜브나 게임 같은 재밌는 세상을 알게 된 후로 예전보다 독서 시간이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책을 놓지는 않습니다. 유튜브나 게임이 대체할 수 없는 독서의 절대적인 즐거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 점에 대해선 한치 의심도 없기 때문에 아이가 책보다 게임에 더 집중하는 시기가 있다 하더라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다가 또 어떤 책에 빠지면 며칠이고 책만 파기도 한다는 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이는 지금도 많게는 일주일에 서 너 권, 못해도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습니다. 그것도 대체로 페이지가 몇 백 페이지를 넘어가는 분량의 책입니다. 만화책은  그간 독서 경험을 통 틀어 'why' 시리즈와 '마법 천자문' 외에는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활자로 된 책을 훨씬 좋아하는 편이고요. 언젠가 독서와 관련해 아이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텍스트로만 된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상상하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해야 하는 독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독서가 될 때 진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아이가 책 속 세상이 주는 무한한 즐거움을 꼭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살면서 책이 주는 다양한 기쁨을 알지 못하는 건 인생에서 큰 손해임에 분명하니까요. 다행히 그 바람은 실현이 된 것 같습니다. 스스로 책 잘 읽는 아이로 만든 몇 가지 배경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발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만들려면 부모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첫째, 책을 좋아하는 부모를 보고 자랐습니다.

우리 부부는 책을 좋아합니다. 많은 어른들이 그렇듯 일에 치이다 보면 독서가 뒤로 밀리는 경우도 많지만 늘 가까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책 욕심도 많아서 주기적으로 책을 주문해서 쌓아 놓기도 합니다. 여행과 같은 쉼이 목적일 때는 당연히 각자 책 몇 권 씩 챙기는 게 필수죠. 제 경우는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보는 편이라서 책상에는 늘 다양한 분야의 책 여러 권이 놓여 있습니다. 이럴 땐 이런 책, 저럴 땐 저런 책을 읽죠. 언제 어디서나 책을 들고 있는 부모를 보면서 아이는 자연스레 책이라는 매체에 대해 친근함이 들었을 겁니다. 또 부모 둘 다 책을 읽는 분위기에서 자신도 책을 읽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을 테고요. 굳이 말로 '책 읽어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인 겁니다.

아이는 부모를 보면서 자랍니다. 당연히 부모가 자신의 첫 모델이 됩니다. 제가 아는 한 책을 좋아하는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 치고 책을 죽도록 싫어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부모가 '내가 좋아하니 너도 그래야 한다' 식으로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부담감을 가지면 안 되겠지만 책임감은 필요합니다. 모든 면에서 아이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저도 그렇고 모든 부모는 절대로 완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노력은 필요합니다.

일화가 있습니다. 지인의 중학생 아들이 어느 날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빠도 다른 집 아빠들처럼 집에서 책도 좀 읽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책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쉰다는 명목으로 줄곧 텔레비전 시청만 하던 남편이 못마땅했던 아내는 아들의 말에 뜨끔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게 부모 때문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평소에 부모를 관찰하고 지켜보면서 그 정도 쯤은 깨닫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노력을 하는가, 시도조차 하지 않는가, 혹은 포기를 하는가' 말입니다.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부모님이라 해도 적어도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는 게 중요합니다.

둘째, 서점을 밥 먹듯 드나들었습니다.

책을 가까이 하게 된 데는 서점이라는 공간도 큰 몫을 했습니다. 아이에게 서점은 글자를 모르던 시절부터 일상의 공간이자 재미있는 놀이터였습니다. 책과 친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나 작가에 대한 가치관도 생겨났고, 스스로 책을 선택하면서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도 생겨났습니다. 부모가 매번 '이 책 읽어라, 저 책 읽어라' 하고 정해 준다거나 학교에서 요구하는 필독서 리스트만 들이댄다면 독서의 즐거움에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아이가 어릴 때 살던 집 근처에 언제든 갈 수 있는 대형 서점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굉장한 장점이 됐습니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늘 서점에 갔고 나올 때는 아이가 원하는 책 한 두 권을 꼭 사주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정기적으로 서점 나들이를 하는데 여전히 아이가 직접 읽고 싶은 책을 고릅니다. 적어도 그때 만큼은 아이의 선택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독서이고, 설령 선택에 실패한다 해도 그 경험을 통해 안목을 쌓아가게 될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때론 고르는 책마다 장르가 편중된다 싶기도 했지만 웬만해서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공부머리 독서법>의 저자인 독서교육 전문가 최승필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독서 편식'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실은 독서란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좋아하는 분야가 있는 게 당연하다고 말이죠. 오히려 취향이 없는 독서가 더 어색하고, 좋아하는 장르가 있을 때 적극적인 독서가 이뤄진다고도 했습니다.

