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콘이냐, 컵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이스크림 '콘이냐, 컵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토론과 대화는 한 끗 차이입니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처럼 모든 사람들이 한번은 고민해봤을 법한 선택의 상황에서도 토론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왕초보 토론자인 부모님과 유아 및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함께 시작해보면 좋을 <선택권을 주는 'VS'토론>에 대한 팁을 드립니다.

anotherthinking

7월 초부터 3주 간 독일에 머무르는 동안 1일 1 아이스크림(어떤 날은 1일 2 아이스크림)을 실천했습니다.

몇 개의 주요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가게마다 직접 개발해 만든 아이스크림을 판매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아이스크림 숍들을 찾아다니며 그 가게만의 맛을 느껴보는 즐거움이 큽니다. 같은 딸기, 바닐라, 초코 아이스크림이라도 약간씩 맛과 풍미의 차이 등이 있고, 다른 가게에서는 팔지 않는 자신만의 메뉴를 개발해 판매하는 곳들도 많습니다. 후자의 가게들은 대개 아이스크림 맛집으로 소문난 경우가 많은데, 이런 곳들은 늘 긴 줄이 늘어서 있곤 합니다.

워낙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사실 독일 아이스크림의 세계에 빠지게 된 것은 아이가 다니던 학교의 교장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독일 살이 1년 후 맞은 첫 여름 방학,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몇 가지 '미션'을 내주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하루에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기' 였습니다. (그 외의 것들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비슷한 맥락의 것들이었습니다. 말이 '미션'이지 그냥 '재밌고 건강하게 잘 놀다 오기 위한 목록들' 정도였죠.)

독일의 아이스크림 가게들이 대부분 여름을 중심으로 몇 개월-보통 4월부터 10월 경-만 장사하는 경우가 많고 여름이야말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더위를 날리기 딱 좋은 계절이니 교장 선생님의 미션도 일리는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죠. 왜 교장 선생님이 나서서 전교생들에게 '1일 1 아이스크림'을 권장하는 것인지. 아이는 그때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핑계로 여름 내내 정말 많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그러다 보니 덩달아 우리 가족들 모두 맛있는 아이스크림의 세계에 빠졌어요. 많은 독일인들이 그러하듯 '여름=아이스크림' 공식을 세워 그 후로도 줄곧 아이스크림 가게가 오픈하는 4월이 오기만을 기다리곤 했을 정도입니다.

이번 여름, 짧은 독일 방문을 계획하면서도 아이와 저는 '1일 1 아이스크림'에 대한 생각으로 신이 났습니다. 실제로 가능하면 다른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맛을 즐기려고 노력했죠.

독일의 아이스크림 가게 상징인 아이스크림 콘 모양의 조형물. 대부분 쓰레기통인 경우가 많다. 

Waffel oder Becher?

독일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맛을 고르고 나면 직원이 물어봅니다. 'Waffel oder Becher?'

영어로 '와플 or 컵'이란 뜻인데 와플 콘에 담아 먹을 것인지 아니면 컵에 담아 먹을 것인지 선택하는 절차로 그건 만국 공통이 아닐까 합니다.

뻔한 이야기를 지금 왜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콘이냐 컵이냐' 둘 중 선택을 해야 하는 아무것도 아닌 상황도 얼마든지 토론 활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로 컵을 택하고 아이는 경우에 따라 콘과 컵을 번갈아 택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이 선택의 문제를 두고 아이와 제가 잠시 의견 차이를 보이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독일 방문 중반부를 넘긴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역시 하루의 마무리를 위해 산책 겸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았는데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다 말고 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 콘이야 컵이야?"
"나? 컵이지! 콘은 불편해."
"아냐, 콘으로 먹어. 환경을 생각해야지."
"왜? 컵도 종이잖아. 그리고 지금 와플까지 먹고 싶지 않기 때문에 결국 버릴 것 같은데 그게 더 환경에 안 좋은 거 아니야?"
"컵으로 먹으면 플라스틱 숟가락을 써야 하잖아. 콘으로 하고 콘까지 다 먹어야지."

