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지식은 왜 토론에 필수적일까요?
토론에서 배경 지식은 토론자가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청중을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까닭이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좋은 질문의 시작이 된다는 점입니다.
배경 지식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하거나 연구할 때, 이미 머릿속에 들어 있거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지식'으로, 쉽게 말해 내가 원래부터 알고 있던 모든 지식과 직, 간접적 경험을 통틀어 말합니다. 토론 활동에서 배경 지식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지만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논제 파악
배경 지식은 토론 논제를 파악하고 주제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논제와 관련한 역사, 이론, 사례, 나아가 자신의 직접 혹은 간접적 경험까지 갖고 있다면 토론 논제에 대해 더 깊고 넓게 이해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겠죠.
📌 논리적 근거와 설득력
토론은 상대를 설득하는 행위입니다. 아무런 근거나 논리 없이 자기 할 말만 하거나 주장만 내세우며 '내가 옳다'라고 몰아붙인다면 그건 토론이 아니라 말싸움이죠. 나의 의견과 주장을 말할 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실, 통계, 사례 등 내가 가진 배경 지식을 제시한다면 보다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배경 지식은 나의 주장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도 합니다.
📌 쉬운 설명과 개념 이해를 통한 소통 강화
토론은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서로 소통하는 자리입니다. 즉 토론할 때 늘 상대가 지금 나의 의견과 주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지를 배려할 필요가 있는데요, 이럴 때 배경 지식을 동원해 복잡한 내용을 풀어서 설명하거나 예시 등을 통해 효과적인 전달을 할 수 있다면 토론이 보다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겠죠. 또한 청중이 있는 토론 자리라면 배경 지식을 활용해 청중의 이해를 돕는 것이 토론 판정에 있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 좋은 반론과 반박을 위한 근거
'반론'은 토론의 꽃이라 불립니다. 그만큼 토론에서는 상대의 주장에 반박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행위가 매우 중요하죠. 합니다. 토론은 기본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상대 또는 청중에게 내 의견이 더 합당하다는 것을 관철 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설득하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깊이 있는 배경 지식을 동원해 최선을 다해 상대의 주장에 반박하고 반론을 펼치는 것 자체가 토론자로서의 기본이자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할 수 있죠. 토론은 이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지는 것을 배우는 교육'이기도 합니다. 내 의견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오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더 깊이 있고 단단한 사고력을 갖추게 되는 거죠.
📌 순발력과 유연성
토론 시 상대의 예상치 못한 주장이나 갑작스러운 질문이 있을 때도 충분한 배경 지식이 있다면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만일 청중이 있는 토론이라면 이런 순발력과 유연한 대처 능력이 좋은 점수를 얻는 데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배경 지식'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또 한 가지의 이유이자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좋은 질문의 시작'이 된다는 점입니다.
좋은 질문은 배경 지식에서 시작된다
토론은 질문 하나로 시작됩니다. 그 말은 곧 어떤 질문이냐에 따라 토론의 질도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엄마표 토론'을 힘들어하는 분들의 대다수가 바로 이 '질문'의 영역을 가장 어려워합니다. 질문이 토론의 시작인데 질문부터 막히니 결국 출발도 못 해보고 "토론은 엄마표 영역이 아니야"라며 포기하게 되는 거죠.
물론 질문은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하지만 토론을 위한 좋은 질문은 노력이 필요해요.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에 대한 관심과 관찰 만으로도 대화를 이끌어갈 질문이 퐁퐁 솟아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상황은 좀 달라집니다. 매번 친구 이야기, 고민 이야기, 일상 이야기에서 새로운 질문을 끌어내기도 어려울 뿐더러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도 쉽지 않죠.
질문의 출처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공통적인 한 가지는 '배경 지식'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알아야 그 안에서 질문이 생성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더 깊이 잘 알게 될수록 질문의 결도 달라지게 되고요. 우리는 막연히 낯설고 모르는 대상이 잘 알고 익숙한 대상보다 많은 질문을 이끌어낼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음표'를 달고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깊이의 질문인 것은 아니니까요. 질문이란 알면 알수록 깊어지기 때문에 토론의 시작인 좋은 질문을 위해 배경 지식은 필수가 되는 셈입니다.
시지프스 행복론 VS 불행론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침 등교길 차 안에서 아이와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시지프스' 이야기가 나왔어요. 쳇 바퀴 굴러가듯 매일 반복되는 일상 이야기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는데 이야기는 '시지프스의 불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죠. 신들을 기만한 죄로 죽어서 바위를 산 꼭대기로 굴려 올리지만 계속해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의 형벌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반복적이고 의미 없는 인간의 삶을 비유하는 스테레오 타입처럼 등장하곤 하죠. 역시 그러려니 하고 듣고 있는데 아이가 불쑥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시지프스는 행복할 수도 있대!"
관점의 변화가 훌륭하긴 한데 너무 낯선 접근이라 처음에 할 말이 없더라고요.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는 아이의 한 마디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할까 고민 중일 때 아이가 생각의 출처를 덧붙이더라고요.
"엄마가 좋아하는 그 <이방인> 쓴 작가 있잖아. 그 작가가 시지프스에 대해 쓴 책이 있는데 그 책에서 한 말이야. 우리는 계속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시지프스 본인은 자기 자신을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야."
나중에 확인한 거지만 저도 모르고 있었던 카뮈의 <시지프 신화>라는 에세이를 말하는 것이었어요. 짧은 등교길에 깊은 대화까지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날 아침 아이가 던진 화두 혹은 질문은 그 후로도 우리의 토론 소재로 이어져 인간의 불행과 행복, 그리고 그에 대한 인식이라는 철학적인 논쟁으로 계속됐습니다. 아이의 깊이 있는 배경 지식이 만들어낸 좋은 질문 하나가 지속적인 대화와 토론을 생성해 낸 훌륭한 예시였죠.
(참고로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가 주장하는 바는 간단히 말해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입니다. 끝나지 않는 형벌처럼 느껴지는,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는 시지프의 삶은 우리 삶과 닮아 있지만, 어쩌면 그 반복적인 모습이 삶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는 그 무의미함을 사랑하고 그 자체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는 "상상해야 한다"를 빼고 "행복할 수도 있다"고 받아들여 '시지프스 행복론'을 펼쳤지만, 저는 반대로 카뮈가 "그렇게 상상해야 한다" 강조하는 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반론을 펼쳤네요. 토론은 찬반이 있어야 더 풍성해지는 거니까요.)
배경 지식을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만큼 좋은 배경 지식 창고는 없습니다. 독서 활동이 왜 꼭 토론으로 이어져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저 역시 토론 활동을 잘 하기 위해 독서가 필수적이란 점은 강력히 지지합니다. 때문에 일부러 아이들과 토론 수업을 할 때도 자신이 읽었던 책의 내용을 연결해서 주장하기나, 토론 마무리 글쓰기 등을 제시하기도 하고요. (실제로 많은 자사고, 특목고 면접 기출 문제를 분석해 보면 "기존에 읽었던 독서 활동과 연계해 의견을 제시해보라"는 질문이 많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독서가 여의치 않다면 뉴스 읽기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비문학 독해글, 특정 분야의 지식을 제공하는 어린이 잡지 등을 읽는 것도 배경 지식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다큐멘터리나 양질의 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도 있고요.
- 커버 이미지_©어나더씽킹랩 via Dall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