그래도 부모 입장에서는 가끔 '이런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함께 서점에 갔을 때 "이 책이 재밌어 보이는데 어때?"라고 권유하거나, 미리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해 슬쩍 아이 손이 닿는 어딘가에 놓아둡니다. 강요가 빠져 있는 데다 모든 책에 거부감이 없는 아이는 일단 펼쳐 들고 탐색을 하는 편인데, 그렇게 몇 번 엄마의 추천이 성공적인 경험으로 끝나면 그 다음부터는 추천하기가 편해집니다.

독일 하이델베르그의 서점. 책을 사랑하는 아이는 여행을 가서도 서점 가기를 좋아합니다. 

셋째, 아이의 독서에 관심을 갖고 질문합니다.

무슨 일이든 아이들은 부모가 관심을 가져주면 더 신이 나서 열심히 하고 싶어집니다. 독서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아이가 그간 읽은 책은 물론이고 어떤 책을 얼마나 반복해서 읽는지, 기분에 따라 어떤 책을 찾는지, 그 책의 어느 부분에서 항상 깔깔거리고 웃는지 등을 꿰고 있습니다. 아이의 독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관찰해서 얻어진 결과입니다.

엄마가 크게 관심과 흥미를 보여주니 자연스럽게 책을 화제로 한 대화가 잦고 재미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도 잊어버린 척하고 다시 물어보면서 대화를 이어가곤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또 열심히 설명해 주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반응을 보여주죠. 듣는 사람이 즐거워하니 아이의 목소리 톤은 한껏 더 올라가고 저는 계속해서 질문을 쏟아냅니다.

넷째,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기 전부터 책을 읽어주던 습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이가 글자를 알기도 전부터 많은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이 부분은 저 뿐만 아니라 아마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그렇게 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좀 달랐던 부분이 있었다면 아이가 읽기 독립을 한 후로도 줄곧 책을 읽어주었다는 점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까지는 매일 빠짐없이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었고, 혼자 읽기가 가능해진 그 후로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반드시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작년까지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6학년이 된 지금도 '책 읽어주기'는 가끔 이어지고 있습니다. 함께 읽기로 한 책이 있거나, 혹은 아이가 '그 책 읽자'고 요청할 때마다 읽어주고 있는데 주로 인문학이나 철학, 과학과 같은 아이 혼자 읽고 이해하기에 버거운 책일 때가 많습니다. 사실 이 나이 쯤 되면 읽어준다는 것보다는 '함께 읽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겁니다. 일방적으로 읽어주고 듣기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읽고 생각하고 서로 질문하고 대화하면서 책 속 내용보다 확장된 이야기들로 시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아이가 13살이 되더라도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 고 학년이 될 때까지 책을 읽어줄 필요가 있을까 의아했지만 막상 지금까지 책을 읽어주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책을 읽어주는 일은 아이의 읽기 능력과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활자를 읽을 수 있다고 해서 모든 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은 열두 살, 열세 살 나이에도 존재합니다. 아이 혼자 읽기에는 지루하거나 어려운 책들을 함께 읽다 보면 아이는 몰랐던 사실에 호기심도 느끼고 질문도 많아집니다. 혼자 읽다 보면 포기할 수 있지만 엄마가 읽고 설명해 주니 이해하기 쉽고, 그러다 보면 더 어렵고 심오한 세계에도 눈을 뜨게 되지요. 당연히 혼자 읽는 책의 수준들도 점점 높아지게 되는 것이고요. 아이가 커가면서 독서를 싫어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해력' 문제일 겁니다. 어릴 때 읽던 책들은 글도 적고 내용이 쉬웠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글자도 많아지고 내용도 깊어지게 되니까요.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당연히 재미가 떨어지고 그러다 보면 책을 놓게 되는 것이죠.

독서의 힘, 독서가 주는 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독서가 많은 이들의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매개가 되어주는 건 독서가 가진 사고의 힘 때문입니다. 독서를 통한 사고는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부모도 대신할 수 없고 사교육을 통해 주입할 수 있는 분야는 더더욱 아닙니다. 내 아이가 자발적으로 책을 찾아 읽고, 책을 사랑하고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게 하고 싶다면 부모의 역할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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