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엔잡(Ferienjob)을 아시나요? '알바'하며 체험형 공부하는 독일 청소년들

페리엔잡(Ferienjob)을 아시나요? '알바'하며 체험형 공부하는 독일 청소년들

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독일 일부 주의 학교들은 이미 7주 이상의 긴 여름 방학에 들어갔습니다. 독일에서 방학은 우리의 그것과 풍경이 많이 다른데요, '여름방학 알바'인 '페리엔잡'도 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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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거주할 당시 아이가 다녔던 학교의 학부모 커뮤니티를 최근 우연히 다시 들어갔다가 비슷한 성격의 글이 여러 개 올라와 있는 걸 봤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우리 애가 < >학년인데 여름방학 잡(job)을 찾고 있어요. 필요하신 분이나 연결해주실 분 있으면 메시지 주세요!"

학년은 대부분  7~9학년이었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명시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요, 대체로 애완 동물 산책 시키기 등 반려 동물을 돌보는 일이나 가드닝,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 어린 학생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일 등이 예시로 등장했습니다.  


독일은 주마다 방학 일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빠른 경우 보통 6월 말~7월 초에 방학을 시작합니다. 늦어지는 경우에는 7월 중순 이후나 7월 말이 되어야 방학을 시작하는 주도 있습니다. 이렇게 방학 시작 일정이 다른 이유는 방학 때 주로 여행을 가는 일정이 보편적인데 한꺼번에 몰릴 경우 혼잡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겹치는 날짜가 있긴 해도 전체적으로 약간씩 엇갈리게 방학 일정이 잡히기 때문에 분산 효과를 볼 수 있는 거죠.

시작과 끝나는 날짜는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 기간은 7주~8주 정도로 비슷한데요, 우리나라의 여름방학 기간과 비교하면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 무엇을 하며 보낼지 고민하고 계획하는 일이 독일 학부모들에게도 숙제 같은 일이죠. 가장 중요한 일정은 여름 휴가 계획입니다. 장기 휴가가 보편화돼 있는 편이라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간 여행을 떠나는 집들도 제법 있습니다.

방학, 특히 여름방학 중에만 열리는 다양한 체험형 프로그램도 꽤 좋은 옵션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여름 방학 특강' 정도인데, 공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요. 보통 1주일~2주일 단위로 열립니다. (가끔 '영어 캠프' 같은 공부에 관련된 캠프도 열리지만, 보편적인 케이스는 아닙니다.)

남자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축구 캠프는 기본, 테니스, 볼링 같은 다른 종목의 스포츠 캠프며 매일 매일 다양한 놀이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놀이 캠프'도 있습니다. 주로 운동하거나 모여서 놀거나 음악 등 뭔가를 배우거나 하는 식인데요, 마술 캠프, 요트 캠프 같은 보편적이진 않지만 특색 있는 방학 캠프도 봤습니다.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시에서 운영하는 방학 캠프가 꽤 많은데, 그런 경우에는 아침에 가서 점심과 간식까지 주고 오후 늦게 돌아오는 일정인데도 가격이 굉장히 저렴하고, 사설 기관 등에서 운영하는 캠프는 그보다 비쌉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페리엔잡'에 대해 다루는 뉴스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Berliner Woche 웹사이트 화면 캡처. 

여기에 독일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방학 풍경이 있는데요, 서두에서 거론했던 대로 '여름방학 잡(job)'이 그것입니다.

공식 명칭은 휴일(holidays)이란 뜻의 독일어 페리엔(Ferien)과 일자리(job)를 합한 Ferienjob으로 직역하면 '휴일 일자리'가 되는데요, 여름철 긴 여름 휴가 등으로 직장 등에서 결원이 발생했을 때 임시로 그 빈자리를 메꾸는 역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는 청소년들이 여름방학 기간 동안 경험하는 아르바이트를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독일에서는 만 13부터 '페리엔잡'을 통해 스스로 일하고 돈을 버는 '경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령대별로 규정을 까다롭게 해 아이들을 노동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있기도 합니다. 노동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람직하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만 13~14세는 반드시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일할 수 있습니다. 또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하루 최대 2시간만 일할 수 있고, 단 가족 농장 등 농업 분야의 경우는 예외가 적용돼 3시간까지 일할 수 있습니다.