플라스틱 숟가락을 지적하는 부분에서 더 이상 반박할 게 없어진 저는 결국 콘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온 아이가 한마디 쐐기를 박더라고요.

"엄마는 바로 어제 웹사이트(어나더씽킹랩)에 지구가 뜨거워지는 문제에 대해서 올렸으면서 엄마부터 실천을 안 하면 어떡해? 이런 작은 것부터 해야지. 내가 살아갈 미래 생각도 좀 해줘!"

네, 맞습니다. 그날 이후 물을 것도 없이 저는 아이스크림을 콘에 담아 먹었습니다.

개인적인 에피소드입니다만 이처럼 아주 사소한 선택의 문제가 바로 토론의 시작입니다. 어느 집을 막론하고 이와 비슷한 선택의 상황이 발생합니다. 음식 문제만이 아닙니다. 주말에 할 일, 볼 영화, 여행 갈 장소 등 선택지가 많은 경우부터 위의 '아이스크림 콘이냐 컵이냐'와 같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납니다.

즉 이런 상황을 잘 이용하면 아주 쉽고 즐겁게 토론의 기본기를 쌓아갈 수 있습니다. 토론은 가능한 일찍 시작할수록 좋지만 막상 우리가 알고 있는 토론의 방식은 이른 나이의 아이들이 버거워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A 또는 B> 중에 선택하는 경우는 일상 속에서 늘 일어나는 것이라 아이들에게 최적의 방식이지요.

아이도 엄마도 토론 초보라면 '선택권을 주는 문제'로 시작해보세요.

-아이스크림 vs 빙수

-딸기 우유 vs 바나나 우유

-수영장 vs 놀이 동산

-그네 vs 미끄럼틀

-강아지 vs 고양이

각자의 관심사와 환경에 따라 할 거리는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다만 명심할 점이 있습니다. 이 때는 선택을 하는 '결과'에만 집중하지 말고 '왜 선택하는지' 이유와 근거를 말하게 해야 합니다. 아이스크림을 왜 컵에다 먹는지 혹은 콘에다 먹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다음 날 선택이 바뀌었다면 왜 바뀐 것인지 등 의견과 근거를 들어 '선택의 과정'을 설명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의도적으로 반대 편을 선택하는 것도 재밌는 토론 활동을 위한 장치가 됩니다. 아이가 '수영장'을 택하면 엄마는 일부러 '놀이 동산'을 택해서 장점, 단점을 포함한 선택 이유를 설명하는 식입니다. 이런 방식은 아이로 하여금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긍정적 자극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결론은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면서 그 이유에 대해 공감해주어야 합니다. 토론이란 게 원래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지만 특히나 '엄마표 토론'에서는 엄마가 '내 논리가 더 맞다'는 이유로 아이의 기를 꺾거나 이기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건 아이의 마음을 닫게 만드는 행동이죠.

VS 대결 구도 방식의 토론 쇼 팟 캐스트 'Smash Boom Best' 웹사이트 화면 캡처.

한 가지 팁을 더 드리자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토론 방식을 차용한 팟 캐스트 'Smash Boom Best'를 참고해간단한 토론 아이템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영어로 진행된다는 최대의 단점이 있긴 한데 경우에 따라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vs' 대결 구도이다 보니 토론이 아주 간결하고 명확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영어 공부를 하는 아이와 함께 들으면 영어와 토론 공부를 같이 할 수 있어 일석이조입니다.

각 주제 별 제기되는 주장이 객관적 정보를 바탕으로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창의적이고 자기 주관적인 근거를 내세우기도 해서 듣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영역의 사고를 들으면서 '아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고 배우고 깨닫는 계기도 되어 주고요.

세상의 모든 것들은 토론 활동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처럼 거창한 것만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콘이냐, 컵이냐'도 얼마든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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