15세부터 17세까지의 청소년은 방학 기간 동안 1년에 최대 4주 동안만 일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여름방학 기간 동안 4주를 몰아서 일해도 되고 조금씩 나누어서 일해도 되지만 연간 총 20일을 넘어서면 안 됩니다. 근무 시간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초과해서는 안되고 근무 시간도 오전 6시에서 8시 사이여야 합니다. 휴식 시간도 보장 받습니다. 18세 미만은 하루 4시간 30분~6시간 근무할 경우 최소 30분의 휴식 시간을 보장 받아야 하고, 6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에는 60분의 휴식 시간을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임금은 딱히 정해진 바가 없고 서로 간 약속에 따라 지급되는데요, 다만 18세 이상 청소년들은 최저 임금을 받을 수 있는데, 지난해 10월부터 시간 당 12유로(한화 약 1만7000원)가 적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18세 미만은 최저임금법이 적용되지 않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해요.  

일자리 또한 청소년 고용 보호법에 따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위험한 작업은 금기시됩니다. 애완 동물 돌보기나 정원 가꾸기, 신문 배달, 심부름 등의 가벼운 활동은 허용되나 육체적으로 힘들거나 위험한 활동이 금지돼 있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휴일 일자리는 애완동물 돌보기 같은 가벼운 활동만 허용되며 육체적으로 힘들거나 위험한 일은 금지됩니다. ©어나더씽킹랩 via 미드저니

'휴일 일자리'는 연령대 별로 의미가 조금씩 다른데요, 부모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13~14세는 용돈을 버는 정도의 활동이자 스스로 경제 활동을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정도로 받아들여 지는 반면, 15세 이상의 청소년들에게는 직업 세계를 경험해보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기도 하며 사회 경험을 일찍 체험해볼 수 있는 '또 다른 공부'로 받아들여 지기도 합니다. 특히 대학 진학을 하는 김나지움 학생들이 아닌 고등학교 졸업 후 직업 현장으로 나가게 될 학생들에게는 '휴일 일자리'가 어떤 의미에선 '인턴쉽' 같은 의미를 띠기도 하고요.

독일에 거주할 당시 이웃에 살고 있는 15세 전후의 주변 청소년들이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통해 스스로 용돈을 버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하루에 한 두 시간 정도 이웃의 아이와 놀아주거나, 책을 읽어주거나, 혹은 휴가를 떠난 집의 반려 동물이며 식물을 대신 케어해 주는 것 정도였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얻는 배움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보니 '공부도 하고 돈까지 버는 1석 2조의 체험'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독일 청소년들은 굉장히 독립적이고 성숙합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일단 부모님으로부터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대체로 갖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런 생각이 강박적으로 작용해 부모님 집이 바로 옆인데도 굳이 자취를 하겠다며 거주를 분리하는 경우까지 봤습니다. 성인이 되었으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더군요.

독립적 마인드를 키우는 환경과 배경은 다양하겠지만, 일찍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경제 활동을 하며 부딪치고 깨닫는 것이 큰 몫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순히 돈을 벌면서 경제 공부가 되는 것을 넘어 힘든 상황에도 놓여보고 그걸 돌파해나가는 의지도 기르며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을 키우게 되는 것까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배우고 성장하게 되는 거죠.

해서, 우리집도 벌써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올 겨울이면 만 13세가 되는 아이와 겨울 방학 때부터 '페리엔잡'을 시작해보기로 한 것인데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하는 게 보람이 있을까 등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는 한국이고 독일의 '페리엔잡'의 규칙이 똑같이 작동하진 않지만 우리 나름대로 독일식을 따라 13세 규정에 맞게 하루 2시간 짜리 경제 활동을 찾기로 했죠. 안타깝게도 다른 집에서 아이를 고용해줄 것 같지는 않아서 집안 일을 시키는 방법이나 동네 꼬마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등의 일이 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독자 여러분들도 아이들과 '페리엔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동참해보면 어떨까요? 학습 이외의 공부를 통해 아이를 더 크게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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